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5)
제5화
“이 병자 같은 경우엔 복부에 검에 베인 상처가 벌어져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안에 있는 장기부터 확인하셔야 합니다. 다행히 장기에는 이상이 없으니 베인 부분만 재생시키고 출혈을 멎게만 하면 되는 환자지요.”
현자는 종종 이렇게 다친 이들을 치료하면서, 또 내가 치료해보게 하면서 성력의 운용에 대한 감을 깨우치도록 돕고 있었다.
지금은 1황자와 함께 교육을 받고 있는 터라 평소처럼 신성력을 꺼내 보일 수는 없었다.
“성력이 혈액의 역할을 대신해줄 수는 있으나 결코 완전치는 못하니 모든 경우에 출혈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서두르십시오.”
“알고 있어.”
대답하며 나선 이는 다름 아닌 1황자였다.
“비켜, 이 머저리 자식아.”
그러면서 굳이 나를 툭 치고 남자를 향해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선 내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막대한 양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호오.”
현자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확실히 2성과 5성의 차이는 세밀한 제어로는 극복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엔진 자체가 달라서,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 한다고 한들 따라 잡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
1황자는 노력하지 않아도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쏟아부어 중환자를 치유하고는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 신성력을 바탕으로 남자의 상처를 단번에 아물도록 했다.
“훌륭하십니다, 1황자 전하.”
1황자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것이 너와 나의 차이다, 꼭 그렇게 말하는 듯 보였다.
“한심한 새끼. 그 나이가 되도록 성력조차 깨우지 못하다니. 하긴, 네놈이 쓸데없는 놈인 건 태어난 순간부터 알고 있었지.”
녀석에게는 싱겁게 들릴 수 있어 미안한 말이지만, 아무리 저래 봐야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저 꼬맹이는 고작해야 십대 초반이고, 나는 정신만큼은 서른 살이 넘은 아재다. 물론 가끔 저놈 머리를 쥐어박아 주고 싶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웬만한 건 지금처럼 ‘오냐 너 잘났다’, 하고 넘길 수 있었다.
반응이 시원찮은 것이 화를 돋우었는지 1황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역겨우니까 착한 척 굴지 마. 그러면서 속으로는 황위를 노리고 있는 거 모를 줄 알아? 내가 황위에 오르게 되면 당장 너부터…….”
“1황자 전하. 수업 끝났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지요.”
보다 못한 현자가 끼어들었다. 지금은 황자의 교육을 맡고 있지만 한때 신성 제국의 중추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현자 파우스트.
씩씩대며 나와 현자를 번갈아 바라보던 1황자는, 결국 현자에게 대꾸하지는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잘 참으셨습니다, 전하.”
“뭘.”
“부끄럽지만 제가 자부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는 것과, 그러면서 많은 이들을 봐 왔다는 것인데…… 3황자 전하 같은 분은 보질 못했습니다.”
8살의 나이에 의젓하기로는 으뜸이라느니, 총명하기로는 천외천의 재능을 타고났다느니.
현자가 대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데, 왠지 모르게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고개만 휘휘 저었다.
이어 몇 번이나 망설이던 현자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어찌 됐든 지금 1황자 전하께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여러모로 3황자 전하께 불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대체 그놈의 황위가 뭐라고.”
“전하 빼고 모두가 탐내는 보배이지요.”
“경도 관심 없잖아?”
“다 늙어가지고 그런 데 관심을 갖는 것만큼 주책이 없지요.”
현자가 미소를 지으며 유들유들하게 받아쳤다.
“난 정말 그런 거 관심 없는데.”
1황자나 2황자가 나를 견제하는 건 나 역시 성황의 피붙이기 때문.
“허나 폐하의 현식으로 태어나신 한 성황 후보에서 제외되실 수 없습니다.”
성황의 자식이라면 꼭 참여해야만 하는 경쟁 과정. 그리고 이 과정 중에 피가 튀기지 않은 것은 극히 드물단다.
거룩한 혈투.
사람들은 그것을 이런 모순된 단어로 불렀다. 저게 말인지 방구인지 당최 모르겠단 말이지.
인류의 구원자라는 성황을 되기 위한 과정이 수많은 사람을 죽여 나가는 전쟁이라니. 나로선 이 역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경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지혜로움이 극에 달았다고 칭송받던 현자 파우스트. 하지만 지극히 현명한 나머지, 때때로 이 세상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앞서나간 발언들을 하였고 그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단다.
그런 현자라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으나.
“소인의 재주라고는 오래 산 것 밖에 없으나, 그 세월 덕에 깨달은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
“말은 아낄수록 좋더군요.”
파우스트는 명확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도 이 세계에서 걸어야만 하는 방향을 조금씩 파악해 나가고 있었다.
* * *
“정하늘. 그 새끼는 진짜……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놈이 있었을까 싶다.”
“분위기 처지게 이미 죽은 놈 얘길 해서 뭐하냐?”
“아직까지 믿기지가 않아서 그런다. 그놈한테는 삶의 낙이 뭐였을까. 지 건강이랑 가족들을 내팽개치고 일만 하는 놈이 어디 있어?”
번뜩 눈을 떴을 때 비로소 꿈을 꾸고 있었단 걸 알 수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고 심장은 쉴 새 없이 뛰고 있었다.
반가운 동료들을 꿈에서나마 봤던 탓일까. 아니면 나에 대한 평가가 정말 저럴까 두려운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힘들게 쌓아온 정하늘의 삶은 비로소 끝이 났다는 걸 확실하게 받아들이게 된 탓일까.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삶의 보람. 분명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힘든 일정을 소화해낼 수 없었을 거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히 퇴원하게 됐어요. 어려운 수술이라고 들어서 솔직히 반쯤은 포기했었는데…….”
사람을 살려냈다는 사실에 대한 만족감. 나는 그런 것에 매료되어 의사 일에 몰두할 만큼 착해빠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건 위인전에서나 볼 수 있는 허구적인 이야기였다.
진심으로 감사 인사와 선물을 전해오는 환자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내겐 그게 크나큰 보람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의사에게 큰 감사를 느낀 적이 있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젠장.”
그런데 지금 이 세상에서는 성력도, 의학도 당장엔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라 남들 몰래 중상자들을 치료하고 있었으니 당연하게도 아무런 인사조차 받지 못했다.
“나도 참 유치하네.”
유치한 걸 알면서도 마음 한 켠이 공허하고 답답한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허울 좋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면서 나 역시 성력을 발전시키고 있었으니 그거면 된 거였다.
“황자 전하.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며 현자를 찾아간 내게 그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가슴팍에 화살을 맞고 실려 왔던 고개 너머 마을의 촌장 혹시 기억나십니까?”
“어. 화살촉이 힘줄에 맞아서 고생 좀 시켰던 환자 아냐?”
“맞습니다. 그 자가 감사 차 제게 전해온 폐물입니다.”
“이건 왜? 현자한테 준 거 아냐?”
안을 열어보니 장문으로 감사 인사를 담은 편지와 비단, 곡식 등이 담겨 있었다.
“전하께서 살린 환자이니 마땅히 전하께서 받는 것이 맞지요.”
내가 놀란 눈으로 현자를 바라봤다. 상황이 참 공교로웠다.
“전하께서 살리신 이들은 결코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훗날 전하께서 세상에 빛을 드러내시는 순간 모두가 전하께 경의를 표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이 꼭 서운해 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뭘 이런 걸 다. 거기 촌장 사연도 딱하더만. 이건 돌려보내. 마을 주민들이나 잘 먹이고 입히라고.”
“평소 마을을 어질게 다스리는 이라 오히려 주민들이 합심하여 자발적으로 모은 것들이라 합니다. 마음을 봐서라도 받아 주시지요.”
“마음만 받으면 되지.”
“넓으신 전하의 아량에 모두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할 것입니다. 때가 되면 꼭 전하의 공덕이었노라 알리겠습니다.”
“됐다, 됐어.”
괜히 유치한 생각을 했던 내가 스스로 더욱 부끄러워졌다.
모두가 알아주고 있는데.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고마워하는 이들이 있는데.
혼자서 서운해 하고 있었던 거다.
“조만간 그 마을이나 한번 들려봐야겠네.”
“행차를 준비해 두겠습니다.”
“아냐. 그럼 그 마을에서는 또 별별 준비를 다 해야 될 거 아냐. 그냥 아무 때나 슥 가서 둘러보기만 할 거야. 수도에만 있으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전하께서는 생각이 너무 깊으시어 때때로 주책없이 늙기만 한 스스로를 반성케 하십니다.”
현자의 주름진 눈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 보였다. 별것도 아닌 걸로.
이후로도 현자의 가르침은 계속되었으며 주력으로 다룬 것은 역시 성력에 대한 운용이었다.
어떤 상처에는 어떤 식으로 성력을 다스려야 하는지. 대부분은 상처 주위 전체를 성력으로 도포하는 식이었으나, 경우에 따라 디테일한 차이가 있었고 덕분에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아직까지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비로소 어느 정도 성력을 다룰 수 있게 됐을 때쯤.
「최소치에 걸맞은 성력이 축적되었습니다.」
「암전되어 있던 영겁의 성배가 빛을 발합니다.」
알 수 없는 메시지가 또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성배가 권능의 일부를 하사합니다.」
「통제의 권능이 깨어납니다.」
「성력을 다스리는 데 더욱 탁월해집니다.」
「한계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더욱 많은 성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됩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