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50)
제50화
신성 제국의 3황자, 데미안이 클레이디크로 오기 전까지는 제국 양측이 힘을 합치는 경우가 드물었다.
특히나 의원과 사제의 경우에는 각국에 발생한 환자라면 자신들이 해결해야만 했고, 서로가 가진 기술이 어느 정도의 효력을 갖고 있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발칸 제국의 의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의술이 저들의 성력보다 더욱 우월하다고 믿어 왔었다. 실제로 발칸 쪽의 사상자가 더욱 적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순수 무력만 보면 발칸 제국의 병사들이 더욱 강력한 탓에 전투 중 다치는 이가 적었을 뿐, 부상자를 치유하는 데 있어서는 사제들의 성력이 몇 배고 우월했다.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3황자가 등장한 이후 양측이 서로 힘을 합치기 시작한 후부터였다.
기껏해야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는 수준이었던 것이 발칸 제국의 의술이었다면, 사제들의 성력은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3황자 전하 덕분에 우리가 할 일은 있어서 다행이네만.”
“실은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지도 의문일세.”
신성 제국의 3황자는 의술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그가 알려준 지식 덕분에 혈관을 피해 상처 부위를 절개하는 데까지는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이후 겉으로 드러난 상처를 직접적으로 치유하는 건 사제들의 역할이었다. 의원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출혈을 억제하도록 혈관을 지혈하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계속될수록 의원들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칼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3황자가 어떻게 그토록 의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3황자도 결국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성력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성력은 의술보다 우월하다.
그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이 어디에요.”
그렇게 말을 해 봐도 칼로스 역시 씁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께서 빼어난 의원이었다는 데 갖고 있던 자긍심마저도 점점 더 얕아지고 있었다.
“잘 봐. 당장은 어렵겠지만 너희도 언젠가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해야만 하고.”
그런 생각을 깨부숴주겠다는 듯, 돌아온 3황자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작은 실과 바늘이었다.
“전하. 그것으로 무얼 하시려고…….”
“이제부터 혈관을 봉합할 거야. 칼로스, 너는 이 위쪽을 잘 누르고 있어.”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칼로스는 3황자가 시키는 대로 절단된 동맥의 바로 윗부분을 꾸욱 눌렀다.
“혈관으로 피가 새어 나오면 봉합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니까 칼로스 네가 확실히 눌러주는 게 중요해.”
“아, 알겠습니다.”
모든 의원들이 3황자를 바라보는 가운데, 3황자가 바늘에 실을 끼워 넣었다. 설마 하는 시선들.
3황자는 그들의 기대가 틀리지 않았다는 듯 바늘을 혈관 가까이 가져다 댔다.
“전하, 혈관을 바늘로 찌른다면 혹여나 혈관에 구멍이 나서 더욱 상황이 악화될까 두렵습니다.”
“얇게 만든 거니까 괜찮아.”
3황자의 말대로 바늘은 꽤나 얇았다.
“하지만 얇은 만큼 불가능한 만큼 정교한 작업이 요구될 듯합니다.”
바늘은 물론이요, 혈관의 크기는 많이 쳐 줘 봐야 0.2인치나 될까. 저걸 육안으로 보고 꿰맬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3황자가 저런 일을 언제 해 보았겠는가. 의원들이 스스로의 능력에 좌절하고 있기에, 3황자가 이들을 위해 무리한 일을 저지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또한, 봉합 후에 회복시키려면 어차피 성력이 필요한지라 굳이 저희를 위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느낀 건데,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튼튼하거든? 누가 죽이려고 해도 잘 안 죽더라고.”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3황자가 저렇게 말을 하니,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아온 것인지 괜히 안쓰러워졌다.
“이렇게 봉합만 해 두면 알아서 회복될 거야. 어차피 피가 새어 나오지만 않으면 굳이 빠르게 재생시킬 필요도 없고.”
3황자가 말하는 것들은 의원들로서도 생전 들어본 적이 없는 지식들이었으니, 그게 정말 사실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모든 의원들이 품고 있던 질문을 누군가가 나서서 던졌다. 3황자는 봉합을 시작하려다 고개를 들어 피식 웃었다.
“비밀.”
그리곤 그가 바늘을 혈관에 찔러넣었다. 그 순간 의원들이 일제히 긴장하며 3황자를 바라봤다.
정작 당사자인 3황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익숙하게 바늘을 움직였다.
절단된 혈관 양쪽을 자유로이 오가는 바늘을 보며 의원들은 경악했다.
이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의술과는 차원이 다른 것. 머릿속으로 알고 있더라도 어지간한 손기술과 강심장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따라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3황자는 의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조금은 쉽게 하는 방법도 있어.”
3황자는 혈관 전체를 봉합하지 않고, 거리를 띄워 세 부분만을 꿰맸다.
“너희 두 명 나와서 여기 실 잡아 당겨봐. 꿰맨 거 풀리지는 않게 적당한 힘으로.”
3황자의 말에 영문도 모른 채로 의원 둘이 나와 3황자가 꿰맨 실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실에 엮인 혈관이 잡아당겨지며 삼각형 모양이 되었다.
“이렇게 세모로 만들고 나면, 봉합하지 않은 부분들이 전부 직선 모양이 되잖아? 그럼 이 직선을 따라서 꿰매기만 하면 되는 거야. 원 모양으로 곡선을 따라 꿰매는 것보다는 훨씬 쉽지.”
3황자의 말을 들은 의원들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직접 해 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긴 해도, 저 방식대로라면 혈관을 봉합하는 데 훨씬 수월하기는 할 듯했다.
“대체 저런 것들을 어떻게…….”
“저 나이에 홀로 터득하신 거란 말인가.”
신성 제국 내에서 3황자가 어떻게 소문이 나 있는지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3황자에 대한 소문들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3황자가 혈관 봉합과 절개한 부분까지 완전히 봉합한 뒤, 환자를 침소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칼로스를 포함한 의원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성력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의술로만, 이뤄낸 일이었다. 자신들이 사용해 온 의술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라 감히 같은 의술이라 일컬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 * *
혈관의 봉합은 사실 저들이 당장에 해내기는 어려운 수준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내가 시기를 앞당겨 저들에게 보여준 것은, 그들이 가진 의술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깨우쳐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내 의도는 성공한 듯 보였다.
“……감사합니다. 전하 덕분에 제가 얼마나 못난 놈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칼로스는 꽤나 착잡한 얼굴이었다.
“허나 제가 전하께서 선보이신 기적을 감히 따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내가 괜히 칼로스를 유독 챙겼던 것이 아니었다. 돌발 상황에서의 침착함. 의술에 대한 탐구. 그리고 무엇보다 섬세한 손기술이 갖춰진 이였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칼로스라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정작 본인은 자신이 가진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것 같지만 말이다.
“오늘 보여준 걸 머릿속으로 계속 떠올리고, 충분히 연습해 둬. 조만간 너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침소로 돌아왔다.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이들이 참 많았지만 어차피 성벽에서 계속 보게 될 얼굴들이니 굳이 시간을 들이지는 않았다.
지금은 먼저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우선은 이곳에 있는 의원들의 의술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이들의 의술을 발전시키면 큰 전력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고, 내가 가진 의술도 자연스레 드러낼 수 있게 될 거다.
그런데 이건 참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 빡세다는 의대에서 6년간의 이론 공부와 실습을 마치고도 정작 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헤매기 일쑤인데, 이들에게 무엇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찔했다.
물론 당장 필요한 것부터 점차 가르쳐 나가는 것이 가장 수월하기야 하겠지만, 장비 문제도 문제고……
“가르친다고 한들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어려운 걸 떠나서, 이론적인 부분에서 기초를 닦아야 응용할 수가 있는데 저들은 인간의 몸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도 갖춰지지 않았다.
세포니 조직이니 하는 것들은 치워두더라도, 의대 본과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해부학에 대한 지식은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힐데스하임은 물론이고, 발칸 제국에서도 시체를 건드리는 것에 대한 인식은 썩 좋지가 않았다.
나 역시도 당사자가 기증한 시체가 아니라면 해부하는 것이 영 걸리기도 했고.
나 스스로가 달라졌다고는 해도 역시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었다.
해부에 대한 문제는 내가 가진 두 번째 고민과도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었다.
다크 엘프를 어떻게 정화시킬 것인가. 엘프 미아의 저주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일반적인 성력으로는 해결 불가한 문제. 엘프의 신체 구조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나는 엘프의 신체에 대해선 무지한 상태였다.
엘프와 다크 엘프의 몸을 각각 해부라도 해서 비교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답이 보일 법도 한데, 이 세상에 남은 엘프는 미아가 유일하니 이것 역시도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하아.”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데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전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오늘은 누구 안 볼 거라니까. 돌려보내.”
“그게, 파우스트 경께서 전하를 꼭 뵙고 싶다 말씀하셔서…….”
“파우스트?”
그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단지 내 얼굴이나 보자고 찾아온 것은 아닐 테니.
“들어오라고 해.”
잠시 후 파우스트가 들어오더니 내 얼굴을 바라봤다.
“아까 잠시 지나가다 뵀었는데 걱정이 많으신 듯 보였습니다만…… 잘못 본 것이 아니었군요.”
“아냐. 별걱정 없는데?”
“그러시군요.”
내 말에 현자는 아무 말도 않고 웃고만 있었다. 왠지 모르게 파우스트에게는 항상 속마음이 읽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파우스트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이 세상에 대한 지식이 빠삭한 그라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일 테니까.
하지만 파우스트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평소라면 모르는 척 돌아갔겠지만,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듯하니 말씀해 주시지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