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52)
제52화
“힐데스하임의 3황자에게 황태자 전하의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
클레이디크에서 황태자의 저택으로 복귀한 전령은, 아무리 생각해도 영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헌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전하께서 힐데스하임의 황자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게 알려지면 분명…….”
“알면 입조심 해라. 아는 이가 몇 없으니.”
황태자의 말을 들은 전령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곤 해도 전령은 여전히 황태자의 결정이 못마땅했다.
황태자가 현명하고 고고한 차기 군주라 기대받고는 있으나, 사람은 언제나 중요한 순간일수록 아둔해지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의 일이다. 효심이 지극하기로 유명한 황태자로서는 상황을 냉철하게 볼 수 없을 터.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적국의 황족에게 치료를 부탁해야 할 지경이라니. 성력인지 뭔지 하는 희한한 힘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서, 황궁에 있는 최고의 의원들도 어찌하지 못한 병을 고치지는 못할 텐데.
결국 전령은 그러한 말까지는 내뱉지 못하고 한숨만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비단 전령뿐만이 아니었다.
“전하. 가신들이 찾아왔습니다.”
황태자를 지지하는 발칸 제국의 여러 귀족들이 귀에 벌써 그 소문이 들어간 것인지, 곧장 황태자를 찾아왔다.
“그게 사실입니까?”
“전하! 힐데스하임의 손을 빌리다니요! 차라리 흑마법사 놈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나을 지경입니다.”
“흑마법이라니. 말이 지나치군.”
황태자의 꾸짖는 듯한 말투에 그제야 그 가신은 말실수를 한 것을 알아채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또 다른 가신은 여전히 황태자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늘어놓았다.
“아직 계승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설령 폐하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폐하도 모르시는 걸 알다니 그대들은 귀도 밝구려.”
가신들이 저마다 사람을 두어 황태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는 걸 황태자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떳떳한 행동은 아니었기에 가신들도 그에 대해선 입을 열지 못했다.
“……흠흠. 아무튼 전하께서 무슨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는 알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힐데스하임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많이 하셨지요.”
“그것까지 관여할 바는 아니긴 하나 전하께서 아직 황위를 계승하지 않으셨다는 걸 명심하셔야 합니다. 괜히 잘못 보였다가는 거사가 흐트러질까 두렵습니다.”
“전하께서 원하시는 것은 황위에 오르고 나서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소 가신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던 황태자로서도 이번엔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황비께서 이미 세상을 뜨고 나신 뒤라면, 그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들 하는 건가? 뜻을 바꿀 생각은 없으니 물러들 가게. 언행에 유의하고.”
“허나 황궁의 의원들이 열심히 방도를 찾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벌써 몇 달이나 되었소? 기약 없는 방도를 계속해서 기다리고만 있으란 말이오?”
“그만큼 병환이 무겁다는 것인데, 과연 힐데스하임의 황자라고 한들 치료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그건 지켜보면 될 일일 터. 어찌 벌써부터 초를 친단 말이오.”
황태자의 뜻이 완고하다는 걸 알아챈 가신들이지만 여전히 못마땅하고 불안한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허면 힐데스하임의 황자가 도착하면 저희도 접견에 함께하게 해 주십시오.”
“뭐라?”
“어떤 사람인지, 발칸 제국에 위협이 될 인물은 아닌지 직접 확인해 보아야겠습니다.”
또한 가신들이 옆에서 지켜보는 와중이라면 황태자가 다른 꿍꿍이를 갖고 있다고 한들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야 황태자가 책봉을 받게 되었는데, 황태자가 허튼짓을 하다가 황제의 미움을 산다면 이제껏 황태자를 지지해 온 가신들 입장에선 그만한 날벼락이 없었다.
황태자의 입장에서는 적국의 황자와 가신들이 함께하는 것이 영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가신들로서도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3황자가 승낙하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승낙하지 않는다면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것으로 알고 물러가겠습니다.”
완강한 가신들의 태도에 황태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클레이디크의 수호 임무를 맡고 있는 아르민 후작이 황태자를 찾아온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황태자는 반가운 얼굴로 아르민 후작을 맞았다.
“아르민 후작. 이게 얼마 만인가.”
반가운 얼굴을 한 것은 아르민 후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 마음 통하는 구석이 여럿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아르민 후작은 황태자에게 여러 도움의 손길을 건네준 충신이었다.
“저 역시도 전하를 뵙게 되어 반갑기 그지없으나,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할까 합니다.”
“그러지.”
아르민 후작이 황태자를 찾아온 건 보나마나 3황자의 일에 대해 논하기 위함일 거였다.
클레이디크에서 힐데스하임과 발칸 제국의 군사들이 화합을 이뤄오고 있다는 건 이미 몇 달 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그 발단은 양 군을 이끄는 아르민 후작과 3황자가 가까워지면서부터였다고,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3황자는 어떤 사람인가.”
발칸의 황태자가 3황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기로 마음먹은 건, 아르민 후작이 삿된 이와 가까워질 만큼 줏대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3황자는 아르민 후작이 마음을 터놓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리라, 그렇게 추측하고는 있었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들어볼 필요도 있었다.
“훌륭하신 분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르민 후작은 힐데스하임의 3황자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만큼이나 낮은 이들을 돌볼 줄 아시는 분입니다. 어린 나이에 행동 하나하나에 총명함이 깃들어 있으며, 황족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뛰어난 배려심을 품고 계십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황태자로서도 사적으로 친분을 갖고 싶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평소와는 상황이 달랐다. 황태자가 힐데스하임의 3황자를 찾는 이유는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지 외교적으로, 사적으로 친분을 쌓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대가 본 3황자의 능력은 어떠한가.”
“……어떠한 능력 말씀이십니까.”
“신성 제국이 지닌 힘 말일세. 그가 가진 힘으로 지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겠는가?”
“3황자 전하를 초청하신 이유가 그것 때문이십니까?”
황태자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의 의원들조차 어찌하지 못한 병일세. 상태는 점점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어.”
아르민 후작이 황태자의 눈치를 살폈다. 발칸 제국민으로서, 힐데스하임의 신성력에 대해 칭송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르민의 생각을 알아챈 황태자가 나지막이 목소리를 낮췄다.
“다른 이들이라면 미쳤다며 손가락질하겠지만…… 힐데스하임의 손이라도 빌려 치료할 수 있다면 어찌 망설이겠는가. 솔직히 말해주게. 그대가 보았을 때 3황자라면, 그가 가진 신묘한 힘이라면 어머니를 살릴 수 있겠는가?”
그제야 아르민 후작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신성력은 힐데스하임에서 만들어 낸 허황된 힘에 불가하며, 신이 선택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시 그러한…….”
“그렇게 대답했을 겁니다. 불과 몇 달 전의 저였다면.”
아르민 후작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본 황태자의 마음속에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참된 기사라면 상대가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검을 내리지 않듯, 올바르게 된 발칸인이라면 힐데스하임을 증오하는 것이 마땅했지요. 그런 왜곡된 이치가 제 눈을 가려왔던 겁니다. 3황자 전하를 만나 뵙기 전까지.”
다른 황족, 혹은 귀족이 들었다면 당장에 아르민 후작을 역모죄로 몰아도 이상하지 않을 발언. 하지만 둘 사이의 끈끈한 연대감과 신뢰 덕분에 아르민 후작은 이제껏 느껴온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를 만나 심경의 변화가 생긴 모양이로군.”
“그분 덕분에 비로소 힐데스하임을 올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와 마찬가지로 힐데스하임의 군사들도 용맹했으며, 사제라는 이들은 의원들이 어찌하지 못하는 이들을 살려내곤 했습니다. 허나 이것이 지금 황태자 전하께 중요한 사실은 아니겠지요.”
맞는 말이었다. 황비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다른 건 제쳐두고 3황자가 가진 성력,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3황자. 그가 가진 능력은 어떠한가. 황비를 살려낼 수 있겠는가.”
“저도 그들이 가진 힘에 대해 무지하여 확답은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허나…….”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아르민 후작이 말을 이었다.
“3황자 전하께서 클레이디크에 머무르시는 동안 사제, 의원 할 것 없이 누구보다 많은 이들을 살려내셨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 말을 들은 황태자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그렇다면 어찌하는 것이 좋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부탁을 하고 싶어 부르긴 했으나, 적국의 황태자가 하는 부탁을 쉽게 들어줄 리가 없을 터인데.”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음이 좋으신 분이니 제가 잘 부탁드려 보겠습니다. 허나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않으심이 좋을 듯합니다. 그분이라 하여도 모든 이를 살려내지는 못하시니.”
“알겠네, 아르민 후작. 그대에겐 항상 신세만 지는군.”
“그런 말씀 마시지요. 저 역시 황태자 전하께 은혜 입은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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