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55)
제55화
사실 증상만으로 황비가 걸린 병이 폐렴이라는 것은 70퍼센트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mri나 ct 같은 영상 촬영 검사도 할 수 없는 이곳에서 그 이상으로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내가 아는 병은 물론이고, 내가 모르는 병 중에서도 같은 증상을 보일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후보군이 많을 때 한 가지로 좁혀야 한다면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렇게 내가 황비의 병에 대해 내린 추측은 역시 폐렴이었다.
‘하지만 폐렴이라면 전염성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살균 작업을 진행했는데도 전혀 진전이 없었고요.’
내가 병원에서 데리고 다니던 놈들이라면 이렇게 토를 달았을 거다. 늘 그랬으니까.
참 귀찮았던 놈들인데 어떻게 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 머릿속에 생생한지, 그리고 어째서 그놈들이 문득 그리워지는지 참 모를 일이었다.
‘폐렴이라고 꼭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럼 무심한 척 이렇게 말했을 거다. 무식한 놈, 공부 좀 하라며 한마디 툭 덧붙였을 거고.
그렇게 어느 정도 결론을 확고히 하는 사이 발칸의 의원들이라는 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의 의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황궁에서 사람을 살려내는 이들인 만큼 클레이디크보다는 훨씬 발달했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그래서 개복을 진행할 생각이다.”
개복이라는 것이 현대에서도 어느 정도 자제되고는 있지만, 그건 굳이 개복을 하지 않더라도 병인을 찾을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조심히만 진행한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은 만큼, 이곳에서 황비의 병을 찾기 위해서는 개복을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원들의 반발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개복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
“개복을 하는 과정에 있어 다른 장기나 혈관에 큰 손상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잘못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들의 말이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한 말이 모두 맞았다.
하지만 나는 현대에서 공부한 수많은 개흉술의 절차를 알고 있다. 개흉술은 수술 종류와 위치에 따라 수도 없이 종류가 많았고 그 대부분은 수많은 연구와 실전 끝에 의사들이 거둬낸 결과물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장기와 신경, 혈관의 주행 경로를 건드리지 않고 피부를 열 수 있을지.
그것을 어떻게 아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황태자의 동의도 없이 황비의 배를 개복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
그때였다.
“저는 찬성하겠습니다. 어차피 이대로 갔다가는 황비께서는 돌아가실 수밖에 없습니다.”
막 들어온 의원 한 명이 있었다. 방금까지 진료를 하고 있었던 듯 그의 옷은 피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아, 아버지……?”
칼로스가 그 의원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칼로스는 3황자가 개복을 한다고 했을 때 자신이 없었다. 본인은 아버지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존재였다.
3황자를 만난 뒤로 많은 것이 달라졌고 다른 의원들에게 받던 무시도 사라지다시피 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건 칼로스 본인이 잘난 탓이 아닌, 3황자에게 선택을 받은 덕분이었다.
3황자는 힐데스하임의 사제들에게, 그리고 발칸 제국의 의원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지만 그중에서도 칼로스는 특히 3황자에게 더욱 많은 걸 배우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3황자는 칼로스를 유독 자주 데리고 다녔다.
동정심 때문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었다. 처음 3황자를 만난 순간부터 칼로스는 보잘것없는 존재였으니까. 3황자는 불쌍한 이들에게 더욱 자비를 베푸는 참된 황족이었고, 그러니 칼로스도 그의 눈에 챙겨줘야만 하는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을 수만은 없었다. 더욱 노력하고 발전해서 3황자가 욕먹는 일이 없게,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훌륭한 의원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칼로스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3황자가 시키는 일을 훌륭히 해내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번 치료 대상이 발칸 제국의 황비였다. 평생일 일반민으로서 살아온 칼로스로서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과 함께 다니는 3황자 역시 황족이라지만 3황자는 다른 황족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귀족들에게서 느껴지는 권위 의식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고, 칼로스가 그를 편하게 대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에서 배려를 해 줬다.
하지만 모든 황족이 그렇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번 일로 황비가 죽게 된다면, 아니 자그마한 문제라도 생긴다면 칼로스와 3황자에게 죄를 물을 가능성이 컸다.
거기까지 생각한 칼로스가 걱정에 잠겨 있을 때였다.
찰싹.
문득 자신의 뺨을 때리는 감각과 함께 반쯤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이어지는 3황자의 말이 귓가로 들려왔다.
“정신 차려. 혹시나 돌아가신다고 해도 네 책임 아니니까. 이 일로 잘못되는 건 내가 막을 거고.”
“네, 넵! 알겠습니다.”
발칸 제국민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지만 신을 절대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경배의 대상으로 따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성력이 인간의 몸을 회복시키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사제들로 인해 죽어야 할 사람들이 되살아나는 걸 수도 없이 목격한 탓이었다.
하지만 황비의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 3황자의 성력은 아무런 효과를 보이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자 3황자가 선택한 것은 의술이었다.
‘……몸속에 잠들어 있는 병을 의술로 어떻게 해결하신단 말인가.’
칼로스는 3황자의 실력에 대해 굳게 믿고 있었지만, 이번 3황자의 선택은 절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성력이 몸 안에서 난 병에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한다지만 의술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쇠붙이로 난 상처를 통해 그 안에 있는 장기를 치료하는 것 정도가 최선. 저런 식으로 다치지도 않은 피부를 열어 몸 안의 상처를 살피는 치료는 듣도 보도 못했다.
“전하.”
데미안이 들고 있는 수술용 칼의 크기가 조금 작다 뿐이지, 사실상 검사가 상대를 죽이기 위해 베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어찌 된 일인지 출혈 자체가 적어 칼로스가 지혈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지만 데미안의 칼이 안쪽에 있는 장기에 손상을 주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주제넘는 말씀이지만 이 정도라면 황비께서 잘못되셨을 때 이 일로 저희의 책임을 묻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뭐가 걱정되는데?”
“그게…… 아닙니다.”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말해 봐. 대체 뭘 가지고 나한테 책임을 물을 것 같은데?”
“겉으로 나는 상처도 그렇고, 아무래도 신체 내부의 장기에 손상이 갈 우려가 있어…….”
칼로스의 말에 3황자가 잠깐 그를 흘깃 바라보더니 계속해서 메스질을 했다. 이윽고 황비의 배를 완전히 개복한 3황자가 칼로스에게 물었다.
“어때. 내가 어디 잘못 건드린 데가 있는 것 같아?”
훤히 드러난 황비의 신체 내부. 이따금씩 큰 상처를 입은 병사의 신체 내부를 본의 아니게 들여다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히 살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잘 모르는 칼로스가 보더라도 3황자의 메스가 잘못 건드린 부분은 전혀 없는 듯 보였다.
“이게 어떻게…….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우연의 일치일까. 3황자가 신의 선택을 받은 덕분에 그의 메스가 위험한 부분을 이리저리 피해 황비의 몸을 깔끔히 연 것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이건 3황자가 신체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고 섬세하게 메스를 다룬 덕분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놀란 것은 비단 칼로스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포함한 모든 의원들이 놀란 눈으로 그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칼로스의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수술이 끝난다면 곧장 아버지를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미 종적을 감춘 후였다.
그런 칼로스에게 3황자가 말을 걸었다.
“내가 방금 어떻게 했는지 기억해? 어떤 방향에서 어떤 각도로, 어느 정도의 깊이로 메스를 찔러 넣었는지.”
칼로스는 얼른 이 상황에 집중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3황자가 똑바로 봐 두라는 언질을 해 두지 않았더라도, 그로서는 워낙에 충격적인 장면이라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저, 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걸 해낼 수 있을 리가…….”
“누가 바로 따라 하래? 똑똑히 봐 두기만 했으면 된 거야. 하다 보면 익숙해질 테니까.”
그렇게 말한 3황자는 황비의 몸을 살피다가 팍 인상을 썼다.
“너 폐가 어딘지 알아?”
발칸의 의원들은 신체 내부의 병을 치료할 만한 능력이 없었기에 굳이 신체 내부에 대해 살펴보지 않았다. 그리고 신체 내부를 본다고 해도 어떤 장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조차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칼로스는 폐의 위치를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박동하는 선홍빛의 장기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아닙니까?”
그러자 3황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알고 있지?”
“이전에 이 부위에 상처를 입었던 병사가 있습니다. 호흡 곤란으로 얼마 가지 못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생각할 줄은 알고 있네. 생각할 의지도 있고.”
3황자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그를 봐 온 칼로스는 그게 작게나마 만족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표정을 굳힌 3황자가 황비의 몸 안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여기 좌폐하고 우폐 보이지?”
복부 하단에 양쪽으로 위치한 두 개의 폐. 칼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황비께서 기침이 심했고 호흡 곤란도 있었잖아. 폐에 문제가 있다는 건데, 네가 봤을 땐 어느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칼로스는 이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으니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자 3황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네 느낌상 어떨 것 같은지 말해봐.”
선홍색 빛을 띤 채로 열심히 박동하는 우폐. 그에 비해 좌폐는 꼭 흑마법에 시달리는 것처럼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고, 우폐에 비해 몇 배나 퉁퉁 불어 있었다. 박동 역시도 불안정해 보였다.
“……이쪽 아닙니까?”
3황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대개는 그런 식으로 딱 봤을 때 문제 있는 것 같은 게 맞는 거야. 자식, 보는 눈이 있네.”
긴장에 가득 차 있던 칼로스의 등을 3황자가 툭 쳤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정신이 다시 드는 기분이었다.
메스를 든 건 3황자인데, 어째서 3황자는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걸까.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칼로스도 이렇게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그런 칼로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3황자가 피식 웃어 보였다.
“처음엔 다 그런 거니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3황자도 처음엔 그랬단 말인가. 그럼 대체 어디서 이런 경험과 지식을 쌓았단 말인가. 힐데스하임의 사제들은 전부 의술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자들 뿐이었는데.
이전에도 그에 대해 조심스레 물은 적이 있었지만 3황자는 얼렁뚱땅 넘겨 버렸다. 말 못 할 사정이 있거나, 말하기 싫은 사연이 있거나 둘 중 하나라 생각하고 그 뒤로는 묻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3황자가 메스를 들어 올린 순간 칼로스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옆에서 대기만 하고 있어. 이건 지금 본다고 해도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거야.”
이제까지 3황자가 보여준 것도 칼로스뿐만 아니라 발칸의 어떤 의원이 와도 놀랄 수준이었는데, 그 이상의 것이 있다니. 칼로스는 데미안이 농담을 하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3황자의 손놀림을 본 순간 그가 한 말에는 한 치의 과장도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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