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56)
제56화
개복을 하고 난 뒤에서야 나는 황비가 폐렴을 앓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폐와 그에 연결된 혈관들은 육안으로만 보기에도 퉁퉁 부어 있었고, 염증까지 발생해 있는 상태였다.
지질성 폐렴. 내가 내린 진단이었다.
지방 물질의 외부적인 흡인 혹은 내부적인 발생으로 인해 폐렴이 발생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지질성 폐렴의 경우에는 큰 처치 없이 보존적으로 치료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들 하지만, 지금 황비의 상태를 보면 그렇게 손을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폐렴이 심각할 정도로 발전되어 있었고, 이후에 이어질 이차적인 감염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폐렴이 아닌 지질성 폐렴이라면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지질성 폐렴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이 아니니 현대에서도 항생제를 통해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었고, 급박한 상황이라면 외과적인 처치가 행해지곤 했다.
“후우.”
이미 폐의 많은 부분에 폐렴이 진행된 상황이었고, 염증이 심한 부위는 통째로 제거해야만 했다. 폐의 일부 정도를 제거하는 건 건강에 지장이 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황비의 상태가 상태인 만큼 더욱 많은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문득 떠올랐다.
나를 보조하던 의사나 간호사가 내 속마음을 들었다면 퍽이나 놀랐을 거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 응급실과 외과에는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상황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있었고, 적당한 긴장감은 항상 나를 더욱 집중하게 해 줬다.
그럼에도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내가 불안한 티를 낼수록, 나를 믿고 따르는 의료진과 환자의 보호자가 불안에 떨 테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 위치에 올랐던 외과 의사로서 자존심 때문도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다.
지금도 칼로스 앞에서 체면이 구겨지는 게 싫은 것인지, 아니면 칼로스가 온전히 나를 믿고 제대로 보조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인지, 나는 전혀 긴장한 티를 내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메스를 쥔 손이 덜덜 떨리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황비의 폐에 조심스레 가져다 댔다.
어차피 이대로 두면 황비는 죽는다. 그건 자기합리화를 하는 게 아니라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황태자는 황비가 추후 잘못되더라도 결코 내게 책임을 묻지 않겠노라 먼저 말을 해 줬었다.
고개를 저어 잡념들을 떨쳐냈다. 지금은 내 손에 쥔 메스에만 집중해야 할 때였다.
염증이 진행된 부분, 좌폐의 하엽 부분을 조심스레 메스로 잘라냈다. 칼로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 몇 번이나 입을 우물거렸다. 할 말이 많은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개의치 않고 폐의 일부를 잘라냈다.
또한 절제 부위를 따라 성력을 도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력 덕분인지 황비의 폐 일부를 절제해냈음에도 큰 문제가 뒤따르지는 않았다. 물론, 황비의 건강이 정상적으로 돌아올지는 이후 지켜봐야 하는 문제였지만.
성력으로 폐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은 후 황비가 의식을 차리기 전에 흉부를 다시 꿰맸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보조를 마친 칼로스가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뭘 한 건지 조금도 가늠이 안 간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칼로스를 불렀다.
“칼로스.”
“예, 전하.”
“내가 방금 한 게 못 미더워?”
“아, 아닙니다.”
고개를 젓는 것과는 달리 칼로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이 세상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이른 의술인 탓이었으니까.
“힐데스하임에서는 모든 병이 악마에 의한 거라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예?”
“그게 맞는 말인 것 같냐고.”
“……배운 것이 짧아 잘 모르겠습니다. 전하가 맞는 것이라고 하면 맞는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일 테지요.”
칼로스의 말에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런 게 어디 있어. 괜히 아부 떨지 말고.”
“아부가 아닙니다. 전하께 많은 걸 배웠고, 지금까지 전하께 받은 가르침 중에는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무지한 놈이 알아차릴 정도로 전하의 말은 항상 진리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놈이 그렇게 나를 못 미더워 하고 있어?”
“그, 그건…….”
“됐어. 악마인지 뭔지는 관심 없고. 대부분의 병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라는 아주 작은, 어…… 편의상 악마라고 해도 될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의한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렇습니까.”
“그리고 질병을 방치하고 있으면 점점 더 심각해지는 이유가 그놈들이 끊임없이 인간의 몸을 파고들려고 하거든.”
칼로스는 내 말을 가볍게 듣지 않았다. 비록, 그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허황된 정보처럼 들릴 수도 있고 메스질이나 지혈처럼 실전과는 동떨어진다고 생각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칼로스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감명 깊은 얼굴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실전과 동떨어지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의원으로서는 뼈가 되고 살이 될 수 있는 정보. 칼로스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장차 훌륭한 의원이 되도록, 그리고 내 보조 역할을 훌륭히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 전한 지식이었다.
“그런데 이 보이지도 않는 놈은 우리가 직접 잡을 방법이 없어.”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가 없는 이 세상에서는 말이었다. 물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성력이 대부분의 질병에 효과가 있는 걸 봐서는 그 역할을 대신하는 걸 수도 있었다. 그건 돌아가고 나면 당장 실험해서 확인해 볼 일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지. 감염된 부분을 통째로 제거했을 때, 환자가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말이야.”
“하지만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방금 황비의 경우에도, 폐의 일부를 잘라내고 나면 호흡에 문제가 생겨 잘못되시는 건 아닌지……. 배움이 부족한 탓입니다.”
“네 말대로 배우지 않았으니까.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건 차차 나한테 배우면 될 일이고.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지.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 신체의 일부를 제거하고 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는 없어.”
“이를테면 어떤 것 말입니까?”
“황비의 경우에도 폐에 염증이 조금만 더 번졌더라면 호흡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지만 이 정도로는 괜찮을 것 같고. 음…… 그렇지.”
어떤 예를 들어줄까 고민하던 중 얼마 전 겪었던, 딱 적절한 예시가 떠올랐다.
“한 기사가 있었어. 흑마법에 팔 한쪽이 감염됐고, 세균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흑마법이 빠르게 팔 위쪽으로 타고 올라가면서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지.”
“흑마법이라면…….”
“그래. 너도 본 적 있을 거야. 스펙터에게 감염되는 것과 비슷한 증상이었지.”
“끔찍했습니다. 그렇게 될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칼로스는 클레이디크에서 스펙터를 맞닥뜨렸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맞아. 그 기사도, 주위에서 차마 지켜보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했었지.”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죽었어.”
“……예?”
칼로스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그를 살리지 못한 것이 그에게는 놀라운 일인 것일까, 아니면 생각보다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 놀라운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병을 치료할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가 죽은 것을 전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의 죽음으로 많은 감명을 받았고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말했듯이, 신체의 일부를 제거하는 건 그 사람으로선 결국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거야. 그리고 그걸 포기하고 살아가는 게 그 사람에게는 정상적인 삶이 될 수 있는가, 그건 본인만이 알겠지.”
“혹시 그 기사께서 포기해야만 하는 게 너무 컸던 것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칼로스는 참 영리한 놈이었다.
“팔 한쪽이 완전히 잠식됐었고, 감염은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었지. 그가 목숨을 부지하려면 팔 하나가 없는 삶을 살아야 했어. 그게 그 기사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이었던 거고.”
“……헌데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무리 그 기사님께서 차라리 죽는 것을 선택하셨다고 해도 그건 최선의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칼로스의 말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죽을 거라면 기사로서 살아가지 못한다고 해도 차라리 팔 한쪽을 내어주고 목숨을 부지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왜냐면,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
과거의 내가 딱 그랬으니까. 의사로서 살아가면서 안락사를 요구하는 환자들의 요청도 애써 무시했었다. 한국의 법이 안락사를 금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의사로서 나는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뭐가 맞다고는 명확히 말할 수 없는 문제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문제였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바뀌게 된 걸까. 단순히 힐데스하임의 황자라는, 한국에서와는 다른 배경 때문일까.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니까 생각이 조금씩 바뀌더라.”
아니면 칼로스에게 둘러댄 대로 조금 오래 살다 보니 갖고 있던 신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것일까.
구태여 알 필요는 없었다. 이미 저번 생은 끝났고, 내게 주어진 건 이번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칼로스의 표정이 참 이상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황당하게 쳐다보는 칼로스. 그 이유를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전하. 실례지만 지금 연세가…….”
나와 칼로스는 또래인데 저런 말을 한 게 좀 많이 부자연스럽기는 했다.
“쿨럭, 쿨럭.”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실수를 어떻게 둘러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때마침 황비가 기침을 토해냈다. 그리곤 힘겹게 눈을 뜬 황비가 나를 커다래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를 치료하신 겁니까? 어, 어떻게?”
황비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몸소 느끼고 있었고, 그녀의 말 덕분에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