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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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서부 왕국 연합이 전쟁을 일으키자, 힐데스하임의 1황자와 2황자는 기다렸다는 듯 전쟁에 참전했다. 반면 발칸 쪽에서는 직접 나서는 황족은 없었다.
이미 후계자가 정해진 제국과, 그렇지 않은 제국의 차이였다.
발칸의 황자들은 전쟁에서 공을 세운다고 해도, 황태자가 큰 실수를 범하지 않는 이상 상황을 반전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힐데스하임의 황자들은 달랐다. 이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다면 황위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3황자 전하께서는 참전하지 않으시는 건가.”
“이미 포기하신 거겠지.”
“아쉽군. 그래도 잠깐은 기대를 받으셨던 적도 있었는데 말이야.”
시련의 숲에서 있던 시험. 3황자는 모두의 예상을 뚫고 가장 우월한 활약을 보였다. 그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전쟁에서도 3황자가 큰 공을 세울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그때랑 지금이랑 같나, 이 사람아. 1황자 전하처럼 막대한 성력도, 2황자 전하처럼 뛰어난 무력도 없으신데. 차라리 다른 기회를 노리시겠지. 전쟁에서 3황자 전하가 어떻게 공을 세운단 말인가.”
“그래도 머리는 비상하신데 좋은 전략을 통해 활약하실 수도 있지 않겠어?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그렇게도 좋아하셨다는데.”
“병법서에는 손도 안 대셨다는 건 몰랐나 보군. 워낙에 마음이 여리신 분이라 전쟁에는 관심이 없으신 게야.”
3황자에게는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감춰졌다는 것도 모른 채, 여러 귀족들은 제멋대로 그렇게 떠들어댔다.
그리고 현재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자 무력을 갈고닦은 2황자가 1황자에 비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판도가 뒤집히는 건가?”
“그러게나 말이야. 1황자 전하가 자연스레 황위를 가져가실 줄 알았더니 전쟁이 벌어진 것이 오히려 2황자 전하께는 천운이군.”
“운이라니. 신께서 주신 기회로지. 신께서는 2황자 전하가 황위에 오르길 원하신다는 것이고.”
“그렇게 보면 신께서는 어지간히도 3황자 전하를 뒷전으로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아예 못을 박으시는군.”
모든 걸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멍청이들은 그렇게 떠들어대기까지 했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마음 편하게 떠들어 댈 수 있는 건 제국군이 당연히 승리를 거머쥘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전세는 이미 제국군 쪽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이었고.
하지만 어느 순간 상황이 반전되었다. 제국군 사이에서 전염병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시기가 3황자가 참전한 시기에 맞물렸다.
세간에서는 3황자가 전염병을 불러일으켰다고, 신이 끝까지 3황자에게 저주를 내린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정작 당사자인 3황자는 그런 소문 따위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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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권능이라니.”
내 설명을 들은 현자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곤 역사서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권능이라느니, 더없는 잠재력을 가진 비기라는니 여러 수식어들을 붙여댔다.
“하지만 많이 아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 점은 명심하셨으면 합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현자가 한 말이니 흘려들을 수만은 없었다.
“어찌 됐든 전하가 본 미래가 사실이라면 이번 일은 손 놓고 볼 수만은 없겠군요.”
현자와 나, 그리고 아르민 후작의 병력들까지 함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하지만 전쟁터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상황이 늦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네가 무슨 일이냐?”
1황자가 나를 벌레 쳐다보듯 한심하게 바라보았고,
“보나 마나 겁쟁이처럼 숨어 있다가 승기가 기울어지니 숟가락이나 얹어 보려는 속셈이겠군.”
2황자의 비아냥이 이어졌다.
가볍게 무시하고는 그들에게 물었다.
“전쟁은 어떻게 되고 있소?”
“다 알고 왔으면서 이미 뭘 묻느냐. 왕국군 따위가 우리에게 반항할 수는 없지. 다 된 승리에 네 공이라도 얹어 볼 속셈인 것을 모를 것 같느냐.”
지금은 이미 제국군이 우세하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왕국 쪽의 병사들이 투항하지는 않았소?”
“역시 다 알고 왔군. 지능이 낮으니 연기도 제대로 못 하는구나.”
이미 왕국 연합의 전염병 환자들이 제국군 쪽으로 투항했고 그들을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젠장.”
작게 중얼거렸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들이 투항하기 전에 도착해서 전염병이 퍼지는 걸 막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데 이미 늦어버렸다.
나는 재빨리 이동하며 현장의 지휘관에게 자세한 상황에 대해 더 캐묻기 시작했다.
“왕국군의 병사들이 투항한 지 얼마나 됐지?”
“이제 열흘 정도 됐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알겠습니다.”
어떤 전염병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본 미래에서는 그것 때문에 죽는 병사도 여럿 있을 정도로 심각한 병이었다.
“혹시 그들에게 특이한 점은 없던가?”
내가 이동하면서 지휘관에게 물었다.
“특이한 점이라고 하시면……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피를 토한다든가, 숨 넘어갈 듯 기침을 한다든가 말이야.”
지휘관이 동그래진 눈으로 물었다.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대답부터 해.”
“예, 옙. 말씀하신 대로 대부분 건강이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 직전에 있던 전투에서 왕국군의 대부분이 큰 부상을 입었으니, 아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상태가 더욱 심각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증상을 단순히 전쟁에서 입은 부상 때문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제국군의 병사들 중에는 그런 증상을 보이는 이들은 없고?”
“예. 워낙 대승을 거뒀던 덕분에 부상자의 수 자체가 적었습니다.”
지휘관인 본인의 공이 컸다고 생각하는지 퍽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제국군에게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잠복기가 열흘 이상은 된다는 소리였다. 잠복기가 길다는 건 그만큼 전염병이 퍼지기 좋다는 소리였다.
“콜록, 콜록.”
“우웨에에엑.”
지휘관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근처에 있는 천막 쪽에서 고통스러운 비명들이 들려왔다. 발칸 제국에서 투항한 전염병 환자들이 분명했다. 지휘관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말씀드렸듯이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아, 교리에 따라 적군이었더라도 투항한 이들이니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치료해 보려 했으나 영 진전이 없었습니다.”
성력이 치료하지 못하는 질환은 직전에 겪어보고 왔으니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발칸의 황비가 겪었던 질병은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력이 듣지 않았다. 그게 내 가정이었고, 지금까지의 모든 케이스를 종합해보면 어긋나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전염병이라면 백 퍼센트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았다.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지만 우선 그건 머릿속에서 제쳐두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전염병을 치료하는 것, 그리고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으니까.
“이쪽입니다. 발칸에서 투항한 이들은 모두 이 천막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휘관이 그렇게 안내하며 천막 안으로 들어가려는 걸 내가 막았다.
“경은 여기 있어.”
괜히 전염병 환자가 늘어날 수 있었으니까.
나는 마스크 대신 조직이 복잡한 실크로 입과 코를 막았다. 그리곤 천막 안으로 들어가 병사 한 명에게 들어갔다.
“누, 누구십…….”
“입 닥치고 있어.”
나를 보고 등허리를 일으키며 말하려는 병사에게 입을 다물도록 시켰다. 호흡기를 가리고는 있지만 혹시나 모를 감염 가능성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대신 가져온 천과 잉크를 병사에게 내밀었다.
“나는 힐데스하임의 3황자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대답하지 말고 거기에다가 적어. 알겠어?”
병사는 어리둥절한 눈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제국군에 투항했지?”
병사가 천에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이전의 전투를 통해 승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감히 제국에 대항하려 했던-
쾅.
병사의 글자는 거기에서 멈췄다. 내가 허리춤에 차고 왔던 단검을 그의 바로 옆에 꽂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병사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솔직하게. 안 그러면 너는 지금 당장 죽는 거야.”
병사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나를 묘하게 쳐다보는 것이, 내가 뭘 알고 있는지 가늠하고 있는 듯 보였다.
“확실하게 말하면 살 수 있어. 아니, 살 수도 있어. 죽을 수도 있고. 알고 있겠지만 힐데스하임의 신성력과 발칸의 의술은 전 대륙을 통틀어서 병을 치료하는 데는 제일이지.”
그 말에 병사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이미 반쯤 넘어온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쐐기를 박기 위해 한마디 덧붙였다.
“솔직히 말하고 치료를 받는 게 네가 살 수도 있는 유일한 방법일 거고.”
결국 자신의 입술까지 깨물어가던 병사가 다시금 손을 움직여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앞에 적었던 글자는 두 줄로 모두 슥슥 그어버린 뒤였다.
-전염성이 있는 병에 걸렸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죽었고 저도 죽게 될 운명이라는 걸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설령 병에 나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의 경우를 막기 위해 왕국에서는 증상자를 한 명도 빠짐없이 죽였습니다. 제국군에 투항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그게 제가 목숨을 조금이나마 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잘 들어.”
나는 주변에서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발칸의 병사들을 향해 크게 말했다.
“앞으로 계속 치료를 시도할 거야. 물론 감염자가 늘지 않는 데 너희도 동조해 줘야겠지. 앞으로 외부인과 접촉할 때는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만 있는 거다. 알겠어?”
내 말에 병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어쩌면 유일한 희망의 끈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우선은 제국군 전체에게 이 상황을 알리기 위해 병사가 적은 문서를 갖고 빠져나왔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로 앞에 서 있는 1황자와 마주쳤다.
“이 새끼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지? 적군들에게 민심을 얻어서 정치라도 할 생각이었어? 늦었어, 새끼야. 늦게 와서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1황자는 돌아가는 상황을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 지휘관들이 위치한 천막으로 이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거기 서.”
1황자가 내 어깨를 부여잡았다.
“왕국군의 병사들을 설득해서 투항하도록 한 건 이미 내 공이야. 네가 가로챌 수 있을 것 같아?”
아. 전염병 환자들을 대거 받아들인 게 모두 1황자의 공이 되었구나.
나는 1황자에게 현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방금 병사가 적은 문서를 보여주었다.
천천히 그것을 읽어나가던 1황자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이게 뭐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