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6)
제6화
신성 제국의 현 성황이자 내 아버지인 겔리두스. 그를 마주하는 건 몇 년 만의 일이었다.
물론 홀로 독대하는 건 아니고 가족들과 고위 사제들이 모이는 엄중한 자리였다.
“위대하신 5대 성황, 겔리두스 폰 힐데스하임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계속해서 내게 눈치를 주던 1황자와 2황자 일행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적당히 그 장단에 맞추어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몇 년 만에 나타난 아버지란 작자는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1황자와 2황자의 얼굴만 가볍게 훑은 성황은 그대로 의자에 앉아버렸다.
“앉지.”
차려진 음식은 진수성찬인데 밥이 목구멍에 턱 막히는 것처럼 불편했다.
성황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그를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다워야 아버지지.
괜히 또다시 마음 한켠이 찔려왔지만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폐하. 우리 애가 이번에 다섯 번째 고리를 다루는 데 성공했다지 뭐예요.”
“바스티안은 10살의 나이로 정식으로 중앙기사단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기사들이 깜짝 놀라더군요. 이 시대 최고의 기사가 될 거라면서.”
그리고 이때다 싶어 1황자와 2황자의 어머니 되는 사람들은 열심히 성황에게 자식 PR을 해대고 있었다. 잘은 몰라도 꽤 대단한 업적이긴 한 모양이었다. 주위에서 다들 놀라는 것을 보면.
“내 아들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반면 정작 성황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두 황비는 뚱한 표정이 되어 자랑질을 멈췄다.
그러더니 이내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그 거북한 시선들을 보자 순식간에 불안감이 몰려들었다. 불길한 예상은 항상 그렇듯 틀리는 법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데미안은 올해 8살이 되었다지요?”
“그런데 아직까지 성력을 깨우치지 못했으니…… 이거 어디 가서 황족이라 하기에도 영 민망한 수준 아닙니까.”
건수를 잡았다 여겼는지 이때다 싶어 양쪽의 협공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성황도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성력을 아직 다루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이냐?”
“분명 그리 들었습니다.”
“애초에 2성으로 태어난 아이이니 썩 이상한 일도 아니지요.”
“조용. 나는 황자에게 물었다.”
그러며 성황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젠 슬슬 시기가 되었으니 성력을 꺼내놓아도 될 것 같아 고민하고 있는데.
“아닙니다.”
길다란 테이블 구석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 주인은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현자였다.
“파우스트 경. 자네가 3황자의 교육을 전담하고 있다지? 그럼 자네가 가장 잘 알고 있겠군. 어디 말해보게.”
“3황자 전하께서는 얼마 전 성력을 깨우는 데 성공하셨고 성력을 다루는 데는 재능이 출중하신 것으로 판단되옵니다.”
“그래봐야 2성이겠지.”
“고리가 두 개인 것은 맞으나 꽤 크고 두터운 성력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게다가 성력을 제어하는 데 있어 뛰어난 실력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자 성황이 꽤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경이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니 흥미가 가긴 하는군. 데미안. 저 말이 사실이라면 네가 가진 성력을 꺼내 보아라.”
성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전하. 모든 것을 단번에 꺼내놓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함이니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십시오.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전부를 보여줄 필요는 없다는 뜻.
어느새 참 많은 이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질투와 시기, 혹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아무래도 저 시선들을 전부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적당히 하는 정도로는 안 될 것 같았다.
「통제의 권능」
그에 대한 효과는 확실했다.
성력의 양과 통제력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발전했으며, 지금은 그 성과를 보여줄 시간이었다.
나는 현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곤 가슴께에 있는 두 개의 고리를 회전시켜 있는 힘껏 지니고 있는 성력을 모두 방출시켰다.
화악.
하얀 빛이 손바닥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빛이 실내를 밝히여 황홀하면서도 따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비록 정식 사제들에 비하면 조촐하기 그지없는 성력이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주위의 시선을 바꿔놓기에는 충분했다.
사방으로 발산하는 하얀 빛을 보자 주위에서 감탄이 작게 터져 나왔다.
“서, 성력을 막 깨우치셨다고 하시지 않았나?”
“두 개의 고리로 저 정도까지 방출하시다니.”
“황족은 정녕 황족이시군요. 경축드립니다, 성황 폐하.”
경외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고위 사제들. 그들의 눈에는 진심 어린 감탄이 묻어 있었다.
현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를 도와주는 현자의 호의를 배신한 것만 같아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 찝찝할 것 같았다. 괜히 간을 보며 마음 졸이는 건 내 스타일도 아니었고.
“이 정도로 경축은 무슨. 허나 현자가 칭찬하는 것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군.”
성황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리 말했으며,
“황비들은 제대로 확인된 사실만을 가지고 얘기했으면 좋겠군. 특히나 같은 황족을 절하하는 것이 얼마나 민감한 것인지 알 텐데 말이야.”
두 황비에게는 차갑게 핀잔을 내놓았다. 일그러진 두 황비의 표정이 썩 볼 만했다.
* * *
성황 겔리두스는 자리가 파하자마자 현자를 따로 불러냈다.
“요새 3황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지.”
“예, 그렇습니다.”
“녀석에게 자질이라도 보이는 것인가? 혹은 신께서 녀석을 후계로 점지해주기라도 하신 건가?”
“자질이 있기는 하십니다. 실제로 성력을 빠르게 성장시키셨고 고리의 크기 역시 꽤 웅대하십니다.”
“허나 고리 개수의 차이는 갈수록 격차를 벌릴 터인데, 3황자의 자질이 다른 황자들과의 격차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인가?”
“그렇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폐하께서도 알다시피 고리 두 개 이상의 차이는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니 말입니다.”
“허면 어째서 녀석에게 붙는 거지?”
“기회는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황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신이 인간 세상으로 내린 황자들은 모두가 성황의 후보로서 마땅한 교육과 시험을 치를 자격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데미안은 다른 황자들에게 붙은 여러 세력들에게 견제를 받고 있었다. 성황 후보고 뭐고, 3황자는 정당한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할 처지였고 그 사실은 성황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성황이 쉬쉬하고 있었던 것은 내심 3황자를 못 미더워했기 때문이었다.
“3황자 전하를 보필하다보면 문득 몇십 년도 더 된 옛일이 떠오르곤 합니다.”
현자의 뜬금없는 말에 성황이 그를 바라보았다.
“몇십 년 된 일이라면.”
“그때도 다들 제 선택에 우려를 표했었지요. 허나 그때 제가 폐하를 돕기로 결심했던 것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랬지. 경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오르는 건 내가 아니라 형들 중 한 명이 됐을 터.”
막내로 태어나 위의 형들에 비해 다소 불리한 입지에 있었던 것은 현 성황 겔리두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겔리두스의 뒤를 봐줬던 것은 마찬가지로 현자였으며, 실제로 겔리두스가 성황의 자리에 오르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현자가 아니었다면 현 힐데스하임의 성좌에는 겔리두스가 아닌 다른 이가 올라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겔리두스는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이었다.
“혹여나 3황자가 후계자가 된다면 신성 제국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될 터인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일반 사제만도 못한 성력으로 황위에 올랐다며 손가락질해 대겠지.”
“대신 자비롭고 지혜로운 군주가 탄생했다며 모두가 고개를 숙일 것입니다.”
괜히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성황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6년 전, 그놈에게 의식을 거행하면서 성국이 무엇을 잃었는지 잊어버린 모양이군.”
3황자의 성력이 만천하에 드러난 날. 모두의 기대가 좌절로 바뀐 순간.
의식을 거행하는 데 사용된 성물, 영겁의 성배가 힘을 잃었다.
성물 중에서도 가장 잠재력이 큰 물건인지라 신성 제국에서는 성배를 회복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모든 권능을 잃어버린 성배는 일개 술잔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겔리두스가 3황자를 유독 못 미더워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건 신께서 내리신 벌이겠지. 세 번째 황자를 들인 것 자체가 내 실수였던 게야.”
“성배가 힘을 잃은 것은 분명 신의 뜻이겠지만 그 의도를 꼭 나쁘게 생각하실 것은 없습니다. 시련을 내리신 게지요. 그리고 항상 시련 끝에는 달콤한 보상을 주시기 마련입니다. 또한 3황자 전하를 내리신 것 역시 신께서 의도하신 바가 있지 않겠습니까.”
“의도라. 정말로 그런 것을 갖고 놈을 하사하신 거라면, 또 현자의 말대로 놈이 보기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면 직접 시험해 볼 필요가 있겠지.”
“시험이라면…….”
“다음 달에 황자들을 참회의 숲으로 보낼 테니 준비시켜 두게.”
“다음 달 말입니까? 3황자 전하께는 너무 이른 듯합니다. 성력을 익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며, 다른 두 황자 전하에 비해 너무 어려 공정한 시험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공정이라. 허울 좋은 말이지. 이 세상이 공정하게만 흘러갔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야.”
성황의 뜻은 단호했다. 그것을 꺾을 수 없다 판단한 현자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3황자의 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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