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60)
제60화
“이게 어디서 개수작이야!”
1황자는 여전히 현실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내 공을 수포로 돌리려고 이런 수작을 부려? 이게 거짓말인 게 들통나면 넌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그냥 끝날 일은 아니겠지. 알고 있소. 하지만 형님도 마찬가지 아니오? 전염병이 퍼지고 난 뒤에 그게 모두 형님의 탓이 된다면 쉽게 끝날 일은 아닐 텐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1황자의 탓을 크게 만들기 위해 전염병을 가만히 방치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그리고, 그걸 막게 된다면 내 공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고.
“어쨌든 누가 옳았는지는 두고 봅시다.”
나는 어깨에 얹어진 1황자의 손을 떼어내고는 지휘관들이 위치한 막사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상황을 전파했다.
“저, 전염병 말입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전염병은 이 세상에서 특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는 했다. 물론 현대에서도 가볍게 볼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는 의료 체계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위생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그러니 전염병의 파괴력은 현대에 비해 몇 배나 강력했고 심하면 한 마을이 통째로 날아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이제부터 아무도 그쪽에 접근도하지 못 하게 해. 그리고 왕국 병사들하고 이미 접촉한 이들은 따로 생활할 수 있게 거처를 마련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4성 이상 사제들을 전부 모아 와. 어떻게든 치료책을 찾아야 하니까.”
우선은 전염이 더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게 1순위였고 가능하다면 치료까지 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내가 본 미래에서 제국군을 끝장내는 건 전염병이 아니었다. 비록 전염병이 퍼지면서 제국군의 병력이 크게 줄기는 했지만, 그 틈을 파고들어 쳐들어온 왕국 연합군에 의해 얼마 남지 않은 병사들까지 희생되었다. 그것까지 막기 위해서는 경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왕국군이 계획하고 보낸 거라면 빈틈을 노리고 있을 거다. 투항군과 접촉하지 않은 병사들은 인원을 나눠 3교대로 수비시켜.”
그 말에 반박하면서 나서는 이가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그새 들은 게 있었는지 2황자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전군의 통제권은 나에게 있다. 전염병인지 뭔지, 네 허황된 추측만으로 병사를 함부로 이용하겠다고?”
“이용한다니. 경계를 강화시키는 게 나 좋자고 하는 일이오?”
2황자는 내가 내민 문서를 보고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게 투항군이 자발적으로 쓴 것인지, 네가 그들을 협박해 강제로 적게 한 것인지 어떻게 안단 말이냐?”
“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한단 말이오.”
어이가 없어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2황자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넌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어렸을 때부터 뒤에서 제 이득만 쏙쏙 챙기는 비열한 놈이었으니.”
주변에 있던 지휘관들이 눈치를 살폈다. 2황자는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지 주위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나에게 면박을 준 것이 그리 속 시원한 일인 모양이었다. 정작 나는 그런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아무튼 내가 지휘하는 군사들을 네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는 없다. 설령 네 말대로 적들이 빈틈을 노리고 쳐들어온다고 한들 언제나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으니 무너질 리 없지.”
자신만만해하는 2황자에게 내가 본 미래라도 보여주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2황자가 그걸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오히려 네놈 말대로 경계를 무리하게 강화했다가는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피로도는 올라가게 된다.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뭘 안다고 지껄여?”
아무래도 전쟁 경험이 많은 2황자의 말이 더 신빙성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2황자가 나보다 세력이 강한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휘관들은 2황자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2황자와는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건 십 년도 더 전에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 * *
결국 나는 경계를 강화시키지는 못했다.
“아르민 후작. 부탁 좀 해야겠습니다.”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을 실행하기로 했다. 2황자의 지휘권 밖에 있는, 내가 데려온 아르민 후작의 병력을 총동원해 적들의 침투에 대비시켰다.
그리곤 내가 불러 모은 사제들과 함께 조심스레 투항군들의 상태를 살피러 갔다. 미리 들은 대로, 성력은 그들의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상태가 악화되는 걸 아주 조금이나마 늦추는 정도일 뿐.
그렇지만 성력을 통해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질환의 근원에 대해 분석합니다.]성소에서 깨우쳤던 능력이 저절로 발동됐다.
[타액에 의해 전파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변종된 바이러스는 기존의 성력으로는 대항할 수 없습니다.]그 문구 덕분에 내가 세웠던 가설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성력은 항생제 혹은 항바이러스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 변종 때문에 대항할 수 없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기까지 하는 거겠지.
생각해보면 당연히 성력이 모든 바이러스에 작용할 수는 없었다. 현대의 일반적인 항바이러스제도 특정 바이러스에 대항할 뿐, 모든 바이러스를 제거하지는 못했으니까.
결국 치료까지는 할 수 없는 것인가 낙담하고 있을 때.
[성력이 변종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모습을 갖춰나갑니다.] [동기화까지 남은 기간 : 20일]어쩌면 유일할 수 있는 치료책이 주어질 수 있었다. 이것도 성소에서 얻은 능력의 일부인 듯 보였다.
20일이라는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게 어딘가. 우선 그때까지만 전염병의 확산을 막고, 왕국군의 침략에도 대비한다면 차차 상황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아르민 후작의 군대만으로 왕국군의 병력이 총출동하는 걸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2황자가 조금이라도 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모든 게 수월하게 끝날 수 있는 일인데. 위로 있는 두 형이란 것들에겐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에휴.”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3황자.”
얼마 전에 봤던 발칸 제국의 황태자였다.
“그때는 말도 없이 사라져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르오.”
그의 뒤를 따라 일렬로 길게 서 있는 친위 기사단.
“그대가 참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소. 발칸 제국의 황족으로서 가만히 있는 게 여간 부끄러워야지.”
말은 그렇게 해도 나를 돕기 위해 직접 나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황태자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황태자 전하. 혹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황태자의 병력까지 동원한다면 어찌저찌 해볼 만할 듯싶었다.
* * *
“이게 무슨 생고생인지 모르겠다.”
늦은 새벽, 보초를 서고 있던 아르민 후작군의 병사가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러게 말이다. 잠 와 죽겠네. 이번에 괜히 지원한 것 같다. 공이라도 좀 세우면 인생 역전하나 싶었는데, 상황도 이미 다 끝나있고. 전염병인지 뭔지…… 솔직히 그것 때문에 이 고생 하고 있는다는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
“나는 얼마 전에 제국군 소속 병사한테 병신이냐는 소리까지 들었다니까? 누군 하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아나. 이게 다 힐데스하임의 3황자 전하 때문이지.”
“그러게 말이다. 좀 유도리가 있으면 얼마나 좋아. 사람은 참 좋은 분인데, 너무 모든 걸 딱딱하게 구시는 것 같…… 헉.”
대화를 나누며 전방을 주시하던 병사가 뒤쪽에서 인기척을 느끼고는 입을 턱 다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3황자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한 게 상관의 귀에 들어갔다가는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이 없었다. 옆에 있는 횃불로 다가오는 이의 정체를 확인한 병사는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저, 전하.”
힐데스하임의 3황자였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꽤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 3황자가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죽을죄를 지었다고 지금이라도 사죄를 올려야 할까, 아니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니 그냥 속 시원하게 못살게 굴지 말라고 유언이라도 남겨야 할까.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오갔지만, 정작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그냥 가만히 서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입장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다가온 3황자는 그들을 나무라기는커녕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늦은 시간에도 고생이 많다.”
“아, 아닙니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아. 전쟁이라는 게 조금 편하자고 방심하다 보면 한순간에 끝장날 수가 있는 거야.”
“옙.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이 시각까지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어. 잠깐 환자들 상태나 좀 볼까 하고.”
아닌 게 아니라, 3황자의 얼굴은 피로에 가득 차 있었다. 보초를 서고 있는 다른 병사들의 얼굴이 아무렇지 않아 보일 정도로. 3황자는 밤새 부상자들과 전염병 환자들을 살피고 있던 것이다.
3황자에 대해 뒷담화를 나누던 병사들은 문득 자책감에 시달렸다. 저런 참된 황족을 씹어대고 있었던 거였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다. 조금만 참도록.”
그렇게 말하며 막사로 향하는 3황자는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야.”
병사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옆에 있던 병사에게 말을 걸었다.
“……왜.”
“못 들으셨을까?”
“넌 3황자 전하가 청각 장애라도 있으신 줄 아냐? 바로 뒤에서 그 정도 얘길 못 들으셨을까 봐?”
“역시 그렇지?”
병사들은 깊은 감명에 빠졌다. 3황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소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직접 본 3황자는 들은 것보다도 더욱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3황자의 지시인 만큼, 병사들은 자신이 맡은 임무에 더욱 충실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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