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66)
제66화
마을의 뒷산은 초입부터 음습한 기운이 맴도는 곳이었다. 울창한 숲에서는 신선한 공기 대신 턱턱 숨이 막히는 무언가가 가득 차 있었다. 여기까지는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목에 차고 있는 마력의 펜던트.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차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성력과 크게 충돌하는 일이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펜던트는 강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 진동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며 미묘한 감정을 떠오르게 했다.
그 정체는 두려움. 마력의 기운은 알 수 없는 동질감에 덜덜 떨고 있었다. 그 실체가 무엇인지 나 또한 더욱 두려워졌다.
“아직 멀었나?”
산을 한참이나 오르고도 촌장은 계속해서 쭉쭉 나아갔다.
“한 30분 정도만 더 오르면 정상입니다.”
잠시 뒤따르는 이들의 상태를 살핀 내가 말했다.
“그럼 거기까지만 가보도록 하지.”
정상을 향해 갈수록 펜던트의 박동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살갗이 따갑고 숨이 벅차오를 정도로 불쾌한 감정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전하, 정말 괜찮으십니까? 힘드시면 조금 쉬었다 가도…….”
“괜찮아.”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지만 트루드의 표정에는 여전히 걱정이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온전히 감추는 데는 실패한 모양이었다.
그 걱정스러운 표정의 이유는 단순히 내가 힘들어 보이는 것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나를 따라오는 이들도 무언가 이상한 느낌 정도는 감지하고 있을 테니까. 다만 나는 그걸 더 명확히 느낄 뿐이다.
쿵.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가슴 속에서는 망치로 두들기는 듯한 느낌을 전해 받았고. 내가 맞닥뜨릴 무언가에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작 산 정상에 올랐음에도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하. 민간에서 떠도는 괴담은 대부분이 허황된 것들입니다.”
긴장 어린 눈으로 따라오던 이들도 텅 빈 정상에 이르자 다소 허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페이른 백작은 가볍게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잉.
나는 그런 그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텅 빈 공간.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펜던트에서 동질적인 기운을 느끼고 내게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대로 손을 뻗었다. 펜던트의 마력이 동질감을 가슴 속으로 전하는 것과는 달리, 성력의 고리는 완전히 반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애써 억누르고 있던 성력이 손끝을 향해 퍼져 나왔다.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방출된 성력은 주위를 맴돌며 커다란 원형을 그려갔다.
“……전하?”
트루드가 조심스레 나를 불렀지만 지금은 온전히 성력의 방출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한다고 속삭이는 듯한 환청이 들려왔다.
이 땅을 덮은 성력이 차츰 허공을 한 꺼풀, 한 꺼풀 지워갔다. 그렇지 않아도 어두웠던 주위의 풍경은, 바로 앞의 모습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칠흑으로 물들어갔다.
은밀하게 나를 괴롭히던 기운이 비로소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 발칸과 클레이디크에서 보았던, 힐데스하임에서만큼은 결코 볼 수 없을 거라 믿었던 흑마법이었다.
흑마법의 기운이 자욱하게 깔린 지역. 척박한 땅에는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흡.”
“이, 이게 뭐야.”
어마어마한 악취가 코를 찌르고, 헛구역질을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런 일을 꾸민 게 누군지 추측하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게 뭐지?”
백작은 이제 당황한 얼굴이 아니었다.
“머저리라고 해서 모를 줄 알았더니. 감은 꽤 좋으시군요.”
황자에게 머저리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 페이른 백작. 이전까지와는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져 있었다. 모든 걸 들킨 이상 굳이 자신이 낮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흑마법을 자신의 땅에 들인 이상 페이른 백작은 성국 내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페이른 백작이 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병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이놈들! 전하께 무슨 짓이냐.”
챈슬러가 검을 뽑아 들며 소리를 질렀다. 그의 검에서 새하얀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검을 휘둘러 성력으로 큰 벽을 만들어 냈다.
“감히 성국 내에서 이토록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니. 얌전히 그대들의 죗값을 치른다면 신께서도 용서해 주실 것이다.”
“신? 웃기고 있군.”
페이른 백작의 음성에는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나의 신은 이분뿐이다.”
백작이 펼친 손바닥에 주변의 흑마력이 몰려들었다. 어마어마한 기운이었다.
“내게 기적을 가능케 하신 분이다. 네 놈들이 믿는 멍청한 신과는 달리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지.”
페이른 백작이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챙그랑.
챈슬러가 만들어 놓은 성력의 벽이 백작의 손짓 한 번에 무너지고 말았다. 챈슬러는 적잖이 당황한 듯한 얼굴이었다.
“뭣들 하는 거야? 한 놈도 빠지지 말고 전부 죽여라.”
페이른 백작의 지시에 병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내쪽 병력은 트루드와 챈슬러를 제외하면 세넷 정도의 병사가 전부였다. 반면 상대는 기사 두 명에 병사 열 명.
그럼에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챈슬러와 트루드는 저들을 모두 제압할 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이야앗!”
달려드는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백작의 기사라 해도 챈슬러의 검격 한 방에 무너지는 것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페이른 백작은 웃고 있었다.
“3황자. 내가 고작 이 정도로 그대의 호위 기사들을 무찌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 같소?”
백작이 다시 한번 손을 펼쳤다. 그가 가진 모든 흑마력이 이 땅 전역이 퍼졌다. 이내,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이건.”
원래부터 널브러져 있던 시체는 물론이고, 방금 막 목숨을 잃은 기사와 병사들이 흐느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의 움직임이라기엔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눈에서도 동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윽고 흰자위만 내보이는 그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흑마법의 위력 덕분인지 살아있을 때보다도 더 빠른 움직임이었다.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그건 챈슬러와 트루드 역시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그렇게 당황해하고만 있을 필요는 없었다.
* * *
챈슬러는 페이른 백작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기사단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귀족들에 대한 동향을 살피는 것이 그의 임무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우월 의식에 썩어 빠진 쓰레기 같은 놈. 그게 페이른 백작에 대한 챈슬러의 평가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챈슬러가 페이른 백작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페이른은 온전히 페이른 백작의 손아귀에 있는 영지였으니까. 성국의 국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아무리 챈슬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물론 황족이 보다 못해 나서준다면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있었지만, 현 성황이 그러한 부탁을 들어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이른 백작이 이런 꿍꿍이까지 꾸미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백작. 그대는 도를 넘었소.”
“고지식한 건 여전하군. 성국에 당한 것이 많은 걸로 아는데 내 쪽으로 넘어온다면 그대에게도 이 놀라운 힘을 맛보게 해주지.”
페이른 백작이 지니고 있는 흑마법이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클레이디크에서 봤던 것보다도 더욱 뛰어난 위력을 보이고 있었다.
분명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한 속도로 검을 내지르던 이들이, 흑마법으로 부활하며 몇 배는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마저도 챈슬러는 쉽게 반응해 낼 수 있었지만 다른 병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으, 으억!”
“신이시여…… 어찌 저를 여기서 거두어 가신단 말입니까.”
병사들의 통곡이 들려왔다. 챈슬러는 이를 바득 갈았다.
“대체 그대가 꾸미고 있는 건 어느 정도의 일이지?”
이 정도면 3황자를 시해하려 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니, 황족에게 흑마법을 들킨 이상 그건 불가피한 결정이 되었다는 걸 챈슬러 역시 알고 있었다.
“헙.”
챈슬러는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검기를 가로로 길게 내지르며 한 번에 수많은 이들을 잠재우고 있었지만 이내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백작이 또다시 손을 내뻗자 이번에는 바닥에서부터 시체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몸소 손으로 흙을 파내면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수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 작은 마을에 이토록 많은 시체들이 있는데, 페이른 백작령 전체로 보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을지 가늠도 가지 않았다.
분노에 휩싸이던 가운데 챈슬러는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3황자를 바라보았다. 의외로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클레이디크에서 워낙 많은 칼부림을 봐 온 덕일까.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3황자는 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담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생각해보니 산 정상에 오르는 동안에도 챈슬러는 흑마법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알 수 없는 음침한 기운이 털끝으로 느껴지기는 했지만 망령이 머무는 곳에서 느끼는 그것과 비슷해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3황자가 이곳까지 일부러 발을 들였을 뿐만 아니라, 페이른 백작이 감춰 둔 흑마법의 기운을 눈치채기까지 했다.
‘역시 놀라운 분이시군.’
최근 들어 성력의 양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났다. 이미 3황자가 2성의 수준이 결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3황자의 고리가 늘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좋을 게 없었으니까.
그렇게 의아함과 경악에 빠진 와중에도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몰려드는 이들의 수가 턱없이 많았다. 그 수에 점점 더 밀리고 있었고, 챈슬러는 알게 모르게 지쳐가고 있었다.
“……젠장.”
챈슬러는 홀로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힘들게 찾은 영웅이 빛을 보기도 전에 잠드는 꼴을 지켜보고만 있는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챈슬러가 입술을 꾸욱 깨물며 수없이 몰려드는 시체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
또 다시 3황자가 기적을 일으켰다.
[온 땅에 신의 축복이 내립니다.] [부정한 기운을 중화시킵니다.] [의지가 강한 이들에게 신이 관용을 베풉니다.] [의지가 강한 이들이 신의 곁으로 떠납니다.]시체 중 삼 분의 일 가량이 무너져 내렸다. 남아 있는 시체들의 움직임도 이전과 비하면 비교될 정도로 느려졌다.
챈슬러는 놀란 눈으로 3황자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페이른 백작을 바라보았다.
페이른 백작의 표정이 지금 딱 챈슬러와 같을까. 아까부터 자신만만하게 웃고만 있던 페이른 백작의 얼굴에 처음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