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68)
제68화
힐데스하임에 속한 페이른 백작가. 그가 감히 신성 제국에서 입에 담기 힘든 부정한 힘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신성 제국 내에서 그런 불미한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묻자는 의견도 많았으나 그러기엔 일이 너무 커졌다. 페이른 백작이 죽어버렸고, 그렇다고 함께 일에 가담했던 그의 장남에게 뒤를 잇게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페이른 영지민들 모두를 침묵시키기 위해, 이전 페이른 가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이주를 강제로 막을 수도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이 사실이 더욱 널리 퍼지도록 했다. 신성 제국에서 흑마법을 사용했다간 어떻게 되는 것인지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헌데 여전히 성국에 남아 있는 의문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페이른 백작 건을 처리한 게 3황자라는 것.
세간에서는 떠들어댔다. 사실은 흑마법이니 뭐니 모두 3황자가 지어낸 말이라고. 한창 주목 받기 시작한 자신이 공을 세우기 위해 죄 없는 페이른 백작을 죽였다고.
혹은 3황자의 곁에 트루드와 챈슬러가 있으니, 흑마법의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지 않겠느냐고.
그런 의문들을 확실히 해결하기 위해선 현장을 확인해 봐야 했다. 이번 일에 나선 것은 대주교였다. 성황의 지시를 받은 그가 곧장 3황자가 머무르고 있다는 페이른 백작가의 작은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3황자가 처리했다는 현장의 상황을 본 대주교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정녕 이게 페이른 백작이 꾸민 짓이란 말입니까?”
서열이 높지도 않은 백작이 꾸몄다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과한 음모.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걸 3황자와 트루드, 챈슬러와 소수의 병사들이 해결했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여기 말고도 아직 시체가 숨겨진 곳도 많을 거야. 얼마나 많을지는 다른 마을을 돌면서 주민들에게 직접 의심 가는 곳을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지만.”
“이게 일부일 뿐이라면…… 페이른 백작은 정말로 신성 제국을 상대로 역모를 꾸민 걸 수도 있겠군요.”
아니, 아마 확실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성 제국 내에서 흑마법을 사용할 미친 생각을 할 리가 있겠는가.
대주교는 자신을 본 체도 하지 않고 있는 챈슬러를 향해 다가갔다. 대주교가 챈슬러의 바로 앞에 서고서야 그는 고개를 돌렸다. 냉랭한 눈빛이었다.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었다.
한때 같은 꿈을 꾸던 동료였지만, 대주교는 성황에게 영혼을 팔았고 챈슬러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대주교는 챈슬러를 존경하는 측면도 있었다. 3황자 덕분에 챈슬러가 석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으로 기뻐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고생했다.”
현시대, 힐데스하임이 보유한 최강의 성기사. 당연히 그가 이 사건의 대부분을 처리한 것이라 생각하고 작은 위로를 건넸으나 챈슬러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니라 3황자 전하께 드려야 하는 말씀이다.”
“뭐?”
“이번 일의 공로 대부분이 전하의 것이니까.”
챈슬러가 그렇게 말한 것을 대주교는 쉽게 용납할 수 없었다. 3황자가 아무리 이전에 비해 달라졌다고 하여도 이만한 사건을 해결할 힘을 지닐 리는 없었다. 그런데 챈슬러는 솔직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공로를 괜히 다른 이에게 돌릴 만큼 유도리 있는 자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전의 일들 때문에 황족이라면 진절머리를 내는 챈슬러가 저토록 따르는 모습이라니.
“정말 큰 일을 하셨습니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우선은 챈슬러가 그렇게 말을 했으니 형식적으로라도 3황자에게 인사를 올렸다.
“성황 폐하께서도 전하께서 이만한 일을 해내신 걸 듣게 되신다면 깊은 감명을 받으실 겁니다.”
황자들에게 폐하의 은총을 사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3황자에게 꽤나 뜻깊은 말일 테지만 이상하게도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런 것보단 봐서 알겠지만 지금 페이른 영지의 상황이 좋지 않아. 흑마법에 물들어 있는 땅들을 찾아내서 정화도 시켜야 하고, 가능하면 시체의 신원을 확인해서 유가족에게 전해주기도 해야 해.”
“많은 인력이 필요하겠군요.”
3황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부터 느끼고는 있었지만 역시 꽤나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비록 대주교가 그런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런 사람을 손가락질할 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건강도 악화돼 있는 경우가 많고. 수도에서 사제를 좀 보내서 이들을 치료해주고, 식량도 좀 보내줘야 할 것 같다.”
“그것 역시 성황 폐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충분히 수락하실 듯합니다. 전하께서 이루신 업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식량 정도야 충분히 보내줄 수 있었고 수도에서 사제를 지원해주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사제 인력이 넘쳐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을 주민들이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니었으니 하위 사제들을 보내면 해결될 일이었다.
“우선 수도로 돌아가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폐하께서 몹시 기뻐하실 겁니다.”
대주교는 정치적 평등을 위해 특정 황자를 지지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챈슬러가 진심으로 모시는 3황자가 이런 공을…… 아니, 공이라고 표현하면 챈슬러나 3황자가 화를 내려나. 아무튼 이런 일을 이뤄낸 것에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 * *
대주교가 돌아간 뒤 수도에서는 빠르게 내가 요청한 것들을 이루어 주었다. 혹여나 전에 몇 번 겪었던 것처럼 내 입지가 다소 좁다는 이유만으로 묻히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수도에서 보낸 사제들은 빠르게 마을을 돌며 건강에 문제가 있는 이들을 치료했고, 그 외에 지원된 인원들은 주민들에게 흑마법진이 설치되었을 거라 의심된 장소를 철저히 조사했다. 그리고 찾아낸 의심 장소를 파헤치자 곳곳에서 이전에 내가 보았던 것처럼 시체가 발견되었다.
“헌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마을에서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이들보다 훨씬 많은 시체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문이 남아 있었다. 촌장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수도로 가서 고문을 받게 될 운명이었으니 어쩌면 모든 걸 불게 될 수도 있었다.
일단 지금 당장은 더 내가 나설 수 있는 게 없었다. 페이른 백작의 손에 흑마법을 쥐여 준 배후의 세력이 누구인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시체를 공수할 수 있었는지. 백작이 꿈꾸던 야망은 어디까지였는지. 많은 의문들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문제는 수도에서도 알고 있었고 철저히 조사 중이었으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전하. 성황 폐하께서 급하게 수도로 들어오라 하셨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성황의 부름이 있었다.
“나쁜 일은 아닌 듯합니다. 아마 이번 일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고 마땅한 보상을 내려 주시리라 생각됩니다.”
수도에서 직접 온 전령이 그렇게 말했으니 안심하고 성황을 찾아갈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성황은 꽤나 만족스러워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어지간해선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그가 다 티나 나게 웃고 있는 걸로 봐서는.
“이번에 큰 일을 했다고 들었다. 페이른 백작이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었는지는 어떻게 알았느냐?”
“원래부터 좋지 않은 말이 많아 찝찝했었습니다. 클레이디크와 페이른 영지가 붙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페이른 백작이 흑마법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기는 힘들었을 텐데.”
애초에 흑마법 때문에 페이른을 응징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성황에게는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괜히 둘러댔다가는 더욱 난처해질 수 있으니 사실대로 말했다.
“페이른 영지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단지 그것 때문에 찾아갔었습니다. 헌데 운이 좋아 흑마법의 존재에 대해서까지 알 수 있었습니다.”
“운이라……. 운은 존재하지 않아. 모든 것은 신의 돌보아주심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그럴 수도 있고, 뭐.
“허면 신께서 네게도 기회를 주리라 마음을 바꾸신 게로군. 헌데, 백작이 감추어 둔 흑마법진을 어떻게 파훼할 수 있었지? 수색 중인 이들의 말에 따르면 성물 없이는 존재를 알아차리기도 힘들다던데 말이야.”
“아시다시피 흑마법은 성력과 반대되는 기운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성력이 흑마력의 기운을 눈치챘을 뿐 별다른 건 없습니다.”
그게 성배가 가진 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확장된 고리의 덕분에 새로운 능력에 눈을 뜬 것인지. 혹은 발칸의 황태자가 준 펜던트 덕분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내게는 감추어 둔 흑마법을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렇군. 별다를 게 없었다라. 그만큼 특별한 일이 있을 수 없군.”
성황은 의도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래. 너에게 이전처럼 무언가를 바라냐고 묻는다면 또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지. 유모에게 듣기를 어렸을 때부터 욕심이 없던 녀석이랬으니까.”
이전까진 나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던 성황이 유모의 이야기를 꺼내는 걸로 봐선 그새 조사를 좀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제안을 할까 하는데. 너도 알다시피 페이른의 백작은 죽었다. 그리고 용납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이상 그 자식에게 영지가 전해지는 꼴을 두고 볼 수만은 없지.”
그건 나 역시 아니라고 봤다. 이후 알아본 바에 의해 페이른은 모두 한 패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네가 페이른을 관리하는 건 어떻겠느냐.”
“예?”
“네게도 형들을 대적할 만한 세력을 모을 공간이 필요하겠지. 클레이디크에서 꽤나 신임을 사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마땅치 않을 거다.”
성황의 말대로 클레이디크는 중립 지역. 발칸과 힐데스하임이 분할 통치하고 있는 이상 나로서는 제약을 꽤나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받아들이는 게냐. 그곳에서 정을 꽤나 들인 줄 알았거늘, 결정이 꽤나 빠르구나.”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르민 후작과 멀어지는 것이, 그리고 클레이디크에서 정이 들었던 많은 이들과 멀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클레이디크에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허나 폐하께 요청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지?”
“페이른을 통치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이들의 관여가 없었으면 합니다.”
“어차피 네 영지가 된다면 그 부분에 있어서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텐데……. 내게 부탁을 할 정도라면 신성 제국에서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과정이 포함되어 있나 보군.”
뜨끔하는 마음을 감추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 제국은 그 특성상 특히나 많은 제약을 갖고 있고 그 모든 것을 지키며 살아갈 수는 없지. 다만, 그게 문제 되지 않도록 감추거나 언변을 펼치는 것은 너의 재량에 달려 있다.”
그러니까, 걸리지 않도록 유도리 있게 잘하라는 소리였다.
성황이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