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7)
제7화
신성력을 성황의 앞에서 꺼내놓은 뒤로는 정식적으로 신성력을 배우고, 익혀나갈 수 있게 되었다. 미지의 영역이라 그런지 나름대로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차츰 늘면서 이제는 작은 상처 정도는 아물게 할 정도가 되었으나, 크게 벌어진 상처를 완전히 재생시킬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봐야 메스 하나만 있으면 훨씬 더 빠르게 낫게 할 수 있는데.”
작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매번 개고생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성력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도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도 그때 그때 꺼내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으며, 의학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그렇게 희망을 품으며 성력을 통한 치유를 계속해 나가던 중.
현자가 나를 찾아와 난색을 표했다.
“참회의 숲? 그게 뭔데.”
“황자들께서는 거치셔야만 하는 일종의 시험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시험이라. 대한민국에서 참 많은 시험을 봐 왔지만 이토록 자신 없는 시험은 처음이었다.
이곳에 대한 지식은 아직 만무할뿐더러 성력 역시 이제 막 익혀 나가는 단계 수준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저도 예상치 못했지만 성황 폐하의 뜻이 확고하신 만큼 빠르게 준비하셔야 합니다.”
“뭘?”
“우선은 제가 가진 지식을 조금 전달해 드릴까 합니다.”
평소에도 현자에게 이 세상의 상식과 교양에 대해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그런 것일 줄 알았지만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황자 전하께서는 분명 총명하시지만 알아두셔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에 비해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지요. 그래서 제가 가진 지식을 전달해 드리는 의식을 거행할 겁니다.”
“그런 것도 돼?”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기입니다. 이를 통해 황자 전하께서는 이 난세에 조금이나마 빠르게 적응하시게 될 겁니다.”
현자의 뜻을 따라 잘 되지 않은 적은 없었고, 또 지식을 전달해 준다니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우선 눈을 감고 계시면 제가 성력을 전하께 불어넣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 성력을 받아들이시고, 그 성력을 머리 쪽으로 이동시키시면 됩니다. 전하께서는 성력을 제어하는 능력이 뛰어나시니 큰 걱정은 없습니다만 최대한 집중해 주셔야 합니다.”
현자의 말에 따라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으니 내 가슴팍에 현자의 손이 얹어졌다. 그리고는 따스한 감각이 몸 전체로 퍼졌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성력을 조심스레 위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럼에도 현자가 주입하는 성력은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몸속으로 들어왔다.
지금까지 신성력에 나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현자가 가진 것에 비하면 나는 거대한 자연 앞에 선 작은 개미와도 같았다.
현자는 박식하고 현명한 행동거지로 유명한 인물이지, 결코 신성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정도라니…….
신의 은총을 직접 받고 있다는 성황은,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게 될 1황자와 2황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성력을 보유한 것일까.
“집중하십시오.”
현자의 목소리가 상념을 깼다. 그가 주입하던 성력은 어느새 조금씩 흐트러져 있었다.
그래. 벌써부터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1황자와 2황자, 그 무리들에게 고통받으며 새겼던 복수심을 이렇게 쉽게 저버릴 순 없었다.
다시 성력을 머리 쪽으로 이동시켰다. 머릿 속으로 정보가 쉴 새 없이 들어왔다. 현자가 말한 대로 그가 가진 지식들이, 그가 경험했던 삶들이 내 것인 것처럼 동화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알아야 하는 기본 상식들. 각 대륙에 만연해 있는 사상들. 그리고 신성 제국은 어떻게 탄생하였으며 성황은 어떤 것인지, 황자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들이었지만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충격적인 내용도 많았지만 오히려 내 가슴은 놀랍도록 차분해지고만 있었다.
비로소 이번 생에 대한 갈피가 잡혀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레 겁을 먹었던 내 자신이 한심해지기까지 했다.
“……해볼 만하겠는데.”
비로소 모든 내용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의식이 끝이 났을 때, 나는 웃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결코 내게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발버둥조차 치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를 통해 현자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된 나는 내 앞에 있는 그가 더욱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희열의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털썩.
의식을 마친 현자가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파우스트!”
* * *
“큰 이상은 없으니 곧 깨어나실 겁니다. 성력을 과하게 사용하신 탓에 몸에 무리가 가신 듯합니다.”
급하게 불러들인 사제의 말을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대로 현자는 큰 무리를 한 것이었다.
“전하.”
현자가 깨어난 것은 무려 5시간 만의 일이었다.
“할 일도 많은 분이 어찌 저 같이 미천한 것을 기다리는 데 시간을 허비하십니까.”
“현자가 미천한 것도 아니고 내가 시간을 허비한 것도 아니지. 나는 현자한테 물을 게 많으니까.”
“심경이 복잡하실 테지요.”
현자의 말대로 미처 내가 받아들이기엔 난감한 정보들이 꽤 있었다.
“이것들이 전부 사실이야?”
“인간을 통해 보존되고 전달되는 모든 지식은 주관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이니, 제가 드린 것들이 백 퍼센트 진실한 것이라 믿지는 마십시오.”
“그럼, 현자가 4성이었다는 것도 현자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건가?”
4성의 성력을 보유한 것은 현 힐데스하임에 열 명 남짓 될 정도로 드물었다. 그들은 모두 성국의 중책을 떠맡으며 성인으로 추대받고 있는 현실이었다.
“허허. 그럴 수도 있지요. 허나 과거에 대해 어떤 망상을 품든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중요한 것은 현재일 뿐. 지금 제게 남은 것은 단지 두 개의 고리뿐인 것을.”
“말 돌리지 말고.”
이건 확실히 잡고 가야 할 문제였다.
머릿속에서 과거 현자의 모습이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4성의 고위 사제로서, 그리고 신성 제국의 제일가던 책사로서.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신실하게 살아가던 현자의 과거.
허나 그건 현 성황 겔리두스가 성황의 자리에 오른 순간, 딱 거기까지였다.
토사구팽이었다. 다 죽어가던 성황을 위해 고리 한 개를 불태우며 궁극의 신성 마법을 발휘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가혹했다.
4성의 사제에서 3성의 사제가 된 순간 성황 겔리두스에게 현자의 활용 가치는 턱없이 떨어졌다. 또한 현자를 시샘하던 수많은 고위 사제들의 모함을 통해 모든 자리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그것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 현자의 과거였다.
게다가 3성이 된 현자는 내게 자신이 가진 기억의 극히 일부를 전달하기 위해 세 번째 고리를 파괴하고 말았다.
“……뭐하러 그렇게까지.”
나 때문에 고리 한 개를 희생시켰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죄책감과 미안함이 스멀스멀 몰려들었다.
“이제는 제게 있어 봐야 아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늙은이가 전하 같은 분께 도움이 될 수 있어 영광이지요.”
그렇게 말해도 죄책감은 전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지고만 있었다.
신성 제국에서 고리 한 개의 영향력은 가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성황도 참 너무하시네.”
성황을 살리기 위해 고리 한 개를 불태운 현자는 성국의 충신이라고 봐도 충분했다.
그런데 성황은 은인이나 다름없는 현자를 가차 없이 내버렸다. 은인에게 엿을 먹인 꼴이었다.
내 아버지이지만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 파렴치한 인간이었다.
게다가 그런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하다고 평가 받는 성황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성황 폐하는 신의 선택을 받아 그 자리에 오른 신의 대리인이십니다.”
“바로잡을 건 바로잡아야지. 그 자리까지 올리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건 현자 아닌가?”
현자는 그만하라는 듯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 바로잡고 싶으시다면 성황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 * *
모든 사람은 변한다.
누구보다 선했던 현 성황 겔리두스가 강압적인 정치를 하고 있는 것처럼.
현자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극히 일부의 친우들은 그를 나무라곤 했다.
“자네가 결국 틀렸군.”
“그대가 바라는 고결한 신성 제국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걸세.”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현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사실 현자는 겔리두스가 그리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신성 제국을 부흥시키고, 전 대륙의 인류를 구원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이는 겔리두스 폰 힐데스하임이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차선책이었다. 당시 막내였던 겔리두스. 그 위의 형들이 힐데스하임의 군주가 되었다면 성국의 상황은 지금보다도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다.
물론 현자라고 해도 이 세상의 모든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가 겔리두스에게 버림받을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으나, 이번 역시도 차선책인 건 확실하니.”
3황자 데미안 힐데스하임.
만에 하나 그가 성황이 된다면 신성 제국은 비록 강국이 되지 못할지라도 성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될 것이었다.
다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황자 전하께서 그 힘든 역경을 모두 이겨내실 수 있을지…….”
이미 한번 자신의 손으로 성황을 만들어 본 적 있었다. 그렇기에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데미안은 역대 황자들을 통틀어 가장 무능한 2성이었다.
“……쉽진 않겠군.”
군주에 가장 걸맞은 지혜와 인덕을 갖추었으나, 신성 제국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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