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70)
제70화
내가 용병 얘기를 꺼낸 것은 단순히 베이언에 속해 있는 용병들이 어떤 특수성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르틴.”
나는 특정 용병에 대해 들은 것이 있었다.
“아저씨는 진짜 착한 사람이에요! 제가 굶고 있을 때 사슴을 잡아서 구워주기도 했고요. 엄마랑 저를 지켜주기도 했어요. 결국 엄마는 지켜주지 못하셨지만…….”
내가 페이른을 응징하러 도달했던 작은 마을. 거기서 뒷산의 비밀에 대해 알려주었던 여자아이가 한 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몰라요. 그 아저씨가 용병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 건지, 아니면 험악하게 생겨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저한테 절대 가까이 가지 말라는 말만 해요. 왜 그런지 물어보면 대답도 잘못하면서.”
일단 인성은 어느 정도 된 것 같았고. 다음은 실력이었는데.
맨손으로 오우거를 때려잡았다느니, 검으로 철제 갑옷을 입은 병사를 베어냈다느니 하는 여자아이의 말이 허풍이 아니라면 직접 확인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난리네.”
그리고 그 마르틴이라는 용병이 자주 출몰한다는 술집으로 가 봤다. 거기서 마주한 풍경은 일반 술집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방으로 튄 피. 널브러져 있는 거구의 남자들. 그리고 홀로 서 있는, 다른 남자들과 비교해도 훨씬 큰 덩치를 보유한 덩치의 사내.
“그대가 마르틴인가?”
심경이 복잡했다. 저자가 마르틴이라도 문제였고, 아니라도 문제였다.
만약 마르틴이 맞다면 술집에서 이런 행패를 부렸으니 내 사람으로 두기엔 위험성이 있었고, 넘어져 있는 이들 중에 마르틴이 있다면 실력 면에서 불합격이었다.
“……옷을 보니 이번에 새로 왔다는 3황자이신가 보군.”
“이놈! 무엄하다. 황자 전하께 예의를 갖추어…….”
나는 발끈한 채로 나서는 챈슬러를 저지시켰다.
“마르틴이 맞냐고 물었는데.”
“고귀하신 3황자 전하께서 제 이름을 알아주시다니 영광이군요.”
마르틴이라는 용병은 일부러 비꼬듯이 말했다.
“헌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을까요. 용병이 용병을 건드린 죄 때문에? 앞뒤 없이 꽉 막힌 건 여전하군요.”
“여전하다니. 그건 무슨 소리지?”
나는 마르틴과 초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남자를 본 적은 없었다. 만약 구면이었다면 덩치 때문에라도 기억했을 것이다.
“……됐습니다. 구태여 과거 이야기를 꺼내 봐야 달라질 건 없으니.”
“아니. 과거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만큼 그를 평가하는 데 정확한 것이 없지. 그대가 어떤 과거를 갖고 있었는지, 내 어떤 행동이 그대에게 적대감을 품게 했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왜 그래야 합니까?”
용병이 코웃음을 쳤다. 내 옆에 있는 챈슬러와 트루드는 계속해서 나서고 싶은 걸 나 때문에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베이언에서 기사로 활동하게 될 이들을 모집하고 있다. 듣기로는 그대가 꽤 실력 있는 용병이라고 하던데. 나를 위해 검을 든다면 후회는 하지 않게 해주마.”
우선 마르틴에 대해 듣고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기사라니. 생각 없소. 태생부터 이따위 놈이 기사는 무슨. 그리고 기사는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전혀 없는 허깨비들만 놓은 곳 아니오?”
마르틴이 저렇게까지 나올 수 있는 게 무엇 때문일까. 내가 아니라 다른 황족이었다면 이미 목이 달아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상황인데.
“멈춰라.”
챙.
챈슬러는 그대로 나가려는 마르틴을 막아섰다. 마르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뽑는 속도만으로 그가 보통의 실력은 아니라는 걸 한 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 * *
마르틴은 도를 넘는 장난을 친 용병들에게 쓴맛을 보여주었다. 목숨을 끊어놓지는 않았지만 저들에게는 수치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지옥 끝까지 마르틴을 추적하려 할 것이다.
‘결국 여기도 떠나야겠군.’
그새 첼레 마을에 정이 든 여자아이가 있었다. 누군가와 정을 붙인 적이 얼마 만이던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일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여자아이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하나 남은 어머니를 얼마 전 잃었고 마르틴이 아이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은 누군가의 동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도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귀찮게 됐군.’
그런데 술집을 나서려던 찰나, 생각지도 못한 이들이 들어왔다. 갑주를 입은 두 명의 기사와, 황복을 입은 황족 한 명. 이번에 새로 부임하게 됐다던 3황자가 분명했다.
어떻게 이 순간에 딱 맞닥뜨리게 된 것일까. 아니, 왜 3황자가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중요한 건 이 순간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물론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는 비록 용병의 신분이지만 한 때는 기사를 꿈꾸기도 했고 누군가를 주군으로 모신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게 그에게 가장 큰 흑역사로 남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기사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면서 느낀 것이라고는 작은 깨달음밖에 없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귀족과 황족은 뿌리부터 썩어 문드러져 있다는 것. 그들을 따르는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며, 사실 기사들은 명성에 비해 보잘것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성력 따위 없어도 힐데스하임의 성기사들과 대련을 할 때마다 가볍게 이겼기 때문에,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챙.
자신을 가로막는 기사를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기사로서의 규칙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것 때문에 상대 기사가 검을 뽑을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멍청한 기사는 자신의 앞에 검을 들고 있는 상대를 보고도 주군에게 뜻을 묻고 있었다.
참된 주군과 충직한 기사. 그 둘의 관계에 대해 낭만을 품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전부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사실, 3황자에 대한 소문을 꽤 듣기는 했다.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라며 마을 주민들이 일제히 칭찬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겪었던 바에 따르면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다.
모든 소문에는 과장과 허풍이 끼어 있기 마련이었고 그것이 상위 계층에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하나만 묻지.”
회상에 잠겨 있던 마르틴에게 3황자가 물었다.
“뭡니까.”
“무슨 자신감이지?”
“내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오.”
한 움큼의 거짓도 없는 그의 순수한 대답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군.”
“우물 안에서 바라보는 하늘도 하늘이기는 마찬가지요.”
3황자는 대답 대신 자신의 옆에 있는 중년의 기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사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럼에도 먼저 검을 휘둘러 오지는 않았다. 마르틴에게 선공권을 주겠다는 듯 검 끝을 까딱거리기만 할 분이었다.
“여전하군. 기사라는 족속들은 거만하기 이를 데 없어.”
마르틴은 자존심을 내세우며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이곳에서 빠져나가면 3황자의 지시에 의해 수많은 군대에 쫓기는 꼴이 될 것이다. 그 전에 꼬맹이를 데리고 베이언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하압!”
있는 힘껏,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마르틴의 검이 이미 절반가량이나 움직였음에도 상대 기사는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늙어 빠져서는 반응 속도가 완전히 굼떠진 것이 분명했다.
헌데.
콰앙!
마르틴의 검이 기사의 어깨를 향해 도달했어야 정상인데,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살결을 베는 것이 아니었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짜릿한 통증.
여러 성기사를 상대하며 느꼈던 성력의 힘이었다.
그런데 이만한 성력을 가진 자는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기사들이 가진 성력은 고작해야 조금 따끔거리고 마는 수준이었는데, 마르틴은 성력이 실린 상대의 검과 맞부딪힌 것만으로 제자리에 얼어붙게 되었다.
“이, 이게 무슨…….”
마르틴이 당황한 채로 얼어붙어 있을 때.
퍼억.
중년 기사의 발길질이 자신의 복부에 닿았다. 체급 차이가 어마어마한데도 고작 저런 발차기에 몸이 허공에 부웅 뜨는 것을 느꼈다.
콰앙!
그대로 날아간 마르틴이 반대쪽 벽에 부딪히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 * *
‘젠장.’
마르틴이 정신을 차린 것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눈을 뜨기도 전에 푹신한 침대의 감각 때문에 이상함을 느꼈다.
비로소 눈을 떴을 때 어두침침한 쇠창살이 아니라, 호화스러운 방 안에 눕혀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깼군.”
마르틴은 느껴진 인기척에 얼른 눈을 감았으나 이미 3황자에게 들켜 버린 모양이었다.
“젠장할.”
“무슨 뜻이지. 챈슬러에게 패한 것이 분한 건가? 아니면 그냥 나와 있는 게 싫은 건가?”
“둘 다요.”
“챈슬러에게 패한 건 분해 할 필요 없어. 그는 황궁에서도 단장을 했었던 5성의 기사니까.”
“뭐, 뭐요?”
마르틴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챈슬러라는 이름. 그걸 모를 수는 없었다. 마르틴이 기사를 꿈꾸게 된 것도 챈슬러라는 기사 덕분이었으니까.
사실 힐데스하임의 기사들에게 챈슬러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것 때문에 챈슬러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기사의 수는 셀 수도 없이 많았고, 마르틴이 그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영웅 취급을 받던 챈슬러가 어느 순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에 갇혔으나, 마르틴은 그게 누명을 쓴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어떻게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지만 3황자가 한 말이 거짓일 리는 없었다.
“이, 이렇게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마르틴은 저만치 서 있는 챈슬러에게 진심 어린 눈으로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챈슬러는 대답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나를 아나?”
“저도 한때 기사를 꿈꾸던 남작가의 장남이었습니다.”
“헌데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모양이군.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챈슬러가 그리 말하니 부끄러웠다. 비록 상대가 어마어마한 실력을 가진 챈슬러이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공격을 해 보지도 못하고 고작 한 방에 나가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챈슬러는 그런 그의 눈빛을 읽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낙담할 필요 없다. 내 성력을 뚫고 검날에 상처를 준 건 네가 유일하니까. 그것도 다른 힘을 빌리지 않고 네 무력만으로 말이야.”
그게 대단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상으로 모시던 기사가 칭찬을 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챈슬러 경은 네가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 생각에 변화는 없나?”
다시 한번 건네진 3황자의 제안. 이번에는 심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