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71)
제71화
“전하, 잠시 둘이서 이야기를 좀 나눠도 되겠습니까.”
챈슬러는 대답을 머뭇거리는 마르틴을 보며 3황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3황자도 상황을 이해하고는 자리를 비켜줬다.
마르틴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챈슬러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제법 순수한 면이 있는 놈이었다.
“내가 그대의 우상이라고 하였는가.”
“그, 그렇습니다. 제가 검을 쥐게 된 것도 챈슬러 경이 세상에 베푸신 선행에 대해 듣고 나서부터였습니다.”
“헌데 어째서 기사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지? 순전히 기사로서의 규율이 그대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가? 자유로운 용병 생활이 더욱 만족스러울 것 같아서?”
“……아닙니다.”
마르틴이 검을 놓게 되었던 이유. 그 전부터 쌓여 왔던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것은,
“주군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누구보다 따랐던 자신의 주인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씁쓸했지만 누군가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그는 기사로서의 자신을 완전히 잊은 채로 살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챈슬러라면…… 어쩌면 자신을 이해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결국에 국법에 따라 자신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이건 영광스러운 죽음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몰려들었다.
“자고 있던 와중에 습격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옆구리에 그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게 네가 모시던 이의 짓이었다는 건가. 이유가 뭐였지?”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제가 너무 강해서, 주군을 배신하고 그 자리를 빼앗을 것이 두려웠다고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그 길로 기사를 그만두게 되었나?”
아니다. 그때부터 기사를 그만두기는 했지만 사이에 빠진 아주 큰 사건이 있었다.
“아닌 모양이군.”
챈슬러는 마르틴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마르틴은 몇 번이나 울컥거리는 것을 참으며 오래전 잊어버렸던 비밀을 꺼내놓았다.
“주군을 제 손으로 죽였습니다.”
이건 힐데스하임뿐만 아니라 그 어떤 국가를 가더라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였다. 하지만 마르틴의 말을 듣고도 챈슬러의 표정은 담담했다.
덕분에 자신감을 얻은 마르틴은 계속해서 말을 이을 수 있었다.
“배신감이 목 끝까지 차올랐습니다. 도저히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기사로서 살아갈 수 없는 몸이라면…… 기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을 어겨 억울하지라도 않으리라 생각했었습니다.”
“딱하군.”
“허나 가장 억울한 것은 주군의 숨을 끊을 때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가장 큰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주군의 심장에 검을 꽂을 때, 그때 흘렸던 눈물만큼 아까웠던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어쨌거나 마르틴은 그 사실을 숨긴 채 도망쳐 살아왔고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차라리 이대로 성국의 처벌을 받고 죄책감을 덜어낸 채로 세상을 뜨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혹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느닷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첼레 마을에 니아브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챈슬러 경은 불쌍한 이들을 보고도 그냥 못 지나가는 선인이시라 들었습니다. 부모도 없이 홀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입니다. 제가 수도로 가 처벌을 받게 된다면…….”
“처벌이라. 그래 받아야겠지. 네가 생각하는 처벌은 어떤 것이지?”
“사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러설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굳이 재판에 송부될 필요도 없이 즉각 처리될 중범죄였다. 마르틴이 모든 걸 털어놓았으니 굳이 증거를 수집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래. 사형 혹은 무기징역이겠지. 원래라면 말이야.”
“……예?”
챈슬러의 알 수 없는 말에 마르틴은 되물었다.
“나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네가 딱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긴 건 어긴 것이니까. 허나 3황자 전하께서 워낙 자비로운 분이셔야 말이지.”
챈슬러가 밖으로 나간 3황자를 언급했다.
“그분께서는 너를 용서코자 하실 거다. 내가 무기징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그분이 꺼내주신 덕분이니까. 무엇이 맞는지 따지기는 어려운 문제지만, 그분은 융통성이 있는 분이지. 나와는 다르게 말이야.”
챈슬러가 황족에 대해 이토록 칭찬을 하다니. 듣던 것과는 꽤 달랐다. 아니면 3황자가 그만큼 대단한 사람인 것일까. 문득 의문이 든 마르틴이 물었다.
“3황자 전하께서는 어떤 분입니까?”
“흥미가 돋은 건가?”
“챈슬러 경이 모시는 분이 어떤 분인지, 어떤 계기로 좋지 않은 과거를 뒤로 하고 다시 황족을 모시게 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입니다.”
챈슬러는 쉽게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말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군. 하지만 그 모든 걸 정리해서 말하자면, 믿고 따를 수 있는 분이다.”
“…….”
“아마 그분께서는 네게도 기회를 주려 하실 거다. 너는 그분을 모실 자격 또한 있는 검사이고.”
이쯤 되자 마르틴은 궁금해졌다. 정말로 3황자가 소문만큼 뛰어난 사람인지. 챈슬러가 저렇게 입이 닳도록 칭찬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지.
“……하지만 제게 정말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그런다고 한들 이미 주군을 배신한 자신을 받아줄 미친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미친 사람이 정말로 있었다.
* * *
챈슬러가 마르틴과 대화를 마치고는 나에게 자세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챈슬러는 내게 어떤 판단을 바란다는 사견은 일절 붙이지도 않았다. 아마 온전히 내 결정에 따르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그럼 나로서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연이 많더군. 헌데 아직 아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는데.”
“……아까의 질문 말입니까?”
“내 기사가 될 생각 없냐는 거 말이야.”
마르틴은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여전히 걸리는 것이 있는 모양일까.
“그 니아브라는 아이 말이야. 그 아이 덕분에 너를 찾을 수 있었다. 페이른 백작의 악행에 대해서도 파헤칠 수 있었지. 내겐 정말 고마운 아이인 만큼, 성안으로 들여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해줄 수 있다.”
“……예?”
마르틴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특혜를 베풀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네게도 과거의 치욕을 씻을 기회를 주지. 좋지 않은 기억도 함께.”
그럼에도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또 뭐가 있단 말인가.
“혹시 더 원하는 게 있다면…….”
“저를 용서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덩치는 큰 놈이 갑자기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고 있었다. 저게 영 마음에 걸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챈슬러 경한테 못 들었어?”
“드, 듣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전하께서 그랬던 제 과거를 용서해 주실 줄은…….”
“됐다. 용서는 무슨.”
황족이기는 했지만 내가 누구를 용서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도 영 어색했고, 솔직히 내 기준으로는 마르틴이 그렇게 큰 죄를 지은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세상의 법이 그렇지 않으니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었지만.
“어째서 제게 이토록 잘해주시는 겁니까?”
마르틴은 이내 의문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딱히 잘해준 것도 아닌데 뭘.”
진심으로 내가 딱히 해준 것도 아니었는데. 기사로 영입하면 나만 좋은 일이었고, 니아브를 성안으로 들이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내 대답이 또다시 마르틴의 심금을 울렸는 듯 그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정말로 제게 기회를 주시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그러자 마르틴이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렸다.
“충성으로 모시겠습니다! 오로지 전하만을 위한 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곤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쓸만한 기사 한 명 얻는 게 이토록 어려워서야.”
* * *
수도에서 병력을 어느 정도 지원해주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모든 마을의 치안을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마르틴에게 듣자니 용병이라는 작자들은 결코 깔끔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선은 마르틴에게 지시해 각 마을의 용병들에게 으름장을 놓도록 시켰다.
“기사 마르틴. 전하께서 주신 첫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는 마르틴의 태도가 꼭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같았다.
“잘했어.”
그 말 한 마디에 기분이 확 좋아 보이는 것도 참 단순했다.
“그럼 이제 제대로 된 임무나 하러 가 볼까.”
“제대로 된 임무 말입니까?”
“어. 챈슬러하고 트루드도 같이 갈 거야. 다 대기하고 있으니까 너만 준비 마치면 돼.”
“저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습니다.”
“좋아. 그럼 따라와.”
나는 마르틴을 데리고 트루드와 챈슬러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길게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에 둘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임무가 임무인 만큼 조금은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듯 보였다.
일반 병사들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현자를 통해 전달되었고 직접 나서서 해결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마르틴까지 자리에 앉자 트루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오우거가 침공한 마을이 있습니다. 대충 주민들은 100명가량 되는 곳인데, 현재는 아예 오우거가 자리를 잡고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마을을?”
내가 반문했다.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한 경우였다.
“예.”
“다른 마을로 침공이 이어지지는 않았고?”
“빠르게 진지를 세워둔 덕분에 다른 마을로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럼 문제는 거기 있는 오우거를 어떻게 소탕하느냐겠네.”
오우거라면 힘이 장사인데다 지능도 꽤 높아 상대하기 어려운 놈들이었다.
“예. 그렇기는 한데, 일반 병사들을 동원한다고 쳐도 그들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테고…… 아마 많이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워 둘 필요가 있었다. 모두가 머리를 싸매며 궁리하던 그때였다.
“제가 놈들을 상대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마르틴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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