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73)
제73화
사실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베이언은 영지 전체가 흑마법에 물들어 있는 곳이었고, 그게 꼭 인간에게 국한되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전에 있던 페이른 백작이 오우거들을 흑마법의 실험체로 사용했을 수도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흑마법이 지닌 감염성 때문에 오우거들이 이렇게 된 걸 수도 있었다.
콰앙!
“으아아악!”
어쨌거나 오우거의 몽둥이질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에 맞은 병사 한 명이 공중으로 십 미터가량을 날아갔다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갑옷은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그걸 본 병사들은 하나둘 겁에 질리는 모습이었지만 애써 검을 움켜쥔 채로 앞으로 돌격했다.
“우와아아아!”
푸욱.
병사들이 사방에서 달려들며 오우거에게 검을 찔러 넣었지만 고작해야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박히는 게 전부였다. 그들이 전력을 다해 찌른 검은 오우거의 두터운 살집을 뚫지 못했다.
[병사들에게 용기를 부여합니다.]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했다.
“신께서 우릴 지켜보고 계신다!”
“용맹하게 싸우다 신의 곁으로 가겠다!”
한층 더 격해진 병사들의 검격. 오우거보다 병사들의 수가 훨씬 많았고, 덕분에 오우거 한 마리당 수 명의 병사가 붙어 생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우거에게는 조금 귀찮을 뿐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우거가 몽둥이를 거세게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이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꽤 호각으로 오우거와 검을 주고받는 이들이 있었다.
챈슬러. 그는 단신으로 오우거 중에서도 꽤 덩치가 큰 이를 상대하고 있었다. 오우거의 몽둥이가 휘둘러질 때마다, 검에 적절한 성력을 부여하면서 충격을 완화시켰다. 그리고는 깔끔한 동작으로 반격을 가했다.
“끄어어어억!”
귀청이 울릴 정도로 큰 오우거의 비명이 그때마다 튀어나왔다.
조만간 저 오우거는 챈슬러에게 쓰러지게 될 것이다. 오우거 한 마리 한 마리가 큰 전력인 만큼 싸움이 길어질수록 전세가 뒤바뀔 수 있었다. 다만, 다른 병사들이 그때까지 잘 버텨줄 때의 이야기였다.
나는 또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트루드와 마르틴. 둘은 오우거 한 마리를 합세해서 상대하고 있었다. 챈슬러만큼 강력한 성력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갖고 있지도 않았지만 둘의 호흡은 꽤 잘 맞는 것처럼 보였다. 좋은 시너지를 보이고 있었다.
오우거의 몽둥이를 마르틴이 막아낸다. 성력도, 마력도 없이 순수한 힘으로. 그가 자랑했던 본인의 괴력이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으아아!”
마르틴이 소리를 지르며 몽둥이를 막고 있는 검을 거세게 들어 올리자, 오우거가 그 반발력에 의해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그때마다 트루드는 예리한 검격으로 오우거의 급소 이곳저곳을 날카롭게 찔러대고 있었다.
꽤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는 전장의 균형. 하지만 상황은 그들의 족장이라는 자가 나타나면서부터 달라졌다.
* * *
트루드는 오우거 한 마리의 심장에 검을 찔러넣었다. 비로소 뿌리 깊은 나무처럼 단단히 버티던 오우거가 굉음을 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듣던 것보다도 오우거는 더욱 벅찬 상대였다. 만약 트루드가 혼자였다면 아마 바닥에 쓰러진 건 오우거가 아니라 그녀였을 것이다.
그녀는 말없이 마르틴을 바라봤다. 마르틴은 갑옷에 묻은 오우거의 피를 괜히 닦아내는 척하고 있었다.
트루드가 마르틴을 좋게 보지 않고 있던 건 사실이었다. 자신의 힘을 믿고 오만하게 구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실력이라면 그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도 납득할 수 있는 문제였다.
“뭘 보지?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을 하든가.”
트루드와 눈이 마주친 마르틴이 어울리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트루드는 괜히 자존심에 고개를 저었다.
“혼자 오우거 족장을 상대할 수 있다고 한 게 누구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제가 아니었다면 그냥 오우거 한 마리조차 벅차셨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방금 합을 맞추면서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오해를 품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검을 맞대면서 피어오르는 동질감과 유대감. 덕분에 이런 농담 정도는 웃으며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상하긴 하군. 이게 흑마법의 힘인가. 오우거가 원래 강하기는 하더라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야.”
그 말에 트루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만 했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욱 강해서 놀랐습니다.”
“아마도 저들에게 어려 있는 흑마법이 저런 위력을 내도록 만든 것 같은데.”
“그런데 또 흑마법에 걸린 이들이라기에는 차분해 보이는 듯도 합니다.”
직접 흑마법에 정신을 빼앗겨 본 적 있는 트루드는, 오우거들이 자신에 대한 통제력까지 빼앗기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의아함을 느끼고 있을 때.
쿵.
발소리만으로도 모두의 시선을 받은 오우거. 다른 놈들보다 1.5배는 큰 덩치를 자랑하고 있는 오우거가 전장에 나타났다.
“……저놈이 족장입니까?”
그렇게 물은 트루드는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렇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흉측하게 생긴 얼굴.
그보다도 더욱 희한한 것은, 오우거의 팔 한쪽이 완전히 검은색이었다는 것이었다. 팔이 검게 물든 것이 아니라, 흑마법의 기운이 팔의 형체를 만들어 낸 채로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었다.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앞으로 내디디면서 트루드가 툭 말했다.
“볼 수 있겠군요. 정말로 족장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힘이 대단하신지.”
“저건 반칙이지. 나는 성력이나 마력이 없는데 저놈들한테는 흑마법이 있잖아.”
마르틴의 그 말은, 트루드와 함께하는 놈을 상대하겠다는 걸 돌려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콰앙!
마르틴이 먼저 오우거의 몸을 후려쳤다. 하지만 마르틴의 검은 아주 작은 생채기만을 낸 채로 튕겨 나왔다.
이어진 트루드의 검 역시 마찬가지. 잔뜩 성력을 도배해 둔 상태인데도, 검을 놓칠 뻔할 정도로 손에 통증이 전해져 왔다. 무쇠를 검으로 내려친 느낌이었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
뒤를 돌아 마르틴과 트루드를 발견한 오우거 족장이 몽둥이를 후려쳤다. 덩치가 큰 것 때문인지 그 속도 아주 빠르지는 않아서 쉽게 피할 수 있었지만.
쿵!
바닥을 내려친 몽둥이가 만들어 낸 충격파. 그로 인해 트루드는 몸을 휘청거리면서 한참이나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마르틴은 그 충격파를 버티고 선 채로 오우거 족장을 노려보았다.
“혹시 내가 기억나나?”
그를 제대로 바라보던 족장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놀라운 힘을 갖고 있던 인간이로군. 치사한 힘 따위 없이, 몸뚱아리로만 우리를 상대하던 인간.”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거지?”
“무슨 소리냐?”
“너희가 추구하던 자긍심은 잊어버린 거냐? 흑마법 따위에 영혼을 팔다니.”
오우거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간 애써 웃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푸하하하.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렇게 마르틴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한 족장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마르틴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검을 들어 올렸다.
콰아아앙!
팔이 떨어질 것 같은 충격. 하지만 마르틴은 계속해서 버티고 서 있었고, 그가 서 있던 땅이 조금씩 파이기 시작했다.
“여전하군. 아니지. 전보다 더욱 강해졌어. 이 정도라면 과거의 나조차도 버거울 정도야.”
오우거 족장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마르틴의 힘은 정말로 오우거와 비교해도 꽤 높은 수준이라는 방증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어째서 더욱 강해지기 위해 영혼을 판 거지? 너희가 말하던 것에 대한 자존심 따윈 저버린 것이냐?”
“닥쳐라!”
몽둥이를 회수한 오우거가 마르틴을 내려다보며 강하게 소리쳤다. 일반 병사였다면 그것만으로도 쓰러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틴은 꿋꿋이 서 있었다.
“누군들 좋아서 그런 줄 알아? 이게 다 너희 인간들 때문이다. 너희 인간들이 비겁하게 습격을 해선 내 팔 한쪽을 가져갔다. 한쪽 팔이 없이 용맹한 전사로 살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머저리처럼 쓸모없는 오우거가 될 바에야 차라리 복수를 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제야 오우거의 팔 한쪽이 흑마법의 형상으로 되어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팔? 확실하진 않지만 붙여볼 수는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말을 한 이는 3황자였다. 우락부락한 덩치들끼리 싸우는 곳에 비교적 연약해 보이는 3황자가 발을 들인 것 자체가 오우거가 보기에는 의외였던 모양이다.
“뭐라고?”
적잖이 놀란 눈으로 족장이 3황자를 바라보았다.
“전하!”
마르틴은 놀라서 급히 3황자를 향해 달려갔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상황이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 병력들도 전부 후퇴를 시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먼저 피신하시어…….”
“아니야. 하던 얘기나 좀 해 볼게.”
3황자는 그렇게 마르틴을 저지하곤 다시 족장을 올려다보았다.
“네게 붙은 흑마법도 떼어줄 수 있고. 팔은 붙일 수 있는데 그게 원래처럼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기는 해.”
족장은 그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오우거가 소리를 질렀다.
“그딴 거짓말에 또 속을 것 같으냐! 인간들은 하나같이 비겁한 자들이다. 저런 식으로 말해놓고 뒤통수를 치는 게 일상이지.”
족장은 좋지 못한 기억이 떠오른 것인지 광폭하며 몽둥이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곤 3황자가 서 있는 곳으로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 동작이 워낙 커서 마르틴이었다면 피할 수 있겠지만, 상대는 무력에는 소질이 없는 3황자였다.
“젠장.”
입술을 거칠게 깨문 마르틴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곤 3황자의 앞에 서서 검을 들어 올렸다.
사실 저 정도로 큰 공격이라면 마르틴이 막을 수는 없는 일격일 터였다.
어째서 3황자를 지키려고 자신의 목숨을 바친 것인지. 솔직히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존경하는 건 3황자가 아니라 챈슬러인데. 단순히 챈슬러가 3황자를 존경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은 기사처럼 떠날 수 있어서 나쁘지 않다고 위안을 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일시적으로 성력이 부여됩니다.] [검에서 성력이 불타오릅니다.] [악의에 가득 찬 적을 상대할 때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합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