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74)
제74화
[마르틴에게 일시적으로 성력을 부여합니다.] [마르틴의 마음이 더욱 굳건해집니다.]내가 마르틴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성력은 극히 일부의 것이었다. 게다가 성력을 다뤄본 적도 없는 마르틴이 그 극히 일부의 성력을 온전히 다룰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르틴은 몸을 일으켰다. 그가 잠시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경외심과 함께 투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르틴이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검을 다시 한번 움켜쥐었다.
콰앙!
또다시 오우거 족장의 몽둥이를 막은 마르틴은 뒤로 주욱 밀려났다. 하지만 마르틴의 검이 하얗게 불타오르고 있는 덕분일까. 오우거 족장도 반발력에 의해 조금이지만 비틀거렸다.
“하앗!”
트루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검을 쭈욱 밀어 넣었다.
“크아아아악!”
족장의 두터운 허벅지에서 녹색의 피가 튀었다. 족장은 뒤늦게서야 트루드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빠르게 뒤로 물러난 트루드는 간신히 공격을 피해냈지만,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입술을 짓씹었다.
“……젠장.”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오우거의 허벅지에 박힌 검을 차마 회수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래도 트루드가 시간을 벌어준 덕에 마르틴은 다시금 족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쾅! 쾅!
마르틴과 족장의 무기가 수 차례 부딪히며 굉음을 내었다. 일반적인 인간들의 싸움에서는 가히 엿볼 수도 없는 경악스러운 장면이었다.
무력과 무력.
힘의 전율이 사방으로 퍼졌다. 주위에서 싸움을 벌이던 병사들과 오우거들까지도 잠시 그 현장을 바라볼 정도였다.
챈슬러다 다른 오우거들의 수를 조금씩 줄여가는 동안 마르틴은 홀로 족장을 상대하고 있었고, 오우거들은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마르틴. 그가 자신만만하게 외쳤던 괴력은 결코 자만심이 아니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비록 흑마법이라는 변수 때문에 밀리고는 있었지만.
성력을 부여받은 지금도, 마르틴은 족장을 상대로 계속해서 밀리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우거 족장이 몸에 지닌 흑마법은 마르틴이 사용하는 성력보다 훨씬 많은 양인 탓이었다.
하지만. 밀리고, 쓰러지고, 주저앉는다고 하더라도. 마르틴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성력이 마르틴의 투지를 더욱 끌어올립니다.]저러다 온몸이 바스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급적이면 이 이상 개입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마르틴의 눈동자는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하는 듯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두었다가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마르틴을 향해 서 있는 오우거 족장에게 손을 뻗었다. 내 손을 통해 방출된 다량의 성력이 족장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성력이 악의 힘을 정화합니다.] [오우거 족장의 힘을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리던 악이 사그라듭니다.]텅.
흑마법으로 생성되어 있던 오우거 족장의 오른팔이 잿빛이 되며 허공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그가 쥐고 있던 몽둥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게! 이게 무슨……!”
뿐만 아니라 오우거 족장의 온몸을 휩싸고 있던 흑마법의 기운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당황한 나머지 멍하니 서 있는 족장을 마르틴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포기하는 건가?”
그렇게 말하는 마르틴의 표정은 못내 아쉬워 보였다. 그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지, 이내 정신을 차린 오우거가 남아 있는 반대 손으로 몽둥이를 쥐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간만에 나를 즐겁게 해주는 상대를 만났는데.”
둘의 표정에서는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참 비슷한 놈들이었다.
마르틴은 나를 바라보며 다시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자신의 검에 어린 성력을 모두 회수시켰다.
“이래야 내가 널 쓰러뜨려도 억울해하지 않겠지.”
마르틴이 그토록 입에 닳게 말하던, 순수한 힘의 대결을 펼치기 위함인 듯 보였다.
“그럴 리 없다. 내가 인간에게 질 리가 있겠는가.”
한쪽 팔밖에 없는 오우거가 몽둥이를 바닥에 질질 끌며 앞으로 걸어갔다. 마르틴 역시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붕붕 돌리며 오우거를 향해 다가갔다.
콰앙!
성력도, 흑마력도 없는 상태에서의 맨손 싸움인 만큼 아까보다 훨씬 약화된 위력이었지만, 둘의 싸움은 더욱 치열하고 격렬하게 번질 것이 분명했다.
즐거운 듯 불타오르는 둘의 눈을 보며 나는 더이상 그 싸움에 개입할 수가 없었다.
* * *
마르틴은 힐데스하임에서 태어나 성력이 없는 삶을 사는 살았다. 일반인들에게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마르틴에게는 아니었다.
힐데스하임의 변방 귀족으로 태어나 기사를 지망하던 그에게, 성력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르틴은 그것에 회의감이나 열등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성력만을 믿고 자신을 우습게 보던 성기사 지망생들을 납작하게 눌러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의 타고난 장점, 누구보다 강한 힘을 더욱 발달시키기 위해 쉴 새 없이 피땀을 흘려 왔다. 선천적으로 그 경지가 정해져 있다는 성력과는 달리, 검사로서의 몸은 많은 수련을 거칠수록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성력의 힘을 우습게 봤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리석었군.’
자신의 몸으로 스며든 성력을 몸소 느끼며 마르틴은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극소량의 성력일 뿐이었지만 찢어진 근육들은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고, 피부에 난 생채기도 사라져갔다.
게다가.
카앙!
흑마법과 충돌하며 온몸에 전해지는 찢어질 듯한 고통도 반감되었다. 성력이 흑마법의 상성이라는 말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력의 위대함은 고작 이런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고, 전신의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오우거의 맹공으로 인해 정신력이 소모될 대로 소모된 상태에서.
바닥을 구르던 마르틴은 잠시 눈을 감은 채 망설였다.
이대로 누워 있을까. 어차피 상대도 안 될 텐데. 아무리 노력해봐야 지금처럼 넘을 수 없는 상대를 맞닥뜨린다면 달라지는 게 없을 텐데.
답지 않게 나약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조금씩 그의 자존심을 갉아먹었던 과거의 기억을 때문에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에서, 자포자기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하지만 성력의 기운이 그에게 귓속말을 하는 듯했다.
포기하지 말라고. 신께서 그대를 보살피고 있지 않느냐고.
신앙심 따위 개나 준 지 오래였는데 그런 속삭임이 어째서 그토록 달콤하게 들렸는지는 참 모를 일이었다.
마르틴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바닥에 검을 꽂은 채로, 간신히 일어나 버텼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던 그에게서 계속해서 새로운 힘이 보충되었다. 그의 몸에 잠재된 성력이 무한한 체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마르틴은 3황자를 바라봤다. 성국의 황자라는 존재는 원래 이 정도인 것일까. 성자라는 칭호가 딱 어울릴 듯한 위인이었다.
감사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따르기로 한 3황자가, 얼마나 고결한 이인지를 증명해 준 데 대한 고마움이었다.
이어서 3황자는 오우거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불결한 기운을 소멸시켜 버렸다. 비로소 오우거를 괴물로 만든 흑마법이 사라진 것이었다.
한쪽 팔밖에 남지 않은 오우거를 보며 안타까운 감정들이 떠올랐다. 그보다도 더욱 안쓰러운 것은 오우거의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그 어떤 순간에서도 투지를 불태우던 진정한 전사들. 하지만 족장은 팔 하나를 잃은 나머지 그의 자존심을 내던져 버렸고. 지금은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전사로서의 고결한 용맹도. 그를 저버리고 얻었던 불결한 무력도. 심지어 저 무기력한 얼굴에서는 더이상 인간에 대한 복수심마저 찾아볼 수 없었다.
“포기하는 건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오우거 족장에게 힘으로 밀리고 나서 이 순간만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하지만 제대로 복수할 기회조차 없어진다면 이만큼 억울한 일이 없었다. 설령 진다고 하더라도 후회는 없을 터였다.
“그럴 리 없다.”
다행히, 오우거 족장이 남은 한 쪽의 팔로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마르틴은 3황자 덕분에 얻었던 성력을 모두 소멸시켰다. 이 힘이 있는 한 제대로 된 승부를 가릴 수 없었다.
대신, 성력 덕분에 많은 걸 깨달을 수 있게 된 마르틴은 3황자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오우거와의 한 합.
길게 싸울 필요가 없었다.
서로가 바라는 것이 같았다. 복잡하고 정교한 검술 실력을 선보일 필요가 없었다. 오우거들의 방식대로 무기를 맞댄 채 서로의 힘을 있는 힘껏 끌어올리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방식이었다.
카아앙!
크게 휘두른 오우거의 몽둥이와 마르틴의 대검이 부딪혔다.
“끄으윽.”
“흐아아압!”
거센 호통 소리와 함께 둘은 무기에 남은 모든 힘을 실었다.
파앙!
두 손으로 대검을 거칠게 들어 올린 마르틴. 오우거는 자신의 몽둥이가 허공으로 뜨며 균형을 잃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르틴은 활짝 열린 오우거의 복부를 사선으로 그었다.
사악.
굳이 급소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오우거 족장이 굉음을 내며 바닥으로 쓰러지자 인간 병사들을 상대하면서도 이쪽을 의식하던 오우거들이 일제히 당혹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좌절하기보다는 경외심을 드러냈다. 족장을 그들의 방식대로 이겨낸 마르틴의 투지에 대해.
족장이 무너지자 오우거들은 항복을 선언했다. 그들이 계속해서 싸웠다면 3황자의 병력에도 꽤 큰 손실이 생겼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건 오우거들의 방식이 아니었다.
“고생했다.”
3황자가 마르틴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지켜줘서 고마웠고.”
문득 오우거 족장이 3황자에게 몽둥이를 휘두른 순간이 떠올랐다. 마르틴은 자신도 모르게 3황자를 구하기 위해 그 사이에 끼어들었지만, 정작 3황자가 마르틴을 구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펼쳐졌었다.
그런데도 3황자는 오히려 마르틴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네 말이 맞았네.”
그리곤 오우거 문제를 비교적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마르틴이 한 말이 맞았다고 인정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르틴은 더욱 부끄러워졌다. 3황자가 아니었다면 흑마법이라는 변수 때문에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 정진하여 다음번에는 제가 전하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이 끝이 나기는 했지만 아직 남아 있는 문제가 있었다. 항복한 오우거들, 그리고 쓰러진 채로 생명의 끈이 끊어져 가고 있는 오우거 족장의 처리 문제.
마르틴은 몇 번이나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불경스러운 부탁일 수 있으나 혹시 이놈을 살려주어도 되겠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