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77)
제77화
“……오우거의 팔을 말입니까?”
현자의 연락을 통해 베이언 영지로 찾아온 대주교는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애써 감추려고 하지만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그의 본심을 마냥 숨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게 지금 이 시대의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과거 세상에 찾아왔던 어둠. 마신과 악마로부터 세상이 종말에 이를 뻔했던 역사. 당시 세상이 빛을 잃지 않도록 한 건 인간들만의 힘이 아니었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든 종족들이 손을 모아 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버젓이 역사서에 남아 있는 과거를 인간들은 이제 와서 부정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과거는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며, 앞으로 찾아올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종족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부디 넓은 마음으로 제 입장을 이해해 주시길.”
그럼에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대주교는 오우거를 성력으로 치유해달라는 나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일 수도, 아니면 현자가 말한 대로 대주교가 나를 돕는 것을 꺼리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현자가 따로 대주교와 독대해 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주교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나는 그 이상으로 대주교에게 매달리지는 않았다. 현자는 미안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내 시선은 현자가 아닌 트루드를 향해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트루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이내 그녀의 눈빛이 아주 잠깐이지만 붉게 물들었다.
거절의 의사를 밝힌 대주교는 도로 수도로 돌아가기 위해 베이언 영지를 떠나자 현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께 도움이 되지 못하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본성이 저런 이는 아니나 세상이 그를 저리 만들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나도 대주교와 현자, 그리고 챈슬러의 과거에 대해 이미 현자에게 들은 바가 있었기에 그의 한숨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자로서는 바뀌어버린 대주교의 모습을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듯했다.
그 부분에 있어서 내가 어찌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손을 써 둔 상태였다.
“괜찮아. 곧 돌아올 테니까.”
“……예?”
현자는 이해하지 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에 대답하는 대신 트루드를 바라보았다.
“말한 대로 해둔 것 맞지?”
“예.”
트루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트루드에게 지시를 내린 순간부터 쭉, 그녀는 적잖이 놀란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저는 여전히 전하의 현명함을 따라가기 어렵군요. 한낱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마.”
나와 트루드의 대화를 듣던 현자가 내게 물었다.
“혹여 다른 방안을 대비해 두신 겁니까?”
“대주교가 곧 돌아올 거니까 족장의 팔을 준비해 둬.”
늘 모든 수를 파악하고 있던 현자마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왠지 모르게 뿌듯함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주교는 내가 말한 것처럼 베이언 영지로 돌아오게 되었다.
* * *
베이언 영지에서 수도로 돌아온 대주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3황자.
현 힐데스하임에서 사실상 황자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그가 황위에 오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주교는 그게 터무니 없는 것이라 여겼다.
물론 3황자가 지혜롭고 덕이 높은 인물이라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지켜보아 알고 있었지만, 그게 힐데스하임의 성황이 되는 데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그것이 냉혹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3황자가 클레이디크로 떠난 이후, 여러 공을 세우고 있는 것도 맞았기에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현자가 3황자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현자는 어떤 생각으로 3황자를 지지하기로 한 것일까.
놀랍게도 대주교의 앞에 있는 3황자는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양의 성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게 위로 있는 두 황자를 상회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원하는 것을 확인한 대주교는 3황자의 부탁을 들었을 때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오우거의 팔을 회복시켜 달라니.
“대체 무슨 생각이셨던 거지?”
애초에 인간을 적대하는 오우거를 치유한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팔을 회복시킨다고 하더라도 원래대로 붙여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단칼에 거절했다. 대주교은 달라질 것도 없는 일에 나섰다가, 괜히 3황자를 도왔다는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물론 현자의 앞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수치심이 차오르는 것을 어찌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베이언을 떠나려던 찰나, 현자가 그를 따로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이미 서로의 길이 갈라져 버렸으니 이제 와서 과거의 연민에 대해 운운하고 싶지 않았다. 현자 역시 그때의 일을 애써 들먹이지는 않았다.
“전하께서는 결코 터무니없는 일을 벌이지 않으시네.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아볼 터이니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되겠는가?”
생전 처음 받는 현자의 부탁이었지만 대주교는 응하지 않았다.
“자네와 나는 다른 길을 걷고 있네. 그리고 이미 너무도 많은 길을 걸어왔지. 돌아가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대주교는 차마 현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자네가 가지 않겠다면 내가 먼저 가겠네.”
애써 자리를 일어선 대주교의 등 뒤로 현자의 마지막 말이 들려왔다.
“늘 자네의 선택을 존중하고, 자네를 원망한 적도 없네. 그러니 혹여나 스스로를 원망하는 일은 하지 말게나.”
대주교를 더욱 초라해지게 만드는 현자의 말. 그게 아직까지 환청처럼 대주교의 머릿속에 남아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말 때문일까. 베이언 영지를 떠난 이후부터 대주교는 머리가 어지롭고 몸에 무언가가 매달린 것처럼 무거워진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내면의 깊은 무언가가 자신을 끌어당겨 깊은 잠에 빠져들게 했다.
-그대는 나의 수하로서 더욱 적절한 것 같군.
귓가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꿈속의 음성. 붉은색과 검은색의 기운이 실타래처럼 엮여 있는 묘한 형체가 대주교의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꿈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대주교는 얼어붙어 버렸다. 그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악마.
모든 존재를 파멸로 이끄는 차원 너머의 존재였다.
-어떤가. 본인 역시도 타락할 대로 타락한 것을 알고 있을 터. 나의 수하가 되어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
이건 아니었다.
아무리 대주교가 힐데스하임의 사제로서 부끄러운 행동을 많이 했다고 한들 자신이 모시는 신마저 저버리고 인간의 반대편에 설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주교는 온몸이 결박된 듯 미동조차도 할 수가 없었고 악마는 자신을 향해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시, 신이시여…… 부디 저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마음속으로 그렇게 울부짖고 있을 때.
화악.
밝은 빛무리가 나타났다. 성력의 근원이 되는 존재, 절대신 힐데스하임이었다.
-언제든 널 기다리고 있겠다.
신이 나타난 순간 악마는 대주교의 귓가에 끔찍한 웃음소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대주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모았다.
‘힐데스하임이시여. 저는 너무도 나약한 존재입니다.’
신은 그의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지만 항상 인간들을 지켜보고,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터.
대주교가 지금까지 보인 행동마저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하염없이 부끄러워졌다.
“괜찮다.”
하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존재는 신이 아니었다.
빛무리에 쌓인 채로 손을 내미는 남성. 익숙한 목소리에 자세히 살펴보니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었다.
3황자.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대주교는 다시 한번 얼어붙었고, 동시에 꿈에서 깨어났다.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대주교의 머릿속이 더할 나위 없이 어지러워졌다.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어째서 악마가 꿈에 나타나 대주교를 유혹했고, 그런 대주교를 구해준 것이 3황자였단 말인가.
예로부터 꿈은 신이 자신의 뜻을 전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파우스트가 옳았단 말인가.”
3황자는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신에게 총애를 받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저 꿈에 불과하다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이미 대주교의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방금의 꿈이 대주교가 3황자를 도와야만 하는 이유가 되어버렸다.
“젠장.”
대주교는 고민조차 하지 않은 채로 다시 베이언 영지로 떠났다.
* * *
트루드가 가지고 있는 악마의 힘. 그것은 힐데스하임의 인간들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특히나 고위직 사제로 있는 대주교에게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의 힘을 통해 대주교에게 조금이나마 장난을 쳐 두었고 모든 상황이 내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갔다.
“신께서 주신 힘을 신께서 바라시는 대로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얼굴이 하얗게 된 채 베이언 영지로 돌아온 대주교는 내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겠노라 말했다. 수도로 돌아갈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현자는 기다렸다는 듯 성력으로 보존하고 있던 오우거의 팔을 가져왔다.
“신이시여.”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대주교는 성력을 꺼내어 오우거의 팔에 성력을 부여했다.
대주교가 꺼내 보인 성력의 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그리고 오우거의 팔 역시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대주교가 지닌 성력이 저게 전부인 걸까.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처음 꺼냈던 것에 족히 두 배는 되는 양의 성력이 뿜어져 나왔고, 오우거의 썩어있던 팔에 생동감이 들기 시작했다. 본연의 색채를 되찾은 팔은, 방금 막 절단된 것처럼 최상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아직은 할 수 없던 일을 대주교는 단번에 해낸 것이었다.
지금 내가 가진 성력은 확실히 한참이나 부족했다. 태생부터 4성이었던 대주교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 지금 내가 가진 성력에 안주하고 있을 때가 아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우선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회복시키기는 하였으나…….”
“그거면 됐어. 고맙다.”
나는 후속 조치에 대해 궁금함을 지닌 듯한 대주교의 얼굴을 모르는 척하며 돌아가도록 지시했다. 내가 의술을 사용한다는 것이 어차피 언젠가는 알려지게 될 테지만, 그게 대주교를 통해서라면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었다.
힐데스하임에서도 의술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을 때 나 스스로가 드러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칼로스를 불러 옆에 보조를 보게 하고는, 특별히 제작한 메스와 바늘을 꺼내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