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78)
제78화
“……확실하지는 않대요.”
현재 온전한 엘프로 남아 있는 유일한 존재, 미아가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다는 거지?”
그러자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번 수술에서 가장 고민되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궁리하던 중 미아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아가 아닌 그녀가 지닌 정령의 도움이 필요했다.
확실한 해결 방법은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지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다.
잠시 정령을 빌리기로 하고 미아를 돌려보낸 후 누워 있는 오우거의 몸을 상세히 살폈다.
혈관, 뼈, 힘줄, 신경, 피부.
겉으로는 인간과 큰 차이가 있는 오우거였지만, 신체를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들은 인간과 상당히 흡사한 면이 있었다. 접합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 나로서는 참 다행이었다.
어떤 부분을 고정하고, 어떤 부분을 먼저 이어야 하는지. 같은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상태에 따라 그 과정이 달라지는데 만약 인간의 몸과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완전히 잠든 것 같습니다.”
오우거 족장에게 약초를 먹인 칼로스는, 겁에 질린 얼굴로 오우거를 툭툭 건드려 보더니 내게 말했다.
“알겠어. 팔부터 가져와.”
칼로스는 아직까지 오우거라는 종족에 대해 두려움이 남아 있는 듯 불안에 떨고 있었지만 시키는 대로 절단된 오우거의 팔을 들고 왔다.
접합 수술을 위해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가장 먼저 진행해야 할 과정은 뼈를 고정하는 일이었다. 뼈는 당연히 혈관이나 힘줄처럼 바늘 같은 것으로는 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현대 의학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금속 고정물을 사용하는 거였다.
단순히 뼈가 부러진 경우라면 금속 핀으로 뼈를 고정하는 정도로 사용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팔이 잘려 뼈가 완전히 분리되어 버린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미리 제작해 둔 철심을 꺼내자 반짝거리는 빛이 났다. 예기를 세우는 마법까지 부여되어 있는 철심이었다.
“너도 지금까지 봐서 알겠지만 몸은 생각보다 더 튼튼해. 의술이든 성력이든, 자연스레 몸이 나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줄 뿐이지.”
물론 뼈가 완전히 이어지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칼로스에게 말한 대로 그게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는 있었다.
타다닥.
철심을 강하게 밀어 넣자 분리된 곳과 원래 오우거의 뼈가 철심을 통해 이어졌다. 마법이 부여되어 있어 내 힘만으로도 철심은 뼈를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힘들어도 꽉 잡고 있어. 완전히 고정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칼로스는 오우거의 팔이 꽤나 무거운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아직은 조금 더 이대로 시간을 둘 필요가 있었다.
커다란 철심을 총 세 개 박아두었다. 이 정도면 오우거가 큰 무리를 하지 않는 이상 뼈가 뒤틀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뼈는 이만하면 됐고, 이제 혈관부터 이을 거야.”
혈관보다 힘줄이나 신경을 먼저 잇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어지간하면 혈관을 가장 먼저 잇는 편이었다. 혈관을 통해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절단된 부분의 세포가 죽어버릴 수 있었다.
혈액 순환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맥부터 빠르게 연결한 후, 심정맥과 나머지 혈관 순서대로 접합을 이어나갔다.
칼로스는 경악하는 얼굴을 하면서도 과정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살펴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배워가는 놈들은 병원에도 한 놈씩 꼭 있었다. 칼로스가 대한민국의 의사였다면 그런 부류 중 한 명이었을 거다.
체계적으로 가르쳐 준다면 얼마나 성장할지 가늠도 가지 않았지만 아쉽게도 이 세계의 환경은 마땅치가 않았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여유롭게 가르침을 전해줄 수 있는 상황도 한정적이었고. 그냥 이렇게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 칼로스가 많은 것을 깨닫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오우거는 인간보다 비대한 몸을 가지고 있었고, 혈관과 힘줄의 크기마저도 사람의 것보다 훨씬 컸기에 상대적으로 쉽게 연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신경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인간의 신경은 혈관보다도 크기가 훨씬 작아 확대경 없이는 접합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인간보다 덩치가 큰 오우거여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의사도 확대경 없이 신경을 잇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가장 많은 고민을 했다. 그렇게 나온 해결 방안 중 하나가 정령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크기의 정령. 미아의 힘을 빌려 불러온 정령은 희미한 빛무리를 뽐내며 내가 준비해 둔 실을 이끌고 이리 저리로 움직였다.
연결해야 하는 신경끼리 가지런히 두었으니 정령은 그 신경을 실로 잇기만 하면 되었다.
이게 정말 될까 싶은 마음으로 시도해 보았던 것인데, 걱정했던 것이 괜한 우려였는지 실은 끊어진 신경 사이를 오가며 자연스레 연결하고 있었다.
“고생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빛무리에 대고 감사 인사를 전하니 자연스레 사라져 버렸다.
“……끝난 겁니까?”
꽤 오랜 시간 지속된 수술로 칼로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 너도 고생 많았어. 괜히 힘든 일에 부려먹기만 하고.”
그 말에 칼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가 부족하여 전하께 늘 큰 도움이 되지 못하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괜한 말은 그쯤 하고 들어가서 쉬고 있어.”
* * *
오우거가 의식을 차린 건 모든 수술이 끝나고 대충 반나절이 지난 시간이었다.
“파, 팔이?!”
오우거는 깨어나자마자 원래대로 붙어 있는 본인의 팔을 보며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추측하건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감정을 표출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으…… 으어억!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오우거는 괴성을 내지르며 얼굴을 찡그렸다.
“당연하지. 회복되는 데는 한참 걸릴 거야.”
팔을 온전히 접합시킨 뒤 성력으로 자연 회복을 조금 돕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모든 기능을 단번에 되찾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우거의 팔을 지탱할 수 있도록 묶어둔 것이고.
“그리고 괜히 무리해서 움직이려고 했다가는 애써 붙여놓은 거 전부 수포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자제하고.”
그 말에 팔을 힘껏 움직여 보려던 오우거가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정말인가? 이대로 있으면 회복된다는 말인가?”
“감각은 있어?”
나는 절단되었던 단면 아래쪽의 팔을 살짝 건드려 보았다.
“이, 있다.”
“그럼 네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어느 정도는 회복될 수 있을 거야. 이전처럼 막 다룰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오우거에게는 희망이 되었는지 안도의 한숨을 크게도 내뱉었다.
“고맙다.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그래서 너희들이 해 줘야 할 게 있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건 오우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서 받아낼 건 받아낼 생각이었다.
* * *
베이언 영지에서 오우거들의 습격을 받았던 마을은 복구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아주 엉망진창이 된 터라 복구 작업은 쉽지가 않았고,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팔을 걷고 나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젠장. 그 망할 괴물 놈들. 우리 집 절반을 부숴 놓았구만.”
“절반이면 어딘가. 우리 집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주민들. 그중 한 명이 갑작스레 떠오른 것이 있는지 이야기를 꺼냈다.
“참. 옆 마을에서 온 상인에게 들었는가?”
“뭘 말인가?”
“글쎄…… 이게 참 믿기도 힘들고 쉽사리 꺼내기 민감한 문제라서…….”
“젠장할. 이야기를 하려면 끝까지 하든가, 하지 않으려거든 꺼내지를 말든가. 사람 궁금하게. 뭔데? 뭐?!”
다른 이들의 추궁에 이야기를 꺼낸 주민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분명 헛소문일 수도 있네만 자네들이 그토록 궁금해하니 이야기를 하는 것임을…….”
“알았다니까! 빨리 말이나 해 보라고!”
“그, 그래. 거 3황자 전하께서 오우거들을 소탕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지?”
“그걸 모르는 이가 어디 있는가?”
3황자가 베이언 영지를 다스리게 된 직후, 가장 먼저 해결하기 위해 나섰던 일인데 모를 수가 없었다.
갈 곳 잃었던 주민들의 거처를 되찾아주고, 죽일 놈의 오우거들을 소탕해 준 위인. 그들에게 3황자 전하는 빛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알고 보니 3황자 전하께서 오우거 놈들을 용서해 주셨다는군.”
“뭐라?!”
모조리 몰살시켜도 모자랄 판에, 3황자는 애써 승기를 잡고도 오우거들을 풀어주었다는 것이 마을 주민의 말이었다.
“그게 정말인가?”
“말했잖은가. 확실치는 않은 소문이라고.”
하지만 그 말이 주민들의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당최…… 이해할 수가 없군.”
“3황자 전하께서도 사실은 겉으로 보이는 공을 세우는 데 급급하셨단 말인가?”
“예끼, 이 사람아. 말 조심하게. 그래도 우릴 위해 힘 써주신 전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뭐 잘못된 말이라고! 정말 우리를 생각해서 나서주신 거라면 그놈들을 전부 찢어 죽여도 모자랄 일인데. 살려서 돌려보냈다니.”
오우거들에게 쌓인 한을 생각하면 속에 천불이 날 지경이었는데. 아무리 3황자가 자신들의 거처를 되찾게 해 주었어도 그 원수들을 살려주었다는 건 도저히 좋게 보이지가 않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밝혀지지 않겠는가.”
“밝혀지기는 무슨. 소리소문없이 묻힐 일인 거 모르나?”
낮은 이들이 겪는 고통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었다.
“에이씨. 몰라. 생각해봐야 화병만 걸리지.”
그렇게 말한 주민 한 명이 도로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일어섰을 때.
“나를 왜 그렇게 보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남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곤 이내 그 시선이 자신이 아닌, 자신의 뒤쪽을 향해 있음을 깨닫곤 고개를 돌렸다.
“흐, 흐어어억!”
언제 나타난 것인지 남자의 뒤쪽에 서 있는 오우거 무리들. 남자는 너무도 놀라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저, 저, 저리 가!”
그러곤 속으로 3황자를 원망했다. 결국 3황자가 오우거들을 용서해 준 탓에 놈들은 또다시 마을을 침공했고, 결국 자신이 죽은 목숨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것은 오해였다.
“너무 놀라지 마.”
뒤늦게 나타난 3황자가 마을 주민들을 안심시키고는 오우거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빨리 사과 안 해?”
그제야 오우거들은 마을 주민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쌓여 있는 벽돌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