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79)
제79화
아무리 오우거들이 먼저 인간들에게 피해를 본 것이 있다고는 해도, 그리고 이놈들의 지능이 낮아 복수의 대상을 인간 전체로 삼았다고는 해도.
그게 면책 사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우거들의 진심 어린 사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주민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말이다.
주민들에게 사과를 한 오우거들은 손수 나서 마을의 복구 작업을 도왔고, 그들의 무지막지한 체력과 힘 덕분에 빠르게 진행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민들의 거처는 그렇게 마련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정작 쫓겨난 오우거들은 살아갈 공간을 잃은 꼴이 되었다. 대신에 나는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는 숲을 오우거들이 살아갈 수 있게 내어주었다.
“꺄아아악!”
“괴, 괴물이다.”
밖에서 들려온 괴성에 무의식적으로 한숨이 먼저 나왔다. 나가보니 저택의 앞에 사슴이나 멧돼지 따위의 사체가 놓여 있었다.
그걸 놓고 간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오우거들이었다. 이미 저만치 돌아가고 있는 오우거들은 그것이 퍽 유쾌한 일인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은혜를 잊지 않는군요.”
현자가 그들을 바라보며 넌지시 말했다.
“웬만하면 마을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했건만.”
방금과 같이 오우거를 본 인간들의 반응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들에게 오우거는 당연히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일 뿐이었다.
“너무 그러지는 마시지요. 좋은 마음으로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저들의 지능으로는 자신들이 민간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그렇겠지.”
“이것들 처리는 하던 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현자는 앞에 놓인 짐승의 사체를 향해 턱짓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항상 배부르게 잘 먹고 있는 처지였기에 이런 보답은 받지 않아도 그만이었지만. 이게 가난한 마을로 가게 된다면 간만에 포식을 하는 계기가 될 터였다.
“주민들이 전하의 은혜를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만의 영지가 생겼고 그 영지민들이 나를 더욱 따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지만 분명 베이언의 모든 것이 전하께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영지에서 내 세력을 어떻게 키워나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의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 외에도 영지가 보유한 군사력 자체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건 큰 걱정이 없었다.
난다 긴다 하는 힐데스하임의 성기사들이 모인 황실 기사단. 그곳에서도 리더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 챈슬러가 내 곁에 있었으니까.
* * *
“베이언에서 기사들을 모집한다더군.”
힐데스하임의 시골 어딘가에 위치한 작은 선술집. 가문이 미천하여, 혹은 성력이 한미하여 크나큰 꿈을 가슴 속에만 묻어둬야 했던 기사들.
그들에게도 베이언이라는 영지의 이름은 낯설었다.
“베이언이 어디요?”
“어디면 어떤가. 봉급은 제때 주려나? 여기처럼 밀리지만 않는다면 당장에라도 지원하고 싶은데.”
“이 친구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돈 때문에 여기 있는 게 아닌 거 아는데. 그리고 어찌 베이언을 모른단 말인가. 3황자 전하께서 이번에 세우신 영지 아닌가.”
3황자라는 말에 조금이지만 관심을 보였던 기사들은 혀를 차며 맥주를 거하게 들이켰다.
“젠장. 오르지도 못할 나무 이야기는 왜 꺼내?”
“그리 생각하지 말게. 공고에 신분보다는 처지를 살피겠다는 말씀을 직접 적으셨네. 나야 이미 늙을 대로 늙어 아무런 의미가 없네만, 한창 창창한 자네들이 거기서 제대로 된 수련법이라도 익힌다면…….”
“에라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 기사의 꿈이니 뭐니 하던 것도 다 옛날 일이지, 접은 지 오래요. 거기로 가면 규율도 꽤나 엄격할 것 아니오. 나처럼 선임 기사한테 막말하는 망나니가 무슨.”
그러자 노기사가 웃으며 그의 손을 따스하게 붙잡았다.
“그러면서 손은 왜 이리 떠는가?”
“징그럽게! 놓으시오. 손은 누가 떨었다고.”
“여기 상황이 걱정돼서 남아 있으려는 생각일랑 하지 말고. 이미 지금까지 큰일을 해 줬고, 자네들은 여기 남아 있기엔 너무 아쉬운 재능이야. 두 번 다시 기회는 없을 테고.”
노기사는 잠자코 듣고만 있는 자신의 후임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이미 자네들의 이름으로 지원서를 넣어 두었네. 가문에 부탁해서 특별히 꼭 전달되게 해 두었으니 전하께서도 친히 살펴보실 걸세.”
“이 영감이…….”
“그딴 짓을 하면 고마워할 줄 아셨소? 누가 바랬다고!”
기사들이 더욱 성을 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노기사는 자신의 꿈보다는 의리와 정의를 택했고, 명망 있던 가문의 기대를 뒤로하고 변방에 남았다. 가문에서는 거의 버림받다시피 한 것은 꽤나 유명한 일.
그런 그가 가문의 손을 빌리려고 자존심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은 역시나 영 불편했다.
그리고 베이언 영지의 기사들을 모집한다는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은 비단 이런 작은 마을뿐만이 아니었다.
“챈슬러 경이 기사들을 모으신다니.”
“다시 검을 들 때가 되었군.”
챈슬러가 황실에서 버림받는 것을 차마 지켜보고만 있지 못하던 이들이 있었다. 챈슬러를 진심으로 따르던 소수의 기사들. 혹은 챈슬러의 사연을 듣고, 그를 존경하며 은둔 생활을 해 오던 여러 실력자들.
그들은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 검을 허리춤에 찬 채 베이언 영지로 향했다.
* * *
“생각보다 더욱 많은 인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챈슬러는 곤란한 얼굴로 내게 명단을 내밀었다. 베이언 영지의 병사와 기사로 활동하고자 하는 이들의 수는 너무도 많았고, 일일이 헤아려 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상태는 따져 봐야지.”
챈슬러는 내 말을 단번에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중에서는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이들도 분명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황자라는 이유만으로 합류를 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 그들은 언제든 자신의 이득에 따라 박쥐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걸러 받을 필요가 있었다.
또한.
“최소한의 실력 정도는 보아야 하니까.”
정말 전력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 지원을 했다고 한들, 제대로 검조차 쥐지 못하는 이들을 받아들일 순 없었다.
냉정한 현실이었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일에서는 더욱 철저하게 따질 필요가 있었다.
의대 교수로 있던 내가 일부 인턴, 전공의들에게 다른 길을 권했던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이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하지만 애써 악역을 자처했던 나였으니 굳이 착한 척 돌려 말하지는 않았었다.
“병사들을 전부 다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기사들만큼은 챈슬러 경이 직접 확인해 줘. 아니다 싶으면 돌려보내고.”
그렇게 징집에 대한 부분이 챈슬러 경을 통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다른 고민에 잠겨 있었다.
“부르셨다고요.”
파우스트가 특유의 미소를 띤 채로 들어왔다.
“모든 것이 잘 풀려가는데, 어찌 울상이십니까.”
현자의 말에 나는 바늘에 찔린 것처럼 뜨끔했다.
“경도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지?”
현자는 내게 더없이 신비스러운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지식은 근원을 파악하기도 힘들 만큼 넓었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저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현자 역시 내게 신비하게 여기는 것이 많을 터.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급진적인 성력의 발전은 신에게 선택받은 것 덕분이라 하더라도. 전생에서 가지고 있던 의학 지식은 이제 완전히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지켜보기만 할 수가 없던 노릇이라.
하지만 아무리 현자라고 하더라도 내가 가진 의술의 비밀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전하는 늘 제게 신비스러운 분이셨지요. 허나 누구나 저마다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이 있는 법입니다. 전하 역시 저에게 많은 것을 묻지 않으셨듯, 저도 전하를 늘 신비스러운 분으로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지요.”
그는 나를 이해하고 있었다. 설마 내가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태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
“그럼 언제까지 감추는 게 좋겠어?”
힐데스하임에선 꽤나 민감한 문제였다.
민간에서 의술을 행하는 것조차 좋지 못한 눈총을 받고 있는 실정인데, 황자가 의술을 펼친다니.
그 인식을 바꿔놓은 후에 드러내기로 마음을 먹어두긴 했지만 역시나 막연한 미래일 뿐이었다.
“가장 확실한 것은 성황 폐하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겠지요.”
“아버지를?”
“예. 성황께서 전하가 갖추신 의술의 효능을 직접 두 눈으로 보신다면 마음이 달라지실 수 있을 겁니다.”
성황의 말이 곧 법인 힐데스하임인지라, 그의 마음을 돌려놓는다면 분명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 황소 같은 양반이 마음을 바꿀 리는 없었지만.
“헌데 성력은 신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축복이나 다름없다는데. 의술의 효용이 그걸 부정하는 꼴이잖아.”
힐데스하임에서 의술을 배척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신이 직접 내린 힘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인간 고유의 힘만으로 해결해 낸다면. 성력의 가치가 절하되는 것이라고, 꽉 막혀 있는 이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현자는 내게 물었다. 현자는 꽉 막혀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성황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었고.
“인간 역시 신께서 손수 만드신 존재입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힘 역시도 결국엔 그분에 의해 비롯된 것이니 저는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이어지는 궁금증이 있었다.
“신이 만든 것은 무엇인데?”
힐데스하임에서는 신이 만물을 창조했다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흑마법사니 악마니 하는 것들 말이야. 그것들까지 신이 만들었을 리는 없잖아. 정말 그런 거라면 성력이 그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현자는 내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힐데스하임에 퍼져있는 정설들이 모두 사실은 아닙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현자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비밀은 각지로 흩어진 성물들에 조각난 채로 간직되어 있지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