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8)
제8화
참회의 숲으로 떠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한 달가량이었다.
“우선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익히셔야 할 것들을 빠르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어. 바로 해보자고.”
현자의 말대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참회의 숲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된 이상 안일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대한 많은 활약을 해야만 더욱 큰 권능을 얻어낼 수 있는 곳이니까.
“우선은 기본적인 수호 기술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악령들이 들끓는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앞으로 살아나가기 위해선 어디든 도사릴 수 있는 위험 속에서 스스로의 몸부터 지켜내는 게 가장 중요하기도 했다.
“이제 막 황자 전하께서는 병자들을 치료하는 데 익숙해지셨으나 그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성력을 방출하셔야 합니다. 우선 지금까지처럼 성력을 꺼내 보시겠습니까?”
현자의 말에 따라 두 개의 고리를 회전시켰다.
태어난 지 1년 되던 해. 나로 인해 성국은 성물을 잃게 되었다.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었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걸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되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성배의 힘은 내 몸속에 들어와 있었으며 그로 인해 「통제의 권능」을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그 전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성력은 빠르게 축적되고 있었고, 성력을 다루는 미세한 감각 역시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었다.
화악.
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의 나는 8살의 나이에 벌써 평범한 2성 사제 정도의 성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는 그 성력을 조금 더 멀리 퍼뜨리려 해 보십시오.”
상처를 재생시킬 때는 손을 직접 환부에 대어 성력을 방출하기만 하면 됐지만, 지금 현자가 요구하는 것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흠. 잘 안 되네.”
처음 성력을 배울 때도 한참이나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금방 될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잘 될 리는 없지만 익숙해지면 그리 어렵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렇게 말한 현자가 직접 시범을 보였다.
“최대한 멀리 밀어낸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시도해 보십시오. 그리고 형태는 어떻든 상관없지만 가장 이상적인 건 반원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악.
현자는 나와 같은 2성임에도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밝은 빛의 성력을 뿜어냈다.
그 성력은 현자의 손에서 뻗어 나오더니 그의 말대로 반원형을 그렸다.
몸 전체를 숨길 수 있을 정도로 큰 성력이 현자의 손 앞에 형성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하시면 물리적인 공격은 물론이며, 특히나 역상성이라 여겨지는 마력을 수월하게 방어해낼 수 있습니다. 참회의 숲에 도사리고 있는 악령들은 마력을 통한 정신 공격에 능하니 익혀두시면 필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자의 조언을 들어가며 성력을 최대한 외부로 밀어내는 연습을 계속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습을 이어나가다 보니 마침내 성력은 내 몸에서 떨어진 채로 유지되고 있었다.
처음엔 기껏해야 손바닥 바로 앞에 미량의 성력을 만들어내는 게 고작이었으나, 감을 잡은 후로 발전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약 2주 가량의 시간 만에 성력을 손바닥에서 5cm 정도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으며, 그 크기 역시 방패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나날이 성력을 다루는 능력이 눈에 띄게 발전하시는 것 같습니다.”
신성 제국이 잃어버린 성배가 내 몸속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은 현자 역시 모르는 듯했다. 워낙 민감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현자에게까지 감추고 있는 상태였다.
“크기는 그 정도면 당장엔 충분하실 듯하고, 남은 시간 동안엔 조금 더 견고하게 만드는 데 주력하시면 될 듯합니다.”
확실히 지금 내가 만든 오러는 가벼운 공격에도 쉽게 뚫릴 만큼 약했다. 지속 시간 역시 채 몇 초를 가지 못했다.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했다.
그 부분도 남은 2주간을 몰두하자 어느 정도는 해결되었고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을 정도의 수호 마법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악령들의 공격에는 대비할 수 있으실 겁니다. 다만 지레 겁을 드시어 제대로 능력을 이끌어 내지 못하신다면…….”
“그건 됐어.”
악령.
귀신을 본 적은 없었으나 공포 영화로 수도 없이 단련된 강심장이다. 귀신의 집 같은 델 가서도 놀란 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너무 태연해서 같이 간 사람들이 황당해할 정도였지.
실제로 귀신을 보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괜히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충분히 내가 감당해낼 수 있는 존재인 걸 아는 이상 과하게 쫄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언제나 연습은 실전과 다르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그 부분은 나도 우려되는 부분이기는 했다. 의대생 시절 수도 없이 실습을 했음에도 병원 인턴 생활을 하면서 예기치 않은 상황이 튀어나와 당황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현자는 그 부분에 대한 대책까지 마련해 둔 상태였다.
“때마침 발칸 제국에서 사절로 온 기사 한 명이 있기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발칸 제국의 기사?”
발칸은 힐데스하임이 제국을 선포하기 한참 전부터 홀로 이 세상을 지배하던 적국이었다. 지금도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져 있지만 명목상 휴전을 하고 있는 국가였다.
“예. 발칸의 기사와 마법사들은 성력 대신 마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듯 악력의 기운은 마력과 꼭 닮아 있지요.”
그러니 나에게 그 기사를 상대해 보라는 말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일러두었으니 전하께서 감을 익혀나가기 좋을 정도로만 상대해 줄 겁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신을 칠흑의 갑주로 무장한 기사가 나타났다.
“발칸 제국의 기사 레오라 합니다. 성국의 황자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말은 그리 했지만 그 말투에서는 예의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껄렁거리는 시선에서도 노골적인 무시가 엿보였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곤 레오가 허리춤의 장검을 꺼내 들었다.
화악.
새파란 불꽃이 그의 검에서 불타올랐다.
나 역시 가슴팍에 있는 두 개의 고리를 회전시켰다.
* * *
발칸 제국과 힐데스하임은 오래전부터 앙숙이었다.
그 시초를 찾자면 역사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일이었다.
힐데스하임에서 발칸 제국을 경멸하듯이, 발칸 제국에서도 신성 제국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해 있었다.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이유로 영토를 앗아간 교만한 집단. 선지자라는 명목하에 모든 악의적인 행동을 합리화하는 위선적인 인간들.
그것이 발칸에서 생각하는 힐데스하임이었다.
“단장님. 저는 힐데스하임을 박살 내는 일이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사 레오는 철저히 그 사상에 물들어 있었다.
힐데스하임과의 전쟁 중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든 성국을 향해 검을 들어 올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발칸과 힐데스하임의 휴전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고, 레오가 기사가 된 이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 우선 성국에 보내는 사절단에 호위로 따라가서 동태를 살피고 돌아오도록.”
그렇게 레오에게 임무가 내려졌다. 어쩌면 이번에 일을 통해 힐데스하임과 발칸 간의 전쟁이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런데 힐데스하임에 도착해 동태를 살피던 중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발칸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미천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3황자. 그의 대련 상대가 되어 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은 것.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단, 한 개의 고리만을 사용해 주십시오. 또한 전하의 신변에 결코 위해가 가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한 조건 또한 당연히 승락했다.
대련 중 다치는 일은 다반사이고, 3황자가 너무 약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일국의 황자이니 과하게 행동했다간 제 목이 먼저 달아날 것이다. 필요한 것은 적당히, 성국에서도 묻고 넘어갈 정도의 위해.
그를 위해서는 고리 한 개면 충분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3황자를 향해 마력을 실은 검을 내질렀다.
쾅!
그런데 검은 3황자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무쇠를 내려친 것처럼 검이 튕겨 나오고 말았다. 검을 쥐고 있는 손이 아려올 지경이었다.
‘성력?’
저것이 마력의 상극이라는 성력이었다.
그 증거로 마력을 내뿜은 고리 한 개가 가슴 속에서 울어대고 있었다. 마력은 무언가에 겁을 먹은 것처럼 레오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분명 3황자는 성력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얼뜨기라고 들었거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그런 혼란스러운 생각과 함께 머릿속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후읍.”
크게 심호흡을 했다.
레오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력이 마력의 상성이라 그런 것인지, 혹은 정말로 3황자가 예상 밖으로 뛰어난 경지에 올라 있는 것인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3황자에게 되려 망신을 당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대련이 끝이 난다면, 결국 신성 제국에 대해 잔뜩 겁먹은 채로 발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이 순간이 트라우마로 남아 신성 제국을 향해 갈고 닦았던 복수심이 무뎌지고 말 것이다.
그건 안 될 일이었다. 결국 현자와의 약속을 어기기로 했다.
위이잉.
두 개의 고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갈고 닦아 왔던 모든 것을 꺼내어 마력도 성력을 이겨 보일 수 있노라 증명하고 싶었다.
콰아앙!
3황자의 오러와 자신의 검이 부딪히며 귀청이 울릴 정도의 소음을 만들어 냈다. 파란 마력과 하얀 성력이 뒤섞여 온 공간을 뒤덮었다.
“……말도 안 돼.”
3황자는 멀쩡히……라고 하기엔 간신히 막아낸 듯 보이기는 했으나 결국 레오의 전력을 막아내고 말았다.
기사단에서 결코 빼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을 정도로 검을 갈고 닦았다. 그런데 저 꼬맹이가 자신의 검을 막아냈다.
“검을 내려라.”
현자는 막대한 양의 성력을 내뿜으며 레오를 향해 말했다.
챙강.
현자의 말에 순순히 따른 것이 아니었다. 3황자의 성력으로 인해 더이상 검을 쥐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