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85)
제85화
“헬리배드라…….”
베이언으로 돌아온 나는 현자에게 헬리배드에 대해 물었다.
“확실히 알려진 바가 많이 없는 곳이기는 합니다.”
현자는 내가 헬리배드에 대해 물은 이유를 궁금해하지는 않는 듯 보였다. 그리고 현자는 그 이유에 대해 잘못 추정하고 있었다.
“다만 왕국에 대한 내지인들의 평이 가장 좋은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헬리배드의 국왕은 퍽 지혜롭고 인자한 이라고들 하더군요.”
“현자도 만나본 적은 없었나 보네?”
그래도 명색이 신성 제국의 제후국인데, 성황의 오른팔이었던 현자조차도 그와 대면한 적이 없다는 건 조금 의외이긴 했다.
“그만큼 헬리배드는 신성 제국의 일에 큰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거의 버림받다시피 하기도 했지.”
내가 헬리배드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정보였다.
메마른 땅. 국토의 대부분이 건조한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는 헬리배드 왕국은, 언제부터였을지도 모를 먼 과거부터 열악한 삶을 살아왔다. 생활이 안정되지 못하다 보니 다른 국가들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신성 제국에서는 제후국이라 하더라도 헬리배드 왕국과는 전혀 교류를 하지 않았고, 단지 세금 정도만 걷어가는 것이 유일한 접점이었다.
그러니 내가 나침반을 통해 본 헬리배드의 과거는 정말 의외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곳에 성물이 남아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가 봐야겠어.”
“일정을 알려주시면 미리 준비해 두겠습니다.”
“아냐.”
베이언에서는 한창 병력 육성을 포함해 여러 일들에 인력들이 투입되고 있었고, 쓸데없는 일로 그 인원들을 빠지게 할 생각은 없었다.
현자를 돌려보낸 나는 곧장 헬리배드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 * *
“……3황자 전하께서요?”
헬리배드의 가신들이 모인 자리. 사실 이들끼리는 함께 모여 국정을 논하는 일이 드물었기에 이렇게 모인 것이 오래간만이었다. 그만큼 헬리배드에는 중대한 사안이 들이닥쳤다.
“예. 3황자 전하께서 오고 계신답니다.”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헬리배드는 힐데스하임의 속국이고, 똑같은 신을 모시고 있기는 하나 사실 크게 연관된 부분은 없었다.
헬리배드의 지형 특성상 크게 발전할 수가 없었고, 그런 국가에 신성 제국이 신경을 써 줄 리가 만무했다.
헬리배드 왕국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게 더욱 편하기도 했다.
신성 제국의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로이, 그들의 뜻대로 헬리배드를 통치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덕분에 헬리배드는 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비록 생활이 힘들지언정, 헬리배드 왕를 필두로 한 여러 가신들의 모범적인 모습은 백성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전해주고 있었다.
“3황자 전하라…… 평판은 꽤 좋으신 분이기는 하나.”
가신들은 하나같이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힐데스하임에서 3황자를 꺼리는 이유는 성력이 미천하다는 이유였지만, 이들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런 것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단지 신성 제국의 권력층 대부분이 비도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3황자 역시도 그런 인물 중 하나일 거라는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없어야겠군요.”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허리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신성 제국의 황족이 갑작스레 헬리배드에 방문하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잘못 보였다가는 지금껏 잘 유지해 온 평화가 한순간에 깨질 수 있었다. 신성 제국의 황족의 눈에 거슬렸다가는 어떤 후폭풍이 닥칠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국왕 전하께서는 뭐라 하시던가요?”
“별 반응이 없으시더군요. 허나 속이 깊으신 분이라 마음속으로는 분명 걱정하고 계시겠지요.”
“환대를 할 준비를 해야겠군요.”
“전하께서는 그럴 자금이 있으면 백성들을 보살피는 데 쓰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당연히 그러셨겠지요.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은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나, 아무런 환영식도 없이 황자 전하를 맞이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황자님의 심기를 거스르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저희 국왕 전하가 될 것입니다. 백성들도 결코 국왕 전하가 잘못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부정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헬리배드의 거주민이라면, 누구든 마음속에 국왕에 대한 존경심을 지니고 있었다.
“백성들의 의견을 취합해보고, 최대한 부담 안 가는 선에서 모아 해결하는 것이 좋겠소.”
“그럼 그렇게 하십시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분명 백성들도 힐데스하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것은 분명하나, 굴러가는 상황을 짐작하고는 자진해서 납세의 부담을 올리더라도 국왕의 체면을 살려주겠노라는 의견들이었다.
그렇게 이들은 3황자를 위해 성대한 환영식을 준비했건만.
“뭐 이딴 걸 하고 있어?”
정작 그걸 본 3황자는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 * *
“뭐 이딴 걸 하고 있어?”
내가 헬리배드의 상황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오기 전에 미리 들은 설명도 있었고, 성에 오기까지 여러 마을을 거쳐 오기도 했다.
그리고 두 눈으로 본 상황은 소문보다 더욱 심각했다.
풀 한 포기 찾아보기 힘든 사막이 영토의 대부분이었고, 식량은커녕 물 한 모금 없어 죽어가는 이들이 속출할 정도로 처참한 마을도 있었다.
그런데 앞에 차려진 만찬은 같은 국가가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과했다.
“……죄송합니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내 핀잔을 듣곤 누군가가 말했다. 헬리배드의 국왕은 아니었고, 가신 중 한 명으로 보였다. 굳이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은 이들 역시도 한마디도 않은 채로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단순히 내가 어렵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온 것을 아니꼬워 하는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서 예까지 먼 길을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흐음.”
지금 당장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헬리배드에 성물이 숨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저들이 순순히 꺼내놓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냥. 그래도 명색이 제후국인데 서로 교류 정도는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언제부터 제후국 취급을 해주었느냐, 그리 말하고 싶을 테지만 애써 참는 모습들이었다.
“헬리배드의 국왕께서 워낙 훌륭하신 분이라는 말도 많이 들어서 궁금하기도 했고요.”
“전혀 아닙니다.”
내 말에 국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정말 훌륭했다면 헬리배드가 지금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테지요.”
“지금이 어때서 그렇습니까. 백성들이 누구보다 국왕을 잘 따르는 곳이라 들었는데.”
“그렇기에 더욱 부끄럽습니다. 제가 부족한 탓에 신께서 저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인데. 백성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말이 좀 통하는 양반인가 싶더니만, 오히려 너무 고지식하고 착해 빠진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고난이라면?”
“이를테면…… 헬리배드에는 몇십 년 동안 비가 단 한 번도 온 적이 없습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이지요.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알면서도 방치해야만 하다니.”
헬리배드가 겪는 내적 갈등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 더욱 힘이 들 터였다.
“그리고…….”
헬리배드의 국왕은 입술을 꾸욱 깨물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여기 차려진 음식, 그리고 전하를 맞이하는 데 들어간 막대한 자금으로 수백, 수천 명을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그리고 나한테 그렇게 말할 깡이 있었다면 그냥 이런 거 준비하지 말지 그랬어요?”
나도 모르게 튀어 나간, 순화 없는 진심이었다. 국왕의 말에 다소 흥분한 탓이었다.
저게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준비해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고, 가식이라고 한다면 더욱 화가 나는 일이었다.
“그건…….”
내 날카로운 말에 국왕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다물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싸해진 분위기에, 주위에 자리 잡고 있던 가신들은 열심히 눈치들을 살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런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갑작스레 헬리배드의 가신 한 명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저희가 독단적으로 행동한 일입니다.”
“……예?”
“국왕께서는 가볍게 준비하라 명하셨지만, 그것이 황자 전하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다른 가신들의 반응과, 국왕의 싸늘한 얼굴을 보건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여기서 내가 사라진다면 이들은 국왕에게 한소리 제대로 듣겠지.
하지만 나는 이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힐데스하임에 워낙 내 형들 같은 또라이가 많으니 잘못 걸렸다가는 국가가 통째로 날아가는 나비 효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됐습니다.”
나는 굳이 누구의 잘못을 물을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잘 알지도 못하고 괜히 목소리만 높여서 미안합니다.”
내가 국왕을 향해 사과하자, 잠시 흠칫한 국왕은 이내 손을 휘저었다.
“아, 아닙니다. 저도 갑자기 흥분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백성들의 사활이 걸린 일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종종 이렇다 보니…….”
“혹시 근처에 제일 상황이 좋지 않은 마을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나는 국왕에게 물었다. 국왕은 잠시 고민을 하는 눈치였다.
“백성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영지의 상황도 제대로 모르는 것 아닙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혹여나 저와 황자 전하가 행차하여 그들에게 부담을 줄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
생각보다 속이 깊은 양반이었다. 단순히 성물의 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대의를 함께 논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걱정 마십시오. 그들이 받는 부담보다 몇 배는 더 되는 수혜를 줄 터이니.”
“……알겠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국왕으로서는 아직 생각도 못 하고 있을 터였다.
* * *
그리고 곧장 국왕과 함께 방문한 마을. 상황은 정말로 심각했다.
대충 지어진 천막 밑에서 햇빛을 피하며 삶을 연명하고 있었고, 바닥에 고인 흙탕물과 진흙으로 만든 과자가 그들의 주식량이었다.
전령이 국왕의 행차를 알리려던 찰나에 국왕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나는 잠시 국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더니, 저들을 바라보는 국왕의 얼굴은 곧 울 것처럼 보였다.
딱히 다 큰 아저씨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아서 가슴 속에 있는 고리를 강하게 회전시켰다.
[「천후天候의 권능」이 발동됩니다.]이윽고.
하늘에 새까만 구름들이 모여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