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9)
제9화
“빡세긴 하네, 확실히.”
들어보니 상대는 2성의 마력을 보유한 기사였단다. 나와 같은 개수의 고리임에도 간신히 검을 막아내는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마지막에 검격을 맞고 실드가 깨어지고 말았다.
“그자는 수십 년을 기사로 갈고닦던 자입니다. 그 검을 막아내신 것만으로도 믿을 수 없는 성과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악령을 상대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거라고, 악령은 그 검격의 절반 정도의 위력밖에 보이지 못한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서. 그 기사는 어떻게 됐어?”
발칸 제국의 레오라고 했던가.
나와의 대련 직후 그는 현자가 불러낸 병사들을 통해 어딘가로 끌려가게 되었다.
“약속을 어기고 전하께 위해를 가하려 했으니 엄중히 처벌될 것입니다. 지금은 옥에 가두어 둔 상태입니다.”
“왜 그랬을까?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처럼 보이던데. 혹시 1황자나 2황자 쪽에서 사주를 한 거 아냐?”
그런 거라면 이번 기회에 확실한 증거를 잡아 갚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으나 현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애당초 힐데스하임의 황족이 발칸 쪽 기사와 엮일 일도 없을 테니까요. 발칸은 힐데스하임을 끔찍이 싫어합니다. 단지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테지요.”
그런 것 치고도 이상한 점이 참 많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신성 제국인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고위 사제들이 몰려오는 곳인데, 내게 아무리 큰 치명상을 입혀도 죽일 수는 없었을 테고 그 사실은 레오 역시 알고 있었을 거다.
게다가 설령 실드가 뚫린다 하더라도 나를 죽일 만한 위력으로 공격한 것도 아니었고, 단지 상처를 입히기 위해 목숨을 무릅쓴다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 어디 있어? 한 번 만나봐야겠는데.”
설령 정말로 힐데스하임에 대한 막연한 원망 때문에 그런 거라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한 사회에서 강요한 사상. 그에 세뇌되어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도 모른 채 행동한다는 것이. 그는 발칸 제국에서 태어나 힐데스하임에 반감을 지니는 것이 당연하다 세뇌를 받아왔을 터이니.
그래서 직접 그를 만나 이야기나 들어볼 생각이었다.
그가 수감된 곳은 궁내 지하 최하층에 있는 감옥이었다. 처음 봤을 때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어디 가고 초췌해진 꼴로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고문이라도 받은 것인지 죄수복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얼굴 이곳저곳에서도 상처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에 보였던 그 당당한 기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황자 전하께서 파렴치한 네놈을 만나보러 오셨으니 예의를 갖추어라.”
그는 간수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예의 좋아하시네. 죽일 거면 빠르게 죽이시오.”
“이놈이! 지금 누구 앞에서…….”
“됐어. 둘이 얘기나 좀 하게 비켜줘.”
“전하. 허나 이 자는 전하를 시해하려 했던…….”
“괜찮아. 지금 마력 봉인해 둔 거 아냐?”
“그렇기는 한데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전하 옆을 지키게 해 주십시오.”
“괜찮아. 내가 얘 이겨.”
한참이나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간수가 불안한 얼굴로 사라졌다.
“정말 나 죽일 생각이었어?”
“맞으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소. 어찌 되었든 내 목이 달아난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데.”
“딱하네.”
“……뭐요?”
“그 무지한 사상에 사로잡혀 있는 게. 하긴 그건 우리 쪽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여기선 어쩌면 내가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며 레오의 몸 구석구석에 난 상처들을 성력으로 치유했다. 레오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 하는 거요? 그런다고 내가 생각을 바꿀 것 같소? 그리고 무지한 사상? 아버지의 복수를 꿈꾼다는 게 무지하다는 말이오?”
아버지의 복수라니, 대충 감이 왔다. 아무래도 이 기사의 아버지가 힐데스하임과 좋지 않게 엮인 게 있는 모양이었다.
“복수 좋지. 나도 복수 꿈꾸고 있거든. 근데 그 대상을 명확하게 해야 하지 않겠어?”
“내 아버지는 힐데스하임이 죽였으니 나는 힐데스하임을 향해 복수하는 것이오.”
“그럼 우리 엄마도 힐데스하임이 죽인 거나 다름없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제야 레오가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굳이 우리 쪽 사정을 자세히 말해줄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아무튼 나도 힐데스하임에 싫어하는 사람 많아. 너도 발칸이라고 전부 옳은 사람들만 모여있다고 생각하진 않을 테고.”
레오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부모 없이 자란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내 바람대로 깨달은 거라도 있는 걸까.
이내 레오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다고 한들 달라질 건 없소. 곧 죽을 사람한테 뭘 설득하려 든단 말이오.”
“죽긴 누가 죽어?”
“……?”
“내가 황자긴 한데 찬밥 취급이거든. 나 때문에 너 죽이면 발칸하고 전쟁까지 일어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아버지도 가급적이면 묻고 넘어가려고 할 거야. 그러니까 내가 그냥 쿨한 척 너 풀어주자고 하려고.”
“……후회할 거요. 언젠가 내가 전장에서 당신을 만난다면 그때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을.”
“그건 그때 생각하지 뭐.”
말로는 센 척해도 얼굴은 꽤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퍽 감명받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면.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으나, 빚지는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전장에서 한 번쯤은 살려주겠소.”
“그것 참 고맙네.”
나도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냉정히 말하면 풀어준다고 해도 정말로 나중에 나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기사가 아니기도 하고.
“후우.”
그렇게 감옥을 빠져나오려는데 텅 비어있는 줄로만 알았던 옥방에서 낮은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간수가 3황자 전하라고 하는 것 같던데. 정말이십니까?”
내가 저 사람을 풀어주는 걸 듣고 자신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주길 바라고 있는 걸까.
미안하지만 나와 연관되지도 않은 지금의 내게 연관되지도 않은 중범죄자를 풀어줄 권한 따위는 없었다.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또다시 중저음이 들려왔다.
“훌륭히 자란 듯하여 더없이 기쁩니다. 황비님께서도 이 사실을 알면 눈물을 흘리실 겁니다.”
“……뭐?”
잘못 들은 건가 내 귀를 의심했다. 남자가 수감된 옥방은 빛이 하나도 들지 않아 얼굴조차 확인할 수가 없었다.
“감옥에 있어서 그런가 소식이 많이 느린 것 같은데. 내 어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됐거든.”
“황비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전하의 검지에 끼워진 반지에서는 늘 빛이 나고 계실 테지요. 그것이 그 증거입니다.”
순간 온몸에서 소름이 끼쳤다. 처음 태어난 순간부터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그의 말대로 반지에 새겨진 문양에서는 늘 알 수 없는 빛이 나고 있었다.
이 반지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태어났을 때부터 끼워져 있었고, 빼보려 해도 전혀 빠지지 않았기에 내버려두고 있었을 뿐인데.
“넌 누구지?”
“구태여 저에 대해 아실 필요가 있으시겠습니까. 제가 전하를 부른 것은 단지 황비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전해 드리기 위함이었으니.”
“그걸 나한테 말하는 이유는 뭐지?”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이 자라온 삶. 차라리 그게 편하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별생각이 없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본 적도, 나를 키워준 적도 없는 사람을 어머니라고 애타게 찾아야 할까. 냉정한 말이지만 딱히 어머니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데. 애초에 붙어 있던 적도 없었을뿐더러 전생에서의 내 나이가 그녀보다 많을 것을 생각해보면 역시나 거북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황비님께선 전하를 무척이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다만 힐데스하임에서는 없어야 하는 사람이 된 탓에 몸을 숨기고 계시지요.”
어머니가 힐데스하임에서 암살당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죽은 게 아니라면 죽은 척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황비님을 시해하라는 명을 받은 게 저였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말은 더없이 냉랭했다.
“그리고 그 명을 어긴 탓에 이 꼴이 되고 말았지요.”
“아버지도 어머니가 살아 계시단 걸 알고 있나?”
“그 명을 내린 게 성황 폐하였습니다. 황비님께서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저를 잡아들였으나, 이미 황비께서는 성국을 떠나 몸을 숨기게 되었지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아무리 성황이 쓰레기인 건 알고 있었어도 이 정도일 줄이야. 어떻게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라 명령할 수가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참이나 얼어붙어 있던 내가 입을 열었다.
“왜지?”
“그건 저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마땅한 이유도 듣지 못한 채로는 차마 그분부를 따를 수 없었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솔직히 지금의 나로선 황비를 본다고 막 엄청 반가울 것 같지도 않았다. 나를 낳은 사람이라고 해서 어머니처럼 여기기는 쉽지가 않을 듯했다.
“황비님께선 서쪽 끝에 있는 섬에 계십니다. 배를 타고 나흘 정도 이동하면 도달할 수 있으실 겁니다.”
그렇다고 나를 보고 싶어서 안달이라는데, 마땅한 이유도 없이 억울하게 쫓겨난 거라면 못 들은 척 넘어가기도 영 마음에 걸렸다.
“황비님께 별 마음이 없더라도 언젠가 찾아가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전하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그게 무슨 뜻인지 물으려던 찰나,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오래도록 계시기에 별 탈이 없으신가 해서 내려와 봤습니다.”
다행히 간수는 내가 남자와 대화한 것을 듣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 그만 가지.”
밖으로 빠져나오며 어두운 옥방을 열심히 노려봤지만 남자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늘어난 듯싶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