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93)
제93화
“……젠장. 대체 어째서.”
“하겐 자작께서 정말로 역모를 꾸미셨단 말인가.”
“자작께선 그러실 리가 없네! 자네 지금 하겐 경을 의심하는 건가?”
하겐 자작령의 초입 근처, 입구를 쉽게 찾아보기 힘든 작은 마을의 여관에 두 명이 들어섰다. 얼굴이 보이지 않게 두건을 둘러쓰고는, 사방을 경계하며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것이 꼭 도망자의 꼴이었다.
“말 많이 하지 말게. 상처가 벌어지니.”
“크윽.”
누워 있는 남자의 배에서 피가 새어 나와 침대 전체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쿨럭. 어차피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군.”
“그런 말 하지 말게! 내가 대련에서 이길 때까지 자네는 떠날 수 없어. 누구 허락을 받고!”
남들이 보기에는 변방의 별 볼 일 없는 병사들이었지만 그들끼리도 실력 간의 격차는 있었고, 서로가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기며 훈련에 매진했다. 그것이 마을 수비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선순환이 되고 있었다.
허나 이들이 상대해야 했던 것은 때때로 마을을 습격하는 들짐승도 아니요, 고도의 지능을 지닌 몬스터도 아니었다.
“젠장! 이건 분명 누명이 틀림없네. 하겐 경이 황제 폐하를 뵙고 모든 사정을 설명하여 잘 풀린다면…….”
“쿨럭, 하하하. 이 사람아. 그런다고 되겠는가?”
배에 상처를 입은 남자는 누워 있는 채로 폭소를 터뜨렸다. 그럴수록 배에서는 더욱 많은 출혈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걸 지켜보는 남자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미친 새끼야! 입 닥쳐. 뭐가 재밌다고 웃는 거야? 그렇게 세상을 떠나서 나한테 평생 죄책감이라도 안겨줄 셈인가!? 그래야 속이 시원하겠어?”
원래는 자신이 죽었어야 했다. 피를 흘리는 채로 누워서 최후를 맞이하고 있어야 하는 게 본인이었는데, 이 빌어먹을 놈이 마지막 일격을 대신 얻어맞아 버렸다.
“하하…… 왜 이렇게 예민한가. 내가 설마 그러려고 나섰겠어? 알다시피 내가 자네보다 검술은 조금 뛰어날지언정 인물은 자네가 훨씬 낫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아직까지도 독신이고, 자네는 처도 있고 자식도 있는 게지. 그들을 내버려 두고 이 세상을 떠나면 어쩌려고?”
“흐흐흑…… 이 미친 새끼가.”
“날이 어두워지면 조심히 마을로 돌아가 상황을 살피게. 아직 우리 마을은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천운이 따랐다면, 그대로 처자식을 데리고 멀리 떠나게. 결코 하겐 자작령 내에 남아있어서는 안 되고, 자네는 평생 이쪽을 쳐다보지도 말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 자네는 하겐 경을 모르는가? 경께서는 결코 그런 일을 꾸미셨을 리가 없으니, 폐하와 이야기를 나누어 잘 풀면 될 걸세.”
“허억…… 자네는 그렇게 생각이 짧아서 문제일세. 검을 쓸 때도 머리를 잘 굴려야 하는 법인데 무식하게 몸만 쓰려고 하지. 자네가 말한 대로 하겐 경께서 그러셨을 리는 없지. 누구보다 청렴결백하신 분이고, 그건 이 주변 이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
“그럼 뭐가 문제란 말인가?”
“하겐 경은 소문조차 나쁘게 돌았을 리가 없네. 헛소문이 났을 리도 없고, 혹여나 그런 소문이 황제 폐하의 귀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을 제대로 된 확인도 없이 벌일 리가 없지.”
그쯤 되자 듣고 있던 병사도 어느 정도 감이 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럼…… 설마?”
“그, 그래. 하하하……. 아마도 운이 나빴던 거겠지. 하겐 경이 하필이면 본보기가 된 게야.”
“그걸 어떻게 장담하는가. 그건 억측일 뿐이야.”
“……좋을 대로 생각하게. 다만, 내 경고를 무시하지는 말게. 처자식을 데리고 몸을 피해. 내가 한 말이 자네의 말대로 억측일 수도 있네만, 가능성이 없는 건 결코 아니니까.”
그렇게 말을 마친 남자는 눈을 감았다. 점점 더 많은 피가 쏟아지고 있었고, 그에게 다가오는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미안하네. 정말……. 내가 죽었어야 맞는 건데.”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병사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려댔다.
그렇게 점점 더 여관방 안의 분위기가 차가워질 무렵.
벌컥!
방문이 거세게 열렸다.
눈물을 흘리던 병사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의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뒤를 돌아 나타난 이를 확인한 병사는 입술을 짓씹었다.
발칸 제국의 황태자였다. 일전에 수도로 파견을 나갔다가 멀리서나마 얼굴을 본 적이 있어 알아볼 수 있었다.
결국 이 산속의 마을마저도 발각되어버리고 만 것인가.
남자는 고민했다. 어차피 자신도 죽은 목숨이요, 피를 흘리고 있는 동료 병사도 죽은 목숨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미친 척하고 저항이라도 해 보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발칸 제국은 태양이요, 황족은 그 태양을 지배하는 신이었다. 그렇게 세뇌되어 왔다. 이미 마음속에 단단히 박혀 버린 그러한 신념은 이런 상황에서조차 반기를 들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젠장…… 젠장.’
그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쥐고 있는 검을 뽑아 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쯤.
“……헤르네 경.”
발칸 제국의 황태자가 누워 있는 자신의 동료, 헤르네를 불렀다. 그런데 어째서 황태자가 헤르네에게 존칭을 쓰고 있단 말인가. 그는 자신과 같은 일개 병사일 뿐인데.
“쿨럭, 쿨럭. 전하. 간만에 뵙습니다만, 꼴이 이래서 예를 갖추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런 말 말게. 자네와 내가 어떤 사인데.”
“헌데 예는 어찌 알고 찾아오셨습니까?”
“자네가 갈 곳이 몇 군데나 있겠는가. 뻔하지.”
“역시나 저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상처가 벌어지니 가만히 누워있게.”
상황을 지켜보던 병사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헤르네는 분명 2년 전쯤 하겐의 병사로 지원을 했던 평민일 뿐이었다. 그런데 황태자와 안면이 있는 정도를 넘어 보통 각별한 사이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눈치를 보며 상황을 살피던 그는 조용히 자신이 검 위에 올려두었던 손을 멀찌감치 떼어내었다.
“하하…… 이미 늦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겸허히 받아들여야지요. 황태자 전하의 밑에 있을 때 전하 덕분에 목숨을 구한 적이 몇 번이었는데. 이 정도면 축복받은 삶이지요.”
“늦기는 무어가 늦었단 말인가.”
그렇게 말한 황태자는 고개를 돌려 그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꽤나 곱상한 외모와 고풍스러운 옷을 차려입은 앳된 사내였다. 그런데 그 옷을 자세히 살펴보니 힐데스하임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힐데스하임의 남자는 황태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력은 자제하려 하였으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찌할 수 없겠군요.”
“……전하?”
헤르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황태자를 바라보았으나, 황태자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염려 말게. 정식으로 힐데스하임에서 방문을 하신 황자이시니.”
변두리의 병사로만 일생을 살아온 그로서는 평생토록 한번 보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발칸 제국의 황족이 눈앞에 있을 뿐만 아니라, 힐데스하임의 성족까지 함께 있다니. 그런데 힐데스하임의 신성력이라고 한다면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할 뿐, 실질적인 치유 효과는 미미하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화악.
힐데스하임의 황자가 손을 뻗어 헤르네의 상처에 환한 빛을 쏘아내었다. 그것이 병사가 본 첫 신성력이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새겨졌던 상처까지 위로를 받는 따스함이 전해져 왔다.
게다가 헤르네의 상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복시키고 있었으며, 많은 출혈이 있었음에도 헤르네의 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아아.”
지켜보던 병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 빛을 보며 작게 소리를 내었다. 울음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자신의 얼굴에 또다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만히 지켜보던 병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적국의 황자라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는 헤르네를 살려주었고, 발칸 제국의 황제로부터 받은 마음 속의 상처를 깨끗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도무지 감도 오지 않을 정도였다.
힐데스하임의 황자는 헝겊으로 헤르네의 상처를 묶어 지혈을 한 뒤 병사를 바라보았다.
“알면 됐어.”
씨익 웃는 힐데스하임의 황자. 어찌 보면 거만하게 보일 수 있는 말이었음에도, 결코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다. 그에게는 저자가 꼭 신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 * *
신성력의 사용을 가급적이면 자제하려 하고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의술로 해결할 수 있을 때만 해당하는 일이었다. 지금 이 세계에 갖춰진 의학 기술로는 이미 많은 피를 흘려버린 남자에게 수혈을 할 방법이 없었고, 신성력을 통해 그 부분을 메꾸는 게 최선이었다.
사실 의학도 마찬가지였다.
당장의 고비를 넘기기 위해, 장기적으로 몸에 좋지 않은 약물이나 수술을 진행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었으니 결국에는 ‘가급적’이면 자제하는 정도로 생각해야만 했다.
우선은 살리고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헤르네의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치유한 뒤, 상처를 묶어 지혈을 해 두었다. 그는 많은 피를 흘린 탓에 곧바로 의식을 잃었고 그동안 그의 옆에 있던 병사와 황태자가 대화를 나누었다.
“……헤르네가, 아, 아니, 헤르네 경이 황태자 전하의 기사셨단 말입니까?”
“충직한 기사였지. 그는 아니라고 하지만, 아마도 기사를 그만두었던 건 회의감을 느껴서였을 테야. 내 이중적인 모습도 그 이유 중 하나가 되었을 테니 늘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했고.”
황태자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헤르네 경이 깨어나거든, 평소와 같이 대하게. 괜히 존칭 따위 붙이지 말고 말이야.”
“허, 허나 어찌 제가…….”
“그게 헤르네 경이 바라는 바일 걸세. 그런 걸 신경 쓰는 자였다면 기사를 그만두고 신분을 버린 채로 변방의 병사가 되었겠는가.”
맞는 말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헤르네가 회의감을 느꼈다는 것은, 아마도 황태자가 느끼는 회의감과 비슷한 종류였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느꼈던 것과도.
잘못된 세상에서 어느 정도 권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힘이 부족하여 순응한 채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그게 유쾌한 일이 아닌 것은 나 혼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닌 듯 보였다.
낮은 이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헤르네의 선택이었고.
결국 나와 황태자의 선택은 결국 이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것이 될 터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