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97)
제97화
“천운이었지. 내가 마침 그 근방에 외진을 나간 것이. 솔직히 내가 황궁으로 발 도장 찍는 의원들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는 실력이지 않은가.”
3황자의 요청에 따라, 그의 보조를 보았던 의원 한 명이 동료 의원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그토록 신들린 손놀림은 처음 보았네. 자네들도 알지 않는가. 일전에 성국의 3황자께서 황비를 치료하실 때에 개복을 진행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는 것을.”
“그래. 3황자께서 그 말을 할 때 내가 거기 있었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반대를 했었고.”
헌데 결코 치료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황비의 병이 3황자를 만난 이후 깨끗이 나았다.
“사실 그게 신성력으로 치유하고, 일부러 개복을 한 것처럼 연기를 했던 거라 생각했지.”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을걸.”
발칸 제국에 알려진 것에 따르면 힐데스하임에는 의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고, 실제로 힐데스하임에 다녀온 이들도 그 말이 사실이라고 증명해주었다.
그러니 3황자가 웬만한 의원들로서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개복을 하겠다고 한 것은, 단지 힐데스하임에서 의술조차 발칸의 우위에 있다고 허풍을 부리기 위한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황비의 병을 낫게 한 것은 의술이 아닌 성력이라 믿었었고.
헌데.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네. 개복을 하는 손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고, 출혈도 이상하리만치 적었네. 꼭 혈관의 위치를 모두 알고 피해 가는 것마냥.”
“그게 말이라도 된단 말인가?! 자네 힐데스하임에서 받아먹은 거라도 있는 겐가.”
“말조심하게! 나는 늘 발칸의 의술에 자부심을 품고 있던 사람이야. 그러니 더욱 3황자 전하의 의술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 말을 들은 의원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의심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나, 저 말을 한 의원이 결코 허풍을 부리는 위인은 아니라는 것은 사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등에 박힌 화살을 뽑기 위해 배를 연다는 것이 얼마나 신선한 발상인가. 생각지도 못했네.”
“그건 너무 위험한 도박 아닌가? 결국 성공했으니 대단해 보이는 것이네만,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
“그건 아닐걸.”
그 말을 한 것은 저만치 떨어져서 홀로 책을 읽고 있던 남자였다. 지금은 사실상 의술에서 손을 뗀 남자였으나, 의원들은 그와 여전히 교류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남자에게 조금이라도 의술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였다.
“한 치의 실수라도 있었다면 완전히 잘못되었을 일이네. 나 역시도 그러한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나, 워낙에 위험이 도사리는 과정이기에 섣불리 시도조차 하지 못했네.”
그 전설적인 의원은 3황자에 대해 우호적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개복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면, 일전에 황비께 했던 수술도 실제로 진행했다는 뜻이겠지. 두 번 모두 깔끔하게 성공해냈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지.”
그 말에 모든 의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차마 그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의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정말 그 정도의 실력을 겸비하고 계신다면 한 수 배우고 싶군. 그 사고만 없었다면 당장에라도 달려갔을 텐데.”
“언제 일을 꺼내는 건가?”
“자네를 원망하는 이는 아무도 없네. 그 누구도 살릴 수 없었던 병자야. 언제까지 과거의 죄책감에 시달려 죽은 사람 시늉을 하고 있을 셈인가?”
“그 누구도 살릴 수 없다라.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방금 그 생각이 달라졌네.”
그렇게 말한 의원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부디 내 염원을 풀어줄 수 있다면 좋겠구나, 칼로스.”
* * *
발칸 제국 황실에서는 입단속을 시키려 했으나, 소문은 천하의 발칸 제국이라 할지라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나가는 속도가 빨랐다.
황제가 무고한 자작령의 주민들을 학살했다는 사실, 그걸 본 황태자가 발칸 제국의 황제를 죽여버렸고, 결국 그 뒤를 잇게 되었다는 사실까지.
모든 것들이 가감 없이 전달되었다.
“이걸 어찌하면 좋겠소?”
황제의 최측근이었던, 혹은 다른 황자들의 편에 있던 세력은 이번 기회를 통해 황태자를 역적으로 몰아가려 했으나 여론이 쉽게 통제되지 않았다. 황태자에 대한 제국민들의 신뢰가 워낙에도 두터웠던 탓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황태자는 곧바로 계승 절차를 준비할 터이니.”
“그간 세력이 사실상 황태자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으니, 이번 일은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지도 모르오. 황제 폐하를 시해한 역적이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소?”
“허나 황태자가 모든 진실을 은폐하고 그 뒤를 이은다면 우리의 힘으로 어찌 막는단 말이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황제 폐하께서 억울한 죽임을 당하셨으나 그 사실을 공표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말인즉슨…….”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였으나, 2황자가 총대를 멨다. 사실 황제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것 따위는 이들에게 변명일 뿐이었다.
다른 황자들에게도 황위는 탐스러운 것이었고 누군가 말한 대로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일 지도 몰랐다.
“반란이라도 일으키자는 셈이오?”
“말은 바로 해야지. 반란을 일으킨 것은 황태자였고, 우리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할 뿐이오.”
“그럼, 그럼.”
좀체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사실 모두가 머릿속으로 지니고 있던 생각이었다. 무지막지한 의견이었지만, 그에 반대를 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허면 모두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줄로 알겠소. 결코 이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오.”
“당연한 말씀이지요. 대의가 펼쳐지는 날까지 확실히 입단속을 한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황태자께서 직위를 물려받으시는 순간 황실의 모든 병력이 그분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니, 시일이 촉박합니다.”
“알고 있소. 날짜를 정해 사람을 보낼 테니, 모두 돌아가 병사들을 소집하고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으시게.”
2황자의 명령에 따라 각자가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 군대를 끌어모았다. 황위 계승식은 불과 보름 뒤에 열린다는 사실이 공표되었고, 그 전에 황태자를 급습하기 위해 흩어졌던 이들이 병력을 끌고 한곳에 모였다.
“우선은 황태자를 사로잡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에게 모든 것을 실토하게 하는 것이 우리에겐 가장 이상적일 테니. 허나, 피치 못할 경우라면 즉시 사살해도 좋다.”
그렇게 지휘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2황자가 명령을 내리고 있을 때.
“으아아아악!”
“적이다. 적군이 쳐들어왔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와 비명이 섞인 채로 들어왔다.
뿌우우.
나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말발굽 소리가 덮쳐온 것도 그 직후의 일이었다.
“무슨 일이냐?!”
다급히 천막 밖으로 나간 2황자는 적군이라던 이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간만이군.”
어마어마한 위용을 뽐내고 있는 병력들 맨 앞에서, 말 위에 올라탄 채로 2황자를 내려다보는 황태자의 모습. 그를 바라본 2황자는 제자리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어, 어찌…….”
황태자의 군대는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2황자 연합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곳을 습격했고 무자비한 학살이 이어지고 있었다. 허나 2황자가 놀란 것은 황태자가 예상 밖에 등장했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었다.
황태자의 말대로 2황자가 그와 마주하는 것은 꽤 오래간만의 일이었고, 그간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황태자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어떻게 알고 온 것이냐고?”
황태자는 2황자의 군대가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황태자는 적군이라고 하더라도 살생하는 것을 결코 달갑지 않게 여기던 겁쟁이였는데 말이다.
지금 2황자가 바라보는 황태자의 얼굴에는 조금의 자비조차 보이지 않았다.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운 기운이 그에게서 쏟아지고 있었다.
“……첩자를 잘도 심어 놓았군.”
그렇게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가 새어 나갔다면, 2황자 혹은 3황자를 믿고 따르던 가신 중에 누군가가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황태자에게 일러바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허나,
“첩자라. 완전히 엉뚱한 추측을 하고 있군.”
황태자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듣는다고 하더라도 믿을 리가 없겠지. 나 역시도 그를 의심했었으니. 허나 그가 한 예언이 정말로 사실이었을 줄은.”
그렇게 말한 황태자가 검을 뽑아 들었다. 2황자는 실소를 흘리며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날 베기라도 할 셈이오? 그대는 고작 들짐승을 벨 때도 쩔절 매던 겁쟁이였는데, 그대에게 나를 벨 용기가 있을 것 같……?”
그는 자신이 하던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가슴팍에 느껴지는 뜨거운 감각을 느꼈다.
콰악.
황태자의 검이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자신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랬지. 허나 그의 조언대로, 우유부단할 수록 더욱 피해가 커지는 법이라는 걸 알았다. 게다가 너는 그 들짐승만도 못한 놈이지 않느냐?”
그렇게 황태자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로 쓰러진 2황자를 밟고 지나갔다.
* * *
발칸에서 새로운 황제가 탄생했다는 소식은, 힐데스하임까지 전해질 정도로 파장이 컸다.
황태자에겐 아직까지도 순수한 면이 있었고 자신이 황제를 베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황태자가 모든 사실을 만인에게 전하고 죗값을 치르겠다고 한 것을 말리는 데만 거의 열흘 가까이 걸렸다. 그래도 결국 대신들이 황태자를 설득하는 것에 성공했다.
나는 굳이 운명의 권능을 통해서 보지 않더라도 황태자에 대한 반발 세력들이 들고일어날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휴우.”
솔직히 그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면서도 걱정이 가시지 않았으나 결국엔 일이 잘 풀린 듯 보였다.
힐데스하임으로 돌아온 내게 들려온 소식은, 발칸의 황제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것과 기존에 후계자로 책봉되어 있던 황태자가 그 뒤를 이었다는 것뿐이었다.
나로서는 정말 잘된 일이었다.
황태자는 발칸 제국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재목이었으며, 나와 어느 정도의 친분이 있는 만큼 장차 내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가 황제의 자리를 계승했다 하더라도 발칸과 힐데스하임의 관계를 바로 회복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그에게는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을 터이니.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면서 차차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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