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99)
제99화
“각 대도시에 치료소를 설치해 두었으니 위급한 상황이 생기거든 주저 없이 찾아가 치료를 받으라.”
3황자가 직접 전달한 내용이었음에도, 베이언 영지민들의 치료소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치료소에서 사람을 살리는 방식이 힐데스하임에서 상식으로 여겨졌던 성력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젠장. 차라리 신께 기도하는 것이 낫지. 미개한 발칸의 기술을 도입한다니. 그 말도 안 되는 잡기의 희생양이 될 바보가 어디 있는가?”
“너무 그리 생각하지 말게. 우리처럼 미천한 이들을 아껴주시는 분이 3황자 전하 말고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전하께서는 우리를 생각해서 내리신 선택이실 게야.”
“정말 그랬다면 사제들을 불러모아 신전을 차리셨겠지.”
“3황자 전하의 처지를 몰라서 그러는 겐가?”
“……쳇.”
그간 3황자에 대한 믿음이 워낙 두터웠더라도 이번만큼은 3황자의 선택을 온전히 존중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꼭 신성력을 지닌 사제가 없더라도, 이들이 모여 기도를 올릴 신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백배 낫다는 것이 여론이었다.
신께 간절히 기도를 올리면 죄악으로 인해 발생한 질병을 거두어 주실 테니까. 허나 3황자가 택한 것은 신전이 아니라 치료소였다.
의술에 대한 반감 때문에 몸이 좋지 않더라도 치료소를 찾는 이는 찾아보기 드물었고, 애써 발칸에서 건너온 의원들은 하품이나 내뱉는 꼴이 되었다.
“내 이럴 줄 알았네. 이럴 거면 뭐하러 이 먼 곳까지 왔단 말인가?”
“나는 좋은데. 구경거리도 많은 게 휴양을 온 기분이야.”
허나 텅텅 비어 있던 치료소의 문을 막 박차고 들어온 사내가 있었다.
“계, 계십니까?”
다급해 보이는 표정. 그 사내의 품에는 기다란 머리의 여인이 안겨 있었다.
“무슨 일이오?”
의원들은 첫 환자가 찾아온 것임을 직감했다.
“제 아내가…… 숨을 쉬지 않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대들을 구원해 주실 신께 기도라도…….”
비아냥대려는 의원을 가로막고 다른 의원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이쪽에 눕혀 보시오. 상태를 좀 봐야겠으니.”
사내는 일을 하다 다급하게 찾아온 것인지 꾀죄죄한 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한 것인지 비쩍 말라 있었다.
“의식을 잃은 지는 얼마나 되었소?”
여인을 눕힌 의원이 사내에게 물었다.
“그,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일을 하다 집에 오니 의식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의원은 여인의 상태를 살폈다. 완전히 축 늘어져 있었지만 다행히 아직 목숨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호흡이 불안정한 것이 상태가 영 좋지는 않았다.
생명의 원천은 호흡이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숨을 쉬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었다. 그것이 발칸의 의술이 뿌리로 두는 근본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여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의식을 잃은 원인을 찾는 것이 최선의 수였지만 당장은 그 방법을 알 도리가 없었다. 이미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했으니.
“이전부터 보였던 질병이라든지, 증상 같은 것이 따로 없었소?”
“잘 먹지 못하여 건강이 악화되고는 있었으나 결코 숨이 끊어질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서, 선생님…… 제 아내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의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백 퍼센트 살릴 수 있는 환자는 없었다. 그는 지금껏 수많은 환자들을 겪어왔고, 그 덕분에 깨달은 것은 목숨은 그렇게 쉽게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이전에 살릴 수 있었던 환자와 동일한 증상을 보인 환자였더라도, 매번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확률을 높일 뿐이었다.
의원은 누워 있는 여인의 입술을 벌렸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환자라면 외부에서 호흡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이들이 지닌 의술에 한해서는 최선의 수였다.
그렇게 의원이 호흡을 불어넣기 위해 여인을 향해 자신의 입을 맞추려 하고 있을 때.
퍼억!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의원은 난데없이 날아온 주먹을 맞고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이 발정 난 쓰레기 같으니라고! 내 이럴 줄 알았어. 발칸에서 왔다지만 3황자 전하를 믿고 너희들을 찾아온 것인데. 의식도 없는 남의 여인을 탐하려 해?”
아무리 힐데스하임의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의원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무어라? 이 정신 나간 힐데스하임 촌놈이!”
“네 아내를 살려주려 했건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도움을 주려다 오히려 주먹을 얻어맞은 꼴이 되었으니 발칸의 의원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리곤 얻어맞은 의원을 위해 복수해주려 했지만 치료소를 지키던 기사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
“진정하십시오. 저들에게는 의술이 낯설어서 그런 것이니 부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이해는 무슨! 그대 같으면 이런 꼴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소? 안 그래도 은연중에 무시당하던 것이 결코 달갑지만은 않았는데,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소.”
“우리는 당장 발칸으로 돌아갈 것이니 그렇게 아시오. 그리고 이곳에서 당한 수모는 꼭 제국으로 전할 것이니 그때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소.”
고작 의원들이 당한 수모로 인해 발칸 제국에서 들고 일어나 줄지는 의문이었지만, 의원들이 하는 업무 특성상 때때로 지위가 높은 이의 질병을 치료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때 성공적으로 치료를 마치고 나면 이곳에서의 일을 일러바쳐 일을 공론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었다.
“조금만 진정하십시오. 3황자 전하께서 직접 오고 계시니.”
치료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기사들을 통해 3황자에게 즉각적으로 전달되고 있었고, 방금 있었던 소동 역시 곧바로 3황자의 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걸 들은 3황자는 한걸음에 치료소로 달려왔다.
“전하. 저희는 이런 꼴을 당하려 힐데스하임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의원들은 방금 겪은 수모를, 그리고 그간 알게 모르게 겪어 온 불합리한 멸시의 눈총을 3황자에게 말하려 했으나.
“그대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3황자가 먼저 그들을 다독였다.
“그리고 그대들에게 우리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힐데스하임에서는 발칸의 의술에 대해 부정적이나, 나는 의술이 지닌 잠재력에 대해 알고 있다.”
3황자는 아까까지 씩씩대던 여인의 남편을 향해 다가갔다.
“수년간 이곳에서 살아온 그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저들의 방식이. 허면 이것은 어떤가.”
3황자는 눕혀져 있던 여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윗도리를 벗겼다. 그녀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남편의 눈동자가 커졌다. 의원들에게 했던 것처럼 과격한 행동을 보이지는 못하였으나 애써 분을 참는 듯 이를 꾹 깨물고 있었다.
그리고 3황자의 행동은 의원들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호흡을 불어넣으려는 것이 최악의 수는 아니지.”
3황자는 의원들을 바라보더니 다시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허나 대다수의 경우에는 호흡보다는 혈액의 순환을 돕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3황자는 의원들이 그간 쌓아 온 상식을 벗어난 발언을 하고 있었다.
“가슴 속의 심장이 박동하며 온 몸에 혈액을 전달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따라서.”
3황자의 손이 벗겨진 여인의 가슴 사이로 향했다.
“저, 전하.”
그 의도를 알지 못한 기사가 결국 보다 못해 3황자를 불렀다.
“신께서 크게 노하실까 두렵습니다.”
그게 꼭 그의 눈에는 여인을 겁탈하려는 것처럼 보였으나 3황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의원들을 향해 말했다.
“심장을 강하게 눌러주어 직접 혈액의 순환이 올바로 되도록 돕는 것. 이것이 응급 처치의 기본이다.”
3황자의 손이 여인의 가슴 사이를 강하게 압박했다. 한 번이 아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꽤나 여러 번, 3황자는 몸을 들썩일 정도로 강한 힘으로 여인의 몸을 눌렀고 그것을 본 의원들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심장을 통해 온몸에 피가 흐르는 것도 알고 있었고, 많은 피가 몸 밖으로 흘러나오게 된다면 죽음에 이를 만큼 혈액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혈액의 흐름을 외부적인 압력을 통해 원활하게 한다는 것이 상식 밖이었다. 또한 그것이 불안정한 호흡과 관련이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그런데.
“쿨럭, 쿨럭.”
3황자에 의해 가슴을 압박받던 여인이 갑작스레 거칠게 숨을 토해내었다. 이내 그 여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의식을 되찾은 것이었다.
머리칼이 온통 땀으로 젖은 3황자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고, 여인의 몸을 다시 옷으로 덮어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
그리고 그걸 본 의원들은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단순히 여인이 의식을 되찾는 것과 3황자의 행동이 운 좋게 시기가 맞물린 것일까. 3황자의 행동은 여인을 살아나게 한 것과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것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대체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저렇게 호흡이 가팔랐던 이가 아무런 조치 없이 이토록 빠르게 깨어날 수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3황자가 심장을 압박하는 것은 의원들이 호흡을 직접 불어넣는 것보다 더욱 효과가 좋은 것처럼 보였다.
헌데 3황자는 놀라 굳어 있는 의원들에게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오히려 3황자가 다가간 이는 의원들이 아닌 여인의 남편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신의 아내가 살아난 것을 본 남편은 3황자를 향해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3황자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짜악.
강한 소리와 함께 남편의 얼굴이 거세게 돌아갔다. 그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3황자가 그의 뺨을 후려친 것이었다.
“저, 전하?!”
당황한 남편이 3황자를 바라보았지만.
짜악.
짜악.
3황자는 연이어 남자의 뺨을 갈겨댔다. 방금까지 보였던 온화한 미소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소름 돋을 정도로 딱딱해진 표정만이 남아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만하십시오. 저희도 깨달은 바가 있으니.”
결국 보다 못한 의원 한 명이 3황자를 만류했다. 아까 그 남자에게 오해를 받아 얻어맞았던 의원이었다.
“그만하라고? 아니, 아직 한참 모자란데. 이 자가 저 여인에게 했던 것에 비하면.”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의원들은 3황자가 말하기 전까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팍과 복부에 피멍이 가득하더군. 꽤 오래된 흔적도 남아 있고. 헌데 남편인 그대는 여인이 의식을 잃은 이유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아.
그제야 의원들은 3황자의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3황자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벅차오르는 것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