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04)
홈플레이트의 빌런-105화(105/363)
# 105
슈퍼 빌런 (1)
1
[필리스-카디널스 디비전시리즈 3차전 매치업, 거프 로저스 대 존 버키.] [존 버키, 필리스를 상대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인종차별은 한 적이 없다고 답변.] [STL 에릭 벤하임, ‘BABIP이 포스트시즌에도 그(거프 로저스)를 도와줄지 지켜보자.’] [‘하드코어 싱커볼러’ 거프 로저스와 ‘아메리칸 핏불 테리어’ 존 버키의 맞대결.]└ㅋㅋㅋㅋㅋ바빕신이 가호하사 거프 로저스가 이길 것이다!!
└버키, 콩빈 올라오면 오줌 싸면서 공 던질듯 ㅋㅋㅋ
└야 근데 존 버키가 핏불이면 우리 팥은 개장수냐?
└(영근) 개장수가 뭐냐, 개장수가 ㅡㅡ 갓빈 님께 그런 불경스러운 별명을? ㅡㅡ
└그럼 뭐라고 해야 하냐?
└(영근) 흠, ㅡㅡ 도살자?
└미친놈아 할 말 없으면 걍 닥치고 있지, 도살자가 뭐냐;;
└영근이 독기 빠지니까 개노잼이네 ㅋㅋㅋ
└(영근) 그럼 견주?
└야, 근데 견주가 댕댕이 패면 동물 학대지 ㅡㅡ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지 빨지 말자;
└귀여운 댕댕이 패지 마라. 영근이, 나쁜놈아.
└(영근) 개새끼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영근이 삐짐?
└영근잌ㅋㅋㅋㅋㅋ 화났엌ㅋㅋㅋㅋㅋㅋ
2
야구가 인생을 닮았다는 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하나를 꼭 집어서 이 부분이 닮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야구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인생 그 자체의 무언가와 확실히 닮은 모습을 보인다.
그런 면에서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시에 위치한 부시 스타디움에서 느낀 점은, 뭐랄까. 말로 주고 되로 받는다?
ㅡㅅㅡ: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아니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 예의 없는 자식들!”
개자식 혹은 마더 퍼커, 쏴 버리겠다, 죽여 버린다 같은 말로 시작해 점점 입에 담기도 힘든 말을 카즈 선수들에게 해 대던 우리 팬들에 비하면, 부끄러운 줄 알아라, 예의 없는 놈들, 너희가 망했으면 좋겠어, 카디널스가 이길 거야 같은 말로 시작하는 카디널스 팬들은 정말 양반이지.
ㅡㅅㅡ: 그거랑 인생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냐.
ㅍㅅㅍ: 어차피 네 입맛대로 대충 갖다 붙인 거 아니냐.
편견을 갖지 말고 그냥 있는 대로 받아들여 봐. 큰 차이 없으니까.
패배에 물들지 않고 승리에 익숙해진 필리스 선수들은 상대 팀 팬들의 야유에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
야유에 등급이 있다면 필리스는 메이저리그다.
카디널스는 싱글A 정도?
“오늘도 잘 부탁해. 날 럭키 가이로 만들어 줘.”
오늘 선발인 거프 로저스가 담담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올 시즌 쇼를 제외한 필리스 선발투수들은 인생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
원래 후반기에 두각을 드러냈을 펠릭스 데브는 아예 팀에서 보이지도 않았지만, 짐, 로즐, 거프, 필은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했다.
거프는 원래 그가 갔을 길과는 달리 10승 투수가 되었고 포스트시즌에서 3선발 자리를 차지했다.
그의 원래 인생에 대해서는 나밖에 모른다.
거프는 방출된 후 일본 리그로 가서 일본인과 결혼한다. 부인을 병으로 잃고 알콜 중독자가 된 거프는 음주 운전을 하다가 사망한다.
나는 미래를 안다고 해서 누군가의 인생을 억지로 바꿔 줄 생각은 없다.
그가 원래의 일본인 와이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건 미래를 아는 나라고 하더라도 절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그가 그렇게 죽을지라도 그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거프 본인도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아마도 원래처럼 비참하게 죽지는 않으리라는 거다. 아마도.
“그것보단, 상대 선수들을 모조리 언럭키 가이로 만들어 버리죠.”
“좋아. 다시는 행운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지.”
거프와 나는 주먹으로 하이파이브한 후, 더그아웃 통로로 향했다.
내 인생, 내 커리어 목표와는 별개로 우승은 언제나 옳다.
큰 경기는 때로는 괴롭고 힘들지만,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 우승을 많이 해 본 사람이지만 우승만큼 좋은 건 별로 없다.
“오늘은 빈에게 잔소리를 안 들으려면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말고 잘해야지.”
“쟤가 홈런치고 더그아웃으로 뛰어 들어오면 겁부터 나.”
“난 홈런 치고 들어오면 레드 빈한테 삿대질부터 할 거야. 봤냐! 꼬마! 너만 홈런 칠 줄 아는 게 아니라고!”
그건 그렇고, 이 사람들이.
남 흉보려면 없는 데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뒤를 졸졸 따라오면서 흉을 보고 그래?
3
거프와 호흡을 맞출 때의 경기 전략은 언제나 그렇듯 낮게, 더 낮게, 그리고 정확하게다.
그건 수비할 때를 이야기하는 거고, 앞선 두 경기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데다 존 버키를 두들겨 팬 전적이 있는지라 오늘은 3번 타자로 경기에 나선다.
“Booooooooo!”
“Kiss my ass!”
“You suck!”
나름 격렬한 야유를 받으며 타석으로 천천히 걸었다.
포수 맥 주니어의 눈가가 씰룩거리는 것이, 내게 빨리 들어오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그는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온통 시뻘겋게 물든 부시 스타디움을 쓱 둘러본 후, 1루에 나가 있는 헤스밀과 눈을 마주쳤다.
헤스밀은 씩 웃으며 턱짓으로 투수를 가리켰는데, 그가 가리키는 대로 투수를 바라보자 존 버키가 급히 눈을 돌리는 게 보였다.
하긴, 그날 정말 제대로 두들겨 맞긴 했지.
“난 준비됐어.”
“What?”
짜증 섞인 목소리로 되묻는 맥 주니어에게 씩 웃어 준 후, 헬멧을 큰 소리 나게 툭툭 두들겼다. 존 버키가 내 머리를 맞혔던 그 위치다.
맥 주니어는 소리 나지 않게 욕하며 못 본 체했고, 나는 휘파람을 불면서 투수의 반응을 살폈다.
‘흔들리겠는데?’
정말 재밌는 일이다.
타자를 죽여 버릴 수도 있는 헤드샷을 고의로 날린 투수에게 트라우마가 생기다니.
이런 건 활용해야 한다.
나는 홈 플레이트 가까이 바짝 붙어선 후,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섰다.
이 자세를 취하면 투수에게 어지간한 배짱이 있지 않은 이상, 몸 쪽 공을 던지기가 까다로워진다.
하물며 내 머리를 맞혔다가 벤치 클리어링 때 마구잡이로 두들겨 맞고 코뼈가 부러진 투수라면?
“머리 쪽으로 하나 줘. 맞고 나서 마운드 말고 1루로 나간다고 약속할게.”
맥 주니어는 내가 콩으로 메주를 쑤거나 호밀 가루로 호밀 빵을 만든다 해도 안 믿을 놈이다.
파워볼 번호 가르쳐 준 그 포수는 내 말이라면 다 믿을 텐데. 그 포수라면 내가 똥을 보고 초콜릿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까?
“볼!”
그리고 내가 완전히 바짝 붙은 게 효과가 있었는지, 포심이 땅에 처박히며 볼.
메이저리거라면 저딴 공은 던져선 안 된다. 변화구도 아니고 패스트볼을 땅에 처박는 건 기본적으로 자질이 없는 거다.
하지만 지금 이건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압박감의 문제다.
이걸로 됐다. 경기 전에는 아무 이상 없을 거라고, 평소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투수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공을 돌려받으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투수를 보니 일말의 동정심이 생겨날 뻔했지만, 그럴 때도 아닐 뿐더러 저놈에겐 그런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다.
“볼!”
나도 홈런을 치고 싶지만, 투수 상태를 보아하니 카즈의 불펜이 가동되기 전에 제대로 스윙을 할 기회는 별로 없을 듯하다.
“볼!”
“베이스 온 볼스!”
스트레이트 볼넷.
카디널스 팬들 사이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투쟁심 넘치는 몸 쪽 승부를 주특기로 하며, 핏불이라는 별명을 가진 투수가 몸 쪽 공을 던지지 못하는 건 스스로 약점을 드러낸 거나 마찬가지다.
야구는 기세의 스포츠다.
얕보이면 끝난다.
그리고 필리스 타자들은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어뜯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온 진 테프먼은, 해바라기 씨를 씹으며 홈 플레이트 가까이 붙어 서서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존 버키가 고작 공 11개를 던지고서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4
로즐 펠리시다드는 멍하게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1회 초에 진 테프먼의 펜스를 맞히는 통렬한 2루타로 2점을 올린 후, 1회 말에 1사 만루에 몰린 상황을.
앞선 두 경기 동안 불펜은 비교적 한가했다.
첫 경기에서 쇼가 끝까지 던졌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짐이 여유 있는 점수 차이에서 7이닝까지 소화했다.
로즐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길 원했다.
당연히 선발로 나서길 원했고, 자기가 마운드에서 저 위기를 막아 내고 싶었다.
“스트라이크!”
로저스의 초구 커브에 상대 타자가 크게 헛스윙했다.
완전히 허를 찌르는 공.
싱커를 강하게 올려 치려는 상대에게 적당히 때리기 좋은 패스트볼로 포장한 커브였다.
헛스윙한 타자가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든 말든 F 워드를 내뱉으며 화를 내는 것만 봐도 안다.
로즐은 자신이 개입할 수 없는 두 가지 미래 앞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거프가 큰 거 한 방을 맞으면…….’
어쩌면 자신이 저 무대로 뛰어 올라가게 될지도 모른다.
‘병살로 이 상황을 틀어막게 되면…….’
아마도 자신의 등판 기회는 나중으로 미뤄지거나 아예 없어질지도 모르지만, 팀이 이길 확률은 올라간다.
팀의 승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지만 로즐 같은 어린 선수들에게는 아직 그런 것이 중대한 가치로 다가오지 못할 때도 있다.
‘빌어먹을. 모르겠네.’
잠자코 경기를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 경기는 많이 남았다.
볼, 파울, 볼, 볼.
로즐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땀이 흥건한 것을 확인했다.
경기에 나서서도 크게 긴장하지 않는 로즐이다. 아무도 로즐의 손에 땀이 흐르는 것을 모를 테지만, 로즐은 누가 볼세라 유니폼 바지에 손을 비벼 땀을 닦아 냈다.
다음으로 던질 공은 90% 확률로 싱커일 것이다.
거프가 깊은 숨을 토해 내며 공을 던졌고, 타자가 공을 때려 냈다.
그리고 유격수 앤드류가 공을 잡아 2루수 케이스에게 가볍게 토스하고, 2루 베이스를 밟은 케이스가 상대 주자의 거친 태클을 가뿐하게 피하며 1루로 공을 던져 아웃을 따냈을 때.
“Yeah!”
로즐은 자기도 모르게 양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카디널스 팬들의 깊은 탄식이 로즐의 환호와 대비되어 보였다.
5
거프가 하드코어 싱커볼러로 불리는 이유는 자신도 상대도 싱커를 던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성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카디널스 선수들은 휴식일에 쉴 생각도 없이 그의 싱커에만 매달렸다.
1회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도 5회가 끝났을 때 스코어는 4 대 3으로 필리스가 아슬아슬하게 앞서 있었다. 카디널스 감독은 2회에도 선발투수 존 버키가 볼넷을 두 개나 주고 시작하자 즉시 불펜을 가동하기로 결정했고, 독기를 품은 카디널스 선수들은 거프의 싱커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5이닝 3실점. 투구 수는 102개.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훌륭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맥마나만 필리스 감독은 직접 일어서서, 투구를 마치고 돌아오는 거프의 어깨를 두드려 줌으로써 오늘 그의 역할이 끝났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제 동료들에게 맡겨. 고생 많았다.”
“고맙습니다, 보스.”
거프는 자신의 타석에 개빈이 대타로 나서리라는 것을 듣고 개빈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 후, 팀 동료들의 박수를 받으며 더그아웃 뒤 통로로 향했다.
조금 더 던지고 싶었지만 홈으로 돌아온 카즈 타자들의 집념이 상당했다.
이제 거프가 할 수 있는 것은 타자들이 조금 더 쳐 주고, 자신의 뒤를 이어 등판할 불펜이 힘을 내 주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개빈은 6회 초에 선두 타자로 나서서 2천만 달러짜리 대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2루수 키를 넘기는 간결한 안타로 출루해 대주자와 교체되었고, 필리스 타자들은 끈덕지게 카즈 투수를 몰아붙여 결국 홍빈의 적시타로 1점을 더했다.
5이닝에 선발투수가 내려가게 되면 투수 운용이 조금은 애매해진다.
벌써부터 필승조를 가동하기에도 좀 그렇고, 점수 차가 고작 2점이기에 후순위 불펜 투수를 내보내기도 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이럴 때를 위해 아껴 뒀던 카드를 내밀었다.
불펜에서 모습을 나타낸 것은 필리스의 슈퍼 루키중 하나인 로즐 펠리시다드였고, 로즐은 마운드에 서서 홍빈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줘.”
“주인공?”
“그래. 필리스의 슈퍼 히어로.”
로즐은 꽤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홍빈은 야유를 쏟아 내며 경기를 속개하라고 불만을 토해 내는 카디널스 홈 팬들을 둘러본 후, 씩 웃어 보였다.
“슈퍼 히어로는 모르겠는데, 세인트루이스의 슈퍼 빌런이 되는 건 어때?”
필리스 홈에서라면 완벽한 플레이를 보이고 슈퍼 히어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곳은 적지(敵地) 아니던가.
말뜻을 이해한 로즐은 기분 좋게 웃었다.
“좋아, 슈퍼 빌런 선배. 나도 너처럼 세인트루이스의 공적으로 만들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