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16)
홈플레이트의 빌런-117화(117/363)
# 117
홍빈이 부순 집 (1)
1
뉴욕은 멋진 도시다.
ㅇㅅㅇ: 뉴욕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지 마라.
…….
쥐뿔도 모르는 건 사실이긴 한데.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가장 먼저 터지는 동네지.
좀비라도 튀어나왔다 하면 뉴욕은 순삭이고, 외계인은 꼭 뉴욕부터 터뜨리더라.
드라마나 영화, 게임 등을 보면 여긴 확실히 사람 사는 곳이 못 되는데, 그래도 크고 아름다운 건 확실하다.
ㅇㅅㅇ: 미디어에 현혹된 우매한 인류 같으니.
ㅍㅅㅍ: 네놈에겐 영장류라는 명칭이 사치에 불과해 보이는군.
뭐래, 이 한낱 종이쪼가리가.
어쨌든, 이 거대하고 비싼 도시에는 10개가 넘는 프로스포츠 팀이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높은 위상을 자랑하는 팀 중에 하나가 뉴욕 양키스다.
아무리 뉴욕 연고의 팀이라 해도 모든 팀이 잘나가진 않는다.
어쨌든 양키스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프로스포츠 팀 랭킹에서, 거의 항상 야구팀 중 가장 가치 있는 팀으로 꼽힌다.
우승 횟수만 봐도 답이 나오지.
그에 반해 필리스는…….
ㅇㅅㅇ: 1883년에 창단, 월드시리즈 우승 2회.
ㅎㅅㅎ: 전 세계 프로스포츠 팀 중 1위의 패배 횟수.
ㅎㅁㅎ: 세계 최초 1만 패 달성 팀.
ㅎ,.ㅎ: 초소형 포수에 아주 잘 어울리는 팀 아닌가.
원래 약한 팀을 강하게 만드는 게 더 재밌는 법이다.
ㅇㅅㅇ: 원래 약한 초소형 포수를 그나마 사람답게 만든 요정님께 감사해라.
이 미친놈아, 좀.
필리스는 약하다기보다는 뭔가 묘하게 어긋난 팀일 뿐이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필리스가 이렇게까지 순식간에 달라질 줄 몰랐다.
나는 그저 빠른 콜업을 기대하고 이 팀을 선택했고, 내 입지를 위해 투수들을 도왔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일이 훨씬 잘 풀렸고, 생각하지 않은 일도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 편이다.
잘 풀리지 않았더라면, 월드시리즈 3차전을 앞두고 기자에게 이런 질문도 받지 않았겠지.
“양키스타디움에서 8타수 3안타 1홈런 1볼넷 3타점 2득점 1도루를 성공시킨 바 있다. 굉장히 좋은 활약이었는데, 3차전에서도 자신 있나?”
저 질문을 듣고, 만약 일이 안 풀렸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안 그래도 어딘가 무례한 태도의 이 기자가 더 무례하게 굴었을까. 아니면 나라는 사람에게 전혀 신경도 안 썼을지도 모르지.
기자의 주머니 속에서 살짝 삐져나온, 양키스 로고가 새겨진 스마트폰 케이스를 보고서 살짝 심술이 났다.
“전에 양키스타디움에 왔을 때는 아직 메이저리그에 적응하지 못했었죠.”
살짝 촉촉하게. 과거를 떠올리듯이.
기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하지만 그때완 다릅니다. 저는 여기서, 이틀 전과 사흘 전에 했던 것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빈 폴체스키나 샘 이델 같은 위대한 포수들에게 많은 것들을 배웠거든요.”
어떻게 기사가 나오든지 알 게 뭐람.
내가 그 샘 이델의 이름을 입에 올린 것만으로도 양키스 팬인 저 기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을 거다.
샘 이델은 양키스와 최고로 앙숙인 레드삭스의 주전 포수이자 양키스에게 수없이 패배를 안긴 선수니까.
물론 챔피언십시리즈 마지막 타석에서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개빈이었더라면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했겠지.
개빈한테 어떻게 하면 기자를 제대로 화나게 할 수 있는지도 좀 배워야겠다.
2
“월드시리즈 3차전, 양키스타디움에서 전해 드립니다. 필리스 대 양키스의 승부가 펼쳐집니다.”
“필리스는 중견수 헤스밀 에르난데스를 리드오프로 기용했습니다. 그리고 라이언 필로우가 2번, 홍빈이 3번으로 나섭니다.”
“오, 그가 오늘도 3번이군요. 1차전을 패배하는 와중에도 홈런 하나를 포함한 안타 두 개에 볼넷 하나를 얻어 냈고, 2차전에는 에이머리와 매치니를 농락하며 도루 3개와 2득점을 올렸었죠. 타격, 장타, 수비, 주루까지 현재 월드시리즈 최고의 타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 뒤로는 진 테프먼, 주머 데이비스, 켄트 롱, 개빈 폴체스키, 케이스 에이블, 앤드류 폰테가 포진합니다.”
“월드시리즈 우승과는 연이 없었던 메이저리그 최고령 베테랑 개빈 폴체스키가 지명타자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군요.”
“양키스의 선발투수로는 올해 13승 10패, 평균 자책점 3.88을 기록한 윌 하워드가 나섭니다.”
“올해 172.1이닝을 소화하며 삼진을 187개나 잡아냈죠.”
“에이머리에게 배운 슬라이더가 위력을 발휘했죠. 경기 시작됩니다. 초구! 애매한 코스가 볼로 선언됩니다.”
3
경기가 시작된 직후에는 더그아웃에서 딴짓을 해선 안 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장난을 치거나 머리나 만지작대거나, 한눈팔고 있는 놈은 의심의 여지 없이 슈퍼스타가 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투수의 공이 어떤지, 심판의 판정이 어떤지와 같은 기본적인 것들과 어떤 수비수가 집중력이 떨어지는지, 상대 더그아웃에서 어떤 놈이 딴짓하는지 살펴야 한다.
“볼!”
배터 박스에 서서 볼 수 있는 게 있고 밖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솔직히, 보려 한다고 해서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얼마나 집중하느냐의 차이다.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는지 아닌지.
“베이스 온 볼스!”
그리고 지금, 상대의 선발투수가 헤스밀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면서 우리는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방금 한눈을 팔았다면 투수가 뒷발을 살짝 끄는 걸 보지 못했을 것이고, 그걸로 인해서 릴리스 포인트가 살짝 흔들린다는 것이나 심판의 존이 좁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대기 타석에서 조금 더 자세히 투수의 상태를 살필 차례다.
딱!
대기 타석에 나가서 배트를 한 번 휘두르기도 전에 라이언이 안타를 뽑아냈다.
여기서 투수를 볼 수 있으니까 더그아웃에서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하는 멍청이가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완전히 놓쳐 버리게 되는 것이다.
[윌 하워드.] [우투우타, 선발투수.] [키워드: 근성, 만루 변태, 닥터K, 싸움닭.] [상대 투수의 국적이 미국으로 확인되었습니다!]아무리 만루 변태 키워드를 가졌다 하더라도 일부러 주자를 채우려 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 테니까, 컨디션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 정도는 안 봐도 알 수 있다.
“머리로 홈런 칠 수 있겠어?”
컬 매치니가 이렇게 말하는 건, 자기 투수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시위하는 거다.
그렇지만 지금쯤 양키스 더그아웃에서는 고민이 시작됐을 것이다.
롱 릴리프로 돌린 5선발 투수를 지금 당장 몸을 풀게 해야 하는지 어떤지.
“머리로 치는 건 올스타전에서 보여 주려고. 그때 TV로 봐. 어차피 넌 올스타전에 못 나올 테니까.”
뒷발이 끌리는 건 몸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간혹 마운드 흙이 어색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여기는 쟤들 홈인데 설마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볼!”
투수의 딜레마다.
제구는 안 되고, 존에 넣으니 맞고.
코치들이 항상 하는 말이 맞아도 좋으니 그냥 존에 넣으라는 이야기다.
모든 인플레이 된 타구가 안타가 되지는 않으니 그냥 BABIP에 맡기는 거지.
그리고 이쯤 되면, 1회 초부터 무사 만루를 진 테프먼 앞에 만들어 주고 싶진 않을 테니 포수가 그냥 존 안에 뭐든 욱여넣으라고 신호를 보낼 때다.
안 그래도 제구가 안 되는데 변화구를 던질 리도 없고.
그럼 당연히 풀스윙이지.
“스트라이크!”
예측이 틀렸다.
흠. 여기서 커브를 던질 줄이야.
여기서는 도박.
공 두 개에 배트를 내지 않는다.
“볼!”
“볼!”
그럼. 아무래도 그렇지.
스윙 한 번 해 줬다고 존 밖으로 빠지는 브레이킹볼을 두 번 연속으로 던졌겠지만, 이제는 정말 아니다.
여기서 스트라이크를 안 던지면 양키스 같은 팀에서 못 뛴다.
“헤이, 매치니.”
“왜 부르니, 꼬마야.”
“내가 이번에 스윙하고 나면, 마운드로 뛰어 올라가 투수의 궁둥이를 걷어차면서 죽여 버리겠다고 말해. 알겠지?”
“이 빌어먹을 애송이. 맘대로 지껄이는 것도 이게 마지막일 거다.”
허세는.
인버티드W 투구 자세를 가진 투수가 힘차고 역동적으로 투구를 시작한다.
힘껏 어깨를 휘둘러 공을 던지지만, 평소의 그 힘 있게 뻗는 패스트볼이 아니라 존 근처에 와서 힘없게 속도가 죽는, 딱 치기 좋은 공.
따악-!
경쾌한 타격음,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자유의 종… 아니, 젠장. 여기는 양키스타디움이지.
“레드 빈이 뉴욕의 불알을 뜯으러 왔다!”
“Nut and nuts!”
“불알이 뜯기기 싫으면 홈런을 내놔라, 빌어먹을 놈들아!”
“Nut and nuts!”
하지만 어디선가 우리 팬들의 신나는 넛 앤 넛츠가 들려온다.
쇄국정책 펼치기 좋은 계절이로다.
4
“저 개자식들을 닥치게 만들어!”
“허크만! 네가 최고란 걸 잊지 마!”
저 관중이 말하는 개자식이란, 필리스를 말한다.
필리스 팬들은 적지(敵地)에서도 용감하게 분노와 울분을 토해 내고 있고, 당연히 양키스 팬들이 듣기에는 그리 좋지 못했을 거다.
그래, 그런 거 있잖아.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에겐 수백만 필리건의 퍽유가 있다. 비록 그들 모두가 우리와 함께하진 못하지만, 양키스타디움에서 ‘Fuck you!!!’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양키스 타자에게 흔들어 댈 수 있는 일당천의 원정 팬이 있다고.
[데릭 허크만.] [우투우타, 3루수.] [키워드: 관심법, 금강불괴, 자존심, 홈런, 당겨 치기, 다이빙 캐치, 어퍼 스윙.]현 상황은 1사 2루.
스코어는 3 대 0.
내 선제 쓰리런으로 앞서 나갔지만, 주심의 존이 확실히 좁다.
스트라이크 존 아래 선으로 아슬아슬하게 싱커를 줄곧 던져 대는 거프에게는 좋지 못한 상황에 좋지 못한 상대다.
“베이스 온 볼스!”
음.
피했다기보다는 전략적인 선택이었다고 하자.
다음 타자인 보 커크가 어퍼 스윙을 가지긴 했지만 배드볼 히터 키워드를 가졌기에 병살을 한번…….
딱!
미친놈이 골프 선수나 될 것이지.
초구 낮게 들어오는 싱커에 그대로 배트를 낸 보 커크의 타구가 2루수 키를 살짝 넘겼다. 병살을 유도하기 위한 공을, 손목 힘으로 억지로 내야를 넘겨 안타를 뽑아 낸 거다.
2루 주자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1점을 냈고, 양키스 팬들이 기세 좋게 소리를 질러 댔다.
“커크! 그거야!”
“펠리페! 빌어먹을 필리스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라고!”
[마르코스 펠리페.] [좌투좌타, 좌익수/1루수/지명타자.] [키워드: 홈런, 스타 의식, 승부욕, 불펜 킬러.]산 넘어 산이라고 해야 할까.
50홈런의 허크만을 지나면 30홈런의 보 커크, 그리고 또 30홈런의 마르코스 펠리페. 그다음은 20홈런 포수 매치니.
우리 팀도 꽤 타격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양키스도 정말 쉬어 갈 데가 없다.
“파울!”
“파울!”
“파울!”
거프가 삼진을 잡아낼 만한 강력한 공이 있으면 그나마 좀 쉽게 상대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투구 수가 조금 많아지더라도 싱커만 쭉 던지다가…….
“볼!”
“파울!”
“볼!”
“파울!”
펠리페의 왼쪽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 겨드랑이가 열리고 옆구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나마 7개에서 변화를 보였으니 다행이다.
싱커 외에 다른 공을 생각하지 않을 때, 여기서 높은 패스트볼.
딱!
“아웃!”
“아웃!”
낮게 스윙하는 걸 노리고 삼진을 따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저 거대한 덩치를 완전히 비틀어서 어떻게 때려 내긴 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으로 병살을 따냈으니 그걸로 됐다. 조금 빗맞아서 시프트 반대로 향한 공을, 라이언이 제대로 달려들어 처리해 줬다.
펠리페는 무릎으로 배트를 박살 내며 병살을 친 자신에게 화를 냈지만. 고마워요, 펠리페.
“끔찍한데. 네 3점 홈런이 아니었으면 폭투를 던졌을지도 모르겠어.”
“한 대 더 때릴 테니 마음 놓고 던져요, 그냥.”
양키스 타자들은 적극적으로 덤벼드는 데다 어퍼 스윙으로 타구 발사 각도를 극대화 시킨 선수들이 많다.
거프의 싱커가 땅볼을 양산하면 우리의 승리, 양키스의 강타자들이 거프의 싱커를 맞받아쳐 펜스를 연달아 넘겨 버리면 양키스의 승리.
초반에 좋지 못하면 다음 투수가 빠르게 등판을 준비할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거프에게 1회 초 3점의 득점 지원은 심적으로 큰 힘이 되었을 거다.
하지만 경기는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5 대 3으로 끝났던 1차전과 2 대 0의 투수전이었던 2차전이 마치 다른 팀들의 경기였던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5
“2회 초, 선두 타자로 나선 개빈 폴체스키가 볼넷을 얻어 냅니다!”
“케이스 에이블! 케이스! 케이스가 필리스 루키의 힘을 보여 줍니다! 밀어 쳐서 양키스타디움의 담장을 넘깁니다!”
“2회 말, 양키스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스코어는 5 대 1.”
“아, 거프 로저스. 1회 말에도 조금 불안했는데, 2회 말 선두 타자에게 또 볼넷을 내줍니다. 오늘 양 팀의 선발 투수들이 제구에 어려움을 겪는군요.”
“마이노 애드리안이 타석에 들어서자, 필리스 원정 팬들이 저주를 퍼붓습니다.”
“마이노 애드리안! 실투를 받아쳐 그대로 넘깁니다! 스코어 5 대 3! 양키스가 따라붙습니다!”
“이어지는 웨스턴 옐딘의 안타. 경기가 타격전 양상으로 흘러가는군요.”
“볼넷, 그리고 안타!”
“아르노 헤수스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겨우 한숨 돌립니다.”
“데릭 허크만이 2타점 적시타를 때립니다! 경기는 원점! 양키스타디움이 화끈하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필리스 투수 코치가 올라오는군요. 거프 로저스, 여기까집니다. 다음 투수가 곧바로 올라옵니다.”
“구원 등판한 로즐 펠리시다드가 삼진 하나와 외야 플라이 하나로 상황을 정리합니다. 길었던 2회 말이 겨우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