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4)
홈플레이트의 빌런-145화(145/363)
# 145
미친 놈, 무서운 놈, 이상한 놈 (3)
1
때로 야구는 지루함과 지겨움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야구가 재미없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난 항상 야구를 즐기고 있고, 특히 메이저리그에 온 뒤로는 더 그렇다.
야구도 재밌고, 사람들도 재밌다. 날 둘러싼 많은 상황이 재밌다.
땅덩어리가 한국이랑 비교도 안 되게 넓고 인구도 많아서 그런지 여긴 정말 미친놈들이 많다. 그래서 내가 미친 짓을 조금 해도, 날 보는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ㅇㅅㅇ: 그건 좀 아닌 듯.
ㅇㅅㅇ;: 널 보면서 황당해하는 미국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넌 모를 것이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선동과 날조이며 음모와 음해다. 여기 나보다 이상한 놈이 200명은 넘는다고.
ㅇㅅㅇ;: 진짜다.
ㅡㅅㅡ;;;: 메이저리그에 미친놈이 많다는 건 사실이지만 넌 그중에도 독보적인 놈 중 하나다.
못된 요정 놈. 말도 안 되는 소리나 지껄이고.
여기서 제일 미친놈을 봐 놓고도 내가 독보적이라는 말이 나오냐? 독보적이라는 단어를 붙이려면 가야드 셜롯 정도는 되어야지. 그 박스… 젠장. 입에도 담기 싫다. 어쨌든, 난 그놈에 비하면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고.
8ㅅ8: 그놈이 원 톱임은 인정하지만 너 또한 천상계쯤에 속해 있다고.
객관적으로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나쁜 놈아.
어쨌든, 야구는 엄청난 순발력과 운동신경, 몸과 머리, 정신력 등 모든 측면에서 최고 수준을 유지해야만 최고 수준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팀이 연패에 빠지고 개인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와중에도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몇 경기 연속으로 안타를 치지 못하면 조바심이 들기 마련이다.
그 조바심을 선수 스스로 얼마나 지배할 수 있느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그런 상황에서도 해낼 수 있느냐가 그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야구가 잘될 때는 그 무엇보다 재밌다. 그 어떤 것도 연속 경기 안타나 연타석홈런, 연속 경기 홈런보다 재밌는 일은 없었다. 내 경험상.
하지만 반대로 몇 경기 연속 무안타, 연타석 삼진, 한 경기 3병살 같은 걸 치면 너무나도 괴롭고 인생이 지루해진다.
불빛 하나 없이 기나긴 터널을 걷는 느낌이 든다. 요정이 있고 스킬이 있더라도 그런 걸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빈,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실례가 안 된다면…….”
그 긴 터널을 지날 땐 정말 뭐든지 하는 게 야구 선수다.
그리고 내 앞에서 쭈뼛거리며 다가온 홀든 레시글리아스는, 그 끔찍하고 긴 터널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보인다.
“괜찮다면 망가진 배트 같은 걸 좀 얻을 수 없을까? 아니면 음… 버릴 배팅 글러브 같은 거라도. 아, 내키지 않으면 그러지 않아도 돼. 정말이야.”
저 마음이 어떤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해는 한다.
부러진 배트, 버릴 배팅 글러브?
그런 게 필요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걸 가져가.”
나는 어제 잠시 썼던 배트를 내놓았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인 팬들이 ‘마스터’라고 부르는 마스타니 츠루에게 2개의 홈런을 쳤던 그 배트다.
어제는 흥선대원군을 믿고 평소에 쓰던 것보다 가벼운 배트를 사용했고, 다음에 일본인 투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걸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보다, 사실 나는 썼을 때 결과가 좋았던 장비에 대한 집착이 거의 없는 편이다.
“응? 이걸?”
홀든은 당황해하며 물었다.
아마 스타 선수의 장비를 얻어서 거기서 기라도 받으려고 했던 걸 테지만.
“맞아, 이걸. 내키지 않으면 안 가져가도 되지만.”
“아, 아니. 고마워. 정말 고마워.”
홀든은 내가 무르기라도 할까 봐 배트를 받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뭐, 저걸 가지고 스윙 연습이라도 하려는 거겠지.
ㅇㅅㅇ: 너답지 않군.
내가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데 남에게 나서서 베푸는 건 어쩌면 멍청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잘나갈 때 베푸는 건 아무 상관없다.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나나 누군가의 기분이 나아질 수도 있고.
굳이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그런 느낌을 원하는 게 아니다.
ㅇㅅㅇ: 뭘 그리 주절주절 말이 많은 건가.
하긴, 너 같은 초소형 요정은 이런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뭐, 네놈에게 모자란 게 한두 군데도 아닌데 하나쯤 더 모자란다고 무슨 상관이야 있겠어?
ㅇ△ㅇ: 이 초소형 포수놈이……!
2
메이저리그 개막 후 18일째.
아직 시즌 초반에 불과하지만, 상당수의 팬은 시즌 후반기에 돌입한 것처럼 굴고 있었다.
[MLB 3주차, NL 리뷰.]└‘The barber’ 레드 빈이 올해 MVP를 예약했다!
└개인적으로 필리스 팬들에게는 별도의 서버를 마련해 줬으면 좋겠어.
└화부터 내는 걸 보니 혹시 메츠 팬? 이해해. 메츠는 지옥 구덩이로 떨어지는 중이니까.
└개자식.
└난 다저스 팬인데, 벌써부터 짜증 난다. 이러다가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또 필리스 만날 듯. 동부 지구 놈들아 분발 좀 해라. 또 필리스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걱정하지 마. 어차피 다저스는 떨어질 테고, 자이언츠가 올라갈 테니까. 수염 민 셜롯은 힘이 사라졌거든.:)
└Fuck you, Giants.
└You too, Dodgers.
└중부 지구만 엉망인 거지? 서부는 다저스 자이언츠 경쟁이고 동부는 필리스 독주에 말린스 브레이브스가 따라붙고. 빌어먹을 중부. 2경기 차 안에 4팀이나 몰려 있어.
└좋겠다. 너희끼리 몰려 있어서. 레즈도 좀 끼워 줄래?
└꺼져.
└젠장.
└컵스는 엄청 배 아플걸? 에이머 시나를 봐. 3할 8푼에 홈런을 5개나 때렸어. 수비력도 업그레이드됐던데? 데려온 타자 둘은 아직 홈런 하나 못 때렸고, 투수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불확실이니 뭐니 했던 전문가 놈들을 다 잡아 족쳐야 해. 필리스 정말 강하더라. 시즌 끝날 때 쯤이면 제일 위 근처 어딘가에 있을 듯.
대부분 팀이 15~16경기를 치렀고, 아직 140경기가 넘게 남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낙관적이거나 혹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반응들이다.
컵스 팬들은 에이머 시나가 잘하는 것을 보며 단장을 잘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컵스는 선두 카디널스에게 0.5경기 차 뒤진 지구 2위.
그들은 에이머 시나가 있었더라면 0.5경기 차 앞선 1위가 되었을 거라 주장하지만, 그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어쨌거나 2030년 4월 18일에 열린 다이아몬드백스와의 홈경기, 필리스 팬들은 앞으로 남은 148경기에서 모두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티즌스 뱅크 파크를 찾았다.
“필리스 팬들이 어제 대단한 경기를 펼쳤던 팀에게 아낌없이 환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경기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끝내기 홈런을 친 것 같은 분위기군요.”
쇼의 복귀전으로 인해 등판일이 밀린 필 레이건이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는 동안, 타자들은 필 레이건이 승리투수가 될 수 있는 4점을 기록한 상태.
타격의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필리스이지만, 최근에는 접전 승부에서도 실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지난 시즌부터 큰 변화가 없는, 아직은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발진.
그리고 환골탈태하듯 안정적으로 변한 불펜진.
“개빈 폴체스키, 7회 말에 투수 타석에서 대타로 나옵니다. 필리스 팬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군요!”
“풀카운트 승부에서 볼넷! 1루로 출루하며 홀든 레시글리아스와 교체됩니다. 역시 홈 팬들은 그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여 주는군요!”
대주자 홀든은 2루를 간단하게 훔쳤고, 헤스밀이 볼넷을 얻은 직후 디백스의 좌완 선발은 우완 셋업맨으로 교체되었다.
라이언 필로우가 아쉽게 삼진으로 물러났고, 홍빈은 좌타석으로 들어왔다.
“디백스는 투수를 교체할까요? 아, 그대로 갑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는 홍입니다. 좌타석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죠.”
3
[거울 타법의 히든 유틸리티, 완벽한 대칭이 사용됩니다!]투수가 대여섯 번 고개를 젓는 걸 보면 조금 웃기면서도, 어찌 보면 동업자인 포수에게 측은한 마음이 든다.
어떤 공을 던질지 사인을 주고받는 것은 객관식 문제를 찍는 것과 같다.
포수는 투수가 원하는 것을 그저 감 혹은 자신의 판단으로 맞춰야 하고, 투수는 포수가 답을 맞출 때까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리고 결국 포수가 답을 맞추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게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다.
타자에게 안타를 맞으면 그건 결국 오답이다.
누구의 탓인지는 굳이 가릴 필요까진 없겠지만, 저렇게 여러 번 고개를 가로저으면 누구나 투수가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걸 안다.
“많이 힘들겠네. 힘내.”
“네 할 일이나 하시지.”
포수 가브리엘 몬테로는 그렇게 말하곤 계속 투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웃긴 일이다. 투수는 빠른 포심과 조금 덜 빠른 투심, 낙폭 좋은 체인지업을 던진다.
[로날드 헤이우드.] [우투우타, 중계 투수.] [키워드: 파이어볼러, 좀비 투수, 싸움닭.]연투 가능한 데다 공격적인 투구를 펼치는 파이어볼러.
저 포수는 내게 호되게 당했지만, 여전히 강한 체를 하려 한다.
하지만 말과 마음이 따로 노는 스타일이란 건 아주 잘 알고 있다.
키워드로만 유추해 보자면 정면 승부를 펼치고 싶어 하는 투수와, 내 데뷔전에서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내준 포수.
1사 1, 2루에서 병살을 노리기 위해 체인지업 혹은 투심을 요구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지만, 투수는 초구에 카운트를 잡고 싶어할 수도 있지.
항상 그렇듯, 게스 히팅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전제로 한다.
일곱 번이나 투수가 포수의 사인을 거부하고 심판이 짜증 낼 때쯤에야 공을 던지기로 결정한 투수가 뭘 던질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투수의 고집대로 포심을 던질 수도 있고, 투수가 포기하고 체인지업을 결정했을 수도 있으며, 타협점을 찾아 투심을 던지기로 했을 수도 있다.
게스 히팅은 버리고 배드볼 히팅으로 간다.
발 빠른 주자가 둘. 코스가 안 좋더라도 병살을 노리는 포진인 내야수에게 강하게 때려 내기만 하면 최소한 진루타는 때릴 수 있다.
물론 진루타 같은 것보단 안타가 좋긴 하지만.
딱-!
“파울!”
몸 쪽 낮은 코스로 붙이는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 쳤지만 1루 베이스 바로 앞에서 라인 밖으로 튀는 타구.
투수가 포수를 이겼다는 거겠지. 라인 안쪽으로 강하게 꿰뚫었다면 최악의 1루 수비수인 제이슨 파커의 수비벽을 뚫고 2타점은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1스트라이크로 시작했다.
그리고 저런 싸움닭 스타일들은 맞을 뻔했다는 것보다는 스트라이크를 하나 잡았다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계속 배드볼 히팅으로 간다.
따악!
“파울!”
이번엔 외야 폴대 근처로 휘어 나가는 파울 타구.
홈런인 줄 알고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던 우리 팬들은 심판에게 빽빽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개자식아! 저게 파울이라고?”
“똑바로 봐! 홈런이잖아!”
“너 때문에 레드 빈이 50홈런을 못 치면 널 죽이러 갈게!”
“더러운 인종차별주의자! 아시아인이라고 홈런을 파울로 바꿔 버리다니!”
음. 파울 맞는데.
다소 머쓱해진 나는, 심판에게 대신 사과했다.
“죄송해요. 아시잖아요. 진심은 아닐 거예요.”
그러자 심판은 한숨을 슬쩍 내쉬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I know. This is Philadelphia.”
8홈런으로 리그 선두이긴 한데, 벌써 50홈런 운운은 좀 심했잖아.
더그아웃에서 런 앤드 히트 사인이 나왔다.
우리 감독님, 상당히 과감하다니까.
하긴 주자 둘 다 발이 빠르니까.
그리고 저 사인은, 내 타격 방법을 조금은 제한한다.
타격 방법에 대한 지시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런 앤드 히트면 방법은 둘 중 하나다.
공을 강하고 높게 외야로 띄우거나, 라인드라이브성으로 날리거나.
애매한 타구는 먼저 스타트를 끊은 주자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내야를 꿰뚫어서 주자를 계속 달리게 하거나 높게 때려 주자에게 귀루할 기회를 줘야 한다. 물론, 높게 때린 공이 홈런이면 더 좋지만.
로날드 헤이우드가 투구 동작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고, 다리를 앞으로 크게 뻗으며 배트를 크게 휘둘렀다.
따악!
살짝 손목이 시큰한 게, 제대로 맞지 않았다.
배트가 공 윗부분을 때리면 당연히 힘이 완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당겨 치려다가 밀어 치게 되면 타구가 역방향으로 튀게 되고, 생각보다 힘 있게 뻗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달렸다. 깊은 곳으로 천천히 구른 타구였기에, 어쩌면 1루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자들의 스타트가 빨랐기에 2, 3루에 안착하기만 하면 진 테프먼 앞에 만루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전력 질주해서 1루 베이스를 밟은 뒤 뒤를 돌아봤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웃당한 홀든을 볼 수 있었다.
“아웃!”
홀든은 공을 잡은 유격수가 1루로 공을 던질 거라 판단했는지 홈으로 쇄도했고, 재빨리 홈으로 던진 유격수의 좋은 판단에 의해 아웃된 후 바닥에 쓰러져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Booooooooooo!”
“멍청한 자식!”
“어디로 뛰는 거냐, 개자식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 테프먼이 적시타를 쳐 1점을 추가했고 우리 불펜이 제 역할을 했다는 거다. 스캇과 댄 벨이 나눠서 아웃 카운트를 따내고, 그레이가 강력하게 세이브를 따냈다.
주루사는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본헤드 플레이에 가까웠지만, 얼마 없는 기회에서 자신의 강점을 어필하려다가 발생한 사고이기도 했다. 어린 선수들이 흔히 하는 실수일 뿐이다.
하지만 홀든은 완전히 기가 죽어 버렸다.
[필리스, 디백스를 꺾고 3연승 달성!] [필리스, 메이저리그 전체 1위 등극.] [훌륭한 공수 밸런스, 다소 아쉬웠던 주루 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