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6)
홈플레이트의 빌런-147화(147/363)
# 147
미친 놈, 무서운 놈, 이상한 놈 (5)
1
트래시 토킹? 안 해도 상관없다.
그거 좀 안 한다고 해서 성적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내가 가장 잘하는 것 중에 하나다.
ㅇㅅㅇ: 유일하게 잘하는 거겠지.
선구안, 안타, 홈런, 도루, 포구, 블로킹, 송구와 함께 내 특기 중 하나지. 난 식스 툴, 아니 세븐 툴 플레이어니까.
ㅡㅅㅡ: 요정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원 툴에 불과하겠지.
어쨌든 입 터는 건 미세한 이득을 얻기 위한 아주 조금의 사전 작업이다.
이걸 안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지만 주로 타격보다는 투수를 돕기 위해 하는 거고, 팀의 장기적인 플랜을 위해…….
ㅍㅅㅍ: 솔직히 좀 아닌 듯.
ㅍㅅㅍ: 네 스트레스 해소법에 거창한 의미 같은 걸 갖다 붙이지 마라, 초대형으로 미친 자여.
뭐, 어쨌든 오늘 경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혹시 직업을 잘못 택한 거 아냐?”
“개자식. 부끄러운 줄 알아라.”
창의성 없는 자들과 타깃을 잘못 정한 자들에게 응징을.
어쩌면 저들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팀 성적에 대한 분노를 우리에게 풀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것에 대해 웃으면서 받아 줄 성격이 되지 못한다.
“참고로 너희 팀에서 도핑테스트에 적발될 놈은 오늘 너희 선발투수야.”
[폰타스 모타.] [우투우타, 선발투수.] [키워드: 닥터 K, 새가슴, 폭포수, 기세.] [상대 선발투수의 국적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확인되었습니다!]내 기억에는 이쯤인 것 같았고, 사실 요정에게 확인도 받았다.
디백스의 포수인 가브리엘 몬테로는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욕설을 내뱉었지만.
사실, 모든 약쟁이가 괴물 같은 실력을 뽐내는 건 아니다.
흐름을 제대로 타면 몰라도, 쟨 흐름 타기도 전에 잡혀가서 출장 정지를 당할 놈이다.
따악!
약쟁이든 아니든 별 상관없다. 난 상대가 누구든 안타 하나만 더 때릴 수 있으면 만족한다. 홈런이면 당연히 더 좋고.
나는 2루타로 경기를 상큼하게 시작했다. 팀의 1, 2번이 살짝 먹힌 타구로 플라이 아웃을 당한 뒤 내 2루타가 터지자 팬들은 환호했지만, 진 테프먼이 루킹 삼진을 당하자 다시 화를 냈다.
그리고 우리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자, 진 테프먼은 더그아웃에서 화를 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썩은 눈깔 같으니. 방금 그게 스트라이크라고?”
음. 딱히 말을 하진 않았지만 2루에서 본 건 스트라이크가 맞았다. 뭐, 원래 타석에 선 선수는 좀 다르게 볼 수도 있는 법이다. 사실, 멀뚱히 서서 삼진을 당한 게 부끄러워서 그냥 화를 내는 일도 빈번하다.
그리고 홈 플레이트에서 디백스 타자들과 내가 어떤 유치한 대화를 나누는지 모르는 쇼는 신나게 타자들을 짓밟았다.
“스트라이크-아웃!”
“아웃!”
“아웃!”
디백스 타자들은 내가 공격적으로 나가자 위축되었고, 쇼의 슬라이더가 시원하게 배트를 돌게 하였다.
“오늘 퍼펙트게임 한번 하려고 제대로 준비하셨네요.”
“흐흐. 퍼펙트? 뭘 원해? 말만 해. 그걸 하게만 해 주면 원하는 걸 뭐든 주지.”
ㅇㅁㅇ: …….
ㅇㅁㅇ: 원하는 걸 뭐든……?!
ㅇㅁㅇ: 얼마 전에 이런 상황이 있었던 거 같은데……?!
내 소원은 단 하나다, 요정.
ㅇㅁㅇ: 설마……?
네놈의 입을 닥치게 만드는 것.
ㅎㅅㅎ: 해 보시지.
갑자기 웃지 마라. 짜증 나니까.
2
5번 타자 주머는, 2회 말 선두 타자 볼넷으로 출루했다. 풀카운트까지 끌고 가서 마지막 공을 정말 잘 참아 냈다.
폰타스 모타는 좋은 공을 던지지만, 새가슴 키워드에서 알 수 있듯 쓸데없는 볼을 많이 던지는 타입이다. 그런데 오늘 보니 꽤 공격적으로 투구한다. 평소보다 훨씬 더.
주자가 있을 때 볼 남발로 스스로 무너지곤 하는 투수인데, 주자가 나간 상태에서도 꽤 잘 던진다.
아무래도 약을 하고 자신감이 붙은 건가 싶다.
따악!
“아웃!”
존 안으로 욱여넣은 커브를 때린 에이머의 타구가 높게 치솟았고, 플라이 아웃.
“스트라이크-아웃!”
그리고 볼을 던질 거라 생각한 케이스가 2스트라이크 2볼에서 스윙을 하지 않고 서 있다가 또 루킹 삼진.
“스윙! 스윙을 하라고!”
“멍청한 케이스! 구경만 하려면 관중석으로 올라와!”
“개자식들아! 어제 이겼다고 한 경기 주기로 약속이라도 했냐!”
어느 정도 이 팀에 적응을 마친-사실 이 팀이 천성에 가까운-케이스는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며 더그아웃으로 들어왔고, 8번 타자로 홀든 레시글리아스가 나섰다.
“헤이! 필리스 영구결번!”
“오늘도 치면 네가 1번으로 나가!”
“널 보러 여기 왔어! 실력을 보여 주라고!”
팬들은 며칠 전에 홀든이 주루 플레이에서 실수한 건 이미 잊었다.
이틀 내내 맹타를 휘두른 홀든은 의기양양하게 타석에 들어섰다.
확실히, 최근 괜찮은 성적으로 팬들의 지지를 받던 두 젊은 선수가 욕을 먹고 물러난 다음 저런 환호를 받으며 타석에 들어서면 정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같은 팀이니 다 같이 잘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드물 뿐더러 필리스에서는 어제 잘하고 지금 잘하는 놈이 최고다.
“주머 표정 좀 봐.”
“긴장한 거 보여? 얼굴이 새하얘졌어. 마치 알비노 처럼 보일 지경이야.”
“그럼 주머는 오늘 흰 코끼리인가?”
홀든의 그랜드슬램 때, 주머가 뒤에서 쫓아오던 홀든에게 기겁했던 일을 떠올리며 다들 웃고 있었다.
“흰 코끼리도 저렇게 하얗진 않을걸요.”
“맞아. 그냥 눈사람처럼 보이네.”
“거대한 개미 알?”
“큭큭. 웃긴 상황이야.”
웃긴 상황은 맞다. 5번 주머를 1루에 두고 8번 홀든이 타석에 나선 것도 어쩌면 드문 상황이기도 하고,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됐는지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은 주머의 표정도 웃기고.
홀든이 상대 포수와 몇 마디 주고받는 것을 본 나는 뛰어나가서 디백스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준비를 했지만, 홀든은 더는 포수를 상대하지 않고 타격 준비를 했다.
사실, 코너 외야수를 커버할 수 있는 선수는 많다.
나는 희소성 있는 포수이니까 출장 정지 후 바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내 맘대로 행동했지만, 홀든은 켄트가 돌아오기 전까지 가진 것 이상을 보여 줘야만 한다.
극한의 집중력으로 타석에 계속 나서는 건 꽤 피곤한 일이기는 하다. 아마 홀든은 그 상태일 테지.
그리고 약에 취해서, 까다로운 타자들을 쉽게 처리한 상대 선발투수는 홀든에게 정면 승부를 걸었다.
따악-!
사실, 내가 홈런을 치면 시티즌스 뱅크 파크는 축제 분위기가 된다.
팬들이 내게 기대하는 건, 상대 팀 감독이 머리를 감싸 쥐고, 상대 외야수들이 멍청하게 고개를 들어 내 타구가 펜스를 넘어가는 것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가 현실이 되면 다들 의기양양하게 소리 지른다. 넛 앤드 넛츠!
며칠 전에 그랜드슬램을 쏘아 올리긴 했지만, 장타력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타자에게는 사실 그리 큰 기대를 하기 힘들다.
안타를 치고 나가더라도 다음 타석은 선발투수니까. 8번 타자로 투수 앞에 나선다는 건 그래서 힘든 일이다.
“…응?”
“젠장! 저 마른 몸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는 거야?”
그랜드슬램을 친 뒤 한국 팬들에게 ‘멸치 형’이라고 불리는 홀든은,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그대로 받아서 넘겨 버렸다.
팬들도, 더그아웃에서 그걸 보던 우리도 입을 떡 벌리고 그 타구를 감상했다.
“Whoooooooooo!”
“끝내주네! 홀든! 우리가 널 올스타로 뽑아 줄게!”
팬들은 환호했고.
“주머! 뛰어!”
“주머! 더 빨리! 주머 데이비스의 악몽이 홈런을 치고 널 추월하러 뛰어가고 있다고!”
“멈추지 마! 달려!”
“제-기-랄-!”
우리는 주머를 놀리며 소리쳤지만, 홀든은 이번엔 그때 그 홈런처럼 앞만 보고 달리지 않았다.
“흐흐. 주머가 저렇게 빠른 건 처음 봐.”
“평소에 저 스피드면 시즌 40도루는 할걸.”
이번에 앞만 보고 달린 건 주머였고, 숨을 쌕쌕 몰아쉬며 더그아웃에 들어온 주머는 감독님에게 달려갔다.
“보스! 날 4번으로 보내 줘요! 저 녀석 앞에서 뛰고 싶지 않다고요!”
주머가 감독님에게 애원하는 것을 보며 웃는 사이, 쇼는 가만히 서서 삼진을 당했다.
음.
요정.
ㅇㅅㅇ: 또 헛소리하려고 부르는 거냐.
저 배트에 진짜 뭐 있냐? 저거 왜 저래?
ㅇㅅaㅇ: 대답해 줄 것이 없다.
ㅇㅅaㅇ: 아까우면 도로 달라고 하던가.
저걸 달라고 하라고?
동료 선수들에게 머리를 맞으면서도 소중하게 꼭 끌어안고 있는 저 배트를?
장난하냐?
3
켄트는 타석에서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는 타입이다.
사실 켄트가 실려 갔을 때, 켄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홀든은 수비에서도 켄트의 빈자리를 완전히 메꿔 버렸다.
“…아웃!”
켄트의 주특기이자 별명 중 하나인 펜스 워커(Fence walker).
홀든은 마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펜스를 타고 올라가 홈런 타구를 걷어 냈다.
“R-O-Y! R-O-Y! R-O-Y!”
팀이 2년 연속 신인왕을 배출한 것이 확정되기라도 한 것처럼 구는 팬들은 정말 신나 보였다.
솔직히, 지금 제일 머리 아픈 건 감독님일 거다.
홀든의 활약이 지속되면 켄트가 돌아온 뒤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그건 뭐 감독님이 고민할 문제고, 나한텐 별문제가 안 된다.
홈런을 맞고 갑자기 약 기운이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볼을 마구 던져 대는 상대 선발투수에 안타를 하나라도 더 때려 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면 된다.
“볼!”
“볼!”
세이버메트릭스 때문에 OPS형 히터가 대세이지만, 내 목적은 안타 3천 개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어쩔 수 없을 땐 볼넷으로라도 출루해야 하겠지만, 안타 하나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눈 딱 감고 가운데로 던지라고 해. 약까지 했으면서 저렇게밖에 못 던진대?”
“비열한 놈.”
씩씩대는 게 안 봐도 보인다.
가끔 느끼는데, 투수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매 경기 빈볼을 맞으려나?
“볼!”
공이 위로 높게 뜬다. 이걸 치라고 던지는 것인지, 아니면 스트라이크 존이 그리 크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어쨌든, 팀 분위기가 좋을 때는 욕받이 토템을 못 쓰는 게 상당히 아쉽다.
그래도 한번 써 볼까?
욕받이 토템 사용.
내가 오늘 뭐 잘못했나? 왜 7%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모르니 헛스윙 한 번 해 볼까.
“스트라이크!”
넘어질 정도는 아니고, 그리 힘이 실리지 않은 스윙으로 헛스윙.
“투수! 빈과 승부해!”
“멍청한 놈! 도망만 다닐 거면 차라리 시원하게 한 대 맞으라고!”
[욕받이 게이지: 9%.]음…….
역시, 팀이 연승 중이거나 이기고 있을 땐 아무리 필리스 팬이라도 한 번에 훅 올라가지는 않는다.
“난 한 번 더 휘두를 거야. 투구 수나 늘리려고. 어차피 계속 볼만 던질 거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냥 얌전히 볼넷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공이 꽤 애매한 위치, 그러니까 바깥쪽 높은 코스의 존 안쪽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고, 나는 무의식 중에 배트를 냈다.
딱!
살짝 밀어 친 타구는 굉장히 묘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고, 공을 잡기 위해 점프한 2루수 글러브의 끝을 맞고 외야 쪽으로 떨어졌다.
뭐, 이게 될놈될인가.
ㅇㅅㅇ: 될놈될? 될대가리 같은 포수 놈은 될대가리?
아무 데나 갖다 붙이지 말자, 좀.
후속 타자인 진 테프먼은 배트 한 번 내지 않고 볼넷을 얻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인 주머는, 초구에 시원하게 휘둘렀지만 그다음 네 개의 공이 모두 볼이어서 만루.
오늘 무안타에 그친 에이머 시나는 눈에 불을 켜고 타석에 들어왔고, 초구 몸 쪽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에 방망이를 시원하게 돌렸다.
따악-!
필리스 팬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할 것은 없는 게, 우리 팬들은 지금 당장 코앞에서 큰 거 한 방을 치는 선수를 MVP로 생각한다.
“R-O-Y! R-O-Y! R-O-Y!”
“슈퍼 SNS 홈런포다, 디백스 얼간이들아!”
에이머 시나는 신인왕 자격이 없는데도 신인왕을 타라고 소리를 질러 댄다. 쟨 작년에 나랑 신인왕 경쟁한 선수라고요. 이 사람들아.
결국, 디백스 선발투수는 내려갔고, 문제는 그 뒤에 생겼다.
빠각!
케이스가 뜬공으로 물러난 후, 초구를 때린 홀든의 배트가 부러져 버린 것이다.
새 배트를 받은 홀든은 안절부절못하다가 정말 어이없는 공에 삼구 삼진으로 물러났고, 팬들은 홀든이 오늘 홈런을 쳤음에도 일상적인 야유를 퍼부었다.
“그딴 걸 스윙이라고 하냐!”
“왜 아까처럼 못 해!”
“제기랄! 켄트가 그리워!”
필리스치고는 그리 격하지 않은 반응이지만, 아직 필리스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홀든은 어딘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미 스코어가 10 대 0으로 벌어진 경기 후반에 공을 두 번이나 뒤로 흘려 버렸다. 당연히 욕을 조금 먹었다.
그 실책으로 인해 스코어가 10 대 2가 되고 쇼가 9회 초에 마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보리스가 올라와 삼진 두 개로 이닝을 깔끔하게 정리했고, 팀이 이기자 팬들은 홀든의 그 실책 두 개를 잊은 것처럼 환호했다.
“Wow!”
더그아웃의 모든 선수가 큰 점수 차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뻐했다.
쇼도 완봉을 눈앞에 두고 있다가 실책으로 2점을 내줬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부러진 배트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는 홀든만큼은 팀의 승리에 기뻐하지 않았다.
“헤이, 홀든.”
“…….”
“홀든?”
“…….”
이거, 완전히 정신이 나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