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52)
홈플레이트의 빌런-153화(153/363)
# 153
Ball game (4)
1
나는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분위기라는 게 그래서 무섭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자연스레 타자들의 스윙이 커지게 된다.
넬슨 완단다의 키워드는 스터프, 싸움닭, 그라운드 볼러.
자신의 구위를 믿고 공격적으로 투구해 내야 땅볼을 유도하는 타입이다.
야구 팬의 입장이 되어 야구 경기를 볼 때면, 종종 의아한 상황이 있을 때가 있다.
100마일을 던질 수 있으면서 왜 공을 존으로 넣지 않는지, 엄청난 구위를 가진 공을 가졌으면서 대체 왜 볼넷으로 안타 하나 없이 만루를 거저 만들어 주는지.
그리고 2할 1푼짜리 타자에게 볼만 던지다 3볼 노 스트라이크를 만든 후 한복판에 던져 결정적인 홈런을 처맞는가.
투수는 무서운 거다. 회피하고 싶은 거다.
“볼!”
볼넷으로 타자를 1루 베이스로 보내기까지는 아직 볼 세 개의 여유가 있다.
제발 존 밖으로 나가는 변화구를 치라고 기도하며 공을 던질 수도 있다.
볼카운트가 볼로 가득 차기 전까지는, 아직 쓰리 볼까지는 멀었다며 현실도피를 할 수 있다.
“볼!”
특히 어제에 이어 타자들의 스윙이 커질 것이 뻔한 분위기에서는, 이게 좋은 선택이라고 자위할 수도 있다.
가운데 넣다가 맞으면 누가 책임질 건데? 쟤 어제 홈런 치는 거 못 봤어? 볼에 배트 내서 땅볼 치면 좋잖아? 이런 거지.
싸움닭 키워드 가진 놈들은 존으로 마구 욱여넣는 걸 즐기긴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싸움닭처럼 씩씩하게 던지지 않으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스터프, 그라운드 볼.
묵직한 구위, 지저분한 볼 끝으로 스트라이크 존에서 범타를 유도해 내는 타입이지, 존 밖으로 슬쩍 빠져나가는 유인구에는 딱히 소질이 없다는 이야기다.
“볼!”
만약 저기서 명경지수 키워드나 핀 포인트 같은 키워드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꽤 피곤해졌을 거다.
자기 앞에 주어진 상황이 어떻든 정면 승부로 일관했다면, 시작부터 홈런을 맞았더라도 구위가 좋은 투수니 이후 경기에서 타구가 펜스를 넘길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제구력이 좋았더라면, 저렇게 배트를 낼 마음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존에서 벗어나는 공을 던지기보다는 심판과 타자도 애매하게 볼 수 있는 곳으로 던졌을 테니.
라이언보다 내가 장타력이 좋은 편이라 지레 겁을 먹었을 수도 있고.
원래 그렇다.
내가 포수를 볼 때도, 장타력이 좋은 타자를 상대로 피해 가는 피칭을 유도할 때도 있다.
하지만 천성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주자 없이 1사 노 스트라이크 3볼에서는, 특히나 마음껏 휘두를 여건이 만들어진 거다.
투수의 주 무기인 커터나 뜬금 커브 같은 공에 땅볼을 쳐 낼 수도 있지만, 헤스밀이 먼저 1점을 만들어 놨기에 그렇게까지 아웃 하나가 부담스럽진 않다.
특히 이 카운트가 타자에게 유리한 이유는, 어떻게든 존으로 쑤셔 넣으려다 보면 매가리 없는 공이 종종 들어오기도 해서다.
특히 KBO에서는 3볼에 타자들이 일단 한 번 기다려 보는 성향이 있기에 이 카운트에서 안타를 꽤 많이 치곤 했는데, MLB에서는 이 카운트에서도 공격하는 타자들이 많아서 KBO 시절과는 조금 다르다.
따악-!
하지만, KBO와 MLB의 상황이 조금 다르든 말든 때리기는 가장 좋은 카운트지.
“레드 빈! 배트를 밀러 파크의 천장에 꽂아!”
“Nut and nuts!”
가운데에서 살짝 먼 쪽으로 조금 몰린 커터인 듯한 공(존으로 일단 넣으려다 보니 밋밋해서 커터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포심보단 느리니)을 그대로 당겨 쳐 펜스를 살짝 넘겼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필리스 팬들 일부가 노래를 시작함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배트를 뒤로 튕겨 내 버렸다.
“홈런을 날려서 저 미끄럼틀을 박살 내 버려!”
“Nut and nuts!”
야구는 꽤 이율배반적이다.
축제는 즐겁지만, 최소한 야구에서는 남의 집 축제는 결코 즐거운 게 못 된다.
야구에서 남의 집 축제를 망치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는 해 본 사람만 알 것이다.
“Brewers(맥주 양조업자) 놈들의 맥주 통을 터뜨려 샤워하자!”
“Nut and nuts!”
나는 타구가 넘어간 방향을 손가락으로 계속 가리키며 베이스를 돌았다.
브루어스 내야수들의 표정이 볼만하다. 그냥 분위기를 탄다면 자기들도 홈런을 치고 세리모니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지만, 그들도 안다.
투수는 아웃 카운트를 따냈다고 글러브로 기타 연주를 했지만, 타자들은 홈런을 치고 배트를 두 번이나 집어 던졌다.
애써 밝은 척하려 해도 투수의 입가가 바짝 말라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투수가 조급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은.
“Whoooo!”
“배트를 꽤 멀리 던지긴 했는데, 그래도 헤스밀보단 못했어.”
“그래도 멋진 홈런이었어! 넛 앤 넛츠를 들을 만큼!”
지금부터 투수가 제대로 된 공을 던질 가능성이 꽤 낮고, 어쩌면 빠른 시간 내에 롱 릴리프가 등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직감을 들게 하는 것이다.
투수가 남은 타자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바로 반격을 시작한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완전히 수그리고 9이닝 내에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노려야 한다.
찾아올지 안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베이스 온 볼스!”
그러나 투수가 한 시즌에 홈런 30~40개를 때릴 능력이 있는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고.
“베이스 온 볼스!”
발이 느려 병살타를 유도해 낼 법한 타자에게도 볼넷을 내주며.
“베이스 온 볼스!”
형형한 눈빛으로 투수를 바라보는 정신 나간 유격수에게도 볼넷을 내줘서 만루를 만들고 나면.
“배트 플립이 정말 싫었나 봐.”
“그러게. 볼넷을 얻고 배트를 뒤로 던질 순 없지.”
서서히 우리 더그아웃에선 원정 10연전을 연승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기쁜 마음이 피어오르고, 상대 팀 더그아웃에선 반대로 씁쓸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브루어스는 일발 장타력이 좋은 팀이지 투수력이 좋은 팀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쇼 정도의 투수를 상대로 초반 대량 실점한 후 뒤집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베이스 온 볼스!”
게다가 자의식 과잉의 2루수가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 1점 추가.
따악!
내 배트를 가지고 나가야만 좋은 타구를 날릴 수 있는 토테미즘 외야수가 싹쓸이 3루타로 경기를 시작했으니.
뭐, 질 리가 있나.
1회부터 6점을 내고 시작한 경기.
브루어스는 짜임새 있는 경기보다는 한 방을 우선하는 팀이고, 이런 경기에서 상대 투수와 마찬가지로 그라운드 볼러 키워드를 가졌지만, 추가로 명경지수를 가진 쇼는 충분히 제 몫을 해낼 수 있는 투수다.
딱!
“아웃!”
“아웃!”
타자들이 6점을 내주고 시작해 부담 없이 던질 수 있는 경기, 1회 말.
첫 타자에게 텍사스 안타를 맞고 시작했지만, 강심장 키워드까지 가진 쇼는 아무렇지도 않게 존으로 들어가는 슬라이더로 병살을 따내고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부끄러웠는지 그가 준비한 12가지 세리모니 중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게 아니면, 갑자기 확 바뀌어 버린 분위기 때문에 하기 좀 껄끄러웠을 수도 있고.
“스트라이크-아웃!”
이런 경기에선 지기도 힘들다.
쇼는 뜬금포 한 방을 맞고 7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필리스 타자들도 스윙이 좀 커지긴 했지만 3점을 더 내서 9 대 1로 경기는 마무리.
경기 후반에는 우리도 셀레브레이션을 자제했는데, 이것도 같이 해야 재밌지 우리만 하면 좀 그러니까.
재밌는 배트 플립 시리즈를 관람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안고 경기장을 찾은 브루어스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운 하루였을 테고, 우리가 배트를 집어 던지는 걸 구경하러 온 우리 팬들에겐 정말 기쁜 하루였을 거다.
[필리스, 1회부터 빅 이닝으로 배트 플립 페스티벌에 찬물을 끼얹다!] [남의 집에서 자기만 즐긴 필리스. 연패 후 연승 성공.] [(PHOTO) 배트 플립을 흉내 내는 필리스 원정 팬들.]야구란 건 그런 거다.
우리 집에서 이겨도 신나고, 남의 집에서 이겨도 신나고.
승패는 언제나 받아들여야 할 결과 중 하나고, 사실 배트 플립보다는 이기는 게 더 좋다.
배트 플립을 하고 이기면 더 좋겠지만.
어쨌든 뭐.
다음 날 선발은 짐이다.
그리고 우리 타자들은, 오늘 폭발한 타격감이 무색하게 3차전에서 타격감이 귀신같이 죽어 버리는 현상을 겪었지만.
[필라델피아 필리스 2 : 1 밀워키 브루어스.] [필리스, 타격전도 투수전도 모두 OK.] [필리스, 브루어스를 난폭하게 짓밟고 시카고로 이동!]우리는 홈 2연패 이후 시작된 원정길에서 스윕으로 필리스 팬들의 불평불만을 잠재웠다.
팀을 해체하라느니, 감독을 자르라느니, 주전 선수를 팔고 리빌딩에 빨리 들어가야 한다느니 하는 설레발을 치던 팬들이 다시 우리를 찬양하게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4일이었다는 이야기다.
[컵스와의 ‘에이머 시나 매치’ 기대되는 필리스.]└컵스 놈들아, 너희가 쓰레기 취급한 에이머 시나의 뜨거운 맛을 볼 때가 왔다.
└미친 필리스 놈. 우리가 에이머 시나에게 얼마나 기대한지 모르지?
└기대했으면 버리질 말았어야지. 우린 너희와 달라서 이 천재 유격수 사용법을 안다고.
└아니, 걘 그냥 놔둬도 잘할 놈이었어. 걜 판다고 했을 때 난 진짜 화가 났었다고.
└LOL. 화가 났으면 구단 사무실에 불이라도 질렀어야지.
└난 범죄자가 아니야.
└뭐? 그게 왜 범죄야? 화가 났다는 표시일 뿐이라고!
└정상인들은 너희랑은 달리 화가 난다고 불을 지르거나 하지 않아.
└아니, 너흰 겁쟁이야.
└대답해 주지 마, 멍청아. 쟤들은 필리스라고.
└맞아. 컵스 따위는 필리스님들께 반박할 자격 따윈 없어.
└Sigh…….
2
“예전 팀과 맞붙는 소감이 어때?”
시카고로 이동하는 중에 에이머 시나에게 물었다.
평소라면 내가 MVP를 타니, 행크 에런 어워드를 타니 하는 걸로 시답잖은 말싸움이나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꽤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가는 중에 경험해 보지 못한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친정 팀을 상대하는 것이니까.
그냥 뭔가 궁금했다. 사실, 옆에 있는데 그거 말곤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했고.
“컵스?”
에이머 시나는 잠시 침묵하더니, 별것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어쩌면 그들이 날 내보낸 게 실수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지.”
“그래?”
팀을 떠난 뒤 그 팀과의 경기 때문에 예전 소속 팀을 방문한 선수들이 유독 맹활약을 펼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그 구장에 대한 익숙함이나 전 소속 팀 선수에 대해 잘 안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선수는 에이머 시나처럼 대답한다.
자신을 내보낸 게 실수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줄 좋은 기회라고.
“물론 내가 그 팀에서 나오고 싶어 하긴 했지만…….”
에이머 시나는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컵스라는 팀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거다. 회귀 전에도 그랬다. 명예의 전당에는 컵스 모자를 쓰고 들어갈 거라고.
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고, 뭔가 하나둘씩 어긋나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 땐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 되어 있을 뿐이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나온 걸 후회하진 않아. 여기서 야구 경기를 하는 게 즐거우니까.”
ㅇㅅㅇ: 변태 팀에 걸맞은 변태 유격수지.
ㅇㅅㅇ: 변태 포수에게는 아직 못 미치는 미친놈이지만.
물론, 저놈의 실력은 내게 미치지 못하지.
“그래? 욕먹는 게 즐거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에이머는 뭔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곡을 찔렸나?
“난 너랑 달리 욕을 거의 안 먹지. 필리스 팬들은 날 사랑하거든.”
“너보단 내가 안 먹는 거 같은데.”
“절대로, 맹세코 아니야.”
“흐흐, 그럼 그렇게 해.”
“젠장, 정말 아니라고.”
이놈은 정말 뭐든 지기 싫어하는 것 같다.
에이머가 컵스를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보일지, 아니면 정반대가 될지는 모르겠다.
시작이 정말 중요한 게 야구라는 스포츠고, 그렇기에 이번 3연전에서의 결과로 그가 컵스를 상대로 커리어 내내 어떤 모습을 보일지 결정될지도 모른다.
브루어스와 컵스의 연고지는 그리 멀지 않고, 우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숙소에 도착했다.
앤드류를 만나게 되겠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앤드류에게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헤이, 오랜만에 보겠네. 잘 지내고 있는 건 알아. 2루로 들어올 때 슬라이딩을 하면서 스파이크를 들지 않을 거지? 어쨌든, 내일 봐. (앤드류)
다른 선수들도 스마트폰을 보는 것을 보아, 앤드류가 필리스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전 소속 팀은 아니지만 전 동료라.
음.
앤드류에게 필리스의 초구를 맛보여 줘야 하나?
내 방에 들어가서 앤드류의 메시지에 답장했다.
-좋아요, 앤드류.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면 내 근처로 다가오지 마요. 난 여전히 당신과 친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