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54)
홈플레이트의 빌런-155화(155/363)
# 155
옛날 옛적에 (2)
1
“Welcome to my home plate.”
퍼억!
“윽!”
“볼!”
방심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는데, 앤드류는 꽤 위협적으로 날아드는 몸 쪽 높은 공에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건 결코 앤드류가 웰컴 투 리글리 필드라고 해서 한 복수가 아니다.
ㅇㅅㅇ: …정말?
…정말 아니다.
어쨌든, 미트에 공이 꽤 묵직하게 꽂히는 소리가 들리고, 앤드류의 목소리와 심판의 콜이 들린 건 거의 동시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트에서 공을 빼 필에게 던져 주고, 필에게 내 요구대로 정확히 공이 왔다는 의미로 엄지를 들어 보인 후 앤드류에게 말했다.
“앤드류, 경기 끝나고 같이 저녁 식사할래요? 시카고에서 좋은 식당을 소개해 줘요.”
“그럴까? 젠장. 반갑다는 인사가 과격한데? 친목 도모 제의치곤 초구가 너무 난폭한 거 아냐?”
2회 말, 2 대 2 상황.
어쩌다 보니 또 2가 많은데 어쨌든 그렇다.
1회 초에 우리는 2점을 냈고, 2회 말에 2점을 내주고도 1사 1, 3루 상황이다.
마운드로 올라가서 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눠 볼까 했지만, 8번 타자 앤드류가 타석에 들어온지라 그냥 플레이하기로 한 거다.
경기 전에 앤드류에 대한 대책은 이미 마련해 두었고, 어차피 다음 타석은 투수니까.
투수들은 기본적으로 포수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누군가가 마운드로 올라올 때 투수들의 표정이 썩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누군가 투수를 향해 걸어오면, 투수는 자기가 무능해 보인다고 생각하거나 싸움을 걸러 온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무능해 보이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는 데다 투수는 이 경기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무능한 주인공이 되고 싶을 리가 있겠는가.
“필이 앤드류가 그리웠나 봐요. 전 모르는 일입니다.”
시침 뚝 떼고 그렇게 말했다. 저녁 식사는 저녁 식사고, 그건 경기가 끝난 후의 일이다.
나도 그렇지만 앤드류도 그 사실은 충분히 알 거다.
“머리를 맞히진 않으리라 믿을게. 이 필리스 놈들아.”
“좋아요, 미스터 컵스. 잘 피해야 할 거예요.”
앤드류는 씩 웃은 뒤 자세를 잡으며 타석으로 돌아갔다.
우린 야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앤드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까보다 살짝 오픈 스탠스로 바뀌었다.
장타력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한 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에 투수가 조금 더 공격적으로 투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몸 쪽 공을 대비하기 위한 약간의 변동.
양쪽 팔꿈치를 몸에 완전히 붙이고 몸 쪽 공을 때려 멀리 보내려면 꽤 강한 힘이 필요하다.
앤드류는 그게 안 되는 걸 아니까, 몸을 열어 내야수 키를 넘기는 타격을 하기 위해 자세를 고쳐 잡은 거다.
‘바깥쪽 낮은 패스트볼.’
그렇게 나오면 당연히 바깥쪽 낮은 공은 제대로 못 친다.
딱!
타격에 큰 재능이 없는 선수가, 최근에 좀 잘 맞고 있으면 일단 배트를 내고 보는 경향이 생긴다.
잘 맞으니까.
일단 맞히면 안타가 잘 나오니까.
“아웃!”
케이스가 간단하게 잡아서 에이머에게 토스하고.
“아웃!”
에이머가 더블플레이를 방해하기 위해 거칠게 2루로 파고드는 주자를 가볍게 피하며 1루로 송구해서 4-6-3병살 완성.
주자는 주자로서 팀을 돕기 위한 플레이를 한 것뿐이고, 부상까지 갈 만한 플레이는 아니었다.
그걸 아는지 에이머는 주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케이스와 글러브를 맞부딪친 후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심, 충돌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 보지 않는 한 모르는 일이란 말이지.
“Boooooooooo!”
“개자식!”
개자식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명확하게 표현하진 않았지만, 아마 맞바꾼 두 유격수를 모두 가리키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두 유격수 모두 저런 가벼운 욕 정도로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컵스 팬들의 야유와 욕설에도 밝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에이머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송구 좋아.”
“당연하지. 내가 한 건데.”
말을 말아야지 내가.
2
시카고 컵스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팀이고, 특히 다니엘 그린부쉬가 합류했다는 점에서 내셔널리그 중부 지구 포스트시즌 진출권에 들 거란 예상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팀이다.
다니엘 그린부쉬가 개빈 폴체스키와 만난 적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필리스도 영 좋지 못했지만, 다니엘 그린부쉬의 전 소속 팀인 텍사스 레인저스도 월드시리즈와 인연이 없는 팀이었기에.
하지만 인터리그에서는 몇 번 만난 적이 있기는 했다.
“사람 일은 정말 어찌 될지 모르는 거야.”
개빈이 포수 마스크를 쓰고 수비를 위해 나오는 다니엘 그린부쉬를 바라보며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을 때, 홍빈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니엘 그린부쉬가 데뷔전 때 개빈이랑 맞붙었었죠? 인터리그 시티즌스 뱅크 파크 경기였던가요?”
개빈은 홍빈과 대화하다 보면 가끔 깜짝 놀라곤 한다.
어떨 때는 자신도 기억이 흐릿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곤 하니까.
물론 홍빈은 개빈의 자서전을 읽기도 했고, 다큐멘터리나 개빈의 기념 영상을 본 기억이 있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다니엘과 개빈의 이야기는 개빈의 자서전에 있던 내용이었다.
‘개빈이 상대했던 포수 중 Best 5 안에 다니엘의 이름이 있었으니까.’
물론, Worst 5 안에는 AAA의 이름이 있었다.
어쨌든 개빈의 다니엘 그린부쉬에 대한 평가는, 타석에서 인내심 있고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으며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포수라는 것.
“흐흐. 그랬지. 그때는 코흘리개였어. 하지만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이렇게 말했지. 전 당신의 팬이지만, 당신은 개자식이에요. 당신이 날 개자식으로 보고 있으니까.”
개빈의 과장된 동작과 심각해 보이는 표정에 홍빈은 웃음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자서전에 저런 이야기는 없었다.
“보통 때 같으면 닥쳐, 개자식아라고 말했겠지만 거기서 웃어 버리고 말았지.”
“그리고 그가 데뷔 타석에서 3점 홈런을 때려 냈죠.”
“맞아. 첫 안타가 홈런이 안 됐으면 FA가 조금 더 늦어졌을지도 몰라. 홈런 하나 치고 세 경기 내내 헛짓거리만 했거든.”
2회 말 컵스의 2득점도 다니엘로부터 시작됐다. 1볼에서 필 레이건의 슬라이더를 당겨 쳐 펜스를 직격하며 몸값의 이유를 증명하고 시작한 것이다.
“수비력은 그때도 괜찮았잖아요.”
홍빈의 말에 개빈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지만, 명포수 반열에 오른 현재 다니엘의 수비력보다 고작 2년 차인 홍빈의 수비력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니엘은 사실 그때는 거의 수비력으로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괜찮은 수비력에 종종 터지는 홈런이라면 포수라는 포지션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은 있으니까. 그리고 매년 어떤 식으로든 발전해 온 선수다.
“그래 봤자지.”
개빈은 코웃음을 쳤지만, 꽤 쓸 만했던 것은 맞았다.
개빈이 생각하기에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포수로서 수비를 잘하는 것은 샘 이델.
홍빈이 더 발전할 수 있다면 샘 이델보다 나은 선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다는 것이었다.
“네가…….”
개빈은 무심결에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다니엘보다는 네가 더 낫다는 말을 꺼내기엔 너무 낯간지럽지 않은가.
힐끗 홍빈을 바라본 개빈은, 홍빈이 말이 끊겼다는 걸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곤 살짝 헛기침했다.
타격 부분에선 자기가 겪었던 그 어떤 포수보다 더 뛰어난 게 홍빈이다. 포수가 아니라 어떤 포지션의 선수를 갖다 붙여도 최고 수준인 것이 확실하다.
“최소한 저런 놈은 이겨야지. 안 그래?”
그러자 홍빈은, 개빈의 기대(2년 차다운)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연봉 빼곤 제가 다 이기죠.”
“이런 젠장.”
“흐흐. 제가 최곱니다. 잊지 마세요.”
“빌어먹을 꼬마.”
홍빈이 거만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긴장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개빈이 다음 수비 이닝에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홍빈은 그런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홍빈은 그 어떤 순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선수다.
-레드! 빈! 리드를 넓게 잡은 주자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날카로운 송구로 아웃 카운트를 하나 따냅니다!
-팝 타임, 정확도, 송구 스피드 어디 하나 꿀리는 게 없는 선수입니다!
-컵스 팬들이 화를 내는군요. 이닝 선두 타자가 출루했지만, 베이스로 나간 지 30초도 안 되어 아웃되고 맙니다!
전성기 때의 개빈은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봐선, 타격이고 수비고 어깨고 자신이 이길 수 있는 부분이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다.
전성기의 자신이 오더라도 홍빈의 백업 역할밖에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개빈은 아직 올라갈 타이밍이 되려면 멀었기에 야구공을 잡고 그립을 쥐어 보는 스캇에게 말했다.
“흐흐, 저놈이 내 아들뻘이라 다행이야.”
“뭔 소리예요?”
“그런 게 있어. 스캇, 오늘 볼넷 안 주면 내가 맥주 사지.”
“너무 어려운 내긴데요. 볼넷 주면요?”
“네가 사.”
“젠장, 알았어요. 노력해 보죠.”
3
“다니엘이 에이머의 도루를 저지합니다! 훌륭한 송구! 에이머의 스타트도 스피드도 좋았지만, 송구가 너무 좋았습니다!”
“Wow. 컵스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군요.”
에이머 시나가 볼넷으로 걸어 나가 2루를 훔치려다 다니엘의 강하고 정확한 송구에 횡사당하자 컵스 팬들은 굉장히 즐거워했다.
기대했지만 SNS로 사고를 쳐 팀워크를 해친다고 다른 팀으로 넘겨 버린 유망주가 잘하는 모습을 보면 당연히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경기는 출루가 많으면서도 점수가 나지 않는 답답한 경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양 팀 투수가 분석을 잘해서, 그리고 수비 시프트가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져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내고도 경기 초반 외에는 득점 없이 2 대 2.
“이런! 이번에는 컵스 팬들이 머리를 감싸 쥡니다! 벤 클리퍼의 병살타! 컵스는 오늘 경기 벌써 세 번째 병살타입니다!”
“7회 말 공격 기회를 날려 버렸군요. 아마 다음 이닝에는 투수가 교체되지 않을까 합니다. 양 팀 투수 모두 7회가 끝난 시점에 투구 수 110개 정도를 기록했습니다.”
양 팀 5선발들이 분투해 줘서 각각 7이닝 2실점으로 끌고 나가 준 경기.
필리스와 컵스의 타자들 모두, 선발투수들에게 빚을 진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선발투수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리고 8회 초, 투수 타석에서 개빈이 대타로 들어섰다.
“개빈 폴체스키가 대타로 나섭니다! 최고의 베테랑이죠!”
“지금이야 컵스 팬들이 얌전하게 반응하지만, 예전에는 개빈만 보면 죽자고 달려들었었죠. 사실, 개빈에게 당한 팀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요.”
컵스도 강한 투수를 내보냈다. 버나드 거스리.
투수력이 강한 컵스의 우완 셋업맨으로, 최대 98마일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
딱!
하지만 개빈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98마일짜리 패스트볼을 밀어 쳐서 단 한 구 만에 출루에 성공했다.
“오, 깔끔합니다. 완벽하게 꿰뚫은 타구.”
개빈은 대주자로 교체됐고, 버나드 거스리는 헤스밀을 인필드 플라이로 잡아낸 후 라이언마저 삼진으로 잡아냈다.
“레드 빈이 타석에 들어옵니다! 저 선수가 타석에 들어가면 무언가 기대감이 듭니다! 그거 아세요? 올 시즌 득점권 타율이 무려 0.478입니다! 끔찍한 클러치 히터예요!”
“하하. 세이버메트리션들의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선수죠. 그들은 클러치 히터란 없다고 주장하니까요.”
“게다가 95마일 이상 패스트볼 상대 타율이 5할이 넘습니다. 버나드 거스리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볼, 볼.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와 빠른 공을 아주 잘 치는 타자와의 맞대결.
홍빈은 이제는 루키 취급을 받지 않는다. 필리스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만한 타자이며, 상대 투수를 얼어붙게 만드는 상대다.
그리고 제구보다는 구속에 치우친 투수의 실투는 홍빈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기도 했다.
따악-!
“Oh-my-gosh!”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진 해설자의 그 한 마디만으로도, TV로 경기를 보던 사람들은 그 타구가 펜스를 넘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4 대 2.
남은 아웃 카운트가 몇 개 안 된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힘들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다음 이닝, 다니엘 그린부쉬가 홍빈과 아주 비슷한 코스로 홈런 타구를 날려 버렸다.
“오, 다니엘이 컵스를 구원합니다! 살짝 몰린 스캇 케이슬러의 공을 받아 쳐 동점 투런!”
“경기가 재밌게 흘러가는군요.”
두 팀 팬들의 마음이 요동치는 순간이 이어졌다.
필리스, 컵스, 필리스, 컵스.
컵스로서도 중부 지구 순위권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이런 경기를 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9회 초.
그들이 아끼고 아꼈지만 단 한 시즌 만에 필리스로 보내야 했던 천재 유격수가, 그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에이머 시나! 이런! 엄청난 타구입니다! 장외, 장외 홈런! 그가 그를 키워 줬던 리글리 필드의 경기장 외벽을 넘겨 버립니다! 컵스가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레이 밴델튼이 올라왔고, 그가 모든 걸 끝냈다.
필리스의 5 대 4 승리.
컵스 팬들의 좌절에 빠진 얼굴이 MLB 홈페이지의 메인을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