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
홈플레이트의 빌런-17화(17/363)
# 17
뭐지, 이 괴물은? (6)
1
“아웃!”
타격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지만, 조금 방심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몸 덜 풀린 메이저리거들 상대로 안타도 때리고 홈런도 때려 내고 했다고 너무 마음 놓고 있었던 걸지도.
나는 두 번째 타석에서 포수 팝 플라이 아웃으로 5구 만에 아웃되었다.
이거, 확실히 클래스 있는 투수의 공을 때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ㅍㅅㅍ : 그래. 드디어 인정하는군.
ㅍㅅㅍ : 내가 말을 걸지 않았더라도 넌 삼진을 당했을 것이다. 너 같은 미천한 포수 놈은 저런 공을 때릴 수 없겠지.
ㅍㅅㅍ : 그러니까 남 탓은 하지 말도록.
하여튼 입 터는 거 하나는. 아주 입만 열었다 하면 밉상이라니까.
ㅍㅅㅍ : 네 녀석에게 배운 것이다.
ㅍㅅㅍ : 흥.
울먹거리면서 미안해하는 거 치고는 꽤 당당한데.
8ㅅ8 : 누가 울먹거렸단 말이냐.
8ㅅ8 : 고얀 놈. 존귀하신 요정님을 네 맘대로 판단하지 마라.
아, 예.
그러셨군요. 이 존귀하신 존귀탱 같은 놈.
“마지막 공, 포심이었어?”
“아니, 커터.”
“제기랄.”
대기타석으로 나온 케이스가 소리 낮추어 묻고는 혀를 내두른다.
5회까지 양 팀 선발투수들의 미친 활약으로 점수는 0의 행진이다.
짐은 완전히 집중해 있고, 더그아웃도 조용하다.
사실 이럴 땐 뭐라 할 말도 없다. 짐은 인생 피칭을 하고 있는데 손도 못 쓰고 당하고 있으니까.
아, 맞다.
야, 아까 뭐 스킬 주니 어쩌니 하지 않았냐? 까먹고 있었네.
ㅡㅅㅡ : 오늘 홈런을 때려 내면 네가 원하는 스킬이 하나 들어가 있는 랜덤 스킬 팩을…….
뭐? 지금 장난하냐?
너 때문에 타석 하나 소비했는데, 뭐라고? 홈런?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 맞지?
ㅍㅅㅍ : 그럼 타점을 올리면…….
아니 이런 야알못을 봤나.
타점은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투승타타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네가 그러고도 야구의 요정이냐? 이런 천인공노할 놈을 봤나. 타자를 평가하는 데에 타점이 웬 말인가. 이 정도면 야구의 요정으로서 직무유기 아니냐?
ㅠㅅㅠ : 그럼 안타…….
오케이, 콜. 안타 콜. 무르기 없기.
ㅇㅁㅇ : 응?
ㅇㅁㅇ : 자자자잠깐.
뭐? 무려 요정님이 한낱 인간 따위한테 내뱉은 말이라도 바꾸시려고?
ㅇㅁㅇ : 아아아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뭐? 분명 아니라고 말 하는 거 똑똑히 들었다?
ㅠㅅㅠ : 좋다, 미천한 인간.
ㅠㅅㅠ : 대신 실패하면 네가 가진 스킬 중 하나를 뺏어 가겠다.
오냐. 그럼 내기 확정된 거다?
ㅠㅅㅠ : 그래. 요정님은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지.
ㅠㅅㅠ : 왜냐하면 요정님은 고귀한 존재니까.
예, 고귀하신 요정 나으리.
그럼 쟤 내려가고 난 뒤에 안타 때려도 되는 거다? 맞지?
ㅇㅅㅇ : ……?
ㅇㅅㅇ : 무슨 소리……?
꼭 쟤한테 안타 때려야 한다고 한 적 없잖아?
요정님은 한 입으로 두말 안 한다며? 설마 고귀하신 요정님이 미천한 인간 따위한테 했던 말 바꾸기를……?
ㅇㅁㅇ : …….
ㅇㅁㅇ : …….
ㅇㅁㅇ : …….
왜?
2
짐은 내 내기와는 별개로 엄청나게 잘 던지고 있다. 좋다. 연장까지 가더라도 나쁘지 않다. 어쨌거나 타석에 한 번은 더 들어갈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아마 개리 쟈니본인지 쟈니 개리본인지 하는 그 양반, 지금쯤 눈알이 튀어나와 있을 거다.
짐이 이런 투수라는 건 전혀 몰랐을 테니까.
“아웃!”
빗맞은 타구가 내야를 데굴데굴 굴러서 유격수 땅볼 아웃.
더블A라지만 상대 타자들의 수준이 그렇게 낮지는 않다.
그런데 6회 초인 지금, 경기 시작 후 16타자 연속 범타. 삼진은 6개째. 1회를 3타자 연속 삼진으로 시작한 것치고는 삼진을 그렇게까지 많이 잡진 못했지만, 타자들은 아직도 감을 못 잡고 있다.
처음 보는 타자와 투수가 만나면 투수가 유리하다. 그런데 자신들이 알고 있던 그 투수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으니 투수에게 지극히 유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투수 체력 : 81%.] [투수 컨디션 : 최상.] [투수 자신감 : 97%.]대체로 체력이 30~40% 아래로 내려가면 구위가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공이 존 위로 뜨고 구속이 떨어진다. 움직임이 밋밋해지고 결국 정타를 허용하게 된다.
그런데 5.1이닝을 던지고 남은 체력이 81%?
최근에는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던, 완투형 에이스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이제 패턴을 바꾸자.’
거의 두 바퀴가 되어 가는 지금.
아무리 짐의 컨디션이 최상이라 하더라도, 슬슬 공이 눈에 익을 때가 됐다.
지금까지는 위력적인 포심에 체인지업을 섞고 눈속임용으로 커브를 던져 왔다.
사실 커브는 앞으로도 안 쓰는 게 좋을 것 같긴 하다. 폭투가 나올 정도로 제멋대로 날아가진 않는데 각이 날카롭지 못하다.
‘초구 슬라이더.’
대신, 짐의 또 다른 구종이었던 슬라이더가 있다.
물론 내가 아는 그 완성된 짐의 슬라이더 정도는 아니지만.
“스트라이크!”
타자는 포심만 노리고 들어왔는지, 확 달아나는 슬라이더를 헛치고는 살벌한 표정으로 짐을 노려보고 있다.
눈싸움 지지마. 쫄면 지는 거야.
‘몸 쪽 높은 코스 포심. 턱 바로 앞으로.’
눈에 살기를 띠고 투수를 노려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자.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슬라이더를 때리기 위해 홈으로 바짝 붙은 타자에게는 이런 거 하나 쯤 던져 줘야 모양이 산다.
“볼!”
오. 아슬아슬.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다.
사실 투수가 이런 상황에서 이런 공을 던지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떤 미친놈이 빈볼로 퍼펙트를 날려 먹을 생각을 하겠는가.
하지만 짐은 거의 무아지경으로 내가 요구하는 곳으로 던지고 있다. 스킬빨도 있겠지만, 아마 짐도 왜 여기에 공을 던져야 하는지 알고 있을 거다.
사실 내 지론은 투수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던지란 곳으로 던지면 대부분은 결과가 좋다.
뭐,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공이 구리면 얻어 터지는 거지만.
“…….”
타자가 날 노려보며 구시렁거린다.
뭐 어쩌라고. 할 말 있음 제대로 하던가. 들리지도 않는데 뭐라는 거야?
“스트라이크!”
눈 깔아라, 이 양키 놈아.
“스트라이크-아웃!”
아.
캐나다인이구나.
양키라고 해서 미안.
캐나다 사람은 양키 아닌 거 맞지?
3
타자가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삼구 삼진을 당할 때?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할 때?
9회 말 끝내기 찬스에서 병살을 때렸을 때?
언제게? 맞혀 봐, 응?
ㅡㅅㅡ : …….
야, 삐지지 마라.
살다 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지.
어쨌거나 지금은 7회가 끝나고 공수 교대 시간.
두 팀 투수 모두 미쳐 버렸다 아주.
짐은 저 투구 폼으로는 첫 실전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피칭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짐의 호투에 내 역할이 어마어마했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Y.J.라이프.
쟤도 완전 미친놈이다.
저 정도 던졌으면 악력이 떨어질 법도 한데, 허리 위로 들어오는 힘 빠진 실투가 한 번도 없을 정도다.
“저 자식, 지금 몇 구째지?”
“81구.”
“젠장.”
우리 타자들도 그렇게까지 기량이 달리는 편은 아니다. 아니,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꽤 있다. 그런데 하필 오늘 같은 날, 상대 투수의 컨디션도 아주 하늘을 꿰뚫고 있다.
“빈! 공을 쪼개 버려!”
“그래! 넘겨 버려!”
사실 이런 상황에서 홈런 스윙을 하는 건 장단점이 있다.
분위기 자체가 1점 차 승부다.
여기서 홈런을 때리면 바로 승부의 추가 기울어지지만, 홈런이 어디 그리 쉽게 나오는가.
하지만 연속 안타 세 방으로 점수를 노린다는 것도, 이런 상황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투수전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양 팀 타자 모두가 큰 거 한 방만을 노리고 타석에 들어서다 보니, 되려 정타가 잘 나오지 않는다.
“볼!”
2스트라이크까지는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더블A라 젊은 선수들이 대다수다 보니, 다소 성급하게 배트가 나가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이 투구 수를 아껴 주기도 했고.
“스트라이크!”
방금 그 공은 그냥 볼로 잡아 줘도 나쁘진 않을 뻔했는데.
슬며시 번트 그립을 잡아 본다.
자세는 취하지 않고, 살짝 배터 박스에서 물러나 그립만.
번트를 댈 생각은 없다.
그냥 뭐, 투수 속을 살짝 긁어 주는 정도…….
“스트라이크!”
음. 속 긁기는 실패다.
배트를 짧게 쥐고 양손의 간격을 조절했다.
딱 한 대.
한 대만 치면 된다.
이 내기에 실패하면 왼손으로 비비고를 버리면 되기는 하지만, 스킬은 당연히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다.
“파울!”
“파울!”
“볼!”
“파울!”
“볼!”
풀카운트.
이 타석의 목표는 단타다.
스트라이크존을 적당히 설정하고 조금만 비슷하면 손목을 부드럽게 하고 스윙한다.
어설프게 강한 힘을 주면 평범한 땅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타이밍을 맞추기 힘든 상황이니까.
대신, 구종이 뭐든 실투가 나오면 가볍게 밀어 쳐서 1루와 2루 사이를 꿰뚫는 타구를 날리려는 게 내 계획이다.
“파울!”
“파울!”
“파울!”
투수가 한 타자에게만 10구 정도 던지면 짜증이 마구 치밀어 오르게 되어 있다.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잔뜩 힘이 들어간 공을 던지면, 내가 그걸 노려서 치는 거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흥분 상태에서 던지는 바로 그… 이런 공!
“스트라이크-아웃!”
…….
이 상황에서 바운드되는 체인지업을 던져?
내가 스윙 안 하면 퍼펙트 깨지는데?
아니, 이런 미친놈을 봤나.
4
두 투수의 퍼펙트는 결국 깨졌다.
짐은 8회와 9회에 볼넷을 각각 하나씩 내줬고, 라이프는 8회에 몸에 맞는 볼 하나를 내주었다. 그리고 우리 3번 타자이자 내 앞 타자인 폴 데이먼에게 텍사스 안타를 내줬지.
상대 팀의 감독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투수를 바꾸진 않았다.
“빈! 끝내 버려!”
“그래! 공을 쪼개 버리라고!”
뭔가 도움 안 되는 응원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나는 간곡하게 소리 지르는 케이스와 제프에게 손을 들어 준 후, 천천히 배터 박스로 나갔다.
상대 투수는 어느새 110구 가까이 던졌다.
젠장, 그냥 바꿔 주지. 뭐하러 끝까지 던지게 해? 어린 투수를 보호할 줄도 모르나?
이래저래 최선은 여기서 끝내는 거다.
9회 말 2아웃, 주자 1루.
내 오늘 전적은 완패다. 삼진도 당했다.
완전히 당했지만, 바꿔 말하면 이제 칠 때도 됐다는 이야기 아닌가.
타석에 들어서서 투수를 노려보았다. 땀을 비오듯 흘리는 게 꽤 힘들어 보인다.
“볼!”
거의 눈높이로 공이 들어온다.
이번 이닝 들어서 공이 뜨기 시작하더니, 결국 악력이 다한 것 같다.
이러면 존 중앙부터 약간 상단까지, 실투로 들어오는 포심 패스트볼을 노린다.
“볼!”
“볼!”
어, 이거.
이러면 나가린데.
ㅎㅅㅎ : 곧 출루하겠군.
ㅎㅅㅎ : 축하한다.
ㅎㅅㅎ : 큭큭큭.
하지만 저 친구, 키워드에 에이스가 있었지.
에이스 키워드를 가진 투수들은 쓸데없는 자존심이 강하다.
스트레이트 볼넷 같은 건 정말 죽어도 내주기 싫어하지.
대체로 그렇다. 볼넷을 주더라도 볼 네 개를 연속으로 던지는 건 끔찍하게도 못 버틴다. 제구 실수라면 몰라도. 어쨌거나 제구력이 나빠 보이는 것도 죽도록 싫어하는 게 저런 족속들이다.
이런 걸 안 노리고 볼넷을 노린다면 내 짬밥이 우습지.
따악!
봤냐, 요정?
이게 바로…….
ㅇㅁㅇ : …….
끝내기 홈런이다! 짐의 노 히터 승리는 덤이지!
흠. 덤 치곤 너무 큰가?
ㅇㅁㅇ : …….
오늘따라 입 자주 벌린다,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