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2)
홈플레이트의 빌런-163화(163/363)
# 163
Rivals (6)
1
“으아아아악!”
폴 대븐포트는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악몽.
악몽을 꾼 대븐포트는, 아직 새벽 4시임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제기랄…….”
꿈에서 대븐포트는, 주자 1, 3루 상황에서 수비를 하고 있었다.
주자는 둘 다 홍빈. 심지어 타자도 홍빈.
1루 주자 홍빈이 도루를 시도했고, 대븐포트는 2루로 송구했다. 그러자 3루 주자 홍빈이 홈으로 달려들었는데, 2루수가 홈으로 던진 공을 받은 대븐포트의 태그를 피해 홍빈이 텀블링하며 득점에 성공했다. 자이언츠 팬들은 야유를 퍼부었고, 그사이 1루 주자였던 홍빈은 3루까지 파고들었다. 그 후 타자 홍빈은 펜스를 직격하는 타구를 때렸고, 그때 홈을 밟은 3루 주자 홍빈이 대븐포트에게 외쳤다.
“겁쟁이!”
대븐포트는 후속 플레이에 집중했다. 타자 홍빈이 전력 질주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홈으로 파고들 거라는 것을 알았다.
외야수의 송구가 괜찮았다. 하지만 타자 홍빈은 3루에서 단번에 점프해 대븐포트의 머리 위를 뛰어넘은 후, 홈을 밟았다.
첫 경기 이후, 두 번째 경기와 세 번째 경기에서 지독하게 당했다.
이제 대븐포트에게 홍빈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버렸다.
트라우마라는 게 쉽게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생기고 나면 사라지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이다.
뒤척이다 겨우 잠든 대븐포트는, 꿈에서 또 한 번 홍빈을 만났다.
“보고 있냐, 개자식아…….”
잠든 대븐포트는 자는 와중에도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꿈에서 한 경기 홈런 네 방을 날린 후, 패배를 인정한 홍빈이 무릎 꿇고 있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꿈에서 깼을 때, 대븐포트는 오히려 슬펐다.
대븐포트도 무서울 게 없었던 최고의 유망주 출신.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대븐포트를 보고 환호했고, 지난 시즌 초중반만 하더라도 차기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포수가 될 거라고 기대를 한 몸에 받았는데.
홍빈이 등장한 이후, 모든 게 사라졌다.
최근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는 유망주들이 동시에 폭발하고 있는 두 팀의 이야기.
내셔널리그의 필리스와 아메리칸리그의 애슬레틱스.
두각을 드러내는 유망주를 이야기할 때 대븐포트도 슬쩍 끼긴 하지만, 끝에 한두 줄 정도 언급되는 게 다였다.
사실, 대븐포트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 깃발 좀 날릴 수 있는 선수다.
하지만 자존심이란 게 있지 않은가.
대븐포트는 아침에 일어나 그 어느 때보다 빨리 구장으로 향했고,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모든 게 자신의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홍빈을 이기기 위해서.
홍빈에게는 의도치 않은 일이겠지만, 약간의 스타병 기질을 보이기 시작하던 대븐포트가 전과는 달리 더욱 진지한 태도로 야구를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2
원정이든, 홈이든 4연전은 뭔가 모르게 조금 힘든 느낌이 들곤 한다.
일 년에 한 번씩 맞붙는 것도 아니지만, 다른 팀과 경기를 하다 보면 특정 팀에 대한 기억이 조금은 희석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분석을 한다 하더라도 그렇다.
자료는 한계가 있다. 직접 보고 피부로 느끼는 것이 최고다. 백문이 불여일견.
어쨌든 지금은 완전히 실력만으로 붙어야 하는 시기다.
우리는 대븐포트의 괴력을 주의하고, 자이언츠는 외야 수비에 신경 씀과 동시에 우리의 주루 플레이를 많이 신경 쓸 거다.
서로 보여 줄 건 다 보여 준 후에는 잔재주가 통하지 않는다.
ㅇㅅㅇ: 초소형 포수의 유일한 무기가 통하지 않으니 힘든 경기가 되겠군.
아니.
네가 간과하고 있는 건, 이번 시리즈에서 아직 홈런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 정도의 타자라면 지금쯤 홈런이 나올 때가 됐지. 뛰어서 만든 홈런 말고 넘겨서 만든 홈런.
ㅎㅅㅎ: 과연 할 수 있을까.
당연한 걸 왜 묻냐.
게다가 오늘 선발 매치업도 공교롭게 5선발전이다.
자이언츠의 브릭 덴트는 3년 전에 데뷔했다가 토미존 서저리를 겪은 뒤 작년 말에 복귀한 투수고, 필리스는 필이 선발로 나선다.
우리 팀은 선발진이 상당히 강하다. 아니, 로테이션의 짜임새만 보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강할지도 모른다.
짐과 쇼는 1선발이 가능한 투수다. 로즐은 아직까지는 후하게 쳐 줘서 2선발이지만, 내 기억과 똑같이 성장한다면 짐보다 약간 안정성 떨어지는 1선발급이 된다.
팀의 4선발인 거프는 우리 팀이라서 4선발이지, 좌완 싱커볼러라는 이점을 살리면 팀에 따라서는 2~3선발까지도 가능한 자원이다.
필도 5선발로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주는 선수인 데다가 좋은 사람이지만, 안정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안정감이 떨어지는 건 상대 선발투수도 마찬가지고, 그게 어쩌면 오늘 경기가 타격전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예감의 이유다.
딱!
“세이프!”
그리고 선두 타자 라이언이 가볍게 밀어 친 타구로 1루에 도착한 후, 필의 컨디션만 괜찮다면 완승을 거둘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선발이 제 몫을 해 주고 상대 선발이 초반부터 흔들리면 이길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리고 최근 쾌조의 타격감을 보이고 있는 에이머가 타석에 나섰으니…….
탁!
“아웃!”
“아웃!”
어라?
병살이네?
에이머답지 않게 초구에 힘없는 스윙을 했고, 자이언츠 팬들이 휘파람을 불어 댔다.
하긴 에이머한테도 호되게 당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뭐 준비할 겨를도 없이 타석에 나섰는데…….
“…….”
이놈은 눈빛이 왜 이래?
대븐포트가 눈빛으로 살인이라도 할 것처럼 날 노려보고 있다.
“왜, 뭐 할 말 있냐?”
“…….”
할 말도 없는데 뭘 이렇게 노려본다냐.
하긴 이놈한테 들은 말이라곤 개자식뿐이니까.
[브릭 덴트] [우투우타, 선발투수] [키워드: 불나방, 배트 브레이커, 좌타 천적]키워드를 보면 조금 골치 아프긴 하다. 하지만 자이언츠는 불펜 소모도 컸으니까 불나방처럼 막 던지고 내려가면 경기 후반에 뭔가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에이머에게는 차라리 우타석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해야겠다.
“스트라이크!”
처음 상대해 보는 투수이기에 초구를 지켜봤는데, 존 끄트머리로 절묘하게 공이 꽂힌다.
제구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
“야.”
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웬일로 개자식이라고 안 부르지?
“왜, 개자식아.”
“너 잘났다, 개자식아.”
“이제 알았냐, 개자식아.”
“어제 알았다, 개자식아.”
“이제라도 알았으면 다행이네, 개자식아.”
“좋아. 오늘 개자식 배틀인가? 야구나 하자고, 친구들.”
별 웃긴 놈 다 보겠네.
뭐 어쩌자는 건지.
“스트라이크!”
어라.
변화구가 존을 벗어날 줄 알았는데, 밋밋하게 존으로 들어온다.
슬라이더 무브먼트가 구리니 이런 일도 생기네.
“야.”
“부르지 마, 개자식아.”
“…….”
“언젠간 네놈을 따라잡고 말 거다, 개자식아.”
응?
딱!
묘하게 먹음직스러운 공이, 짧은 인터벌로 훅 하고 들어왔다.
이 정도면 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손목을 돌려 살짝 밀어 쳤는데…….
“아웃!”
2루수의 다이빙 캐치에 걸리고 말았다.
ㅎㅅㅎ: 풉.
이거 설마…….
저 돌대가리한테 말린 거?
ㅋ□ㅋ: 이제 누가 더 돌대가리지?
너.
ㅇㅅㅇ: 아니, 너.
너라고.
3
따악-!
“갑니다!”
눈빛부터 달라진 대븐포트는, 첫 타석 초구를 강하게 당겨 쳤다.
첫 경기에서 스플래시 히트를 친 후 그 손맛을 못 잊어 무의식적으로 밀어 치던 대븐포트가 오랜만에 제대로 당긴 타구.
필 레이건이 못 던진 것도 아니었다.
위험하긴 하지만 살짝 높은 몸 쪽 패스트볼.
완전히 집중력을 발휘한 대븐포트의 타구는 조금 높게 뜨긴 했지만, 펜스를 넘기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1 대 0으로 앞서 나가는 자이언츠! 폴 대븐포트가 자신의 장타력을 과시합니다!”
깔끔하게 당겨 친 홈런.
홍빈은 즉시 이 경기에서 폴 대븐포트를 상대로 짠 전략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몸 쪽, 바깥쪽을 번갈아 공략해 재미를 보고 있었는데, 간파당한 것처럼 그대로 당했으니.
5선발 간의 맞대결임에도 경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안타, 병살. 볼넷, 병살.
양 팀은 5회까지 삼진을 각각 한 개씩밖에 기록하지 못했지만 점수는 여전히 1 대 0으로, 야수들의 몸을 던지는 수비가 이어지고 있었다.
“에이머 시나! 4구를 때립니다! 파울 지역으로 뜨는 타구, 오! 폴 대븐포트가 그대로 미끄러지며 어려운 타구를 처리합니다. 홈 팬들의 박수를 받는 대븐포트!”
“바운드되어 살짝 빠지는 공! 오! 홍빈이 뒤로 빠질 뻔한 공을 묘기처럼 발로 잡아 둡니다! 그리고 1루로 송구! Yeah! 공이 빠지는 줄 알고 2루로 살짝 이동했다가 중심을 잃은 주자를 잡아냅니다! 폭투 위기를 막아 내며 오히려 아웃 카운트 하나를 따내는군요! 필 레이건이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칩니다!”
평소에 훌륭한 수비력을 보여 주었던 홍빈뿐만 아니라, 대븐포트마저 포수로서 수비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8회 초.
좌타석에 들어서서 완벽한 대칭을 사용한 홍빈은, 바뀐 투수의 2구째 스플리터를 공략해 2루타를 터뜨렸다.
“깔끔한 스윙이죠. 레드 빈이 이닝 선두 타자로 나서 2루타를 치며 팀의 동점 주자로 나섭니다.”
홈런이 되기에는 다소 짧았지만, 좌익 선상을 타고 흘러, 걸어서 들어가는 2루타.
홍빈은 자세를 낮게 잡고 기회를 기다렸다.
“볼!”
“파울!”
“스트라이크!”
“볼!”
“파울!”
한동안 좋지 못했던 진 테프먼의 타격감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6구째.
따악!
“진 테프먼의 타구가 우익수 옆에 떨어집니다!”
“홍! 홍이 달립니다! 홈을 노립니다!”
“우익수! 앞으로 한 발 뛰어나오며 홈으로 바로 던집니다! 좋은 코스!”
접전 상황.
그 순간, 경기에 완전히 집중해서 실력을 발휘하던 대븐포트의 머릿속이 갑자기 하얗게 변해 버렸다.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좋은 활약을 보이고는 있었지만, 홍빈을 따라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대븐포트의 마음속 어딘가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텀블링?’
그 장면이 너무도 강렬하게 대븐포트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걸 당한 후, TV든, 인터넷이든 그 장면이 지겨울 정도로 나왔다.
자신이 정말 바보처럼 보이는 그 장면이.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홍빈과 눈이 마주쳤다.
‘하늘을 보고 있어?’
대븐포트는 두 번은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상체를 들었다.
그대로 태그하면 된다.
그대로 홍빈의 몸에 미트를 스치기만 하면 된다.
“세이프!”
하지만 대븐포트의 미트는 허공을 갈랐다.
갑자기 몸을 숙여 옆으로 한 바퀴 구른 후 슬라이딩을 시도한 홍빈 때문에 몸에 미트가 닿지 못했다.
우습게도, 길목으로 팔을 뻗기만 하면 동점 주자를 막아 낼 수 있었는데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홍빈의 재치 넘치는 슬라이딩에 당해 버린 것이다.
“Whoooo!”
대븐포트가 무릎을 꿇고 자신의 미트를 내려다보는 사이, 홍빈은 어퍼컷 세리모니를 하며 원정 팀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개자식…….”
대븐포트가 아련한 눈빛으로 홍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1 대 1.
모든 게 자신의 잘못으로만 느껴졌다.
4
연장 11회 초. 스코어는 여전히 1 대 1.
나는 타석에 들어서며 2루에 있는 에이머에게 외야로 공을 띄우겠다고 신호를 보냈다.
이번 경기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댄 벨과 스캇, 보더 켈리가 모두 투입되었다.
오늘 경기가 끝나면 홈으로 이동해 하루 쉴 수 있기에 총력전이 펼쳐지고 있고, 그건 자이언츠도 마찬가지다.
상대 투수는 자이언츠의 셋업 맨인 도우 블랜튼.
나는 심호흡하고 진지한 태도로 타석에 들어섰다.
대븐포트와 나는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말장난할 타이밍은 아니다.
[도우 블랜튼] [우투우타, 중계 투수] [키워드: 파이어볼러, 강심장]“볼!”
96마일의 날카로운 패스트볼이 마치 코앞을 스치듯 지나간다.
멀리 떨어지라는 경고일 테지만, 당연히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아까보다 더 가까이 섰다.
‘패스트볼, 슬라이더.’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삼는 투 피치 투수라면 당연히 바깥쪽을 내줘선 안 된다.
아까 좌타석에서 완벽한 대칭을 한 번 사용했기에, 우타석에 들어섰으니 더 그렇다.
일단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갔으니 다음 공이 바깥쪽으로 오면 하나 버린다. 그리고 오픈스탠스로 살짝 바꿔서 몸 쪽 공 대응력을 높인다.
내가 노리는 대로 몸 쪽으로 오면, 지구를 쪼개 버릴 정도로 강하게 스윙할 예정이다.
손맛.
손맛을 보고 싶다.
몸 쪽으로 하나 와라.
따악-!
모든 게 맞아떨어지면, 모든 게 맞아떨어진 스윙에 공이 제대로 맞으면 손에 둔탁한 통증조차 없이 깔끔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방금 타구가 그랬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홈런에, 이번엔 정말 나도 모르게 배트 플립을 해 버렸다.
3 대 1로 앞서 나가는 홈런을 연장전에서 때려 낸 기분은 정말 끝내준다.
끝내주는 기분에 그레이는 마운드에 올라와 안타 하나와 볼넷 하나를 내주긴 했지만,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경기가 끝난 후, 대기 타석에서 자신의 기회를 기다리던 대븐포트의 쓸쓸한 모습을 보았다.
음. 뭔가 묘한 느낌이긴 하다.
뭐, 그래도 이겼으니 됐다.
이번 원정은 뭔가 엄청 길게 느껴졌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다.
우리 미친 팬들과 아리아나를 만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