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3)
홈플레이트의 빌런-164화(164/363)
# 164
Trash bin (1)
1
5툴 플레이어라는 건 잘하면 다재다능이지만 못하면 0툴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측면에서 어정쩡한 선수에게 5툴 플레이어라는 이름을 붙이진 않는다.
ㅇㅅㅇ: 어정쩡한 초소형 포수를 이야기하는 건가.
아니. 솔직히 나 정도면 역대 최고의 5툴 플레이어지.
네놈이 인정 안 해도 성적을 보면 답이 나온다.
타율 0.431, 출루율 0.482, 장타율은 아름답게 1.029.
이것만 봐도 타격이랑 파워는 리그 최정상급도 아니고 그냥 최정상.
홈런 16개에 35타점 26득점, 도루는 5개에 성공률 100%.
도루 저지율은 아직은 무려 80%.
고작 30경기 한 시점이라 비율 스탯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이 정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감이 생기기에 충분한 일이다. 2경기당 홈런 하나 이상인 페이스면 누적 스탯도 장난 아닌 거거든.
지난 시즌에는 조금 왔다 갔다 하면서 2할대까지 내려간 기억이 있긴 하지만, 이쯤 되면 자신감을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은 맞다.
물론, KBO 시절에 이것보다 더 좋은 출발을 한 적도 있다.
언제 한 번은 두 달 동안 5할을 치고 홈런 25개를 친 적도 있다.
결국, 3할 7푼에 48홈런으로 시즌을 끝냈던가.
그땐 조금 조급했고, 안타를 하나라도 더 쳐야 한다는 생각에 승부를 피하는 투수들이 던진 안 좋은 볼에도 배트가 나가곤 했다.
사실, 꽤 좋은 경험이었다.
아무 공에나 배트를 내 보고, 볼 세 개까지는 배트를 아예 내밀지도 않아 보고, 오픈스탠스로 바꿨다가 스퀘어스탠스로도 해 봤다가 도어 스윙, 아웃 스텝, 그립 수정이나 배터 박스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는 등 안 해 본 것이 없다.
이거 저거 해 보면서 느낀 건, 안 될때는 뭘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게 야구가 한 번 안 되면 갑자기 무지막지하게 안 되는 시기가 있다.
엄청나게 잘되다가도 그건 예고 없이 찾아온다.
징조 같은 건 있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그런 게 아예 없을 때도 있다.
갑자기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고, 미묘하게 타이밍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홈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하루를 쉬고 가진 내셔널스와의 경기.
[NL 동부 지구 선두 필리스, NL 동부 지구 4위 내셔널스에 3 대 1 패배.] [원정 10연전에서 9승 1패를 올리고 돌아온 필리스. 홈에서는 3연패 중.] [에이머 시나-홍빈. 합계 8타수 무안타.] [3안타 빈공 필리스, 내셔널스에 일격을 당하다.] [필리스 감독, ‘내일부터 잘할 거다.’]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법이다.
우리 팬들은 욕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격한 반응은 아니었다.
최근 10경기에서 8승 2패. 특히 원정 10연전에서 9승 1패를 하고 돌아왔으니 팬들이 조금은 관대해져 있는 탓이기도 했다.
“뭐 어때. 안타 하나 못 쳐도 4할 타자잖아?”
원정을 떠나 있는 동안 꽤 바빴다던 아리는 그래도 내게 시간을 내줬고, 아버지가 메이저리거인 탓인지 오히려 별거 아니라고 말해 줬다.
하지만 내셔널스와의 2차전.
2 대 0으로 지고 있는 9회 말.
나는 오늘도 3타수 무안타에 그치고 있고, 2번으로 나섰던 에이머조차 4타수 무안타에 그치고 있다.
진 테프먼은 안타 하나를 때렸고 주머는 볼넷 하나를 얻었지만, 점수를 내는 데는 실패.
안타는 모두 하위 타선에서 터졌고, 슬슬 팬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어제 한 경기 정도는 그냥 아량으로 넘어가 주겠지만, 2연패는 절대 안 된다… 뭐 그런 거겠지.
“설마 이대로 집에 가라는 건 아니겠지!”
“백투백투백 홈런을 때리면 용서해 주겠어!”
“좋아. 이제 칠 때야. 오래 기다렸다고!”
“레드 빈! 레드 빈!”
원정 10연전 기간에 내 성적은 무려 44타수 21안타였다. 홈런 6개에 16타점, 5개의 2루타에 3루타도 3개. 그야말로 거의 씹어 먹은 수준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우리 팬들은 내가 이틀 연속으로 삽질을 하고 있는데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욕을 좀 덜하는 편이다.
홈런도 좋지만 2루타 정도를 때려 내서 흐름을 이어가는 게 경기를 뒤집는 데는 훨씬 효과적일 테지.
[저스틴 다윈] [우투우타, 중계 투수] [키워드: 그라운드 볼러, 소방관, 명경지수]내셔널스의 마무리 투수가 날 기다리고 있다.
실력에 비해 저평가받은 선수고, 나중에는 레드삭스에서 데려가 펜웨이 파크의 수호신으로 써먹는 선수다.
어쨌든, 우리 팬들이 내게 관대한 만큼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욕받이 토템 사용.’
[월드클래스 관심 종자 스킬의 히든 유틸리티 욕받이 토템을 사용합니다!] [욕받이 게이지: 5%]응……?
왜 5%밖에 안 되는 거지?
분명 안타 치고 잘할 때도 이거보다 높았던 거 같은데?
하긴 뭐.
헛스윙 한두 번이면 풀로 찰 텐데. 그 전에 먼저 때리면 훨씬 더 좋지만.
우완 스리쿼터 스타일의 하드 싱커 볼러가 왼발을 들고 투구 동작을 시작했다.
높은 코스…….
“스트라이크!”
…에서 뚝 떨어지는 커브.
시원하게 배트를 돌리고 게이지를 채우려 했는데, 그대로 돌렸다간 유격수 앞 땅볼로 게이지 채우기도 전에 물러날 뻔했다.
그나저나, 커브를 떨어뜨려 존으로 넣는 걸 보면 확실히 좋은 마무리 투수다.
“다음번엔 날려 버려!”
“레드 빈! 넘겨 버려도 괜찮아!”
[욕받이 게이지: 9%]음?
게이지 고장 난 거 아니냐? 응? 요정?
ㅇㅅㅇ: 미친 필리스 팬들이 널 정말 사랑하나 보군.
ㅇㅅㅇ: 축하한다.
축하는 무슨. 얼어 죽을.
그렇다 이거지?
내 활약에 반해서 내가 못해도 계속 응원들 하시겠다?
이걸 진짜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욕받이 토템에는 조금 미련을 버려야 할 것 같다.
뭐야 대체.
“스트라이크!”
[욕받이 게이지: 19%]두 번째 공은, 확실히 존 아래로 공 한 개 반 정도는 낮게 떨어진 싱커였는데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잡아 줬다.
경기 초반이라면 차라리 낮은 코스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9회 말.
이건 활용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나는 평소에 심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꽤 노력한 편이었지만, 여기서는 한마디 정도는 해야 한다.
“스티브, 방금 건 정말 아니에요. 거프는 오늘 하루 종일 그 코스를 볼로 판정받았다고요.”
“좆 까. 타석으로 돌아가.”
주심 스티브는 살짝 턱을 움직이고 가만히 있었지만, 포수 본 베일리는 거칠게 말하며 방금의 판정을 옹호했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저걸로 삼진을 당했다면 더 강하게 항의를 해야 했겠지만, 지금은 노 볼에 2스트라이크.
조금 더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고, 심판이 내 항의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기에 다음에 저 공이 오면 판정이 어떻게 될지 힌트조차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젠장.
욕받이 게이지 차는 스피드가 주머 달리기 속도랑 비슷하네.
“파울!”
존이 흐릿해지면 볼을 받아 낼 수 있을 법한 공도 걷어 내야 한다.
“파울!”
“파울!”
“파울!”
[욕받이 게이지: 17%]게이지가 오히려 줄었다.
팬들이 보기에 이 상황은, 그들의 간판타자가 불리한 볼카운트에도 투수와 치밀한 수 싸움을 하고 있고, 여전히 안타를 때려 낼 확률이 높은 상황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강속구를 가지지 못했지만 훌륭한 싱커와 커브를 가진 저 마무리 투수가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타자의 허를 찌르는 공격적인 높은 패스트볼.
그 코스의 공은 방심하고 있을 때는 공략하기 쉽지만,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외야로 타구를 보낼 수 있는…….
딱!
“아웃!”
…….
커브네?
“Booooooooooo!”
“개자식아! 밖에선 잘하더니 왜 홈에 와선 그 지랄이냐!”
“제대로 때리라고! 멍청한 자식!”
“그걸로 끝이냐? 끝이냐고!”
[욕받이 게이지: 67%]…….
조금만 빨리 채워 주지 그랬나.
2
[워싱턴 내셔널스 2 : 0 필라델피아 필리스.] [필리스, 갑자기 식어 버린 방망이.] [에이머 시나-홍빈, 오늘도 동반 침묵.] [두 경기 만에 인내심이 바닥난 필리스 팬들.] [시즌 첫 2경기 연속 무 안타 및 무 출루 홍빈.] [폴 대븐포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상대로 2경기 연속 홈런포 작렬.] [홍빈, 두 경기 연속 침묵으로 타율 대폭 하락.]└기레기 ㅆㅂ 대폭 하락해서 4할인데 낚시성 기사 보소.
└이야, 대폭 하락해서 4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빠따는 안 맞는 날도 있는 거다.
└ㅋㅋ이제 거품 꺼진다. 타율 떡락 예상함.
└거품 꺼지고 나니 4할이네.
└그래도 좀 걱정되는데;
└홍빈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 메이저 4할 타자 걱정은 왜 하냐. 니 인생이나 걱정해라, 방구석 여포 새끼들아.
└왜 그러냐. 그렇게까지 풀발할 일이냐?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남들 밥 먹듯이 하는 2경기 연속 무안타로 화제가 되네. 홍빈이 난놈은 난놈이여
└영근) 미래에서 왔다. 내일 홍빈 5타수 5홈런 40타점이다.
└뭐래, 이 미친놈이 ㅋㅋㅋㅋㅋㅋ
3
-난 이제 점심 먹을 거야. 저녁에 경기 보러 갈게. 우리 팬들 입을 닥치게 만들어 줄 거지? <아리♡>
필리스 팬이자 필리스 팬의 딸이며 필리스 선수의 딸인 아리는 확실히 이런 면에서 대범한 성격이다.
이틀 연속 두 점 차 패배는 최근 호조로 기분이 좋아졌던 필리스 팬들의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성질 급한 사람들.
어쨌든, 조급해하는 건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 마련이다.
평소처럼 준비하고, 평소처럼 경기하면 된다.
“헤이, 홀든!”
“응?”
옆에서 눈치를 보던 홀든이 내게 우물쭈물하며 다가온다.
아마 내게 배트를 하나 더 얻고 싶었을 텐데, 내가 이틀 동안이나(!) 안 맞아서 다가오기 좀 그랬던 것 같다.
“자, 받아.”
“오… 고마워.”
굳이 홈런을 친 배트라고 거짓말하지는 않았다.
아마 내일이면 켄트가 팀에 복귀할 테니 홀든으로서는 조금 마음이 급해졌을 거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배트를 받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기 자리로 달려간 홀든은, 그 배트에 정성스레 테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ㅍㅅㅍ: 공 한 번 맞힌 적 없는 새 배트를…….
그게 뭐.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뭐.
클럽 하우스 분위기는 2연패로 인해 그렇게까지 들떠 있진 않았지만, 또 처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 저놈 빼고.
“제기랄. 그 자식이 어제도 홈런을 쳤더라. 네놈이 못 치고 있을 때 내가 홈런을 막 때려서 홈런왕이 되어야 하는데.”
“좀 쳐라. 미친 듯이 삼진만 당하지 말고.”
“그건 네 녀석도 마찬가지잖아.”
“난 그래도 4할이니까 괜찮아.”
“제기랄.”
에이머는 똥 씹은 표정으로 내 앞을 휙 지나갔다. 스윙 연습이나 하러 갔겠지 뭐.
사실 두 경기 졌다고 과민 반응 하는 건 우리 팬들이나 극성인 언론뿐이다.
팀 성적이 25승 10팬데.
3연패쯤 더하면 또 몰라도.
몇몇 기자들이야 호들갑을 떨면서 내게 부진의 원인이 뭐냐고 물어봤지만, 부진이라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부진이요? 제가 2할대로 타율이 내려가면 그때 그 단어를 쓰는 걸로 하죠.”
“특별할 건 없어요. 오늘도 어제랑 똑같이 스윙할 겁니다.”
시답잖은 질문에는 그냥 대충대충 대답해 주고, 타격 훈련이 끝난 뒤 내게 사인을 받으러 온 근심 걱정에 가득 찬 꼬마 팬에게 이렇게 대답해 줬다.
“오늘 홈런을 치고 그 배트를 네게 선물해 줄게. 걱정 말고 나만 믿고 기다려.”
꼬마는 우리 더그아웃 바로 위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냥 그렇다.
일희일비하면 정말 심장과 정신 건강에 해로운 스포츠가 야구지만, 사실 또 그런 맛으로 보는 게 야구 아니겠는가.
평소에 하던 대로 준비를 하다 보면 또 경기가 시작된다.
“스트라이크-아웃!”
“아웃!”
“아웃!”
쇼는 깔끔하게 1회 초를 삼자범퇴로 막았다.
사실, 우리가 이틀 연속 진 게 화제가 된 것도 상대가 내셔널스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필리스를 제외한 모든 메이저리그 팀을 적대시하는 우리 팬들은, 특히 같은 지구의 팀이라서 더 과민 반응 했을 뿐이고.
현시점에서 최강 팀으로 지목받는 우리 팀이 최약체 중 하나에 져서 그런 것도 있고.
배트는 언제고 차갑게 식을 수 있다.
“아웃!”
“스트라이크-아웃!”
그리고 그 차갑게 식은 걸 얼마나 빠르게 뜨겁게 달굴 수 있느냐가 스타플레이어와 보통 선수를 가르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
“넌 아직 멀었어.”
“젠장.”
시원하게 삼진을 먹고 돌아오는 에이머를 한 번 놀려 준 후, 타석으로 나섰다.
절대 당황하거나 조급해해선 안 된다.
난 모든 공을 펜스 너머로 날려 보낼 수 있다.
어떤 투수든 두들겨서 더그아웃으로 쫓아낼 수 있다.
뭐 그런 마음가짐으로 야구를 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에이머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다니까. 스타플레이어가 되려면 아직 멀었지.
“베일리, 굿-레드 빈 할 차례니 투수가 울면 가서 달래 줘.”
“무슨 개소리야? 굿-레드 빈?”
말을 더 하지는 않았다.
그저 벨린 크레이머의 초구를 강하게 후려쳤을 뿐.
따악!
꽤 잘 맞은 타구가 외야로 뻗었고, 나는 멋들어지게 배트 플립을 했다.
아까 그 꼬마에게 약속대로 이 배트를 선물해 줘야지.
응?
“아웃!”
…….
저 중견수 뭐야?
“굿-레드 빈. 아웃당하고 더그아웃으로 꺼진다는 이야기였나 보네. 얼른 꺼져.”
젠장.
수비 한번 끝내주네.
배트를 들고 어수선한 분위기의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데, 더그아웃 위 펜스에서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까 그 꼬마와 눈을 마주쳤다.
…….
꼬마야?
그 입 모양 설마 F로 시작하는 그 단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