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9)
홈플레이트의 빌런-170화(170/363)
# 170
누가 누가 잘하나 (4)
1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벌어진 신시내티 레즈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경기, 투구 수가 많았던 양 팀의 선발투수는 긴 이닝을 책임지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못해도 6~7이닝을 소화해 주던 브릭 빌링스는 3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치며 올 시즌 들어 최소 이닝만을 소화하고 내려갔다.
필리스의 필 레이건은 그나마 4.1이닝까지 소화해 비교 우위(?)를 점했다.
전날 경기에서 레즈가 불펜 출혈을 최소화하며 막아 내긴 했지만, 필리스에서는 짐 플로렌스가 혼자 9이닝을 던졌다.
양 팀 모두 선발이 빠르게 내려간 이런 경기에서 실점을 최소화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불펜에서 가장 뒤 순번의 투수보다는 더 수준 있는 투수를 내놓아야 한다.
레즈 감독은 이번 경기에도 투수를 좀 아끼고 다음 경기 혹은 다음 시리즈를 대비해야 하나 아주 잠깐 고민했다.
필리스의 화력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5회 초, 레즈가 필 레이건에게 동점타를 때리며 결국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 시점에서는 그런 생각이 씻은 듯 사라졌다.
“결국, 필 레이건이 1사 1, 2루 상황에서 보더 켈리에게 마운드를 넘깁니다. 투구 수가 너무 많은 나머지 악력이 떨어져 보이는군요.”
올 시즌 평균 자책점 2.21에 2승 1패 7홀드로 완전히 제 몫을 톡톡히 해 주고 있는 사이드암 투수 보더 켈리는 병살을 유도하며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레즈 감독은 아까 잠시나마 고민했던 투수 운용에 대한 것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레즈 감독은 득점권에 홍빈이 들어오면 지체 없이 자동 고의 사구를 지시했다.
한 번은 성공했지만, 다음 한 번은 실패했다.
“진 테프먼. 아까도 이런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왔었죠. 주자 1, 2루. 레즈는 이번에도 홍빈은 고의 사구로 내보내고 진 테프먼을 선택합니다.”
“자존심이 상했을까요? 아까는 외야 플라이로 물러났습니다만 이번에는 뭔가 분위기가 다르군요.”
“초구를 때립니다! 홈런! 진 테프먼이 이 팀에는 어린 선수들만 뛰어난 게 아니라는 것을 몸소 증명합니다! 시즌 8호 홈런! 그가 리버티 벨을 울리며 자존심을 회복합니다!”
필리스는 승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댄 벨과 스캇 케이슬러를 연달아 등판시켰고, 둘은 추가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9회 말.
시니컬한 인상의 그레이 밴델튼이 마운드에 올라와, 2개의 삼진을 곁들여 완벽하게 게임을 마무리 지었다.
“필리스가 레즈를 9 대 6으로 꺾습니다. 1회 초만 하더라도 필리스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 않나 생각했지만, 레드 빈이 두 번의 타석에서 선발투수에게 무려 35개의 공을 던지게 하며 조기 강판에 크게 힘을 보탰죠. 레즈는 믿었던 브릭 빌링스가 고작 3이닝 만에 100구를 넘게 던지며 마운드에서 내려온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2연패!”
“경기 수훈 선수로 1타점 적시타와 스리런을 때려 4개의 타점을 뽑아낸 진 테프먼이 뽑혔군요. 사실, 저라면 레드 빈을 뽑겠지만요.”
진 테프먼은 경기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의기양양해하지 않았다.
그저 매우 진지한 얼굴로 홍빈과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상대 투수들이 우리의 크레딧 보이를 아주 무서워한다. 이해한다. 내가 봐도 가끔 무서우니까. 하지만 그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게 있다. 나도 한 시즌에 홈런 30~40개를 때릴 수 있는 타자라는 걸. 그리고 내 뒤에는 나만큼 홈런을 때릴 수 있는 거대한 왼손 타자도 있다. 그 뒤의 타자들도 아주 무섭다. 홍에게도 기회를 줘라.”
점점 홍빈과의 승부를 피하는 투수가 많아지고, 어쩌면 홍빈이 조급해하는 마음을 갖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담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진 테프먼의 말대로 필리스는 거를 타선이라고는 투수가 들어서는 9번뿐인 팀이 되어가고 있으며, 홍빈은 조급해하는 마음을 가지기에는 확실히 여유로움을 즐길 줄 아는 선수라는 점이다.
“좋다. 필리스는 강하다. 앞으로 우리의 목표는 100연승이므로, 내일이 중요하다.”
“Oh.”
2연승을 거둔 후 로커 룸에서는 더키 브라운 감독이 오랜만에 자신의 스타일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금 과장된 걸음걸이, 자신감 넘치는 턱.
다음 날 선발인 로즐은 더키 브라운 아래에서 마이너리그 생활을 했고, 감독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의 선수 중 하나였다.
감독은 자신감을 잃지 않고 제멋대로 하는 타입의 선수를 좋아했다.
“우리가 나아갈 100연승의 3번째 승리를 로즐이 따내 줄 거다.”
감독이 로즐을 바라보자, 로즐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세리모니나 준비해요. 내일 퍼펙트게임 할 거니까.”
“크흐흐.”
“저놈은 투수 홍빈이라니까.”
“뭐라고요? 더 이상 절 욕하지 마세요.”
“젠장. 저건 내 욕이야. 네 욕이 아니라고.”
좋은 분위기의 필리스는, 다음날도 승리했다.
로즐은 전날 로커 룸에서 공언한 대로 퍼펙트게임을 하지는 못했지만 7이닝을 소화했다.
4실점을 하며 완벽에 가까운 모습은 아니었지만, 더그아웃에서 이렇게 말하며 동료 선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들었다.
“아침에 토마토 주스를 먹었더니 속이 안 좋아서. 그것만 아니었으면 110마일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어쨌든 필리스는 레즈를 상대로 스윕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음 경기는 올 시즌 인터리그 첫 홈경기.
아메리칸리그에서 유망주 돌풍을 일으키며, 경기력의 기복이 심하긴 하지만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오클랜드 에슬레틱스와의 경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양대 리그 뛰어난 유망주들을 가진 팀 간의 대결.] [에슬레틱스와 필리스. 어느 팀의 젊은 선수들이 더 뛰어난가?] [양 팀의 대표 유망주, 홍빈과 브렛 대거 비교 분석.]2
“그 팀 놈들보다 더 잘할 수 있지?”
내가 가끔 하는 일이다.
특히 에이머에게 저걸 시도하면 반응이 꽤 좋다. 그 외에도 로즐이나 케이스도 잘 통한다.
바로 다른 선수와 비교하며 은근슬쩍 부추기는 것.
개빈은 항상 이걸 내게 할 때마다 내 반응이 어떨지 기대하며 얼굴이 상기되곤 하는데, 음.
난 애가 아니라서 개빈의 기대에 부응해 주지 못한다.
“당연하죠. 그 팀이 아니라 어느 팀 선수를 갖다 놔도 제가 더 잘해요.”
“…….”
“사실이잖아요? 전 이 시점에서 메이저리그 유일의 4할 타자라고요.”
“젠장, 재미없는 꼬마.”
개빈은 언제나 이럴 때마다 그렇듯 투덜거렸다.
그러길래 안 통하는 장난은 왜 매번 반복한대?
ㅇㅅㅇ: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대머리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넌 또 뭐라는 거야.
우리 대화를 할 땐 좀 맥락 있게 하자, 응?
나는 슬쩍 주제를 돌렸다.
“인터리그니까 곧 지명타자로 나가시겠네요.”
“글쎄. 모르지. 워낙 잘 치는 꼬마 놈들이 많아서 아메리칸리그에 가서도 손가락이나 빨고 있을지도 몰라.”
요새 우리 젊은 백업 선수들의 타격감이 워낙 좋기는 하다.
폴 데이먼도 꽤 올라왔고, 홀든은 이제 백업이라기보다는 로테이션이나 플래툰 멤버라고 봐도 될 정도의 위상이다.
언젠가 타격감이 떨어지면 조금 밀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홀든 정도면 팀에서 쫓겨날 거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놈들의 식사에 설사약을 탈까요?”
“좋은 아이디어야. 내 로커 아래 오른쪽 칸을 보면 설사약을 준비해 뒀으니 원정 갈 때 꼭 챙기도록 해.”
나와 개빈은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당연히 실제로 그런 일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통한다.
정의로운 패배보다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한 승리.
개빈과 나의 가장 큰 공통점이다.
“먼저들 와 있었네.”
오늘 선발인 거프가 러닝을 마치고 작은 회의실로 들어왔다.
타자 쪽에서 기대 이상을 한 선수가 홀든이라면, 투수에는 거프가 있다.
솔직히 짐이나 로즐처럼 크게 케어한 것도 아닌데, 원래였더라면 필리스의 끔찍한 젊은 포수들과 함께 마이너리그로 사라졌을 선수가 메이저리그 붙박이 선발이 된 거니까.
“어서 와요, 거프.”
“늦었잖아. 사이드와인더.”
독사의 일종인 사이드와인더는 거프의 별명이다.
낮은 코스로 꿈틀거리는 공을 마구 던진다고 팬들이 붙여 준, 우리 팀 선수들의 별명치고는 꽤 근사한 별명.
거프는 씩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에슬레틱스에 좋은 타자들이 많다며?”
말 그대로.
사실, 에슬레틱스는 내가 메이저리그로 올 때 후보군에 있던 팀 중 하나다.
여러 포지션에서 유망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성공적인 리빌딩 그 이상인 미친 리빌딩 팀으로 불렸다.
몇 년간 리그를 지배하며 월드시리즈에서 2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팀이다.
그 팀이 늘 그렇듯, 그러고 나서는 파이어 세일에 들어가긴 하지만.
“맞아요. 상대 투수야 그렇다 치고, 타자들이 꽤 좋죠.”
“영상을 봤는데, 브렛 대거랑 켈리 드레드먼, 알버트 벨라티를 특히 주의해야겠더라.”
“저도 봤어요. 대거인지 하는 그 친구 힘이 장난 아니던데? 밀어 쳐서 장외 홈런을 친다며?”
“정확도는 조금 낮지만 빗맞은 타구가 홈런이 될 정도죠.”
70홈런을 칠 미친놈이다.
우투우타 우익수로, 제2의 지안카를로 스탠튼 소리를 듣는 선수.
“놈은 그래도 변화구로 잡을 수 있어. 하지만 켈리 드레드먼과 알버트 벨라티는 정말 훌륭하다고.”
개빈이 그 둘의 자료를 내밀었다.
야구 천재 알버트 벨라티, 출루 황제 켈리 드레드먼.
사실, 지금 당장보다는 한두 시즌 후가 저들의 진가가 드러날 시기다.
에슬레틱스가 아메리칸리그를 지배할 때, 어떤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가 이렇게 말했었다.
시계를 좀 더 되돌려서 이름을 붙이면, 조이 보토와 지안카를로 스탠튼, 알버트 푸홀스가 함께 뛴 미친 팀이라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제게 생각이 있어요.”
나도 저 선수들을 정말 좋아했다.
3-4-5에 30홈런을 뛰어넘어 3-4-6에 40홈런을 밥 먹듯 기록하는 2번 타자와 기본으로 4할 중반대 출루율을 찍는 3번 타자, 그리고 그들 뒤에서 타점을 미친 듯이 쓸어 담는 60~70홈런 몬스터.
갑자기 터져 버린 그 선수들에 대해, 어쩌면 그들의 팬이었던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그 누구보다도 그들을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널 믿을게. 널 믿어서 잘 안 된 적이 별로 없으니까.”
“흐흐, 함부로 이놈을 믿지 마. 희대의 사기꾼이라니까.”
ㅇㅅㅇ: 역시 대머리는 사람 보는 눈이 있군.
뭐래.
그래도 포수로서의 기량은 투수들이 가장 잘 아는 거 아니겠냐.
우리 투수들이 내게 보내 주는 신뢰를 보면 뭐.
저 세 타자가 아무리 미친 선수들이라 하더라도, 우리 팀에는 나도 있고 에이머 시나도 있으니까.
“절 안 믿는 사람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응?”
“대머리이거나 바보라는 거죠.”
“뭐?”
“농담입니다.”
농담 반, 진담 반이라고 말하는 걸 깜빡하긴 했지만 농담은 농담이지, 뭐.
3
“아웃!”
경기가 시작되고, 거프는 에슬레틱스의 1번 타자에게 간단하게 땅볼 아웃을 따냈다.
좋은 리드오프가 될 선수지만, 2, 3, 4번 타자가 워낙 미친 선수들이라서 그리 티가 안 나는 비운의 선수다.
어쩌면 필리스가 월드시리즈에 꾸준히 진출하는 강팀이 된다면, 에슬레틱스는 몇 년 동안은 우리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될 팀이기도 하다.
언제나 강조하지만,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
처음에 짓밟아 놓으면 다음부터는 우리를 보기만 해도 오줌을 지리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반대의 상황이 되면 좀 곤란하긴 해도.
[알버트 벨라티] [우투우타, 1루수] [키워드: 해결사, 홈런, 장타, 어퍼 스윙, 스프레이히터, 인내심, 승부욕]…….
그래, 키워드가 7개라 이거지?
에이머가 8개니까 그래도 에이머가 아직은 이겼네.
“헤이.”
어쨌든 말을 좀 섞어 보자.
내가 알기론 생긴 거랑은 다르게 꽤 매너 있는 타입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를 부르자 알버트 벨라티는 사람을 씹어 죽일 것 같은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왜? 무슨 개소릴 하려고 날 부르는 건데?”
흠.
혹시 우리 팬들이 이놈의 SNS에 단체로 몰려가서 악플이라도 한 2만 개 남기기라도 했나.
왜 이렇게 까칠해? 착하다며? 그거 다 이미지 메이킹?
“엉덩이에 달팽이가 붙어 있어.”
“뭐, 달팽이?”
알버트 벨라티는 그 험상궂은 표정을 당혹스럽게 바꾸며 자신의 엉덩이를 마구 털어 댔다. 심지어는 상당히 놀란 것처럼 보인다.
ㅍㅅㅍ: 치사한 놈.
ㅍㅅㅍ: 있지도 않은 달팽이로 공격하다니.
“오, 됐어. 떨어졌어. 깜짝 놀랐다고.”
“흠… 고마워.”
“별말씀을.”
뭐, 의도치 않게 호감을 좀 산 듯하다.
표정이 갑자기 풀리네.
생각보다 단순한 놈인데? 야구 천재 알버트 벨라티가 이렇게 허술한 놈이었다니.
어쨌든 나는 거프에게 그의 주특기를 요구했다.
아래쪽 존 간당간당하게 들어오는 싱커…….
따아악-!
응?
싱커, 어디 가?
ㅡㅅㅡ: 어디 가긴.
ㅡㅅㅡ: 달나라까지 날아갔네.
제기랄, 장난 아니네.
거프에게는 대처 방법 있다고 큰소리쳐 놨는데, 이러면 완전 나가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