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72)
홈플레이트의 빌런-173화(173/363)
# 173
누가 누가 잘하나 (7)
1
현재 우리 팀의 25인 로스터에는 홈런 타자도 있고, 똑딱이도 있고, 호타준족도 있으며 솔직히 말하자면 이도 저도 아닌 유형도 있다.
물론 타자로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수비를 생각하면 조금 달라진다.
어쨌든 뭐, 그런 거야 별 상관은 없는 일이다.
하여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팀의 타자들은 각자 다른 스윙을 한다는 거다.
오픈스탠스로 포수 가까이 바짝 붙어 최대한 늦게까지 공을 본 다음, 거의 허리 회전만으로 타구를 멀리 날려 버리는 진 테프먼.
타석 가장 앞, 홈 플레이트 가장 가까이 서서 몸에 맞혀 보라는 듯 강하게 인스텝을 밟으며 온몸을 회오리처럼 돌려 타격하는 홀든.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타격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때로 진 테프먼과 비슷한 방식으로 타격하기도 하고 개빈이나 에이머, 혹은 주머 처럼 타석에 들어서서 홈런을 때릴 수도 있다.
이건 꽤 대단한 거다. 어떤 방식으로든 타격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나만의 필살기 같은 거지.
하지만…….
따아악-!
2아웃에 알버트 벨라티가 1루에 나가 있는 상황.
바깥쪽 유인구를 두 개 연거푸 던진 후 몸 쪽 공.
풀카운트 승부 끝에 브렛 대거가 때린 타구는, 나조차도 타구 감상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솔직히 저건… 따라 할 자신이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무리다.
“이봐! 너! 덩치! 필리스로 와라!”
“단장! 듣고 있나! 저 자식을 사와!”
“대체 저놈을 안 데려오고 뭐 한 거야!”
음.
팬들의 마음도 이해는 한다.
저런 미친 홈런을, 그것도 쇼를 상대로 때릴 수 있는 타자라면 아무래도 탐이 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지난 시즌이라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좀 많이 비쌀 거다.
지난 시즌의 브렛 대거는 파워 잠재력은 누구나 알아주지만 지나친 공갈포 기질로 인해, 아무리 힘이 좋아도 배트에 맞혀야 홈런이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었으니까.
지금도 타율은 2할을 조금 넘는 수준이긴 하지만, 저 정도로 무지막지한 스윙으로 타구를 노리면 어지간한 투수는 오히려 실투를 많이 던질 수밖에 없다.
장타력이라는 툴이 그래서 무서운 거다. 잘못 걸리면 넘어간다는 점 때문에 투수는 맞기 힘든 곳으로 제구하려 하고, 오히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실투가 나와서 크게 맞는 거다.
하지만 저놈이 더 무서운 건, 굳이 실투가 아니라도 억지로 넘겨 버릴 수 있는 미친 힘이 있다는 것 때문이다. 방금 쇼도 그랬고.
“…대체 뭘 먹길래 힘이 저래?”
“스테이크. 엄청나게 많이.”
홈으로 먼저 들어온 켈리 드레드먼에게 질문하자, 저런 시답잖은 대답이 돌아왔다.
확실히 명경지수 있는 놈들이랑은 말 섞는 게 아니다.
대화를 시도한 내가 나빴어.
ㅇㅅㅇ: 맞다.
ㅇㅅㅇ: 언제나 초소형 포수는 나쁘지.
쉿. 홈런 맞아서 기분 꿀꿀하니까
2
그 어떤 투수도 홈런을 맞지 않고 경기할 수는 없다.
어차피 언젠가는 맞게 된다.
브래들리 쇼 주니어는 그걸 명확하게 알고 있는 타입의 투수다.
월드시리즈에서도, 정규 시즌 경기에서도 쇼 주니어는 항상 자기가 하던 대로 던진다.
하지만 홈런을 맞은 뒤 타순이 한 바퀴 돌고, 주자 없는 상황에서 브렛 대거가 타석에 들어왔을 때, 조금은 색다른 감정을 느꼈다.
애송이 주제에 굉장히 좋은 스윙을 한다는 2번 타자를 상대하는 것도 꽤 괜찮았다.
포수 홍빈과 함께 타자를 당황시키는 볼 배합을 하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3번 타자, 마치 메이저리그에서 15년은 구른 베테랑처럼 나쁜 볼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 타자를 상대할 때도 즐거웠다.
자신의 파트너인 홍빈은 주심의 존을 가지고 노는 데 일가견이 있었고, 당연히 눈 야구를 하는 타자를 엉망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실, 다른 걸 제쳐 놓고 그런 걸 할 줄 아는 10대라니. 쇼는 메이저리그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수없이 많은 애송이 중에서 홍빈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 녀석은…….’
베테랑이자 어느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쇼마저도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브렛 대거.
쇼는 마치, 이빨을 드러낸 맹수와 눈을 마주친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빈을 상대하는 놈들이 이런 감정을 느끼나?’
다른 팀 투수들이 홍빈을 상대할 때, 종종 악마가 타석에 서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다른 팀 타자들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홍빈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쇼는 살짝 어이가 없어서 씩 웃었다.
힘 좀 좋다고 공갈포 타입의 애송이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그리고 홍빈은, 몸 쪽 살짝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을 요구해 왔다.
‘저놈에게?’
가끔 홍빈은 생각지도 못한 사인을 내곤 한다.
지금처럼 몸 쪽 공에 굉장히 강한 타자에게 몸 쪽 사인을 낸다거나, 반드시 병살이 필요한 상황에서 하이 패스트볼을 요구한다거나.
그리고 그럴 때는 꽤 높은 확률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뭔가 타자에게 함정이라도 팠나?’
쇼는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씩 웃었다.
재밌는 일이다.
풋내 나는 공갈포 애송이에게 압박감을 느낀 것도 그렇지만, 홍빈이 마치 그런 자신의 심리 상태를 알고 정신 차리라는 듯이 저런 사인을 내지 않았는가.
쇼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글러브 속에서 그립을 고쳐 쥐었다.
수없이 쥔 그립이다. 셀 수도 없이 뻗었던 만큼 스트라이드를 뻗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도 똑같이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에 익은 체중 이동을 해냈다.
그리고 원래 골격이 그렇게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한 릴리스 포인트에서 공을 놓았다.
날아가는 포심 패스트볼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게 맞을 리 없다고.
내 패스트볼은 아무도 못 친다고.
“스트라이크!”
쇼는, 브렛 대거가 좋아하는 코스로 오는 공에 크게 헛스윙 하고 엄청나게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후우.”
애써 웃음을 억누르고 홍빈이 던져 준 공을 받아 마운드로 돌아왔다.
이번엔 바깥쪽 높은 코스 패스트볼.
쇼는 분명 패스트볼의 구위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 아니다.
쇼는 홍빈에게, 우타자의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슬라이더를 던지는 게 어떻겠냐고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홍빈은 꼭 그거여야만 한다는 듯, 미트를 주먹으로 때리며 재차 바깥쪽 높은 패스트볼 사인을 내 왔다.
‘맞으면 네 책임이다, 꼬마.’
뭘 던질지 결정하기 전에는 의심하고 불신하더라도, 어디로 어떤 공을 던질지 결정한 후에는 이게 정답이라고 믿어야만 한다.
이걸 정답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최고의 공을 던질 수 있다.
이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 쇼는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 홍빈이 요구하는 곳으로 던졌다.
“파울!”
타자의 배트가 아주 낮은 바깥쪽에서 출발해 위로 치솟아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브렛 대거는 바깥쪽 낮게 깔리는 슬라이더를 노리고 있었다.
그제야 쇼는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던 정체 모를 공포심에서 해방된 것을 느꼈다.
무지막지한 스윙이 주는 공포심.
이제 쇼는 자신의 패스트볼로도 저 공갈포 짐승 같은 놈을 찍어 누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주 약간 움츠러들었던 어깨에 긴장이 풀렸다.
더 좋은 패스트볼로 놈을 잡을 준비를 마쳤다.
홍빈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패스트볼 사인을 내 주길 원했다. 패스트볼로 삼구 삼진. 쇼는 마치 데뷔전을 치르듯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린아이처럼 홍빈의 사인을 기다렸다.
‘커브?’
조금은 맥 빠지는 선택.
그것도 아예 땅에 처박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 아니라, 그냥 땅에 처박으라는 사인.
살짝 기운이 빠졌지만, 그래도 홍빈의 선택이 이번 타석에서만큼은 귀신처럼 맞아떨어졌기에 눈 딱 감고 커브를 던져 보기로 했다.
바운드되는 커브를 던지라고 사인을 보내는 미친놈은 아마도 홍빈뿐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바운드 볼을 100% 블로킹할 수 있다는 저 이상한 자신감.
고의로 바운드되는 공을 던지기로 마음먹다니, 저 미친놈과 함께 미쳐 가는 게 즐거워지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큰 헛스윙이 나왔지만, 역시 미트로는 집어넣지 못해 아웃 콜은 잠시 나오지 않은 상황.
하지만 홍빈은 가슴으로 공을 받아 재빨리 브렛 대거에게 태그했다.
그리고 삼구 삼진에 살짝 이성을 잃은 팬 한 명이 펜스에 매달린 것에 모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홍빈은 땅에 튀어 흠집이 난 공을 쇼에게 던져 주었다.
‘이런 악당!’
쇼는 가끔 홍빈이 이런 공을 몰래 건네줄 때마다 굉장한 즐거움을 느꼈다.
누가 볼까 봐 표정 관리를 하고, 상황이 정리되어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오자마자 공격적으로.
딱!
“아웃!”
흠집이 나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는 패스트볼.
손쉽게 단 한 개의 공으로 아웃 카운트를 따낸 쇼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홍빈을 안았다.
“이 미친 악마.”
“뭐예요? 지금 우리 완투승 한 거예요?”
“아니. 아직 3이닝 남았을걸.”
“근데 왜 이래요?”
“끝내줬어. 널 칭찬하는 거야.”
끝내줬다는 말에, 홍빈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질문했다.
“삼구 삼진요, 아니면 땅볼요?”
쇼는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크흐흐. 둘 다. 이 한국에서 온 악마야.”
“헤이! 둘이 뭐해?”
“난 호모포비아 아니야. 괜찮아, 계속해. 생각보다 보기 괜찮네.”
“보스! 사내 연애 허용입니까?”
쇼가 홍빈을 끌어안은 채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려 하자 더그아웃 여기저기서 별의별 말이 다 튀어나왔고, 쇼는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너희가 투수해 봐! 그럼 이 꼬마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게 될걸!”
3
홍빈과 브렛 대거의 홈런으로 달아오른 경기는 생각보다는 뜨겁게 타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필리스는 7회와 8회에 각자 1점씩을 짜냈고, 8이닝 2실점을 하고 내려간 쇼에게 마운드를 이어받은 그레이 밴델튼이 하위 타순에서 뜬금포 한 방을 얻어맞고 1점 차로 쫓기긴 했지만, 결국 남은 아웃 카운트를 모두 처리하며 에슬레틱스 3인방 타순 바로 앞에서 경기를 끝내는 데 성공했다.
“빈에게 가서 물어봐요. 난 모르는 일이니까.”
경기 승리투수가 된 쇼에게 질문이 쏟아졌지만, 쇼는 공을 홍빈에게 넘겼다.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거포 유망주에게 한 방 맞은 것을 제외하면, 시종일관 상대 팀을 압도하며 8이닝 2실점에 삼진을 10개나 잡아낸 투수치고는 굉장히 겸손한 발언일지도 모르지만, 기자들은 꽤 익숙한 상황에 다시 한 번 질문했다.
“그가 또 뭔가 마법을 부렸나요?”
“언제나 그렇듯, 그렇죠. 난 나중엔 그냥 그가 하라는 대로 던진 것에 불과했거든. 자, 이제 어서 다들 코리안 볼드모트를 괴롭히러 가라고.”
기자들은 코리안 볼드모트란 말에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가도, 앞다투어 홍빈에게 달려갔다.
사실, 볼드모트란 말도 꽤 순화된 표현이란 것을 안다.
다른 팀 선수들은 홍빈을 두고 갓 댐 코리안이나 코리안 마더 퍼커라거나, 아니면 그냥 개자식 혹은 악마 놈 정도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처음 돌풍을 불러일으킬 때보다 인터뷰 스킬이 훨씬 는 이 한국인 포수는, 오늘 경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자, 봐요. 내가 아침에 차에서 내렸는데, 그때 내게 사인을 받으러 오는 꼬마들이 있거든요? 근데 오늘 찾아온 꼬마 중 하나가 내게 이렇게 말한 거예요. 레드 빈, 오늘도 홈런을 못 치면 당신은 한물 간 거예요.”
어떤 기자는 이 이야기를 쓸데없는 걸로 취급했고, 어떤 기자는 이게 꽤 쓸 만할 거라고 생각했다.
“더 웃긴 건, 내가 널 위해 홈런을 치겠다고 약속한다고 했더니 그 꼬마가 약속을 어기면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 했단 겁니다. 오늘은 제가 홈런도 쳤고 팀도 이겼으니, 제가 지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죠.”
그렇게까지 기삿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필리스 팬들은 꼬마 팬들도 독하다는 것을 기자들도 충분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나고서야 홍빈은 오늘 경기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 이야기가 끝난 후 기자들이 모두 돌아섰을 때, 홍빈과 꼬마 이야기에 집중했던 기자 하나가 뒤돌아서서 물었다.
“레드 빈, 혹시 그 꼬마 이름을 아나요?”
“바트요, 바트.”
“바트?”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기자는, 바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홍빈에게 고맙다고 한 후 자리를 떴다.
낮 경기였기에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아리아나와 집에서 만나기로 한 홍빈은, 아리아나가 스마트폰을 내밀어 보여 준 기사에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이런 일도 있었어?”
[필라델피아 필리스 구단주 손자 바트 펨버튼, 홍빈에게 ‘홈런을 치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며 분발을 촉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