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75)
홈플레이트의 빌런-176화(176/363)
# 176
그레이트 필리스 (3)
1
한국에서 온 여성 리포터 최조은은, EVS 방송국의 카메라 앞에서 목을 가다듬었다.
시티즌스 뱅크 파크의 훈련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다.
홍빈도 촬영 계획의 일부이지만, 오늘은 홍빈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도 조금 더 집중할 계획이었다.
오늘의 방송 콘셉트는 바로 ‘필리스 동료들이 보는 홍빈’.
팬들은 10대 한국인 슈퍼스타가 팀 내에서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알기를 원했다.
인종차별은 당하지 않는지, 나이가 지나치게 어려 무시당하지는 않는지.
사실, 평소 경기 장면만 보더라도 그런 것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홍빈은 팀 내 모든 선수와 웃으며 이야기하고, 때론 스스럼없이 장난도 친다.
인터뷰하는 선수들은 항상 홍빈을 칭찬하고, 감독과 코치들은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그런 것들을 떠나서 경기 성적만 보더라도 홍빈에 대한 대우가 안 좋을 수는 없었다.
괴물 같은 성적을 내는 10대 포수. 그런 선수를 홀대할 수 있는 구단이 있다면, 아마 더 괴물 같은 다른 포수를 가지고 있는 구단일 것이다. 그런 포수를 데리고 있더라도 그렇게 하진 않을 테지만.
아무튼, 최조은이 촬영을 시작하기 위해 인터뷰 대상을 물색하려는데, 서글서글한 인상의 백인 2루수가 다가왔다.
잘하는 선수이지만, 한국 팬들에게는 존재감이 조금 미미한 케이스 에이블이다.
케이스 에이블이 과장된 동작으로 최조은에게 포옹을 시도했다.
“오, 빈을 취재하러 왔어요? 한국에서? 반가워요. 아이 러브 코리아. 아이 라이크 김치. 아이 노우 홍-빈.”
묻지도 않은 말을 다다다 뱉으며 포옹을 시도한 케이스 에이블에게, 최조은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웃으며 대답했다.
“아하하, 안녕하세요! 홍빈 선수에 대한 동료 선수들의 생각을 취재하고 있는 중입니다! 에이블 선수시죠? 반갑습니다!”
“맞아요. 이름이?”
“EVS의 최조은입니다.”
“좋아요, 초이. 일단, 케이스라 불러요. 제가 지금 좀 바빠서 그런데, 조금 있다 이야기해도 될까요?”
“아, 바쁘시군요.”
“전화번호 주시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어때요?”
“케이스! 헛짓거리 하지 말고 이리 와!”
“아…….”
최조은은 어디선가 나타나 케이스의 목을 팔로 휘감아 또 어디론가 사라지는 개빈 폴체스키를 보며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필리스 선수들에게 홍빈에 대해 듣기 위해 도착하자마자 먼저 다가온 선수가 있어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개빈에게 이끌려 사라져 버리다니.
구단에 취재 허락을 받을 때, 선수가 먼저 다가오지 않는 이상 먼저 말을 걸지 못하도록 지정된 선수라 최조은은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레드 빈? 아가씨, 레드 빈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하면 내가 해 줄까?”
최조은은 반색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거대한 덩치의 흑인 좌타 거포, 주머 데이비스가 서 있었다.
주머는 홍빈과 사이좋은 모습을 종종 보여 주기도 했거니와, 푸근한 인상과 이름에서 오는 친숙함-주모!-때문에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에 속했다.
최조은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주머는 떠들기 시작했다.
“저기 보이죠? 빈이 타격 연습을 하고 있네요.”
그리고 홍빈은, 배팅 볼을 부드러운 자세로 잡아당겨 펜스를 넘겨 버렸다.
따아악!
“흐흐. 저 괴물이 또 펜스를 넘겼군요. 뭐, 일상적인 일입니다.”
“홍빈 선수가 평소에 어떤 사람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뭐, 보시다시피요. 항상 야구 하고, 훈련하고, 야구를 보죠. 요즘은 조금 여유를 찾은 것 같긴 합니다. 잘된 일이죠.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오, 젠장. 또 넘겼어. 가끔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요.”
주머가 웃으면서 말하고 있는데, 자신의 차례를 위해 이동하던 에이머 시나가 투덜거렸다.
“젠장, 그게 무슨 상관이래요? 혼자 다 해 먹겠지, 뭐.”
“오해하지 마세요. 아시죠? 빈과 에이머는 꽤 친한 사이입니다. 어제는 둘이 끌어안고 난리였다니까.”
“그렇게 말하면 진짜 친한 줄 알잖아요. 그나저나 주머, 빈이 지금 몇 개나 담장을 넘겼죠?”
“지금까지 10개 중 7개일걸?”
“좋아요. 잘 보고 있으세요. 제가 더 많이 넘길 거니까.”
“프흐흐. 헤이, 홀든! 이리 와 봐! 네가 빈에 관해서 이야기 좀 해 줘!”
살짝 어리바리해 보이는 외모와 홍빈에 대한 찬양 인터뷰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홀든.
홀든은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와 수줍은 표정을 짓다가, 홍빈의 타구가 또 펜스를 넘어가자 넋을 놓고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저기, 홀든?”
“아, 예! 음… 그는 제게 많은 영감을 줍니다. 제가 그의 배트를 들고 있으면 저는 홍빈이 되고, 그게 아니면 저는 그냥 홀든이죠.”
“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전 그가 조금 더 자주 홈런을 쳤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제게 줄 배트가 조금이라도 더 생기지 않겠어요?”
홀든은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횡설수설했고, 잠시 후 최조은의 앞에는 로즐이 서 있었다.
“빈은 이상한 사람이에요. 항상 절 괴롭히려 들죠. 한국에서는 원래 그런가요? 사실, 이상하다기보단 조금 미친 사람인 것 같기도 해요.”
“로즐, 처음 보는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안녕하세요. 라이언 필로우 맞으시죠?”
“제기랄. 나 찍지 마요. 라이언이랑 같이 있으면 내가 오징어처럼 보인단 말이야.”
로즐은 그새 사라졌고, 여성 팬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라이언이 씩 웃으며 다가왔다.
최조은은 자기도 모르게 두근거리는 걸 느꼈지만, 라이언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홍은 뭐든지 할 수 있죠. 홈런을 치고, 번트를 대고, 달리고, 송구하고, 상대를 깔아뭉개 팀을 이기게 합니다. 뭐, 저 같으면 그를 상대하느니 미식축구나 농구로 종목을 변경할 거예요.”
최조은이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는 순간, 라이언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라운드 한쪽에서, 대니 휘태커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임시로 올라온 마이너리그 포수 하나가 연신 블로킹에 실패하고 있었다.
“오, 이런, 잠깐만 마이크 꺼요.”
“네?”
최조은이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을 때, 라이언은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그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Mother fucker! 제기랄! 어떤 빌어먹을 똥 멍청이가 저딴 놈을 포수라고 올린 거야? 단장? 스카우트 팀장? 지금 당장 그 개자식을 죽여 버리러 갈 테니 넌 메츠로나 꺼져! 아마 메츠가 아니면 너 같은 멍청한 자식은 뛸 곳이 없을 거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건 바로 개빈 폴체스키.
놀란 표정의 최조은에게, 라이언이 미소 지어 보였다.
“이건 방송에 나가면 안 돼요. 아시죠? 개빈이 찾아갈지도 모르니까 당장 지워요.”
2
경기 전에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였다.
오늘 한국에서 온 취재진이 보였는데, 그들은 내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다른 선수들을 인터뷰하다가 내 훈련이 끝나고서야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홍빈 선수!”
나한테 인사하면서 라이언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건 뭔데.
하여튼 잘생긴 놈이라면…….
ㅇㅅㅇ: 너도 예쁜 여자 좋아하잖나.
누가 뭐래? 당연한 거지.
어쨌든, 오늘따라 평소보다 더 엉겨 붙은 에이머 놈을 타격 연습 홈런 개수로 밟아 주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홀든에게 배트 하나를 더 준 다음, 뭔가 엄청나게 화가 나 있는 개빈에게 아리아나와 데이트할 거라고 조금 놀려 준 후, 이상하게 웃고 있는 로즐의 콧구멍에 해바라기 씨를 한 움큼 집어넣은 후 경기에 나섰다.
미친 로즐 놈. 오늘 선발이면 선발답게 좀 얌전히 있을 것이지.
[투수 체력: 98%] [투수 컨디션: 상] [투수 자신감: 97%]우리 팀 최고의 나르시시스트답게, 안정되어 있는 로즐은 언제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컨디션 관리도 잘하는 편이다. 종종 경기 중에 체력이 갑자기 확 떨어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올 시즌 3.27에 8경기 4승 2패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트라이크!”
시리즈 내내 패스트볼에 스윙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메츠의 1번 타자 길 호세에게 패스트볼을 절묘하게 꽂아 넣으며 초구 스트라이크.
[로즐 펠리시다드] [우투우타, 선발투수] [키워드: 강심장, 기세, 승부욕, 핀 포인트]이놈은 고속 스플리터를 주 무기로 삼는데, 제구력이 상당히 좋다.
컨디션 좋은 날의 로즐이 스플리터를 존 안으로 넣었다 뺐다 하면 상대 타자들이 정신을 못 차린다.
딱!
“아웃!”
그리고 감이 이상하게 좋은 녀석인지라, 스플리터가 언제 잘 먹힐지 귀신같이 안다.
방금 공은 존 아래로 공 세 개는 빠지는 스플리터.
패스트볼을 못 쳐서 마음이 급한 길 호세가 존 안으로 들어오는 패스트볼로 알고 성급하게 배트를 내서 2구 만에 아웃 카운트를 하나 따냈다.
[랄프 코스팅턴] [좌투좌타, 중견수] [키워드: 호타준족, 다이빙 캐치, 장타]2번 타자 랄프 코스팅턴.
애매한 툴 플레이어인데도 지난 시즌 FA 로이드로 꽤 좋은 조건에 메츠와 계약한 선수.
선수 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굉장히 훌륭한 계약을 따냈다고 볼 수 있지만, 바꿔 말하자면 메츠가 또 속았다는 것에 불과하다.
“오늘은 하나 칠 수 있겠어?”
“미안해.”
“뭐가?”
“나도 몰라. 어쨌든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날 괴롭히지 마. 미안해. 됐지?”
이건 나도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메츠가 겉으로 보이는 전력에 비해 성적이 개판 오 분 전인 이유?
이런 부분도 있을 거다.
기존 메츠 선수들은 나만 보면(개빈이 이제까지 했던 것들이 있으니 필리스만 보면) 적의를 불태우는데, 새로 합류한 선수들은 그걸 영 내키지 않아 한다.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져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며, 팀 분위기에 대해 불평한다.
뭐, 나랑은 상관없다.
난 필리스고, 저기는 메츠니까.
“스트라이크!”
손을 대더라도 범타가 나올 확률이 90% 이상인 매우 훌륭한 코스.
짐과 로즐은 둘 다 훌륭한 투수이지만, 호흡을 맞출 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짐은 평소의 성격과는 달리 마운드에 서면 무지막지하다.
패스트볼로 밀어 버리고, 커터로 박살 내고, 체인지업으로 농락한다.
마치 그러니까 시원한 사이다 느낌?
그에 반해 로즐은…….
‘바깥쪽 높은 패스트볼?’
이건 로즐의 의견이다. 바깥쪽 낮은 코스로 공 반 개 정도를 빼 볼까 했는데, 나쁘지 않은 생각 같다.
“스트라이크!”
아예 배트도 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2스트라이크.
로즐과 함께하면, 서로 이런 걸 주고받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제구가 워낙 좋다 보니 약간 게임하는 느낌인 게, 가끔은 사인을 내고 자리를 잡고 미트를 대고 있으면 움직일 필요도 없이 공이 들어온다.
“스트라이크-아웃!”
바로 지금처럼. 랄프 코스팅턴은 허무하게 헛스윙으로 물러났고, 우울한 메츠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타석으로 들어왔다.
[클럽 뱅크] [우투우타, 1루수] [키워드: 스타 의식, 눈 야구, 끝내기, 당겨 치기, 자존심]어려운 타자지만, 로즐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요리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딱!
그런데 요리에 간도 하기 전에 바깥쪽 중간 높이의 슬라이더를 건드려서 유격수 땅볼 아웃.
패스트볼을 보여 준 것 때문에 그걸 꽤 의식했는지.
원래 눈 야구를 즐기는 타자인데, 팀 전체가 위축되다 보니 개인 컨디션도 맛이 가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마스크를 헬멧 위에 올려 쓰고 그에게 질문했다.
“혹시, 에브러햄은 언제 돌아와?”
“글쎄. 다음번 너희랑 경기할 때쯤이면 돌아오지 않을까.”
클럽 뱅크는 그나마 메츠에서 양심적이고 정직한 사람이다.
그래 봤자 메츠지만.
그의 단점은 메츠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너희 포수를 보니 에브러햄이 얼마나 좋은 포수인지 알겠더라. 그에게 안부 전해 줘.”
“싫어할걸, 아마도.”
“괜찮을 거야. 나중에 봐.”
클럽 뱅크에게 손까지 흔들어 준 뒤, 싱글벙글 웃고 있는 로즐에게 다가갔다.
“오늘 무슨 날이야? 왜 그렇게 웃어?”
“난 원래 잘 웃어.”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아. 맨날 표정 썩어 있다가 나한테 장난칠 때만 웃잖아.”
“응? 아냐. 오해야.”
내가 정색하자, 로즐은 재수 없게도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뭐지, 이놈 대체.
또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걸까.
홈런 다섯 개쯤 맞아야 평소대로 돌아오려나.
아니면 죽빵 한 대 정도?
ㅍㅅㅍ: 선발투수를 때리지 마라, be 폭력 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