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79)
홈플레이트의 빌런-180화(180/363)
# 180
난 포수왕이 될 거야 (3)
1
완벽한 팀을 만들면 더없이 좋겠지만, 야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종종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모든 팀이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선수단을 만들 수는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필리스 감독이 포기해야 하는 것 중 하나로 선발 로테이션의 필을 꼽는다.
짐 다음으로 등판하는 투수. 같은 우완에 비슷한 구석이 있는 구종 구사.
아무래도 타 팀 타자들 처지에서는 그나마 필의 등판일이 비교적 쉽게 노려 볼 만한 날이다. 필에게는 안된 이야기지만, 어쩔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짐이 이닝을 마구 먹어 치워 주고, 쇼도 짐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안정감 있는 이닝이터다. 미친놈-로즐-은 최근에 특히 더 물이 올라서 맞혀 잡는 피칭으로 100개도 안 던지고 9이닝을 책임지기도 하고.
거프도 내야 땅볼의 비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 어지간해서는 이닝을 잘 소화하기에, 팀의 경기가 일주일 내내 잘 풀리는 날이면 우리 감독님에겐 필의 경기에 불펜을 집중 투입할 기회가 생긴다.
4명의 선발 투수가 6~7이닝 혹은 그 이상을 소화하고, 필은 5이닝만 소화해도 불펜 운용에 무리가 생기지 않는 것이 우리 팀의 베스트 시나리오인 것이다.
필이 최소한의 이닝만 소화해 주면 불펜 총력전을 벌일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짐이다.
짐이 필이 등판하기 전날 경기에서 셋업맨(필승조)의 체력을 아껴 주지 못하면 힘들어지는 작전이다.
필의 컨디션이 그리 좋지 못하더라도 불펜을 쏟아부어 이길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그다음 날의 로즐이다. 우리 불펜 중 스캇과 댄 벨은 구위는 좋지만 연투에는 약하며, 보더 켈리도 꽤 잘 던지지만 아무래도 사이드암이니만큼 범용성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건 짐과 로즐에게 보내는 신뢰의 로테이션인 것이다.
짐이 무너지면 필이, 로즐이 무너지면 거프가 위협받는다. 나와 합을 맞추면 무식하게 아웃카운트를 잡아 대는 짐과 오히려 부담감이 주어지고 자기가 활약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에서 강한 집중력을 발휘하는 변태 놈 둘 다 어린 선수이지만,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 상황을 잘 이겨 내고 있다.
“스트라이크-아웃!”
말하자면 입만 아픈 투수, 음.
사실, 지금의 짐은 회귀 전 내가 알던 사이 영 위너의 모습보다 더 강력한 모습이다. 공 자체를 완벽하게 비교하긴 힘들지만 더 강력해 보이고, 안정된 모습으로 공을 던지는 게 꽤 커 보인다.
영혼의 배터리 스킬 효과도 있긴 할 것이다. 어쨌든 전담 포수를 두고도 포수가 실수하면 화를 내던 예민한 짐은, 최소한 이번 생에는 그런 모습을 보일 일이 없을 것이다.
‘바깥쪽 낮은 패스트볼.’
내가 싸인을 보내면 고개를 끄덕일 겨를도 없이 투구 동작을 시작하는 짐은 인터벌이 거의 없다.
퍼억!
“스트라이크!”
‘이번엔 몸쪽 낮은 커터.’
퍼억!
“스트라이크!”
뭐, 이런 모양이다.
이 두 가지 패스트볼로 타자의 정신을 쏙 빼놓은 후, 미친 낙차의 체인지업으로 마무리!
“Booooooooo!”
“스트라이크-아웃!”
심판의 스트라이크 아웃 콜이 나오기도 전에 펜웨이 파크를 가득 채운 레드삭스 팬들의 야유가 들려온다.
타자가 도무지 감을 못 잡고 시원하게 헛스윙하는 것을 이미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야유는 오래가지 못하고, 곧 환호로 바뀌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또 뭔 소릴 하려고요.”
나도 모르게 퉁명하게 내뱉고 말았지만, 이 빌어먹을 명경지수 그 자체인 괴물은 상관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너희 FA 되면 다 같이 레드삭스로 올 생각 없어? 비슷한 시기에 FA 되잖아, 너랑 쟤랑 유격수랑 2루수랑 또 다른 투수도.”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래.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무슨 말인지는 안다. 남들이 보기엔 갑자기 터져 버린 필리스의 이 미친 세대는, 대부분 작년에 데뷔한 만큼 장기 계약을 안 맺는다면 비슷한 시기에 FA를 맞이할 거다.
필리스로서는 나를 포함한 이 코어 유망주들을 몇 명이나 장기계약으로 묶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바로 그거다.
모두가 FA가 될 때까지 얼마나 잘할지는 미지수지만,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필리스 입장에서는 끔찍할 정도의 지출을 각오해야 할 테고, 최악의 경우에는 많은 선수를 유출시킬 수밖에 없다.
늙은 FA의 위험성? 작년에 데뷔한 선수들은 아무 이상 없이 선수생활을 이어 나간다는 가정하에 20대에 FA 권리를 얻게 된다.
그런데 모조리 FA로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히겠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냥 바람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감당할 수 있겠어요? 우리 꽤 비쌀 텐데.”
“하하. 레드삭스는 돈이 많아.”
“엄청 많아야 할걸요.”
“엄청 많아.”
“모조리 퀄리파잉 오퍼(상위 125명의 평균 연봉으로 1년 재계약, 거부하고 시장에 나가 FA 계약 시 계약 팀에 페널티)를 받으면 어쩌게요?”
“1년 더 있다가 와. 단체로.”
“그때 되면 제 백업 포수 하시려고요?”
“지명타자 할 생각 있어?”
“없어요.”
“좋아, 내가 지명타자 할까?”
“젠장.”
젠장.
짐에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구속으로 패스트볼을 던지라고 신호를 보냈다.
어차피 우리가 모두 레드삭스로 향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그냥 사람 좋은 얼굴로 헛소리를 하다니.
어제 우리가 두들긴 그 좌완 파이어볼러와 짐은 격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줘야지.
뻐억!
“스트라이크!”
흠, 99.9마일.
“Wow, 정 힘들면 너랑 쟤라도 와.”
제기랄.
짐, 이 자식을 죽여 버려.
“파울!”
죽여, 죽여 버리라고!
“스트라이크-아웃!”
와우.
속이 뻥 뚫리는 느낌.
유쾌, 상쾌, 통쾌.
“꼭 와.”
“제기랄, 빨리 꺼져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야, 요정.
ㅇㅅㅇ: ?
쟤 좀 걷다가 넘어지게 해 주라.
카드에 금테 둘러 줄게.
ㅎㅅㅎ: 금테 따위는 두르지 않아도 요정님은 품격 있는 존재지.
ㅎㅁㅎ: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니 네가 그 모양인 거다, 얼간이.
다 죽었으면 좋겠다.
ㅍㅅㅍ: 신이여, 이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존재를 심판하소서.
꺼져, 혼자 있고 싶으니까.
2
더키 브라운 감독은 선수들에게 많은 작전보다는 자유를 부여하는 타입이다.
때로는 과감하기 그지없는 작전을 구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율에 맡긴다.
그 자율은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식의 자율이 아니라, 멋지게 해내 보라는 식의 자율이다.
특히, 능력 있는 선수들에게는 거의 무제한의 자유를 준다. 헤스밀 에르난데스를 하위 타순으로 내린 것은 장타력의 이유도 있지만, 창의성과 과감함에서 에이머 시나와 홍빈에게 점수를 더 준 것일 뿐이었다.
“그린 몬스터를 직격했지만 타구가 너무 빨랐고, 지나치게 강하게 튄 공이 중견수 앞에 뚝 떨어지는 바람에 큰 타구를 날리고도 1루에 멈춘 에이머 시나입니다.”
“하하. 코를 찡그리고 있군요. 뭐, 어쩔 수 없죠. 그린 몬스터가 집어삼키는 홈런이 한두 개도 아닌걸요.”
감독이 판단하기에 에이머 시나는 괴물같은 재능을 지닌 천재다.
넘기고, 치고, 달리고, 잡고, 던지는 것 모두를 최고 수준으로 해낼 수 있다. 만개한다면 40-40을 해낼 재능이 있는 선수다.
“Booooooo!”
“저놈의 머리를 맞혀 버려!”
“앨버트! 이번엔 좀 더 잘해야 할 거다!”
더키 브라운은 이런 상황이 즐거웠다.
어린 선수임에도 저런 압박감 앞에 움츠러들지 않는다. 오히려 강한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에이머 시나보다 더해 보이는, 에이머 시나보다 더 빨리 달리지는 못하지만, 더 잘 넘기고, 더 잘 치며, 더 잘 잡고, 더 잘 던지는 선수가 타석으로 나가고 있다. 마음이 편해질 수밖에 없다.
“K! K! K! K! K! K!”
레드삭스 팬들의 염원을 담은 저 외침이 KKK단의 인종차별적인 구호로 들릴 지경이지만, 더키 브라운은 레드삭스 팬들이 구호를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홍빈은 인종차별적 뉘앙스가 조금이라도 풍기면 모조리 때려눕히는 타입이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잘 던지는 레드삭스의 앨버트 브린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최악의 주자.
그리고 최악의 타자.
그렇다고 거르자니, 필리스의 타선은 쉬어갈 곳이 있는 타선이 아니다.
앨버트 브린은 자신의 18.44미터 앞에 앉아 있는 저 선수가 세계 최고의 포수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사람들이 그 세계 최고의 포수 타이틀을 가진 샘 이델 바로 옆에 홍빈을 놓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애송이라고 무시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다. 이미 지금까지 해낸 것만 보더라도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타자는 저 동양인 꼬마인 것이 확실해 보였으니까.
“볼!”
초구 슬라이더로 살짝 유인해봤지만 타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초구를 적극적으로 때려대던 모습은 어디 갔냐는 듯, 유인구가 올 거라는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스킵 동작으로 자신을 약 올리는 것 같은 에이머 시나가 신경 쓰이기도 했다.
에이머 시나와 홍빈이 펼치는 주루 플레이에 대한 데이터는 전 메이저리그 팀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가 있다고 해서 꼭 그걸 막아 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세이프!”
최대한 빠르게 견제해 봤지만, 세이프.
레드삭스 팬들이 아웃이 아니냐며 버럭 소리를 질러 댔다. 꽤 아슬아슬한 타이밍.
앨버트 브린은 베이스와 배터박스에 신경 쓰이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투구 동작에 들어가기 직전에 다시 1루로 빠르게 견제구를 던졌다.
‘됐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지만, 주자를 잡아 냈다고 확신했다.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주먹을 내뻗으려는 순간, 심판은 앨버트 브린이 전혀 원치 않는 소리를 입 밖으로 냈다.
“피처 보크!”
“What?”
브린은 나라라도 잃은 듯한 표정으로 심판을 바라봤지만, 심판은 단호한 표정으로 손짓했다.
에이머 시나는 공짜로 2루를 얻었고, 샘 이델은 마운드로 올라와 괜찮다며 앨버트 브린을 다독였다.
하지만 투수가 보크를 저지른 후 다음 공에서 무언가 잘못되는 것은 꽤 흔한 일이다.
따악-!
3
[필라델피아 필리스 10 : 3 보스턴 레드삭스] [8이닝 2실점 10K 짐 플로렌스, 3안타 5타점의 홍빈. 필리스를 이끌다.] [보크 이후 무너져 버린 앨버트 브린을 공략한 필리스. 5회 초 7실점 빅 이닝!] [36승 11패 필리스, 레드삭스를 짓밟고 쾌속 전진!] [레드삭스, 숙제를 남기다.] [가공할 만한 공격력 앞에 모든 게 무의미해진 수비력. 필리스는 그린 몬스터를 4번이나 직격] [홍빈, 자신이 최고라는 것을 몸소 증명! 샘 이델, “필리스 감독은 저런 포수를 라인업에 넣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행복해할 것이다.”며 홍빈을 극찬]┖헤이, 레드삭스. 좋은 경기였어. 그렇지? 이제 경기가 끝났으니, 우린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샘 이델은 정말 똑똑한 사람인 것 같아.
┖벌써 끝난 거야?
┖왜냐면 우린 뉴욕을 물리쳐야 하니까. 우리끼리 싸울 필요는 없잖아?
┖We are the world!
┖젠장, 필리스 진짜 잘하더라. 좀 아니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야. 샘 이델 다음으로 홍빈의 이름을 넣어도 괜찮아.
┖필리스 개자식들. 그래도 샘 이델이 최고의 포수야.
┖공동 최고는 어때? 근데 그걸 알아야 해. 우리가 인정하는 포수는 개빈과 레드 빈뿐이야. 샘 이델도 인정해 줄 만큼 멋진 포수라는 이야기지.
┖필리스 놈들은 이상한 재주가 있네. 그런데 싫진 않아. 정말로 이상한 일이지만.
┖헤이, 필리스. 너희가 우리와의 싸움을 멈추고 싶다면 당장 샘의 SNS에 달린 미친 소리를 지워! 그는 레드삭스의 자부심이라고!
┖그걸 언제 다 지우냐. 그냥, 너희도 개빈의 SNS에 미친 소리를 해. 그럼 됐지?
┖미친놈들. 좋아, 좌표 찍어.
┖http://evilline.jigag.realsorry_gb
┖가자, 레드삭스.
┖Go!
┖이런 미친놈들…….
┖양키스도 메츠와 손을 잡아야 하는 게 아닐까?
┖꺼져, 양키스 개자식들아. 스윕해 놓고 무슨 손을 잡겠다는 이야기야?
┖멍청한 뉴욕 놈들.
┖미개한 필라델피아 놈들.
┖필라델피아 형제를 욕하지 마, 뉴욕 개자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