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
홈플레이트의 빌런-19화(19/363)
# 19
팬이긴 한데 (2)
1
2029년 5월 30일.
개막전 이후 2개월 가까이 흐른, 서서히 각 팀의 올 시즌 윤곽이 드러나는 시기다.
말은 않지만 이미 대놓고 탱킹에 들어간 팀, 경쟁자들이 황당할 정도로 앞서 나가 버린 팀, 그리고 고만고만한 팀과 고민에 빠진 팀 등.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현시점에서 5할을 살짝 넘겨 선방 중이기는 했지만, 팀 밸런스가 흐트러져 불안불안한 행보를 지속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나쁘지 않지만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상황.
그에 반해 필리스의 마이너리그 팀들, 특히 더블A 팀인 레딩 파이틴 필스와 트리플A 팀인 리하이 밸리 아이언피그스는 각자 지구 1위를 달리며 순항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이너리그까지 챙기는 열성적인 팬들은, 언제나 그렇듯 좋은 활약을 보이는 마이너리거들의 콜업을 요구하곤 한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차이나 서비스 타임, 적응 같은 건 인터넷에서는 크게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단장이 당장 빅 리그로 올려야 할 선수가 최소 5명은 있어.
┕더블A 노 히터인 플로렌스 정도면 지금 5선발보단 낫지 않을까?
┕트리플A 투수들을 먼저 써 보는 게 어때?
┕잘 하는데 AA든 AAA든 무슨 상관이야?
┕맞아. 어차피 잘하는 놈들은 더블A에서 바로 올라와도 잘한다고.
┕제일 급한 건 포수 아냐? 더블A에 그 포수 끝내주던데. 왜 안 올리지?
┕걔 아직 18살이야.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18살이 뭐 어때서? 난 18살인데 애가 둘이야.
┕미친놈아 그거랑 이거랑 같냐?
┕오 세상에.
┕왜? 뭐가 문젠데?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할 건 애송이들 콜업이 아니야. 걔들은 내버려 두고 올해는 포기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
┕뭐? 지구 2위인데 왜 벌써 포기해?
┕다른 팀들이 엉망이라 지구 2위지. 어차피 포스트시즌 가 봤자 박살 날 뿐이야. :<
┕난 본문에 동의하는데. 그거 알아? 우리 단장 계약 기간이 올해가 마지막인 거.
┕마지막인 게 왜? 올해 우승 못 하면 걔 자르고 좀 더 똑똑하고 일 잘하는 단장 데려오면 되는 거 아냐?
┕마지막이니까 성적 내려고 무리해서 유망주 다 팔아 치우면 우린 좆되는 거라고. 생각해 봐. WS 우승도 못 하고 팜만 털리면? 못해도 5~6년은 메츠 놈들 밑에 있어야 할걸. 어쩌면 내츠보다도 더, 말린스보다 더할지도 모르지.
┕뭐? 만약 그랬다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보고 있나, 아처? 메츠 놈들을 짓밟고 지구 우승도 하고, 유망주도 팔지 말라고!
악명 높은 필리스 팬들은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막말을 내뱉기로 유명하다.
팬들의 SNS는 사실 생각보다 단장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세상에 SNS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아는 것이 바로 단장들이니까.
하지만 홍빈은 그런 반응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포틀랜드 시독스 전에서 2차전 투런 홈런, 3차전에도 투런 홈런을 때려 내며 1패 후 2연승을 이끌었다.
이쯤 되자 한국에서도 소문이 퍼지기 마련.
물론 더블A이기에 중계방송 같은 호사는 없었지만, 해외 스포츠 뉴스에서도 점점 홍빈의 기사를 다루기 시작했다.
┕뭔데, 얘? 벌써 더블A 갔음?
┕ㅇㅇ존나 잘함. 팀 하드 캐리 중.
┕ㅋㅋㅋㅋㅋㅋ국뽕 보소. 미국 간 지 얼마나 됐다고 하드 캐리? 설레발은 뭐다?
┕근데 쩌는 건 맞다. 필라델피아 현지 팬들도 난리임. 물건은 물건이다. 어린애 까지 마라.
┕필라델피아는 크림치즈밖에 모르는 새끼가 현지 팬 드립 ㄷㄷㄷ
┕근데 뭔가 느낌 오지 않냐? 콩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이름부터 콩빈이네. 홍 씨 하면 역시 콩이지.
┕콩 까지 마.
┕콩 까지 마.
┕하긴 기사에 2가 많이 보인다 ㅋㅋㅋ 도루도 2개 했다며?
┕콩 라인 지대로 타는 거 아니냐. 필리스도 2위더만.
┕PHI 유망주 홍빈, ‘2’경기 연속 ‘2’점 홈런으로 ‘2’경기 연속 결승타. ‘2’A에서 ‘2’런포만 ‘2×2’개째.
┕끼워 맞추기 보소 ㅉㅉㅉ
┕국뽕들 냄새 맡고 몰리기 시작하네.
┕국리건들 ㅋㅋㅋㅋ 필리건이랑 합치면 뭐냐 국필건이냐.
┕개노잼ㅡㅡ
2
짐은 투구 폼을 변경한 후, 3경기에서 25.2이닝 1실점을 기록 중이다.
삼진이 16개에 볼넷은 5개. 이 정도면 확실히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조금 불안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어쨌든 성공했으니까 된 거다.
다른 투수들도 점차 좋아지는 중이다. 짐처럼 혁신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하지만 나는 영혼의 배터리의 남은 한 칸을 아껴 두고 있다. 좋은 선수는 많지만 다들 고만고만해서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옥 같은 원정 13연전을 치르고 홈으로 돌아왔는데, 그 와중에 13경기 동안 팀 평균 자책점이…….
2ㅅ2 : 콩.콩콩.
2.22다.
어쨌든 13경기 동안 11승 2패를 거두었고…….
2ㅅ2 : 1+1승 콩패.
그래, 알았다고.
KBO에서 뛸 때는 1위에 익숙했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2라는 숫자가 내 기사에 많이 나와서 댓글이 콩으로 도배되고 있다.
난 콩이 아니라고. 난 항상 1위였는데 갑자기 왜 콩이 된 건지 모르겠다.
-Beane. 내일 아침에 같이 경기장 갈 거지? -지미 플로렌스.
공교롭게도 이 양키 놈들에게 내 별명이 Beane이 되어 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사기꾼 단장의 성이다. 그 양반 별명도 콩 단장이었는데.
원정 내내 사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 줬다고 저렇게 부르곤 하는데, 그래도 팀 동료들이 한국에서 ‘콩’이란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몰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그러자고 답장을 해 준 후, 파워볼을 사고 매장에서 나왔다.
흐흐. 이게 대체 얼마야.
ㅇㅅㅇ : …….
ㅇㅅㅇ : 3천 안타 못 때리면 그 돈 다 없어질 거다.
ㅇㅅㅇ : 열심히 야구해라, 멍청이.
17억 달러인데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2명이 나눠 먹는 건 좀 아쉽긴 하지만.
원래는 조금 더 일찍 사서 그냥 독식하려다가, 내가 독식해 버리면 원래 먹어야 할 사람이 못 먹으니까 그냥 통 크게 양보하기로 했다.
원래라면 17억 달러를 캘리포니아에 사는 웬 여자가 독식하는 거였지.
그래도 반이 어디야. 17억 달러나 8억 5천만 달러나. 어차피 죽을 때까지 다 쓰지도 못할 텐데.
안 그래?
ㅇㅅㅇ : 자기 합리화 능력으로 타격을 했더라면 넌 10할 타자가 되었을 거다.
10할 타자라.
발음이 좀 묘하긴 한데, 그냥 넘어가자.
기분 좋은 날이니까.
3
“스트라이크-아웃!”
산뜻하게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 세운 짐은 혀를 날름거리며 다시 투구 준비 자세를 잡았다.
투구 폼 변화 말고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저런 자세다.
공격성. 신속함.
인터벌이 꽤 긴 편이었는데, 자신감이 점점 붙으면서 거의 인터벌을 두지 않고 타자를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투수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게 가장 좋다.
개인적으로 뇌가 땅콩만 한 녀석들만 투수를 했으면 좋겠다. 감수성 풍부한 놈들은 호흡 맞추기 피곤하다.
“스트라이크!”
뉴브리튼 록캣츠의 2번 타자는 키워드에 ‘인내심’ 하나뿐인 우타자다.
키워드가 야구 선수로서의 성공을 무조건 보장하지는 않는다.
보잘 것 없는 선수가 4개, 5개씩 키워드를 달고 있을 때도 있고, 꽤 괜찮은 선수가 키워드를 1개 혹은 2개만 가지고 있을 때도 있다.
사실 아예 없는 선수도 본 적 있다. 미국에선 못 봤지만.
“볼!”
그리고 인내심 키워드를 가진 선수들은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을 설정하는데 능하다. 저거 하나만 가지고도 A급이라면, 출루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팀을 만나면 빅 리그 무대를 밟을 수도 있을거다. 팀에서 2번을 달고 있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일테고.
하지만 결정적으로.
“스트라이크! 아웃!”
자신의 존에서 벗어난 애매한 공은 건드리지 않기에, 삼진과 볼넷이 동시에 많다.
그리고 짐의 제구력은 날이 갈수록 좋아져서 애매하지만 심판이 잡아 줄 만한 코스에 공을 집어넣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그리고 상대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온다.
어디서 많이 본 선수다. 그리고 한 번쯤 실제로 보고 싶기도 했던 선수.
[에이머 시나.] [우투양타, 유격수.] [키워드 : 해결사, 스프레이 히터, 홈런, 호타준족, 승부욕, 인내심, 5툴 플레이어, 자존심.]키워드가 여덟 개?
이거 실화?
‘끔찍한 놈.’
이 선수를 모를 리가 없지. 메이저리그 데뷔를 언제 했더라? 아마 올해였던 거 같은데?
말하자면 아주 긴 선수다.
“파울!”
바깥쪽 낮은 코스로 살짝 빠지는 슬라이더인데, 쉽사리 걷어 낸다.
확실히 메이저리그는 괴물들의 천국이다.
그리고 마이너리그에도 예비 괴물들이 굉장히 많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만약 요정 없이 이곳에 도전했더라면, 이 괴물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볼!”
하지만 그런 가정은 불필요한 것이기는 하다. 잘해야지. 무조건 잘해야지.
아무리 내 앞에서 홈 플레이트로 바짝 붙는 이 선수가 어마어마한 커리어를 쌓을 그 선수라 하더라도,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했다 해도.
“볼!”
“흡!”
홈 플레이트에 바짝 붙으면 얼굴에 공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건 똑같다.
“일어서, 엄살 부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도 안 맞을 공이었잖아.”
“뭐?”
바닥에 엎드린 에이머 시나가 나를 보며 미간을 꿈틀댄다.
아무리 내가 네 팬이지만, 지금은 야구 경기 중이다. 사인해 달라고 살랑댈 수는 없다.
“게임에 집중해.”
나와 에이머 시나가 으르렁대자 구심이 우리 사이를 중재했고, 시나는 곧 타석으로 복귀했다.
스트라이크존 바깥으로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포심 패스트볼.
“파울!”
2스트라이크 2볼.
그리고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
딱!
“아웃!”
거의 바운드될 듯 들어오는 공을 갖다 맞혔는데, 2루수 라인 드라이브 아웃.
이런 걸 때려도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낸다 이거지?
“2루로 올 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은 하지 마라. 얼굴을 박살 내 줄 테니까.”
에이머 시나가 눈깔에 힘을 잔뜩 주고 날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나는 그냥 씩 웃어 버렸다.
“홈으로 들어올 생각 하지 마라. 네 머리통을 으깨 버릴 테니까.”
잘 맞은 타구라도 아웃은 아웃인데 뭐.
이 괴물은 메이저리그에서 40홈런을 훌쩍 때려 낼 거다. 60홈런 시즌도 있을 정도로 장타력을 갖췄음에도 정교한 타격을 하는 완벽에 가까운 타자다.
저 선수를 보니 정말 묘한 감정이 든다.
근데 사고를 쳐도 너무 큰 걸 많이 쳤다. 저 선수의 기행이 다 밝혀지고 나서 전 세계 야구 팬들이 충격에 빠질 정도였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야구 스타였으니까.
나도 정말 좋아했었는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