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6)
홈플레이트의 빌런-187화(187/363)
# 187
Hong my god (6)
1
창조의 영역이라면 모방이란 심각한 범죄고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게 스포츠에서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어떤 선수가 누군가의 플레이를 보고 감명받아서 따라 하려 한다면, 그건 그리 나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고교 최대어 포수 권준영, “내 롤 모델은 홍빈 선배.”] [타격 천재 김연찬, 홍빈 타격 폼 벤치마킹… 타율 0.720으로 주말 리그 타격왕.] [홍빈 타격 폼 무작정 따라 하는 2군 타자 급증. 실효는? 전 트윈스 감독 김문성, “각자에게 맞는 타격 폼을 찾아야.”]솔직히, 따라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따라 한다고 다 됐으면 한국 투수들은 씨가 말랐을걸?
개중 몇몇은 꽤 성공하긴 했지만, 그중에도 대부분은 그냥 원래 야구를 잘하는 놈들이었을 뿐이다.
프로에서도 날 따라 하려는 선수들도 몇몇 있었고, 날 따라 하려 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쁜 적은 없었다.
웃기기도 하고, 그래도 날 롤 모델로 한다는 게 뭔가 흥미롭기도 하고, 가끔은 도와주고 싶기도 하고.
“스트라이크!”
[송윤근] [우투우타, 포수] [키워드: 로우볼 히터, 철벽, 승부욕]KBO의 투수들은 일반적으로 빠른 공이 약하고(여기서 평범한 패스트볼도 KBO에 가면 강속구가 된다)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 위주로 승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3볼 노 스트라이크에서도 바운드되는 포크볼 던지는 투수가 한둘이 아니니까.
어쨌든, 낮은 변화구를 후려갈기는 저 타격 방법을 고수하면 당연히 여기서 안 먹힌다.
메이저리그는 철저하게 상대를 분석하는 곳이고, 강점이 하나뿐이라면 그게 정말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밀어붙일 정도로 강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원래 송윤근 특유의 타격 폼은 자세를 완전히 낮춘 기마 자세로, 온몸을 이용한 회전력으로 타구에 힘을 싣는다.
종종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개선점으로 지목받는 부분이 레그 킥인데, 레그 킥이 아니라 몸통 회전을 무기로 하는 선수였다.
메이저리그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 회전력과 손목 힘만으로 펜스를 가볍게 넘겨 버리는 타자들.
하지만 송윤근의 그것은 한국에서는 몰라도 미국에서는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방금 스윙을 보니 타격 시작 폼은 그대론데, 살짝 인스텝을 밟는다.
나도 종종 저렇게 하기는 하는데, 그건 보통 3볼 노 스트라이크나 1볼 노 스트라이크로 투수를 몰아넣었을 때, 밋밋한 패스트볼을 기다릴 때다.
그런데 또 원래와 다른 건 그립 위치가 상당히 낮은 데서 시작한다는 거고, 흠.
ㅇㅅㅇ: 네놈 타격 폼을 보고 상당히 연구했군.
ㅇㅅㅇ: 배울 만한 사람이 한둘도 아닌데 왜 하필 초멍청 포수의 타격 폼을 보고 연구했을꼬.
ㅇㅅㅇ: 오호통재로다.
아니 뭐, 마음은 알 것 같다. 미친 괴물들이 날뛰는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인이 살아남는 법을 찾으려 하는 노력이었을 테니.
그리고 저게 그나마 효과를 발휘하는 걸 보면, 나름 연구를 잘한 것 같다.
“파울!”
바깥쪽 빠지는 슬라이더에 배트를 갖다 맞히는 데는 성공한 걸 보면, 더 그렇다.
원래의 자세에서 몸 쪽 높은 공과 중간 높이의 공에 대한 약점을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음.
조금 의외긴 하다.
그래도 자기 힘으로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양반이, 열 살은 어린 날 벤치마킹 하다니.
별거 아닌 걸지도 모르지만 그건 꽤 자존심이 걸린 일일지도 모르고… 조금 도와주고 싶은 마음조차 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경기 중엔 그런 거 없다.
저 자세로는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오는, 휙 꺾여 버리는 좋은 슬라이더는 때려 낼 방법이 없을 테니까.
지금 마운드에서 마실이라도 나온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쇼는 좋은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다.
“스트라이크-아웃!”
다소 극단적인 어퍼 스윙이 몸에 익어 버린 저 상태에서는 바깥쪽 높은 패스트볼을 툭 밀어 쳐 1, 2루 간을 꿰뚫는 안타를 노릴 수밖에 없는데, 거기서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 버리면 해답이 없어진다.
“하… 안 되네, 이거.”
삼진을 당하고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은 송윤근은, 나를 바라보며 미묘한 웃음을 짓고는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뭐, 그래도 내 덕에 메이저리그에 남아 있는 걸 보니 조금 뿌듯하네.
ㅍㅅㅍ: 네 녀석은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한 타입이군.
살아 있는 교보재인 날 보고 배웠으니 마이너리그 관광객 신세를 면한 거 아니냐?
ㅍㅅㅍ: 정작 해 준 것도 없으면서.
존재 자체가 도움이 되는 거지.
ㅍㅅㅍ: 존재 자체가 도움이 되는 것은 요정님이지, 똥쟁이 포수가 아니다.
후후.
ㅡㅅㅡ: 왜 웃냐.
다시 한 번 설사 같은 걸 했다간…….
ㅇㅅㅇ: ……?
팬티에 널 넣을 것이다.
ㅇㅁㅇ: ……?
넌 어쩔 수 없이 내 배변 활동을 멈추게 되겠지.
ㅇ血ㅇ: 이익……!
뭐.
한번 해 보시든가.
8ㅅ8: 천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천벌은 너랑 내가 같이 받게 될 것이다.
8ㅅ8: …….
8ㅁ8: 못된 놈아!
2
딱!
에이머 시나의 1루타.
따악!
홍빈의 2루타.
무언가를 얻으려면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콜 무스비가 변화구를 존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은 꽤 훌륭한 변화이긴 했지만, 공격적이기 그지없는 필리스의 테이블 세터는 확고한 노림수를 가지고 결과를 만들어 냈다.
“끔찍한 일이로군요. 이닝이 시작되자마자 공 두 개를 던지고 안타 두 개를 연속으로 맞았고, 실점했습니다.”
“1회에 이어 또 홍빈에게 실점하는 콜 무스비. 슬라이더 노림수가 제대로 통했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서는 승리가 꽤나 절실한 시점이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지구 2위와 와일드카드를 함께 노리던 말린스가 필리스와의 3연전에서 루징 시리즈를 기록했지만, 아직 1.5경기 차이로 앞서 나가 있는 상황.
말린스가 홈에서 메이저리그 공식 호구로 전락한 메츠를 상대하는 사이, 메이저리그 전체 선두인 필리스를 맞이한 브레이브스로서는 한 경기라도 잡아야 했다.
절실하다고 해서 항상 잘되는 것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콜 무스비는 꾸역꾸역 막아 내고는 있었다.
“5회 초, 2사 2루. 케이스 에이블이 2루에 나가 있습니다. 타석에 들어오는 에이머 시나. 오늘 2안타에 2득점 경기를 펼치고 있죠. 단타 하나, 2루타 하나입니다.”
현재까지 4.2이닝 2실점.
최고의 공격력을 뽐내고 있는 필리스를 상대로 꽤 호투하고 있었지만, 에이머 시나는 3구째 꽉 찬 패스트볼을 그대로 잡아당겨 좌측 펜스를 넘겨 버렸다.
“갑니다! 넘어갔습니다! 득점뿐만 아니라 해결할 능력도 있다는 것을 증명한 에이머 시나!”
“이렇게 되면 히트 포 더 사이클에 3루타 하나만을 남겨 두는군요.”
“콜 무스비, 크게 낙심한 표정을 짓습니다. 투수 코치가 올라오는군요.”
“그래도 조금 더 던지게 할 듯합니다. 투구 수는 84개로 아직 여유가 있고, 최소 5이닝은 책임지게 해 줘야죠.”
“마운드에 모인 브레이브스. 교체는 아닙니다. 투수 코치가 콜 무스비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내려가는군요.”
“타석에는 필리스의 악마, 홍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2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하고 있죠. 그도 에이머 시나와 같이 단타 하나, 2루타 하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송윤근은 홍빈에 대한 분석을 굉장히 열심히 한 포수다.
심지어 고교 시절 영상까지 어렵게 구해서 찾아볼 정도였다.
거기서 내린 결론은, 어쩔 수 없는 선수라는 것이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홍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송윤근은 어쨌거나 홍빈을 후배로 생각했다.
하지만 홍빈에 대해 분석을 하면 할수록 후배는커녕 자기가 따라갈 수도 없는 선수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오늘 경기에서도 몸소 느끼고 있었다.
‘몸 쪽 아래로 빠지는 싱커.’
바깥쪽 높은 패스트볼을 밀어 쳐 안타를 뽑고, 존에 걸치는 슬라이더를 때려 2루타를 뽑아냈다.
송윤근에게 홍빈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공포감이 있기는 하지만, 타자들은 기본적으로 좋았던 결과를 떠올리며 타석에 들어오기 마련.
앞선 두 타석과는 정반대의 공을 선택한 후에 할 수 있는 일은, 투수가 제대로 던져 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콜 무스비와는 꽤 호흡이 잘 맞는 편이었고,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홍빈이 짐 플로렌스와 로즐 펠리시다드를 성장시킨 것처럼, 자신도.
따악-!
하지만 생각보다 싱커가 덜 가라앉았다.
전 타자에게 홈런을 맞았고, 홍빈에게 지독하게 당해서일까.
가라앉지 않은 싱커는 홍빈에게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홈런이 되기에는 각도가 낮았다는 것 정도.
“우익수! 다이빙! 아! 글러브가 닿지 않았습니다!”
크게 맞은 투수를 돕기 위해 몸을 날렸지만, 잡을 수 없었던 공.
그나마 공이 근처에 떨어져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내주는 일은 피했지만, 홍빈은 3루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런, 묘하군요.”
“필리스의 두 천재 타자가 동시에 히트 포 더 사이클에 각자 3루타 하나와 홈런 하나를 앞두고 있네요.”
“한 경기에 히트 포 더 사이클이 두 개 나온 적이 있나요?”
“글쎄요. 음, 없는 것 같군요.”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오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기대되는군요! 브레이브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3
“아웃!”
5회 초에 내 타구를 놓친 우익수 밥 오닐의 타구가 진 테프먼의 글러브에 쏙 들어가며 이닝 종료.
8회 말이 끝난 지금, 팀은 5 대 2로 앞서 있기에 우리 불펜이 대폭발해서 동점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내게 주어진 기회는 9회 초 이번 타석이 끝이다. 7회에 홈런을 쳤어야 했는데.
“대기 타석에서 지켜봐. 내가 히트 포 더 사이클을 완성하는 이 순간을.”
에이머는 누구보다 빠르게 더그아웃으로 달려오며 내게 그렇게 말하곤 배트 케이지를 향해 뛰어갔다.
아니 뭐, 히트 포 더 사이클도 못 해 본 선수가 여기 있나?
ㅡㅅㅡ: 잘난 체가 도를 지나치는군.
약간 그거 같지 않나? 꼬마가 엄마 나 좀 봐 봐, 아빠 나 좀 봐. 저런 아들을 낳는 건 좀 끔찍하긴 하지만.
9회 초 선두 타자로 나설 에이머는, 히트 포 더 사이클에 3루타 하나만을 남겨 두고 있다.
에이머도 7회에 기회를 놓쳤다. 3루타를 칠 마지막 기회가 될 공산이 크다.
“헤이, 에이머.”
“3루타 치러 나가는 중이니까 말 걸지 마.”
“혹시 홈런 치면 홈 밟지 말고 들어와. 누의 공과로 3루타가 될지도 모르니까.”
“…….”
뭐, 설마 그러겠느냐만.
아니, 혹시 그럴지도?
흠, 설마 그러겠어? 그래도 홈런 두 개면 오늘 나보다 홈런 많이 친 거니까 이겼다고 좋아할 놈인데.
스코어는 3점 차.
브레이브스는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셋업 맨 레온 클레이를 마운드에 올렸다. 콜 무스비가 내려간 뒤 4번째 투수. 어떻게 또 투수 교체 타이밍이 기가 막혀서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지는 않았다.
최근에 그레이가 블론 세이브를 했었고, 9회 말에 극적인 끝내기를 위해 실점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다.
브레이브스의 필승조로, 95~98마일의 강력한 패스트볼과 92~94마일 정도의 컷 패스트볼을 던지는 공격적인 투수다.
따악-!
음.
좀 그렇다.
공격적으로 승부하다가 에이머랑 내게 두들겨 맞고 있으면서도 여전한 모습.
에이머는 3루까지 완전히 전력 질주했고,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를 선언받았다.
브레이브스에서는 챌린지(비디오 판독)를 신청했지만, 결과는 원심 유지.
심장이 입에서 튀어나올 것처럼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에이머는 자신의 히트 포 더 사이클을 자축하고 있다.
[레온 클레이] [우투우타, 중계 투수] [키워드: 파이어볼러, 싸움닭, 불나방] [상대 투수의 국적이 미국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상대 투수와의 연봉 차이가 4.8배로 확인되었습니다!]하긴, 선발투수는 공격적으로 못 던지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인 선수였는데 그 약점을 겨우 고쳤고, 이 투수는 공격적인 투구가 가장 강점인 선수니까.
포수로서는 투수의 실력을 가장 잘 뽑아낼 수 있는 선택을 한 것뿐일지도.
우투수지만, 좌타자를 상대로는 몸 쪽 컷 패스트볼을 강하게 잘 던지기에 우타석으로 들어섰다.
“내가 이런 말까진 안 하려 했는데.”
“뭘요?”
“너 진짜 잘… 아니다. 혹시 괜찮으면 내일 잠깐 식사라도 할 수 있을까? 애틀랜타에 괜찮은 삼겹살집이 있어. 내가 대접할게.”
“생각 좀 해 보고요.”
“나 이상한 사람 아니다.”
썰렁한 소리는 여기까지.
솔직히, 히트 포 더 사이클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내게는 안타 네 개일 뿐이다.
그런데 의기양양한 얼굴로 날 보며 히죽 웃고 있는 에이머를 보자니 나이에 맞지 않게 호승심이 불타오른다.
“볼!”
레온 클레이도 조금 긴장했는지 초구 볼.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은 브레이브스에게는 독이다.
어쩌면 내가 홈런을 때려서 이걸 완성할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르겠다.
“볼!”
2구도 볼.
컷 패스트볼이 아래로 휙 꺼진다.
“볼”
아무리 강력한 셋업 맨이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긴장될 수밖에 없겠지.
“볼넷 주면 도루할 거예요.”
“살살 좀 부탁하자, 응?”
3볼 노 스트라이크.
만약 볼넷을 내주고 싶지 않다면 지금쯤 존으로 패스트볼 하나 들어올 차례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송윤근이 날 따라 한 것처럼 인스텝을 밟을 준비를 했다.
인스텝을 밟으면 바깥쪽에서 살짝 가운데로 들어오는 패스트볼을 강하게 끌어당길 수 있다.
그립은 높게, 왼쪽 어깨는 살짝 뒤로.
나도 사람인지라 이쯤 되면 욕심이 난단 말이지.
홈런을 치면 히트 포 더 사이클, 게다가 홈런 치기에 가장 좋은 볼카운트.
만약 다르게 오더라도 그냥 때릴 생각이다.
무사 3루면 적당히만 때려도 점수를 올릴 수 있으니까.
특히 에이머 정도의 주력이라면 내야수 글러브로 쏙 빨려 들어가는 라인드라이브가 아니라면…….
레온 클레이가 굳은 표정으로 투구를 시작한다.
왼발을 안쪽으로 살짝 끌어당기며, 안으로 당겨 탄력을 유지한 어깨를 강하게 돌리면서!
따아악-!
이건…
제대로다.
타구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외야 스탠드를 향해서 날아가고 있다.
안 봐도 홈런이지.
백투백 히트 포 더 사이클?
치고 나니 소름이네.
요정?
◠▽◠: (박수,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