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19)
홈플레이트의 빌런-20화(20/363)
# 20
팬이긴 한데 (3)
1
“상대 팀 유격수의 컨디션이 굉장히 좋아 보여. 여차하면 걸러도 된다. 굳이 승부를 걸 필요는 없어. 알고 있지?”
“예, 코치님.”
코치님의 말에 간단하게 대답한 후, 마스크와 장비를 벗었다.
포수 장비는 여전히 무겁다. 하긴, 예전보단 가벼워지긴 했지만. 그리고 좀 기다리면 더 가볍고 튼튼한 장비가 나오긴 하겠지.
원터치로 입고 벗고 하면 얼마나 좋아. 돈 생기면 그런 거나 개발할까? 아이언맨 슈트처럼 자동으로 포수 장비를… 뭐, 됐다.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자.
그나저나, 코치님의 말이 맞다.
사실 컨디션 좋은 타자랑 굳이 좋은 승부를 할 필요가 없다. 컨디션과는 별개로, 에이머 시나의 미래 커리어를 다들 알게 된다면 정면 승부 하고 싶어 하는 투수는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투수가 개인적으로 타자랑 승부하고 싶어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야구는 팀 스포츠다.
존 끄트머리를 표적으로 삼는다고 무조건 볼넷이 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인플레이된 타구의 7할가량은 수비가 잡아낸다.
야구에서 각 선수는 장기짝과 같다.
1루수, 2루수, 유격수, 3루수… 팀의 구성이 다른 경우는 없다. 좌익수가 없는 팀 따윈 없으니까.
그리고 포수를 그라운드의 사령관으로 부르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경기에 들어가면 최소한 수비 상황만큼은 포수가 그 장기짝들을 움직인다.
투수는 자기가 경기의 주인공이라 생각하지만, 투수는 나의 장기짝 중 하나일 뿐이다.
“지미.”
“응?”
“오늘 슬라이더가 좋더라. 결정구로만 쓸 게 아니라 카운트 잡는 데 써도 좋을 것 같아.”
“그래? 좋아. 슬라이더 비중을 늘리자는 거지?”
그리고 좋은 포수는 선수들이 자신이 장기짝인지 모르게 만들 줄 알아야 한다. 포수를 제외한 8개의 장기짝들이 각자 자신을 주인공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거다.
“맞아. 1이닝처럼만 하면 넌 또 승리를 거둘 수 있어. 오늘 끝내주니까.”
“그래? 좋아. 고마워.”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장기짝 1.
“케이스, 스완! 상대 3번이 나오면 조금 넓게 수비해 줘. 리바이랑 데이먼은 라인에 조금 가까이 붙어서 뒤로 세 발자국만 물러나 줘.”
“좋아.”
“알았어.”
장기짝 2, 3, 4, 5도 고개를 끄덕인다.
나중에 에이머 시나가 타석에 들어오면 사인으로 해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말하는 건…….
그냥 뭐, 별거 없다.
동양인이라고 소통에 지장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혹시 모를 편견을 불식시키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조하는 거뿐이다. 뭐라도 어필을 해야 한다. 여긴 가만히 있는 놈에게 기회가 갈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니까.
“좋아. 그럼 이제 수비 코치를 해고하고 타격 코치를 하나 더 고용하면 되는 건가?”
감독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농담을 했다. 애당초 무슨 농담을 저렇게 하시는진 모르겠지만.
“빈, 난 당장 네 콜업을 주장할 거야. 아직 실직자가 되기엔 난 너무 젊으니까. 트리플A나 메이저 코치가 잘리라지. 난 안돼.”
수비 코치님이 정색하며 내게 말씀하셨다.
팀 분위기 아주 좋네.
마음에 들어.
2
타격은 흐름이 있다.
한 타석에서의 결과로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
조급한 마음은 타격 밸런스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지금은 3번 타자로 나선 폴 데이먼이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 있다. 나는 대기타석에 있고.
이런 상황은 포수를 특히 힘들게 한다. 여기서 끊기면 타격 준비를 멈추고 포수 장비를 차고 나가야 하니까.
“스트라이크!”
상대 투수는 오늘, 스카우팅 리포트와는 조금 다른 피칭을 하고 있다.
“스트라이크!”
상대 투수는 전형적인 싱커-커브볼러다. 하이 패스트볼과 뚝 떨어지는 커브, 그리고 스트라이크존 아래를 노리는 싱커를 조합하는 타입.
타자는 높은 곳과 낮은 곳 중 하나를 노려야 하며, 상반되는 두 코스를 노리는 정석적인 구종 조합이다.
데이먼은 높은 코스 포심을 2구 연속 흘려보냈다. 낮은 코스를 노리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아무래도 투수의 주 무기가 싱커니까.
“파울!”
그런데 3구째도 하이 패스트볼.
패스트볼 구속이 91~92마일 정도로 그리 빠르진 않은데 꽤 배짱 있는 투구를 한다. 제구력도 나쁘지 않다.
방금 공은 그나마 폴 데이먼이 재능 있는 타자라 파울로 걷어 낸 거지, 어지간한 수준이라면 이 공으로 삼진을 먹었을 거다.
“볼!”
용케 참았다. 거의 배트가 나갈 뻔했는데.
특히 지금 이 팀의 야수 중에 두세 선수 정도는 메이저리그에서 꽤 활약하는데, 그도 그중 하나다.
따악!
“굿 스윙! 폴!”
“좋아!”
결정구로 던진, 살짝 몰린 커브를 놓치지 않고 때려 내 3유 간을 꿰뚫는 1루타.
이제 내 차례다.
포수라는 포지션이 체력 소모가 큰데, 이 상황에서 홈런을 때리면 비교적 여유롭게 베이스를 돈 후 벤치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장비를 챙기고 준비할 수 있다.
[인간 각도기 : 각도 설정(31도.)]인간 각도기 스킬은 내가 타구를 때려 내면 그 각도에 가깝게 발사 각도가 살짝 수정된다.
홈런을 때려 내기에 가장 알맞은 각도는 30~33도 정도다.
너무 낮으면 펜스를 넘기기 힘들고 너무 높으면 비거리가 짧아져 외야 플라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상황에 따라 각도를 수정하면 된다.
플라이가 필요하면 높이고, 강한 라인 드라이브 타구가 필요하면 내린다.
물론 스킬 활용의 전제 조건은 제대로 맞히는 거다. 제대로 못 때리면? 아무 쓸데없다. 아예 못 때리면? 전혀 쓸데없다. S급 스킬이라 해도 내가 활용할 수 있어야 S급인 거다.
어쨌든 타구의 각도가 미묘하게 바뀌면서 내가 원하는 타구가 나올 가능성이 조금은 증가한다.
그리고 상대 투수는 우리 팀 1, 2, 3번을 상대로 높은 코스 포심과 커브 위주의 피칭을 했다.
주 무기인 싱커는 단 한 구 던졌을 뿐이다.
“이봐, 떨어져.”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포수가 날 보며 으르렁댄다.
이런 신경전은 그냥 애교다. 나는 배트 끝으로 포수의 렉가드를 툭 치며 어깨를 으쓱했다.
“반가워.”
타자가 들어와서 배트로 포수를 툭 치면, 포수의 반응은 둘 중 하나다.
능청맞게(개빈의 표현대로라면 멍청하게) 웃으며 타자랑 인사 하거나.
ㅇㅅㅇ : 아니면 너처럼 짖던가.
내가 개냐? 짖게?
“다시 한번 내 렉가드를 건드렸다간 네 허리를 부러뜨릴 거다.”
그리고 혈기왕성한 포수들은(사실 나도) 타자의 이런 도발에 얼굴 근처로 날아오는 공으로 응수하기 마련이다.
“볼!”
어느 정도 예상한 코스기에, 목만 살짝 움직이며 피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절대 겁먹은 티를 내면 안 된다는 거다. 나는 살짝 휘파람을 불었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네.”
“뭐라는 거야? 미친 자식.”
“네가 타석에 들어올 때 기대해. 우리 투수가 얼굴 앞으로 공을 던지면 찬바람이 쌩쌩 불거든.”
포수로서의 동업자 정신?
천만에.
사실 나는 포수들이 타격을 힘겨워하는 것이 조금은 웃긴다고 생각한다.
포수만큼 포수와 투수를 잘 아는 타자가 어딨겠는가.
“볼!”
이번엔 조금 더 몸에 가깝게. 나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날아오는 공을 피했다. 공에 맞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픈 건 싫다.
흠. 성질 급한 어린 친구로구먼.
ㅇㅅㅇ : 얘 너보다 5살 많은데.
웃기는 소리. 내 정신연령은 40대다. 이런 애송이보다는 훨씬 연장자라고 봐야 한다고.
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네 정신연령이?
흥, 됐다. 잠시만 조용히 해라.
예전처럼 너 때문에 헛스윙 하는 건 별로니까.
어쨌든, 2볼 상황이다.
상대 투수는 안 그래도 싱커를 자제하고 있다. 스카우팅 리포트를 보면, 최근 2경기에서 싱커가 난타당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투구 패턴이 단조로운 편이라 난타당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경기 초반은 포심-커브로 풀어 나가려 했을 테고, 타순이 한 바퀴 돌면 상황을 보고 패턴을 바꾸려는 생각일 거다.
게다가 볼카운트가 2볼로 타자의 카운트이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다시 포심을 던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것도 애매한 코스보다는 조금 더 중앙에 가깝게.
잘못 던졌다가는 3볼로 몰릴 테고, 주자 1, 2루를 채우는 것보다는 수비를 믿는 게 나으니까.
그리고 내 예상은…….
따악!
맞았지, 뭘.
그것도 제대로.
중앙으로 몰린 포심이, 내 배트의 스위트스폿에 제대로 맞고 멀리멀리 날아간다. 빠르고 강하게. 사실 펜스를 아슬아슬하게 넘겼는데, 인간 각도기 스킬이 없었더라면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였을 거다.
“Wow! 빈! 또 투런이야!”
“완전히 미쳤어!”
더그아웃에서 동료 선수들이 난간을 두들기며 소리친다.
음?
그러고 보니 또 투런이야?
3
4회 초 1사 주자 없는 상황, 스코어 2 대 0.
짐은 여전히 훌륭한 공을 던지고 있고, 팀은 내 홈런으로 앞서 나가고 있다.
그리고 다음 타자는 에이머 시나다.
녀석에게 말해 주고 싶다. 입이 근질근질하다.
불법 스포츠 도박도 하지 말고, 호화 요트에서 마약 파티도 하지 말고, 사생아도 둘이나 낳지 말고, 탈세도, 기자 폭행도 음주 운전도 하지 말라고.
아. 가정 폭력도 제발 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또 뭐 있더라, 젠장. 아, 술 먹고 감독 욕도 SNS로 하지 말고… 이건 그나마 비교적 가볍네. 뭐, 술이 웬수로구먼.
어쨌든 진심으로 충고해 주고 싶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날 미친놈 취급하겠지.
‘뒤로 물러나.’
야수들에게 다시 한 번 신호를 보냈다.
내야수와 외야수를 모두 후진시킨다.
한 번의 스윙으로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출루시키더라도 단타로 막거나 볼넷을 내줄 생각이다.
물론 에이머 시나는 발도 빨라서 충분히 도루도 가능하지만, 짐의 자세는 굉장히 간결한 편이고 나도 어깨는 자신 있으니까.
어쨌든, 이 녀석에게는 어려운 승부를 해야 한다.
일단은 바깥쪽 낮은 코스의 체인지업.
좌타석에 들어선 에이머 시나의 반대쪽으로 살짝 꺾이는, 각이 좋은 체인지업…….
따악!
하지만 야구는 언제나 마음먹은 대로만 되지 않는 법이다.
팔 한번 더럽게 기네.
뒤로 물러서서 수비하던 외야수들도, 뒤로 달려가길 포기할 만큼 큰 타구였다.
못 던진 게 아니다. 괜찮게 던졌는데 타자가 너무 잘 친 것일 뿐이다.
“홈런 치고 서서 들어와도 내 머리통을 으깰 거냐?”
에이머 시나는 시크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1루 베이스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음.
나도 2루 지나갈 때 저렇게 말할 걸.
ㅇㅅㅇ : 실력에서도 말발에서도 지는군.
뭐?
난 2점 홈런이고 쟨 1점 홈런인데?
ㅡㅅㅡ : 투승타타 어쩌고 하며 이 요정님을 야알못 취급한 그 몹쓸 놈은 어디의 누구였던가.
요정님, 우리 지나간 일에 집착하고 그러지 말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