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201)
홈플레이트의 빌런-202화(202/363)
# 202
죽거나 혹은 사라지거나 (6)
1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리버티 벨은 울렸지만 그건 더 이상 웅장하지도 즐겁지도 않았고, 우리 팬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우리 팀은 패배 직전에서 파이레츠의 마무리 투수를 무너뜨리며 8연승에 성공했지만, 개빈을 잃었다.
8ㅅ8: 대머리가 죽었어…….
죽긴 뭘 죽어. 노친네 아직 팔팔하니까 울지 마라, 요정 놈아.
“멍청한 꼬마! 홈런을 쳤으면 천천히 걸어 들어왔을 텐데!”
“그래서 저 때문이라고요?”
“젠장. 아니, 내 늙어 버린 다리 때문이지!”
개빈은 실려 나가면서도 헛소리를 해 댔다. 저게 헛소린가? 젠장. 모르겠다.
“잊지 마! 오늘은 내 덕분에 이긴 거야! 빌어먹을 세이버메트리션들에게 내 WAR를 1 올리라고 전해!”
뭐, 그래도 화낼 힘은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감정적으로는, 오늘 지더라도 개빈이 더그아웃에 남아있는 게 훨씬 낫다.
감정을 배제하고 그냥 야구만 생각하더라도 오늘 패배하고 개빈이 백업 포수로 남아 있는 게 당연히 낫다.
마이너리그 포수? 물론 난 안 다치겠지만, 그래도 걔들을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끝내기 승리를 거두고도 조용했던 시티즌스 뱅크 파크처럼 로커 룸은 조용했고, 우리는 차분하게 오늘을 마무리 지었다.
언제나 경기가 끝나면 와 있던 아리의 메시지가 없다.
스포츠 선수의 삶이란 이런 거다.
신체 활동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보니 언제나 부상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TV로 가장이 다치는 걸 보면 울면서 병원으로 달려가고, 한번 다친 적이 있는 선수의 가족은 언제나 가슴 졸이며 경기를 보게 된다.
8ㅅ8: 넌 결혼도 못 해 본 하자투성이 노총각이라서 그들의 마음을 모른다.
8ㅁ8: 홈런을 쳤어야지, 이 똥멍청이야! 그럼 대머리가 걸어서 들어갔을 텐데!
아니, 누군들 안 치고 싶어서 안 쳤나.
어쨌든 햄스트링은 흔한 부상 중 하나다.
물론 개빈의 나이가 나이고, 올 시즌이 은퇴 시즌인 만큼 팀은 공백을 좀 느끼겠지만, 개빈 개인에게는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다.
…아마도?
-복귀까지 3개월쯤 걸릴 거래. <아리♡>
집에 도착해서야 아리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고, 잠시 통화 끝에 수술까지 필요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약한 부상도 아니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아빠는 괜찮아 보여. 올 시즌 다 못 채웠다고 1년 더 할까라고 말하더라. 엄마는 당장 때려치우라고 말했어. 둘 다 진심이 아닌거 같긴 해.
8ㅅ8: 착한 대머리…….
8ㅅ8: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강한 척을 하다니…….
8ㅁ8: 대머리 살려 내라, 이 나쁜 놈아!
아니, 살려 내고 싶으면 네가 살려 내야지, 내가 무슨 수로 살려 내냐?
내일 아침 경기장으로 가기 전에 병원에 들르기로 약속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기 직전, 개빈의 외침이 들렸던 것 같다.
-꼬마! 올 때 샌드위치 사 와! 끝내주는 걸로!
2
“…….”
“…미안해요.”
“…….”
“…고의가 아닙니다. 몰랐어요. 그게 들어가 있을 줄은.”
“젠장. 크흡흡.”
개빈은 병원 침대에 누워서, 내가 사 온 샌드위치를 보며 침묵하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를 보고 왜 웃냐고? 음… 그게, 내가 사 온 샌드위치가 좀…….
정말 고의가 아니라, 근처에 보이는 데서 샀을 뿐이다.
근데 누가 알았겠느냐고.
그 샌드위치가…….
“제기랄. 큭큭, 햄이랑 스트링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라니.”
“제기랄. 정말로 몰랐어요. 그냥 제일 인기 많은 걸로 달라고 했더니 그걸 준 거예요.”
“큭큭큭. 마음에 들어. 이것 봐. 구운 스트링 치즈가 내 햄스트링처럼 늘어난다고!”
“…….”
내가 산 샌드위치가 왜 하필 햄 샌드위치랑 스트링 치즈 샌드위치냐고!
뭐라 할 말이 없다. 솔직히 좀 웃기긴 한데 미안해서 웃지도 못하겠고. 젠장. 스트링 치즈가 햄스트링처럼 늘어난다고? 햄스트링 환자가 이런 걸로 웃어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웃음을 겨우 참다 보니 오렌지 주스 친구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개빈은 한동안 병원 침대에 누워서 치료를 받다가, 재활 후 팀에 다시 합류할 예정이라고 했다.
“회복해서 1년 더 한다면서요?”
“농담이야.”
“왜요, 그냥 1년 더 하지.”
“허리, 무릎 다 고장 났는데 이제 햄스트링까지 다쳐 버렸어. 빈볼 맞고 마운드로 뛰어가다가 햄스트링 터지면 그게 무슨 웃긴 꼴이겠어? 안 그래?”
개빈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그것도 꽤 웃긴 일이기야 하겠지만, 꼭 그건 아닐 텐데.
“맞으면 그냥 바닥에 쓰러져 있어요. 제가 대신 때려 줄 테니까.”
“젠장. 그거 내가 너한테 한 이야기 같은데?”
“맞아요. 이제 제가 개빈을 보호해 드릴게요.”
“아무도 널 보호한 적 없어. 네게 맞고 있는 상대 투수가 죽지 않게 구해 준 거지. 음… 젠장, 됐어. 어제 바바라가 많이 울었어. 별거 아닌 햄-스트링 치즈 부상인데.”
“…치즈는 좀 빼요. 햄이랑 스트링 사이를 띄워서 말하지도 마요.”
“큭큭.”
짧게 웃은 개빈은, 스트링 치즈를 살짝 구워서 넣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뭐, 선수를 그만둬도 또 코치나 한답시고 시즌 내내 돌아다니겠지만, 그래도 새벽 3시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바깥쪽 낮은 패스트볼!’이라고 외치진 않겠지.”
그 말엔 나도 웃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휴일에 아리아나와 함께 내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가, ‘몸 쪽 높은 패스트볼!’이라고 외치며 일어난 적이 있다.
개빈과 나는 포수라서 공감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눴고, 선수로 복귀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적당히 걸을 수 있으면 코치 자격으로라도 더그아웃에 복귀할 수 있으면 복귀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벤치 클리어링 일어나면 가만히 있어요. 투수한테 달려가다가 1루 베이스쯤에서 햄스트링 터지면 부끄럽잖아요.”
“걱정하지 마.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마운드로 뛰어갈 테니까.”
“휠체어를 탔는데 뛴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주먹을 휘두르면서 뛸 거야.”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큰 상실감은 안 느끼는 것 같아서 조금은 안심하고 병원을 나왔다.
안심이라기는 조금 그렇긴 한데, 마음이 착잡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ㅍㅅㅍ: 섬세하지 못한 초소형 포수.
ㅍㅅㅍ: 대머리의 상실감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젠장.
독심술 스킬이라도 주고 그런 말 하든가.
아니면 네가 개빈 회복이라도 시켜 주든가.
ㅍㅅㅍ: …….
ㅍㅅㅍ: 흥.
흥은 무슨.
입만 살아가지고.
ㅍㅅㅍ: 요정님의 입은…….
네 입은 시옷이지.
ㅍㅅㅍ: 뭣?
3
우리 선수단은, 모두 헬멧에 4를 쓰고 경기에 나서기로 했다.
4번은 개빈의 백넘버인 4번이다.
ㅎㅅㅎ: 대머리를 추모하는 건가.
추모라니. 개빈 아직 안 죽었거든. 개빈 살려 내라고 울 때는 언제고 이젠 또 죽었다냐.
나도 헬멧에 4를 쓴 후, 훈련에 나섰다.
“개빈이 다친 건 다 나 때문이야.”
뜬금없이 에이머가 자책하고 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무슨 소리야?”
“제기랄. 내가 끝내기 홈런을 쳤으면 개빈이 전력 질주 할 일도 없었을 텐데.”
가끔 자기 탓이 아닌 불가항력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탓으로 돌리려는 사람들이 있긴 있지.
물론, 나는 개빈이 다친 게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뭐, 그 전에 있었던 득점권 찬스를 날려 먹어서 9회 말에 개빈을 그렇게 전력 질주 하게 만든 다른 타자들에게 책임이 있는 거지.
“진심이야?”
“…솔직히, 조금은 괴로웠어.”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지?”
“맞아. 햄 샌드위치랑 스트링 치즈 샌드위치를 사서 병문안을 간 네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죄책감을 모두 털어 버릴 수 있었어.”
…어느새 그 소문이 여기까지?
젠장. 샌드위치 때문에 내가 범인으로 몰릴 위기인가.
“죄책감을 털어 버렸다니 좋네. 제2의 희생자를 내기 전에 오늘은 4연타석 홈런을 쳐.”
“5연타석 칠 거니까 잘 봐.”
뭐, 기운 차린 거 같아서 다행이다.
알게 모르게 다들 개빈의 부재를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경기 준비를 위한 선발투수와의 회의 시간에서 그게 조금 더 느껴졌다.
“120마일 스플리터를 던질 거니까 놀라지 말고 받아.”
“입으로 말고 손으로 던지기나 해.”
로즐이 항상 하는 재미없는 농담인데, 로즐은 잠시 말을 멈추고 개빈이 늘 앉았던 곳을 바라보았다.
“젠장. 험악한 표정으로 날 노려봐 줄 대머리 아저씨가 없으니까 뭔가 허전하잖아.”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난 잘했어. 네가 머리를 밀어 보는 건 어때? 그럼 조금 덜 허전할 거 같은데.”
“네가 밀고 거울 세워 두면 되겠네.”
개빈이 없으니 회의에 박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뭐,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오늘 상대는 브루어스다.
“그래도 포수 없이 경기하진 않겠군. 브루어스니까.”
로즐의 말대로 브루어스랑은 또 재밌는 경기가 준비되어 있다.
배트 플립 시리즈라고 이름 붙은 매치업. 에이머가 유격수 땅볼을 치고 배트 플립을 했던 기억이 아주 생생하다.
개빈의 햄스트링에 문제가 생긴 것 때문에 분위기가 살짝 처지긴 했지만, 꽤 주목받는 경기라는 거지.
“G-A-E-B-I-N!”
“G-A-E-B-I-N!”
“개빈의 햄스트링을 돌려 내!”
“그의 복수를 해야 할 거야!”
아직 죽지도 않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혼자 뛰다가 햄스트링이 터져 버린 개빈의 복수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빈이 침대에 누워서 경기를 보다가, 신나서 반대쪽 햄스트링도 터져 버릴 정도로 두들겨 버리자고!”
“Hooooo!”
“Hell yeah!”
“Go! Go!”
“Go Phillies go!”
…뭐, 감독님의 멘트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나 말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경기가 시작됐다.
로즐의 컨디션은 괜찮고, 상성도 나쁘지 않다.
브루어스는 공갈포 타자들이 즐비한 팀이라 실투에도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팀이니까, 제구에 신경 쓰면 로즐이 괜찮은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거다.
[제레미 뷰익] [우투우타, 중견수] [키워드: 당겨 치기, 호타준족, 배드볼 히터]브루어스의 리드오프가 타석에 들어온다.
리드오프치고는 장타만 노리는 키워드지만, 사실 저 정도면 이 팀에서 굉장히 양호한 편이다.
“이날만을 기다렸어. 개빈이 없는 게 아쉬운 날이군.”
제레미 뷰익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뭘 기다렸다는 건지. 흠, 대충 알 것 같기는 하다.
이 팀의 미친놈들도 배트 플립을 하다가 빈볼을 굉장히 많이 맞는 편이니.
저번에 경기 자체가 좀 신나긴 했잖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컵스의 좀생이 놈들이랑 경기하다 보니 브루어스가 생각나더라.”
“컵스? 흐흐. 개자식들이지. 걱정하지 마. 우리가 그 얼간이들을 박살 내 줄 테니까.”
“좋아. 투수에게 빈볼을 던지지 말라고 말해 두겠어.”
“좋아. 투수가 마운드에서 춤을 춰도 달려가지 않을게.”
빈볼을 던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리스의 초구’를 던지지 않을 생각은 없다.
퍽!
“볼!”
“나쁜 놈!”
나는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고, 제레미 뷰익은 다시 타석으로 돌아왔다.
배트 플립은 배트 플립이고, 경기는 경기고.
세리머니 하느라 경기를 망쳐선 안 되는 거지.
로즐은 타자가 아까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을 확인하고,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바깥쪽 낮은 코스로 스플리터를 던졌다.
딱!
엉덩이가 살짝 내려앉은 상태에서 바깥쪽 아래로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제대로 때려 낼 수 있을 리가.
완전히 타이밍이 어긋나 배트 끝에 맞은 타구가 케이스의 앞으로 데굴데굴 굴렀고, 케이스는 손쉽게 타구를 처리했다.
“아웃!”
절반도 못 가서 아웃.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제레미 뷰익에게 소리쳤다.
“타구보다 배트가 멀리 날아갔어! 공 때리는 연습은 안 하고 배트 던지는 연습만 한 거 아냐?”
제레미 뷰익은 씩 웃으며 자기가 던진 배트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좋은 배트 플립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지.
그러니까 에이머처럼 말이다.
개빈이 경기를 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정도로 재밌는 경기를 해야겠다.
반대쪽 햄스트링은 음… 뭐, 이미 터진 거 하나 더 터진다고 별일이야 있겠…….
ㅍㅅㅍ: 인성 바겐세일 중이냐.
아니 뭐, 그냥 열심히 하겠다 그런 뜻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