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212)
홈플레이트의 빌런-213화(213/363)
# 213
맹독성 팥 (3)
1
내 직업에 대해서 가끔 생각해 보면 꽤 웃기다.
내 직업은 둥글고 긴 나무 막대로 주먹만 한 공을 때려서 멀리 날려 보내고, 누가 던진 공을 잡고, 가끔 던지고, 뛰고 슬라이딩하는 일이다.
웃기지 않나?
세상에. 저렇게 생산성 없는 일을 해서 부자가 된다니.
끔찍할 정도로 좋은 세상 아닌가.
“세이프!”
투수의 견제구.
사실, 뛸 수 있는 주자가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견제도 들어오고, 무엇보다 투수가 나를 출루시키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물론, 애를 쓰든 마구를 던지든 뭘 하든 나는 출루하지만.
“그냥 베이스를 밟고 서 있는 게 어때? 앤서니는 네가 뛰도록 놔두지 않을 거야.”
선발투수인 앤서니 벤하임과 같은 성을 쓰는 1루수, 에릭 벤하임이다.
“네 마누라한테 견제 그만하라고 해. 안 뛸 거니까.”
“What?”
“아, 네 남편이었어? 미국은 좋은 나라야. 그렇지?”
“Mother fucker.”
“내가 미국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세 번째가 그 말이야. 이제 신경 안 써. father fucker.”
“Son of bitch.”
“좋아. 그건 두 번째로 많이 들은 말이야. 그럼 퀴즈 하나 낼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뭐게?”
“관심 없으니까 닥쳐.”
“아쉽네. 닥치라는 말은 7번째야.”
맞다.
내 직업 설명에서 하나 빠진 게 있다면, 욕하고 사람을 때려도 경찰이 잡아가지 않는 직업이라는 거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직업이 어딨어?
공 치고, 사람 치고, 공 던지고, 욕 던지고, 공 받고, 환호받고.
“레드 빈! 놈의 불알을 터뜨려 버려!”
“Nut and nuts!”
세인트루이스와 필라델피아는 그리 멀지 않다. 물론, 미국 기준이지만.
어쨌든 그런 관계로 필리스 팬들이 꽤 들어와 있고, 우리 팬들은 여전히 마음 가는 대로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불러 댄다.
“참고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바로 저거야. 네 불알을 터뜨리라는 요구지.”
그러고 보니 직업이라고 해도 되나 이걸?
악덕 요정의 마수에 빠져 한국에서 개고생하고 메이저리그까지 와서 매일 전쟁같이 야구하는 불쌍한 신세니 재능 착취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ㅡㅅㅡ: 요정님 없었으면 일개…….
쉿. 경기 중이잖냐.
진 테프먼의 타격 중 가장 큰 강점은, 시즌 30~40개를 넘길 능력이 있음에도 상황에 맞는 스윙을 꽤 잘한다는 거다.
주자가 1루에 있으면 병살을 피하기 좋은 코스와 강도로 때릴 줄 안다.
사실, 제일 신기한 건 내가 고의 사구로 나갔을 때지만.
딱!
심지어 요정을 데리고 있는 나조차도 타율이 4할이 안 되는데, 아무리 좋은 타자라도 항상 노리는 타구를 때릴 수는 없다.
진 테프먼의 타구는 3루 쪽으로 깊게 향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3루수가 2루 쪽으로 살짝 치우쳐 수비하고 있었다는 거고, 내 스타트가 꽤 괜찮았다는 것.
3루수는 백핸드로 타구를 잡은 뒤, 몸을 휙 돌려 2루로 송구했다.
나는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위협적으로 2루로 쇄도했다. 슬쩍 스파이크를 드는 척하면서.
수비 중인 야수를 공격할 생각은 없었지만, 내 평소 행실 덕분인지 2루 베이스를 겨우 밟은 뒤 중심을 잃고 1루로 송구하지 못했다. 슬라이딩할 때도 좀 그랬지만, 땅이 조금 무른 탓인지 휘청하는 동작이 꽤 컸다.
“이… 비열한 자식.”
비열? 어디의 어디가?
“내가?”
나는 조니 프랭크를 비웃어 준 후, 길게 말하지 않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내가 규정에 어긋난 플레이를 한 것도 아니고, 카디널스 선수의 발목을 걷어차서 부러뜨린 것도 아니며, 그럴 의도도 없었다.
“Boooooooooooo!”
“비열한 놈!”
카디널스 팬들은 내게 야유를 보내지만, 야구란 게 원래 그렇다.
아마 자기 팀 선수가 저런 플레이로 타자 주자를 1루에 살아남게 했다면 오히려 박수를 보냈을 거다.
“레드 빈! 그냥 부러뜨려 버리지 그랬어!”
“카디널스 멍청이들아! 운 좋은 줄 알아!”
“그래! 빈이 발목을 박살 내지 않은 걸 고마워하라고!”
어차피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하여튼 우리 팬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것처럼.
“놈이 뭐래?”
“엄마한테 이를 거래.”
“흐흐.”
팔자 좋게 쉬고 있던 케이스는 내 말에 웃어넘겼고, 다른 선수들은 내게 엄지를 들어 보이거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아마 개빈이 여기 어딘가 앉아 있었더라면, 걷어차 버리지 그랬느냐고 했을 텐데.
“빈! 나랑 한 약속을 잊지 마!”
하지만 여기에는 개빈을 대신해, 내가 퇴장당할까 노심초사하는 짐이 있을 뿐이다.
“걱정하지 마. 뭐, 싸울 일이야 있겠어?”
막상 싸움이 벌어지면 또 어떻게 될지야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짐의 성격을 생각해 볼 때, 처음 합을 맞춰 보는 포수-물론 훈련 때 맞춰 보기야 했겠지만-라면 또 제구가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좋아. 믿고 있을게.”
“그래. 나만 믿어.”
ㅎㅅㅎ: 믿을 놈을 믿어야지.
나는 정직하고 믿을 만하며 상대가 누가 됐든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다, 요정.
ㅎㅅㅎ: 상대 팀 선수가 그 말을 들으면 3박 4일을 배꼽 잡고 웃을 것이다.
고얀 놈.
ㅇㅅㅇ: 퉤.
2
결국, 1회 초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고, 로빌은 살짝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맷이 지난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둔 게 꽤 부담이 될 거다.
감독님의 마음은 사실상 80% 이상 맷에게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좌완, 어린 선수답지 않은 담대함, 불펜보다 선발로 뛰었을 때 압도적으로 좋은 성적.
불펜 등판 시 평균 자책점이 5점이 넘는데, 선발로 나서서는 완봉승도 있고 2실점 완투승도 있다.
투구 수를 아낄 줄 알고 대담한 승부도 펼친다.
로빌은 똑똑한 선수고 불펜에서도 롱 릴리프로 상당히 좋은 활약을 펼쳤는데, 그게 오히려 선발을 노리는 로빌에게 조금은 독이 된 부분일지도 모른다.
롱 릴리프나 선발 둘 다 괜찮은 투수와 불펜에서는 영 좋지 못하지만, 선발로는 굉장히 훌륭한 투수.
사실, 누가 선발로 나서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하지만 그건 개인 사정이고, 경기는 경기다.
타자는 시즌 내내 경기에 나서며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한 경기의 승패는 선발투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완봉 준비됐어?”
긴장한 표정의 로빌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자, 로빌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완봉? 젠장. 노히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 때문에 김이 샜잖아.”
미친놈들이랑 같이 지내다 보니 로빌도 간이 좀 커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죽을 것 같아.’ 따위의 말을 하지 않은 게 어딘가.
“퍼펙트 하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너무 많이 줄였나?”
“괜찮네 그거. 퍼펙트.”
“좋아. 난 준비됐어.
많은 선수가 에이머의 그 자신감 있는 말투를 따라 하곤 한다. 조금 놀리는 의미지만, 이상하게 유행을 타고 있다.
나쁘지 않다. 뭐든 과유불급이라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는 없는 것보다는 넘치는 게 나은 게 자신감이다.
[헥터 비에릭] [좌투좌타, 우익수] [키워드: 눈 야구, 강견, 인내심, 당겨 치기]꽤 괜찮은 타자이자 외야수지만, 제구 좋은 투수들에게는 약한 경향이 있다.
초구에는 거의 배트를 내지 않는다. 특히, 1회 선두 타자로 나서서는 더욱더.
“볼!”
로빌은 이놈이 초구에 배트를 낼 확률이 주머가 번트를 대고 1루로 살아 나갈 확률만큼이나 낮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초구에 볼을 던졌다.
의기양양한 표정.
꽤 잘 치지만 전통적인 리드오프의 역할-상대 투수의 구종을 점검하고 팀 동료들에게 알리고 보여 주기 위한-에 충실한 선수고, 카운트가 유리할수록 좋은 타격을 한다. 그거야 뭐 어느 선수나 비슷하지만.
“비열한 자식들.”
“네가 발목을 노리고 2루로 뛰어든 걸 말하는 거라면 맞는 말이야, 비열한 필리스.”
“쇼를 피하려고 우천 취소를 늦게 결정한 걸 말하는 거야. 쇼가 경기 준비를 할 동안 너희 선발투수는 그 시간 동안 맥주나 마시면서 빌어먹을 포커나 치고 있었겠지. 그리고 오늘 뻔뻔하게 선발로 올라왔을 거고.”
“멍청한 소리 하지 마. 앤서니는 너희 선발투수랑 달리 강인한 선수라서 어제도 오늘도 경기 준비를 착실하게 했을 뿐이야. 우리도 어제 경기를 하길 기대했어. 너희를 완전히 밟아 줄 준비가 됐거든.”
“쓰레기 같은 놈이 쓰레기 같은 변명을 하네. 좋아. 그럼 너희의 그 프로 의식 넘치는 선발투수가 개박살 나는 걸 구경할 준비나 해.”
대화가 길었다.
하지만 그사이에 로빌은 조금 마음을 다잡은 듯했고, 2구는 좋은 패스트볼이 들어왔다.
“스트라이크!”
마음을 다잡은 것도 있지만, 마운드 주변의 흙을 한 군데 한 군데 밟아 본 로빌은 초구를 던졌을 때보다는 안정된 릴리스 포인트로 공을 던졌다.
이렇게 되면 생각할 시간 없이 몰아쳐야 한다.
특히 이런 타자는, 자신의 정해진 루틴대로 행동하며 인터벌이 짧을수록 그 패턴에서 어긋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스트라이크!”
곧이어 이어진 낮은 코스 패스트볼.
가만히 지켜보다 순식간에 2스트라이크 1볼로 몰린 비에릭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빠르게 공격해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몸 쪽 패스트볼.
시간을 줄 필요가 없다.
퍽!
“윽!”
하지만 공이 손에서 빠졌는지, 공은 비에릭의 허벅지를 맞히고 말았다.
젠장.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한 템포 쉬었어야 했나?
아니다. 데이터를 보나 뭐로 보나 여기선 몸 쪽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게 맞았다. 그냥 손에서 공이 살짝 빠진 것뿐이다.
“이 비열한 놈들…….”
비에릭은 이를 갈며 내게 말했다.
가끔 이렇게 생각 없이 화내는 멍청한 놈들이 있다.
이 상황에서 비열한 놈이라는 말이 나올 구석이 있다고 보나?
전혀 없지.
“닥쳐, 개자식아. 맞힐 거면 네놈의 텅텅 빈 머리통을 맞혔을 것이고, 너 같은 놈한테 쓸데없이 투구 수를 낭비하지도 않았을 거다. 헛소리 말고 투수한테 감사 인사라도 하고 1루로 꺼져. 삼진 대신 사구를 얻었으니 충분하잖아.”
상황을 보나 뭐로 보나 로빌이 이놈을 맞힐 이유가 없다.
근데 이렇게 시비를 걸면 좋게 대응해 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사실, 저놈도 그걸 알고 있을 거다.
개소리도 적당히 해야 받아 주지.
원래 나는 그런 걸 안 받아 주는 타입이기는 하지만.
3
“오, 로빌 지오클! 볼넷을 내주며 1회 말 아웃 카운트 없이 주자 1, 2루가 됩니다.”
“평소 제구가 좋은 선수인데 시작부터 영 좋지 못하군요. 비가 온 것 때문에 컨디션 관리가 잘 안 된 걸까요?”
“그렇다면 더욱 문제가 되겠죠. 선발 로테이션 진입을 노리고 있을 텐데요.”
“상황을 보면 지오클이 불펜에서 스윙맨 역할을 하고 블러가 선발로 뛰는 것이 더 적합하기는 합니다. 타석에 들어오는 에릭 벤하임. 시즌 타율 0.259에 17홈런 47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카디널스의 해결사입니다!”
에릭 벤하임은 공갈포 기질이 다분하지만, 그래도 클러치 능력이 있는 스타 1루수.
시작하자마자 제구가 흔들려 영 좋지 못한 상황에 빠진 로빌 지오클에게는 그리 좋지 못한 상대이기는 했다.
큰 체구에서 나오는 빠른 배트 스피드.
안 그래도 공이 원하는 대로 가지 않는 상황에서, 살짝만 삐끗하면 정말 원치 않았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런 개 같은.’
투수로서의 여러 자질 중, 제구력과 함께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이 뛰어난 로빌이다.
로빌은 심호흡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득 들어찬 관중들.
그중에 보이는 몇몇 필리스 팬들.
필리스 팬들은 중지를 들어 올리며, 제대로 들리지는 않지만 무어라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응원이 아니라 분명, 자신을 욕하고 있으리라.
‘흐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신은 유망주로 꽤 기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뒤로 밀려나기 직전의 신세 아니던가.
머리가 맑아지고, 그제야 떠올랐다.
상대 선수들의 특성.
카디널스의 테이블 세터 두 선수는 투수를 흔드는 플레이를 즐긴다.
그리고 유망주에 불과한 자신이 이렇게 제구가 흔들리는 상황이라면, 주루 플레이를 시도하거나 그런 척이라도 하면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로빌이 가진 또 하나의 능력은 픽오프.
홍빈은 로빌의 키워드 중에 견제왕이 있는 것을 알고 있고, 2루로 견제구를 던지라는 사인을 보냈다.
사인이 나왔으니 에이머가 움직일 것이다.
로빌은 수없이 연습했던 픽오프 동작을 떠올리며, 조심스럽지만 전광석화같이 2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
자신의 실수로 주자를 내보냈지만, 자신이 직접 처리했으니.
“Hell yeah!”
로빌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꽤 커서 2루 주자를 자극했는지, 이를 악물고 바닥에 엎어져 있던 헥터 비에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이… 비열한 개자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