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219)
홈플레이트의 빌런-220화(220/363)
# 220
국뽕이 차오른다, 가자 (4)
1
한 선수가 시즌 내내 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5시즌 연속으로 40홈런을 쳤지만 최근 1주일간 1할 타율에 홈런이 하나도 없는 타자.
그리고 커리어 타율이 0.230이지만 최근 1주일간 5할대의 타율에 홈런 5개를 때린 타자.
선수 가치야 당연히 전자가 높겠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다면 후자를 경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게 플루크든 각성이든, 혹은 약물이든 마찬가지다.
오늘 경기에서 홈런 세 방을 때려 팀을 승리로 이끌고, 경기 후에 도핑테스트에 적발된다 하더라도 그 홈런과 경기 결과가 없어지는 일은 없으니.
그런 의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의 선택은 일견 합당해 보이기는 했다.
안 그래도 잘하는 홍빈이, 최근에는 더 잘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상대하기 껄끄럽겠는가.
카디널스 홈 팬들이 홍빈에게 기립 박수를 보낸 것은 특별한 일이기는 했다. 홍빈은 카디널스와의 시리즈에서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매리너스는 전략적으로 혹은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홍빈을 피했다. 물론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2번째 경기에서 피하다 피하다 결국 솔로 홈런을 맞고 결승 타점을 내줘 4 대 3으로 패배한 후, 3차전을 준비하는 매리너스 감독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해졌다.
‘피해? 정면 승부 할까? 아니면, 차라리…….’
빈볼 던져서 내보내고 분풀이나 해 버리는 건 어떨까 생각하다가, 곧 유튜브에서 본 동영상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투수 코치를 불러 잠시간의 논의 후, 결정을 내렸다.
“좋아. 킨슬러에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
결국, 감독은 대응 전략을 포기했다.
그 전략의 상대인 필리스가 홍빈 원맨팀이었더라면 꽤 괜찮은 성과를 거뒀을지도 모르지만, 필리스는 홍빈이 없어도 강팀이다.
살짝 기운이 빠진 매리너스와 체력적으로 조금 부담은 있지만 기세 넘치는 필리스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딱!
“에이머 시나, 오늘도 깔끔한 스윙! 선두 타자 출루에 성공합니다.”
“아주 좋은 타자죠. 제 객관적인 판단으로는 홍빈 선수 다음으로 좋은 타자입니다.”
“보통 그런 건 주관적이다라고 말하지 않나요?”
“아니 뭐, 그거나 그거나 또이또이 아닙니까? 어쨌든 홍빈이 최고 선수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이것마저 부인하면 인종차별주의자거나 아니면 야구 모르는 사람이죠. 야구 모르면 그냥 10대 한국인 남자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홍빈이 타석에 들어왔을 때, 전날의 결승 홈런을 기억하는 남현홍 해설 위원은 이미 홍빈이 투런 홈런을 때린 것처럼 행동했다.
“아주 그냥 장원급제하고 고향 돌아가는 것처럼 보무도 당당하지 않습니까? 투수 표정 보세요. 벌써 홈런 한 방 맞은 거 같아요.”
-야, 오늘 남 해설 칼럼 본 사람?ㅋㅋㅋㅋㅋ 홍빈 직접 만났다고 자랑 겁나 하던데 ㅋㅋㅋㅋ
└그게 칼럼이냐, 미친놈아; 그냥 홍빈 후빨 텍스트 덩어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빨 만함.
└쟬 빨지 누굴 빨겠냐…….
└난 스크류바 빠는 중.
└시바 눈치껏 좀 하자 응?
└야, 근데 어제 수훈 선수 홍빈 뽑힌 거 좀 에바 아니냐?
└뭐래, 미친놈이 ㅡㅡ 볼넷 겁나 얻다가 결승 홈런 쳤는데?
└홍빈 아님 누가 뽑혀야 했음? 장난함?
└수훈 선수는 젤 잘한 선순데 홍빈은 야구 그 자체니까 수훈 선수 타이틀은 홍빈한테 좀 격이 떨어지지 않나 시프요.
└하 시발; 홍빈 후장 헐겠다;
└ㅉㅉ나 땜에 이미 헐었음.
└국뽕이 위험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대피하세요!
└으… 차! 오! 른! 다! 주모! 여기 홍뽕 한 사발 주쇼! 크으으으으으으으응응응으아!
2
[요안 킨슬러] [좌투좌타, 선발투수] [키워드: 핀 포인트, 이닝 이터, 각도기, 홈 스위트 홈] [상대 투수의 국적이 미국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상대 투수와의 연봉 차이가 4.2배로 확인되었습니다!]시애틀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투수 부문 리빌딩의 산물, 요안 킨슬러가 오늘의 상대다.
또 다른 좌완 100마일 선발투수를 트레이드로 내보내지만 않았더라면 괜찮은 좌완 원투펀치가 되었을 텐데.
그리고 매리너스는 내가 알기로 오늘 열릴 드래프트에서 폭망 픽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다.
노예 계약을 맺고 오랫동안 여기서 뛴 요안 킨슬러가 30살이 다 되어서야 다른 팀으로 가며 ‘드디어…….’라고 눈물을 훔쳤던 인터뷰는 굉장히 유명하다.
“볼!”
어쨌든, 보더 라인 투구를 즐기는 전형적인 좌완 투수다.
제구가 좋아서 기복은 적은 편이지만 사이 영 상 후보 3위 내에 든 적이 한 번도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이럴 거면 그냥 자동 고의 사구를 하라고. 질리지도 않나?”
“…방금 공은 스트라이크로 했어도 무방한 공이었어.”
3일째 지속하는 갈굼에 매리너스 포수 도니 벤투스가 앙탈을 부린다.
스트라이크를 잡아 줘도 무방?
이건 최소한, 주심이 듣고 있는 데서 해서 득될 것이 없는 말이다.
“아시죠? 전 방금 코스가 반 개 정도는 빠진 거라 생각해요. 매리너스 포수는 당신의 눈을 조금 의심하는 것 같지만요.”
“그런 뜻이 아니…….”
“닥쳐. 야구나 하자고.”
이미 기 다 죽어 가는 얼굴을 하고선 뭐라 말해 봤자 통하지 않는다. 나약한 아메리칸리그 놈들. 내셔널리그 포수들은 내가 꽤 단련시켜 놨는데.
하지만 심판은 이 대화에 별 흥미가 없다는 듯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심판이 내게 조금 더 유리한 판정을 내려 주면야 내게는 좋은 일이지만, 상관없다.
좋은 볼이 오지 않는다는 상황과 투수의 제구가 일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존이 조금 더 좁아지는 것은 큰 도움이 되겠지만, 상대 포수에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실, 지금 매리너스는 날 거의 신화 속 괴물로 취급하고 있기에 별 영향은 없을지도 모른다.
“스트라이크!”
오.
방금 공 좋은데?
생각보다는, 제대로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도 제대로 때릴 준비를 해야지.
구속이 그리 빠른 편은 아닌 상대다. 요새 볼넷 아니면 홈런이라 이럴 때는 밸런스 유지가 그리 쉽지는 않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거다.
테이크백 동작을 간결하게 가져가기 위해 팔꿈치를 내리고, 병살을 피하기 위해서 스윙 끝에 배트를 살짝 들어 올리는 동작으로.
투구 자세로는 구종 구분이 힘들기에, 끝까지 봐야 한다.
따악-!
어쨌든, 깔끔하게 맞았다.
홈런까지는 안 되겠지만 당겨 친 타구가 좌익수 옆의 펜스 구석으로 날아가 라인 안쪽에 떨어졌고, 에이머를 3루에 보내고 나는 2루에 안착했다.
“왜.”
베이스를 밟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매리너스 유격수가 날 빤히 바라보고 있다.
나 여기 와서는 그렇게까지 시비 많이 안 걸었는데. 포수랑 1루수한테야 조금 시비 걸긴 했지만.
“흠, 저기.”
“뭐?”
“음. 경기 끝나고 떠나기 전에, 혹시 사인 좀 부탁해도 될까?”
ㅍㅅㅍ: 초소형 포수 따위의 사인이 필요할 리가 없다.
ㅍㅅㅍ: 조심해라. 네 사인으로 어디 가서 대출을 받을지도 모른다.
뭔 소리야, 둘 다.
경기 중에 무슨 사인?
“이봐. 뭔 소린지 몰라도, 잘 들어. 내게 사인을 요구하려거든 출근 시간 혹은 퇴근 시간을 이용해. 그리고, 팬한테는 몰라도 메이저리거한테는 사인 안 해 줘.”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다 듣네 진짜.
그런데 이놈은, 살짝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제길. 나도 어이없는 소리인 건 아는데…….”
“알면 닥치고 야구나 하자.”
“…암에 걸린 옆집 꼬마가 네 팬이라고 사인을 부탁해서 그러는 거야.”
ㅍㅅㅍ: 이 악마 같은 놈.
ㅍㅅㅍ: 소아암 환자의 꿈을 짓밟다니.
뭐? 대출 사기라고 조심하라던 놈은 어디의 누구더라?
아니, 그런 거면 진작 말할 것이지.
“…경기 끝나고 우리 더그아웃으로 와.”
“젠장. 고마워. 나도 미리 말하려다가 말 못 해서 지금 말하는 거라고.”
별의별 놈 다 보겠네 진짜.
나 같으면 인터넷에서 사인 하나 사서 갖다 주겠다.
하도 사인을 많이 해 줘서 그거 얼마 하지도 않는데.
“저기, 그런데 말이야.”
“또 뭐?”
“혹시 네가 입은 그 유니폼에다 사인해 줄 수 있을까?”
“이런 미친.”
목적은 그거였나. 빌어먹을 놈.
3
필리스는 1회 초에 악명 높은 테이블 세터가 2, 3루에 위치했고 후속 타자들이 두 주자를 모두 불러들여 2점의 선취점을 얻으며 경기를 시작했다.
흐름만 잘 타면 한 이닝에도 5점씩 나기도 하는 야구의 특성상 2점은 별것 아닌 걸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올 시즌의 필리스는 그 별것 아닌 2점 차이가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게 하는 위압감이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서로 잘 막아 가며 3 대 1 상태의 6회 초.
필리스가 또다시 찬스를 잡았다.
“지명타자로 나선 피오 고슬랭, 1사 만루에서 삼진을 당합니다!”
“소위 말하는 공갈포 선수죠. 적당히 수비할 수 있고, 종종 홈런을 터뜨리고. 제 생각에는 필리스가 백업으로 데려올 수 있는 최고의 카드 중 하나였어요.”
“네, 케이스 에이블! 2루타를 터뜨립니다! 2점을 추가하는 필리스! 5 대 1! 투수가 교체됩니다!”
“저 선수, 선구안을 조금만 가다듬으면 충분히 실버슬러거 2루수가 될 수도 있는 선수입니다. 수비도 괜찮고, 2루타를 양산하는 중장거리 타자로 굉장히 훌륭합니다. 필리스가 정말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무서운 팀이 될 수도 있는 이유 중 하나죠. 모든 포지션에 구멍이 없어요.”
그리고 다음 타석에서 에이머 시나가 나와 바뀐 투수를 상대로 7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출루.
물이 오른 출루 능력에 해설진의 칭찬이 이어졌고, 다음 타자가 누군지 확인한 매리너스 팬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세이프코 필드가 조용해집니다. 홍빈! 홍빈 선수가 타석에 나옵니다!”
“이건 뭐, 사실 매리너스 팬들 입장에서는 악당 보스 같을 거예요. 혹시 옛날 영화 좋아하시면,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한번 보세요. 거기 나오는 보스가 정말 밑도 끝도 없고 답도 없거든요. 홍빈 선수는 마치 그 영화의 타노스 같습니다.”
경기장에는 매리너스의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 투수와 대화하느라 잠시 소강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군요. 만약 남현홍 해설 위원님이 투수라면 1사 만루 상황에서 홍빈 선수를 앞에 두고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어진 캐스터의 질문에, 남현홍 해설 위원은 잠시 그 상황을 상상했다.
그리고 신음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흐으… 그냥 머리에 던지고 우리 더그아웃으로 도망갈 겁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상황에 몰입해서 그만. 상대 입장에서는 정말 얄밉고 짜증 나거든요. 유인구에는 속지도 않지, 집어넣으면 갈겨 버리지, 그럼 또 넘어가지.”
“흐흐. 맞히고 도망가실 거라고요?”
“네, 물론이죠. 싸우면 못 이겨요. 못 보셨어요? 이야, 저 덩치 큰 백인 흑인들 사이에서 무쌍 찍는데 그냥… 아, 무쌍은 방송용으로 적합하지 않나요? 아주 독고다이로 그냥…….”
“크흐흐. 차라리 무쌍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어쨌든 이 상황은 굉장히 난감할 거예요. 4점 차에 아직 경기는 절반을 조금 지났는데 상대하자니 무섭고, 만루에 고의 사구를 내주자니 다음 타자가 만만한 것도 아닌 데다가 자칫 잘못하면 경기가 확 넘어가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거든요. 4점 차이면 완전히 포기하기에는 좀 찝찝하잖아요.”
“그래도 만약 감독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어제 경기 끝나고 아픈 척하고 병원에 입원했을 겁니다. 수석 코치한테 뒤집어씌워야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KBO 구단에서 절 코치로 안 써 주나 봐요. 넌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크흐흡.”
이제 두 콤비도 호흡이 꽤 맞아떨어져 가고 있었고, 이어진 캐스터도 욕심을 버리고 남현홍 해설 위원 위주로 중계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초구 볼. 투수가 긴장했는지, 존에서 상당히 많이 벗어났다. 포수가 거의 점프하듯이 뛰어 공을 잡아냈다.
“홍빈 선수! 저엉말 뛰어난 선구안! 참아 냅니다!”
2구째는 바운드되는 커브. 포수가 겨우 블로킹해 냈다.
“키야! 속지 않아요! 쳤으면 병살이거든요!”
사실, 치기 힘들 정도로 바운드되는 공이긴 했지만.
3구째도 볼.
그리고 밀어내기 볼넷.
“압도적입니다. 정말 압도적인 선구안이에요. 배트 한 번 안 내고도 밀어내기 볼넷으로 1타점을 올리는 홍빈! 아메리칸리그에 참교육을 전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