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223)
홈플레이트의 빌런-224화(224/363)
# 224
파도 파도 미담만 (4)
1
남현홍은 미국에서 돌아온 뒤, 개인 방송 준비를 했다.
아무 말이나 내뱉고 나오는 대로 말하기에 사람들에게 웃음을 사지만, 그는 생각보다 영리한 사람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지상파와 공중파, 개인 방송의 벽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당장은 조금 힘들더라도 조만간 다시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
“아니 뭐, 별거 아니에요. 사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빅마켓이고 인기 많은 팀이라 그나마 표 좀 받은 거지. 까놓고 성적만 봐요. 비빌 데가 있어요? 이기는 게 병살 숫자랑 삼진 숫자, 에러 숫자 이런 것뿐이잖아요. 무조건 숫자 높다고 좋은 건 아니거든요. 아니, 크다고 좋은 거면 평균 자책점 높았던 제가 크보 원톱이었겠죠.”
소소한 방송이기는 했다.
그냥 홍빈 하이라이트 같은 걸 틀어 두고 메이저리그 이야기를 하고, KBO 이야기도 하고.
주된 소스는 홍빈이었고, 사실 그리 눈에 띄는 콘텐츠는 없었지만 미국 현지에서 해설한 것 때문에 유명세를 탔기에 시청자는 꽤 많았다.
-요정새끼개나댐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요정새끼개나댐님 반갑습니다. 어쨌든 뭐, 홍빈 선수가 사람 때리고 뭐 그런 것 때문에 오해는 많이 사는데 되게 괜찮은 사람이에요. 일단 한국 선수 중엔 보기 드문 스타일이죠. 겁이 없어요. 근데 또 직접 보고 이야기해 보면 사람도 되게 좋고 재밌기도 하거든요. 흐흐, 맞아요. 직접 만나고 온 거 자랑하는 거 맞아요. 아니, 진짜 재밌다니까? 세계에서 제일 야구 잘하는 사람이랑 수다 떨다 온 거잖아요.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시든가!”
남현홍은 낄낄 웃으며 편하게 말했고, 시청자들도 홍빈과 메이저리그에 관한 썰을 들으며 평화롭게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잡담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 진지하게 이야기도 하고, 남현홍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국뽕 드립도 치고.
“숫자에서는 저랑도 공통점이 있어요.”
└숫자도 끝이 없듯 남해설의 구라에도 끝이 없다?
└181818?
└낮은 건 연봉이요, 높은 건 방어율?
“아니죠. 둘 다 정직하고 있는 그대로라는 거죠. 거짓말도 하지 않죠. 홍빈 선수 스탯이 그래요. 긴 말이 필요 없거든요. 태클 걸 데가 없어요. 전 살아생전 대한민국 국적 가진 사람이 저렇게 야구 잘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레고밟았어님이 181,818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레고밟았어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아니, 고맙긴 한데 숫자가 좀…….”
└숫자는 정직하고 있는 그대로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라 없는 클-린한 숫자 ㅋㅋㅋㅋㅋㅋㅋ
└후원 받아 놓고 투덜대기 있음?ㅋㅋㅋㅋㅋ
└현홍 아재, 맥주 한잔 빨고 나오는 대로 말하는 방송에 후원해 주면 감사하다고 해야지, 왜 구시렁거림?ㅋㅋㅋㅋ
“아, 예. 물론 감사하죠. 어쨌든 뭐, 그냥 최고라 이거예요. FA되면 얼마 받을지 계산도 안 서…….”
순간, 남현홍이 말을 멈춤과 동시에 꾸준히 올라오던 채팅도 멈췄다.
후원금 메시지 때문이었다.
-요정새끼개나댐님이 100,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예?”
└?????
└?????????????
└? 얼마?
└ㅁㅊ?
└오타 아님?
└Her me she pearl?
└뭐임? 억? 돌았?
└천만 원 아니냐?
└ㅂㅅ아, 눈알 세척하고 다시 봐라. 저거 1억임.
“아니, 그게, 거, 흠. 감사하긴 한데… 아니, 감사합니다! 요정새끼개나댐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현홍아재 속지 마셈. 저러다 후원 취소하는 걸로 사람 놀리는 놈들 가끔 있음.
└하긴; 이딴 방송에 누가 미쳤다고 1억을 후원함
-누워서보자님이 18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누워서보자님이 후원금(18원)을 취소하셨습니다.
└와 누워서보자 인성ㅋㅋㅋㅋㅋ
└진짜 취소되네. 요정새끼개나댐 개새끼야, 현홍아재 놀리지 마라 ㅡㅡ
└옳다 ㅡㅡ 놀리지 마라 ㅡㅡ 이 아재 주식하다 전 재산 다 꼴아박아서 돈에 약하단 말임 ㅡㅡ
└아재요, 두근댔음?ㅋㅋㅋㅋㅋㅋ
-요정새끼개나댐님이 100,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요정새끼개나댐님이 방에서 퇴장하셨습니다.
“…….”
└???
└방 나가면 후원 취소 안 되는 거 아님?
└아마 그럴걸?
└그냥 감? 뭐임 저거?
└ㅁㅊ? 1억 더? 그럼 오늘 현홍 아재 2억 범?
└와, 시발 ㅋㅋㅋㅋㅋㅋㅋ 아재 축하요
└아재 대박;
└와 현홍 아재 그렇게 안 봤는데; 2억 받고 고맙단 말도 없네; 인성 풀발;
“아, 아, 아니, 요정새끼개나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미 나갔는데 뭘 감사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ㅋㅋ
└이거 뭐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판이네 씨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억????? 세상 좋아졌다 진짜
└홍빈 빨다가 2억 벌다니;
└그럼 아재 직업 이제 홍빈 서커?ㅋㅋㅋㅋㅋ
└엌ㅋㅋㅋ 홍빈 후빨 국가 공인 1급 자격증ㅋㅋㅋㅋㅋㅋ
2
긴 원정의 마지막이자 자이언츠 3연전의 3번째 경기에서, 에이머는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체력 부족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야.”
“어련하겠어.”
“난 일 년에 300경기 정도는 뛸 수 있다고.”
“아마도 그렇겠지.”
“나쁜 자식아, 좀 성의 있게 대답해 줄 수도 있잖아.”
“Oh! My! God! 에이머가 1년에 300경기를 뛸 수 있다니! 난 그렇게 못 하는데! 정말 대단해!”
“개자식. 오늘 뛰다가 앞으로 넘어져라.”
해 달란 대로 해 줘도 난리야.
뭐, 유격수도 체력 소모가 큰 포지션인 건 맞다.
빠른 판단력과 순발력이 요구되고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꾸준히 체력이 소모된다.
그래 봤자 포수보단 덜하지만.
“레드 빈.”
“폴, 무슨 일이야?”
“그, 흠. 혹시… 배트 하나만 빌려 줄 수 있을까?”
“배트? 아무거나 가져 가.”
“음. 괜찮다면 홈런 쳤던 배트로 부탁해도 될까?”
내 기억 속 폴 데이먼은 곰 같은 놈으로, 필리스 벤치 클리어링의 선봉장 같은 선수였는데.
어찌 보면 내 등장으로 가장 피해를 본 필리스 선수일지도 모르겠다.
주전 1루수로 꽤 잘나갔었지. 필리스기에 우승 반지랑은 거리가 꽤 멀긴 했지만.
“음… 좋아.”
잠깐 고민 후, 배트 하나를 꺼내서 폴에게 들려 주었다.
“염치없는 부탁이었는데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폴은 기쁨 반 부끄러움 반 정도의 표정을 하고는 내가 준 배트를 소중하게 받아 들었다.
그래도 뭐, 홀든처럼만 안 되면 좋겠네. 오늘은 홀든이 빠지고 켄트가 중견수, 폴이 우익수로 들어간다.
원래는 팀이 노답이 되고, 쇼나 주머, 진 테프먼 같은 스타 선수들이 다 팔려 나가고 나서 본 포지션인 1루에서 주전을 차지해야 할 운명인데.
고작 나 하나 회귀해서 메이저리그 왔다고 운명이 바뀌는 선수가 한둘이 아닌 것 같긴 하다.
그렇다고 뭐 물릴 수도 없지만.
ㅡㅅㅡ: 안타 3천 개를 못 치면 물릴 수 있다.
ㅡㅅㅡ: 너를 제외한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지도 모르지.
아니지.
그럼 나 때문에 행복해진 사람들이, 내가 없어서 불행해지잖냐.
ㅇㅁㅇ: 너 때문에 행복해진 사람들?
지옥 같은 암흑기를 보내며 슬퍼했던 필리스 팬들, 우승 반지 하나 없이 충동적으로 은퇴했을 개빈, 오늘 후원금을 받고 설레는 맘으로 잠들었을 남현홍 해설 위원 등등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거냐.
난 존재 자체만으로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ㅡㅅㅡ: …….
거 봐라. 반박 못 하겠지?
ㅡㅅㅡ: 흥. 빌어먹을 회귀자 놈. 자기 합리화는 여전히 월드 클래스군.
ㅡㅅㅡ: 뭐…….
ㅡㅅㅡ: 잘 좀 해라.
그래. 열심히 할게.
그러니까 너도 잘 좀 도와줘라.
ㅇㅅㅇ: 나도 열심히 하고 있다.
더 해 줘라.
ㅡㅅㅡ: 솔직히 여기서 더 줬다간…….
흠. 쫄보.
ㅇㅁㅇ: 안 뺏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인성의 블랙홀 같은 자여.
3
에이머 없는 라인업이지만, 나는 여전히 2번으로 나서고 있다.
오늘의 리드오프는 라이언.
라이언도 꽤 훌륭하게 테이블 세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다. 켄트도 가능하지만, 중견수로 나서게 되었으니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라이언이 1번으로 나온 듯하다.
딱!
“세이프!”
[앞 타자가 1루타를 치고 나갔습니다!] [사용자의 콘택트 능력이 상승합니다!]7구 승부 끝에 3유 간을 꿰뚫는 안타.
우리 팀이 잘나가는 건, 하위 타선에 어지간한 팀의 중심 타선에 설 만한 타자들이 들어간다는 것도 있다.
물론 감독님은 좀 다르게 이야기하신다. 우리 중심 타선은 1번부터 8번이라고.
[지코 페르난디뉴] [좌투좌타, 선발투수] [키워드: 패스트볼러, 그라운드볼러, 좀비 투수, 싸움닭] [상대 투수의 국적이 베네수엘라로 확인되었습니다!] [상대 투수와의 연봉 차이가 10.5배로 확인되었습니다!]좀 귀찮긴 한데,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임팩트 타이밍만 잘 가져가면 구종 예측이 틀리더라도 강하게 맞혀 단타를 뽑아내기 좋다.
물론 손목이 조금만 밀리면 잡기 쉬운 그라운드볼이 나오기는 하지만, 라이언도 그런 방식으로 안타를 만들어 냈으니.
타석에 들어서서 타격하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어젠 내 말대로 됐지?”
“…….”
“오늘은 흠. 올스타 투표 중간 집계 2위 포수답게 홈런 하나쯤은 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사람들이 네 정체를 알았으면 좋겠어.”
“난 상관없어. 그러니까 경기 끝나고 기자들한테 가서 말해. 레드 빈이 매일같이 괴롭히고 욕한다고. 혹시 모르지. 동정 여론이 생겨서 올스타전 선발 포수가 될지도.”
“…개자식.”
“좋아, 친구들. 이제 학교 갈 시간이야. 빈, 빨리 타석에 들어와.”
잽싸게 타석으로 들어갔다. 이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심판이지만, 너무 길어지면 규정에 어긋나나?
어쨌든, 때릴 준비나 하자.
“지코 페르난디뉴는 너와는 달리 겁쟁이가 아니니까 승부 하겠지?”
“…….”
“준비됐어. 던지라고 해.”
“…….”
많이 삐졌나 보다.
어제 그 인터뷰, 좀 부끄럽긴 했을 거다.
나도 내가 잘했다곤 안 하겠는데, 거기서 자기가 올스타 선발로 나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진 안 됐을 건데.
다 자기 업보지 뭐.
그나저나, 나는 싸움닭 가진 놈들이 제일 좋다.
사실 우리 팀 투수라도 좋다. 볼질은 정말 싫거든.
상대 팀이라도 좋지. 초구 볼을 주는 걸 끔찍하게도 못 참는 족속들이라.
따악!
포심 타이밍에 배트를 냈는데 컷 패스트볼.
타이밍이 살짝 먹히긴 했지만 임팩트 타이밍에 손목에 강하게 힘을 줬고, 동시에 욱씬 하고 통증이 올라왔다.
살짝 깊숙한 우중간.
라이언이 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코스지만…….
나한테는 보이지.
“라이언! 그냥 뛰어요!”
우리 주자들은 애매한 타구에서 내가 뛰라고 하면 그냥 뛴다.
실패한 적이 없으니까.
우스갯소리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로, 주루 코치를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도 들을 정도다.
“Oooooooh!”
자이언츠 중견수가 타구를 잡으려고 열심히 뛰었지만 공은 절묘한 위치에 떨어졌고, 1루 주자였던 라이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뛴 덕에 막히는 것 없이 3루로 뛸 수 있었다.
라이언이 타구를 판단하느라 지켜보고 있었더라면 2루타에 그쳤겠지만, 그리고 조금 애매한 코스이기는 했지만, 뒤에서 공을 잡은 자이언츠 우익수 코빈 벤트의 어깨가 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과감하게 뛴 것이다.
“세이프!”
컷 오프 맨인 2루수에게 가는 송구가 바운드되어 들어갔고, 2루수가 3루로 급히 던졌지만 세이프.
첫 타석부터 1점 내고 3루타면 뭐, 이것 이상으로 좋기도 힘들지.
“Booooooooooooo!”
“괜찮아! D-port! 네가 더 잘할 수 있어!“
내게 향하는 자이언츠 팬들의 야유와 대븐포트를 향한 격려가 동시에 쏟아진다.
격려하려면 시작하자마자 두들겨 맞고 있는 투수나 격려할 것이지.
희한한 팬들일세.
나는 대븐포트에게 썩소를 한 번 날려 준 후, 구석에서 기쁨을 표하고 있는 소수의 필리스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레드 빈! 우릴 봤어!”
“Nut and nuts!”
음. 기사 예쁘게 뽑히겠는데.
1타점 3루타 치고 몇 안 되는 원정 팬들에게 손 흔들어 주는 레드 빈, 연속 안타 맞고 나라 잃은 표정을 짓고 있는 대븐포트에게 격려를 보내 주는 자이언츠 팬들.
이제 그만 좀 괴롭힐까.
자꾸 괴롭히다 오렌지 주스처럼 쟤한테도 명경지수 생기는 거 아닌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