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247)
홈플레이트의 빌런-248화(248/363)
# 248
지나치게 아름다운 (8)
1
갓 데뷔했을 때가 기억난다. 누구나 날 물어뜯으려 했다.
내가 홈 플레이트 뒤에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을 때나 타석에 섰을 때나, 출루해서 베이스를 밟고 서 있을 때나.
하지만 이제 다르다.
리그의 모든 싸움꾼과 겁쟁이들은 내가 성질 더럽고 한 주먹질 하는 애송이란 걸 안다.
♨ㅅ♨: 불 주먹 에이스라고 들어 봤냐
불 주먹 에이스?
흠.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괜찮은 별명인데?
♨ㅅ♨: 불 주먹 에이스는 죽었다…….
8ㅅ8: 요정님을 울린 죽음이었지…….
8ㅁ8: 멍청한…….
…뭐라는 거야, 이건 또.
날씨가 더워서 그런가.
어쨌든, 워낙 임팩트 있는 벤치 클리어링이 몇 번 있어서 그런지 요샌 시비가 붙어도 슬슬 피하는 놈들이 많다.
나야 뭐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그리 불편한 건 없다. 적어도 주먹질하다가 몇 경기 못 나오는 경우는 확 줄어들었으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우리는 로키스에게 어제 졌다. 올스타전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경기인 오늘 이긴다면 승리한 기억을 가지고 후반기를 시작할 수 있다.
원래 마지막에 이긴 놈이 웃는 법이거든.
ㅇㅅㅇ: 999연패 하다 마지막에 한 번 이기면?
다음부터 안 해야지.
마지막 한 번 이긴 걸로 평생 추억으로 삼아서…….
ㅡㅅㅡ: 999연승 해서 1,000승 999패로 만들진 못할망정…….
후. 상식이라곤 없는 요정 놈.
1회 초와 1회 말, 내 주루 플레이와 윌리 노게이라의 주루 플레이는 같은 의도였지만 완전 다른 결과를 낳았다.
나는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로 1점을 냈고 윌리 노게이라는 좋은 기회를 날렸다.
그 결과는 1 대 0으로 고작 1점 차였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도 팀 전체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우리는 어제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를 잡은 것에 기뻐하면서 전반기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기 위해 집중했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이 하나 있다.
흠. 별로 신경 안 썼는데.
끔찍하지만 큰 의미는 없는 기록이 하나 걸린 경기다.
“빈, 긴장하지 말고. 지금도 엄청나게 대단한 거니까.”
“제가 긴장하는 거 봤어요?”
“크흐흐. 언젠간 그 모습을 보고 싶기는 해.”
공식적인 기록도 아니고, 별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뭐든 잘하는 건 좋다. 누구나 이런 건 좋아한다.
“내 기록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게임에 집중해요! 다들!”
“신경 안 써.”
이런.
“시즌 100홈런을 치든 300타점을 치든 신경 안 쓸 거야.”
“큭큭. 괴물 같은 꼬마 놈.”
“로키스 놈들이 볼만 던질걸.”
“볼 빼다가 제구 안 돼서 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노려.”
“고의 사구 지시는 양심이 있다면 못 하겠지.”
2
“배리 본즈의 불알을 터뜨려 버려!”
“Nut and nuts!”
“약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
“Nut and nuts!”
로키스 팬들은 필리스 팬들이 쿠어스 필드를 꽤 많이 찾아온 것에 대해 그리 유쾌한 감정은 들지 않았지만, 그들을 이해하려 했다.
“저놈들, 신났군.”
“신날 만도 하지.”
“레드 빈이 우리 팀에 왔으면 시즌 100홈런을 칠 수도 있지 않을까?”
“젠장. 부러워.”
로키스 팬들은 신나서 소리를 질러 대는 필리스 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니꼽긴 했지만, 필리스 팬들이 쿠어스 필드에서 다른 선수도 아닌 배리 본즈의 불알을 터뜨리라고 외치고 있기에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Red Bin > Barry Bonds.] [Red Bin >>>>>>>>>>>>> Paul Davenport.]어떤 필리스 팬들이 들고 있는 피켓은, 홍빈과 폴 대븐포트의 사이에 그려진 부등호가 몇 개인지 세기 힘들 정도다.
사실, 로키스는 후반기 극적인 반전을 끌어내지 않는 이상 와일드카드 싸움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는 힘들 것이다. 이번 시즌도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는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래도 팬들은 당연히 로키스가 이기길 바랐다.
어쩌면 자이언츠 팬들도 그럴지도 모른다. 특히, 홍빈이 홈런을 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따악-!
홍빈이 두 번째 타석에서 꽤 큰 타구를 때려 냈다.
“오오오오오오! 레드 빈! 레드 빈!”
“Nut and nuts!
“넘어가! 넘어가라고!”
“Nut and… holy shit mother fucker!”
“개자식! 홈런이나 치라니까!”
발사각이 좀 높아서 워닝트랙 앞에서 잡힌 타구.
당연히 홈런이라 여기고 목소리를 높였던 필리스 팬들의 환호가 욕설 섞인 분노로 바뀌는 데는 단 몇 초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끔찍한 놈들.”
“저러니까 선수들이 필리스에서 뛰기 싫어하지.”
“근데 말이야. 난 레드 빈을 응원하고 싶어지더라고.”
“뭐? 이 배신자 놈.”
“아니, 윌리 노게이라는 홈런더비에도 안 나간다고. 솔직히, 우리 팀에서 뭔가 탈 수 있는 게 이번 시즌에 있을까? 제기랄. Fucking 홈런더비 타이틀이라도 따 오면 기분은 좀 나아질 수도 있을 텐데.”
한 팬의 말을 들은 로키스 팬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필리스 팬들을 바라본 후,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홍빈을 내려다보았다.
“저 친구, 꽤 프로페셔널해. 고작 19살이지만 로키스의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더.”
“제기랄. 오늘만 저 꼬마를 응원해 볼까?”
“흠. 하긴.”
잠시 침묵. 진 테프먼이 타석에 나왔다.
“젠장. 좋아, 이런 경기를 언제 또 보겠어?”
“빌어먹을! 맞아!”
“로키스 이 멍청한 놈들아! 어차피 질 거 약쟁이 기록이나 깨게 놔두라고!”
“그래! 한 대 맞아 줘라!”
“Nut and nuts!”
웅성대던 로키스 팬 중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중독성 있는 멜로디의 nut and nuts를 부르자, 그 노래는 좀비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로키스 팬들 사이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져도 봐줄 테니 그냥 하나 맞아 버려!”
“Nut and nuts!”
“약쟁이의 이름을 역사에서 지워 버려!”
“Nut and nuts!”
로키스 팬들이 시끌시끌해지자, 이번엔 오히려 필리스 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놈들, 뭐야?”
“우리 편이었어?”
“아니야. 로키스 유니폼을 입고 있잖아.”
“그런데 왜 넛 앤 넛츠를 부르는 거야?”
“젠장. 알게 뭐야. 넛 앤 넛츠를 부르면 우리 편이지.”
“좋아, 로키스! 오늘은 너희를 필리스로 받아 줄게!”
전반기 마지막 경기. 홍빈의 시즌 홈런은 39개.
2001년 배리 본즈의 39개 타이기록을 넘어서서, 전반기에만 40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로키스! 필리스에게 위닝 시리즈를 거둬도 괜찮아!”
“Nut and nuts!”
“대신 레드 빈에게 가운데 몰리는 공 하나 던져 줘!”
“Nut and nuts!”
3
[LIVE) 필라델피아 필리스 3 : 2 콜로라도 로키스.]-5회 초. 홍빈 타석.
└여기 원정 아님? 왜 전부 홍빈 노래 부르는 거?
└야, 로키스 놈들 왜 갑자기 우리 팥 응원함?
└아까부터 정의의 이름으로 약쟁이 아웃 외치는 중. 위아더월드.
└전반기 40홈런 가나요?
└쿠어스 필든데 가능하지 않을까?
└ㅅㅂ 아까 그거 졸라 아까웠는데. 그게 넘어갔어야 했음.
-초구, 볼. 145km/h.
└야이 시발, 볼질 하지 마라
└볼넷 주면 진짜 ㅡㅡ 저 새끼 이름 기억해 놓는다
└☆청와대 국민청원★서명 2만 명 돌파하면 투수 볼 못 던집니다. 제발 한국인이면 서명해 주세요. http://evilline.worldcup.motbogo.guelsseum.TT
└청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진짜 ㅡㅡ
└개새끼야, 분위기 파악 좀 하자
└국민청원이 장난이냐, 씹새야
-2구, 볼. 139km/h
└아 존빡
└양키 새끼들 쪽팔리지도 않냐 ㅡㅡ
└진정 강호의 도리가 바닥에 떨어졌는가……?
└Her me she pearl…….
└스트 하나만 넣자 제발
-3구, 타격. 151km/h.
-파울.
└ㅁㅊ
└ㅅㅂ
└ㅈ└
└ㅅㅂㄹ
└;;
└아 방금 좋았는데
└변화구 노리고 있나 봄;
└걍 후려갈기지 ㅅㅂ
└마! 대승적 차원에서 하나 주자! 우리가 남이가! 경상도 콜로라도 도짜 돌림 아이가!
└이건 또 뭐 하는 ㅂㅅ여 ㅡㅡ
-4구, 타격. 150km/h
└ㅜ오와오아와오ㅜㅏ아아!
└오힣시발!!!!!
└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
└엄마!!!!!!!!!!!!!!!
└어ㅏᅟᅵᆸ└어ㅏㅣ롸ᅟᅵᆯ호하ᅟᅵᇂ!
-좌익수 플라이 아웃.
└…….
└씨발
└개
└아 진짜 개빡
└저걸 못 넘기나
└☆청와대 국민청원★서명 3만 명 돌파하면 방금 타구 홈런 인정됩니다. 제발 한국인이면 서명해 주세요.http://evilline.worldcup.motbogo.guelsseum.TT
└아 청원충 개새 진짜
└영근이 방송 타고 없어지니 이상한 놈이 나오네
└혹시 영근이 아님?
└ㄴㄴ영근이 방송 중
└청원이 너 뒤진다 진짜
4
거프는 5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1회의 위기를 수비 도움으로 극복한 이후 안정감을 되찾았는데, 그래도 쿠어스 필드는 쿠어스 필드라고 눈먼 스윙에 솔로 홈런 두 방을 맞았다.
“좋아. 수고했어.”
5회 말을 마친 후 거프는 교체되었다.
조금 씁쓸한 표정인데, 잘 버티긴 했지만 투구 수가 벌써 100개를 넘어서서 어쩔 수 없었다.
워낙 제구가 힘들다 보니. 로키스 타자들이 큰 스윙으로 일관하지 않았더라면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
“…….”
직전 두 개의 타구가 워닝트랙 근처에서 잡혔다. 이거 뭐, 퍼펙트게임 기록 중인 투수 배려하는 것도 아니고.
ㅡㅅㅡ: 왜 기록에 신경 쓰지 않는 거지?
하면 좋긴 한데…….
이런 기록은 어차피 선물 안 줄 거잖아?
공식 기록 아니라고.
ㅇ血ㅇ: 더 열심히 해라, 나태한 자여.
ㅡㅅㅡ: 동기부여를 위해 선물을…….
오키. 콜. 선물 콜.
ㅡㅅㅡ: 흥. 열심히 해라.
ㅇ血ㅇ: 노오오오오오오오오력!
5
양 팀 선발투수가 모두 내려가고 불펜 싸움이 시작되자, 조금 답답했던 공격에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따아악-!
“라이언 필로우! 솔로 홈런!”
따아아악-!
“코비 맥드니에! 곧장 1점을 따라잡습니다! 보더 켈리의 투심을 잡아당겨 솔로 홈런!”
6회에는 각자 홈런으로 1점씩 추가.
7회에는 약속이라도 하듯 서로 삼자범퇴.
“양 팀 선수들의 스윙이 꽤 커지는군요.”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여기는 쿠어스 필드니까요.”
“로키스가 따라가기는 하지만, 계속 필리스가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필리스 선수들의 집중력이 조금은 앞선다고 봐야겠죠. 물론, 경기가 끝나 봐야 알 겁니다.”
“경기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많은 분이 기다리는 홍빈 선수의 홈런은 아직 터지지 않고 있습니다.”
“자이언츠 팬들은 아니겠죠.”
“다양한 인터넷 반응이 있지만, 인상적인 문구가 있군요. 레드 빈이 디 포트를 엄청난 격차로 올스타 투표 2위로 밀어냈듯, 배리 본즈를 아주 조금의 격차로 전반기 홈런 2위로 밀어냈으면 좋겠다고요.”
“자이언츠나 배리 본즈에게 감정은 없습니다. 다만, 스포츠는 과거의 기록을 하나하나 깨면서 발전하는 것 아닐까요?”
“말씀하신 순간, 8회 초. 레드 빈이 타석에 들어옵니다.”
“의외로 편안한 표정입니다. 긴장도 안 되는 걸까요?”
“특급 선수들은 그 긴장감마저도 실력으로 변환시키는 법이죠.”
“모든 관중이 일어섭니다. 레드 빈이 배리 본즈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일 하이 시티의 쿠어스 필드에 끈적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수만 명의 눈이 투수와 타자를 지켜보고 있다.
TV와 인터넷으로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이목이 쏠리는 상황.
홍빈은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월드 클래스 관심종자: 사용자에 대한 주목도가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월드 시리즈보다도 더한 주목도.
다른 경기를 보던 시청자들도, 배리 본즈의 기록을 깰 수 있는 마지막 타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소문에 채널을 돌렸다.
로키스의 불펜 투수인 그리즈 벨은 중압감과 묘한 호승지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삼진으로 잡아내고 싶다.’
어떤 선수가 그렇지 않겠는가.
기록만으로는 사상 최고였던 배리 본즈에 비견되는 선수다. 약물로 얼룩진 레전드지만.
어쨌든, 그런 선수를 잡아내고 싶다는 마음.
이 경기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자이언츠 팬들을 제외하고-은 그리즈 벨이 겁쟁이가 아니길 빌었고, 다행스럽게도 그리즈 벨은 겁쟁이가 아니었다.
[그리즈 벨] [우투우타, 중계 투수] [키워드: 스타 의식, 패스트볼러, 닥터 K]홍빈은 정면 승부가 들어올 거라 예상했다.
싸움닭 키워드는 없지만, 스타 의식이 있다.
저 키워드를 가진 관심병 환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피해 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
딱-!
“파울!”
97마일 속구가 비수처럼 날아와 살짝 빗맞는다.
긴장감도, 컨디션도 최고조다. 팔의 털들이 하나하나 일어서서 바람을 느끼고 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록을 깨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
“후우.”
홍빈답지 않은 긴 호흡.
관중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 대고 있지만, 마치 심해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투수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집중 상태.
2구째, 최대 102마일까지 기록한 그리즈 벨이 힘차게 공을 던졌다. 투수의 목에 도드라진 굵은 힘줄이 보일 정도였다.
——–!
배트를 휘둘렀는데,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헛스윙인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분명히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후우.”
다시 한번 긴 호흡.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관중들 모두가 일어서서 방방 뛰고, 투수가 마운드에 주저앉아 있으며, 외야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어!”
무언가 들릴 듯 말 듯.
고개를 돌리자, 진 테프먼이 그답지 않게 격앙된 표정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뛰어! 40호야! 미친 꼬마야!”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40호? 감각도, 청각도 비현실적이라 뭔가 무디게 느껴졌지만,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너무 잘 맞아서 손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타구.
홍빈의 전반기 40홈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