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264)
홈플레이트의 빌런-265화(265/363)
# 265
브라보, 브라보, 브라보 (4)
1
타석으로 들어서는 어떤 선수가 있다.
이 선수는 누구보다 강력하다.
어쩌면 과거에 야구라는 종목의 개념조차 바꿔 놓았던 선수라면 이 선수에 비견되는 활약을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아쉽게도 현시대에는 그런 선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며 야구는 끊임없이 변해 왔기에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떤 시기의 이 바닥에서 가장 강력한 선수를 상대하기 위해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대처 방법을 마련하려 애쓴다는 것이다.
[파바 코코비치] [우투우타, 선발투수] [키워드: 근성, 팔색조, 각도기, 핀포인트, 불나방]그런 의미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팀이 마련한 홍빈에 대한 대책은, 최근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젊은 세대의 투수 중 Y.J.라이프에게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파바, Y.J.라이프는 커리어에서 홍빈과 상대했던 초반에는 안타를 거의 맞지 않았어.’
‘변화구를 존 안으로 넣는 것처럼 보였지. 하지만 그건 스윙을 끌어냈어. 자신있게 존 안으로 승부하는 순간 맞았지.’
‘가능한 한 집중해. 그리고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이거나 그가 조금이라도 다른 걸 시도하려 하면 그냥 내 보내 버려.’
‘지즐이 이끌어 줄 거야. 알겠지? 지즐을 믿어.’
역사상 최초의 크로아티아인 메이저리거인 파바 코코비치는 오늘이 5번째 등판이었다.
현재까지 성적은 4경기 21.2이닝 4실점 2승 1패.
구속이 엄청나게 빠르거나 변화구의 무브먼트가 딱 보기에도 특출난 타입은 아니지만, 여러 변화구를 비슷한 투구 폼으로 구사하고 제구력이 뛰어나다.
파드레스에서는 좌완인 새뮤얼 엘란더와 합을 맞추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코어 유망주로 보고 있었다.
‘명심해. 긴장할 필요 없어.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돼. 그리고…….’
빅리그 커리어의 첫 단계에서 4경기에 등판해 1.66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한 엘리트 유망주.
‘승부에 집착하지 마. 감정 이입하지 말고… 흠. 그냥 이미 내보낸 주자라고 생각하자고. 알겠지?“
그런 파바 코코비치에게는 투수 코치의 그 말이 마음속에 묵직하게 꽂혀 있었다.
승부욕.
호승심.
야망.
21.2이닝 동안 삼진은 7개에 그쳤지만 사사구가 1개뿐이라는 점에서 더욱 돋보이는 파바 코코비치 또한 그런 감정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홍빈이라는 점에서 조금 달랐다.
코코비치는 홍빈의 팬이었다. 그리고 경기 전에 Y.J.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은 그에게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안타를 거의 맞지 않았지만 맞을 때마다 홈런이었지.’
자신은 최초의 크로아티아인 메이저리거다.
그리고 상대는 최초의 한국인 포수다.
둘 다 영어권 국가가 아닌 국가에서 왔고, 메이저리그에서 따지자면 변두리 출신이며 일종의 이방인이다.
그런 동질감.
그러나 체격 조건은 자신이 더 좋았고, 저 선수가 이름깨나 날리는 메이저리거들을 박살 내고 다닐 때면 묘한 흥분감까지 느꼈다.
‘상대는 홍빈이다. 홍빈. 홍빈.’
명경지수를 가진 포수인 지즐 볼테어가 초구 체인지업 사인을 냈다.
코코비치는 홍빈을 완벽하게 틀어막아 버린다면 지금 받는 기대보다 훨씬 더 빠르게 유명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정면 승부는 자살행위라는 것을 안다.
홍빈과 대결을 펼쳐 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필리스를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려면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볼!”
존 바깥으로 빠지는 체인지업.
홍빈은 어깨를 들썩했지만 배트를 내지는 않았다.
‘역시 대단해.’
볼이 되기는 했지만 의도한 코스, 의도한 움직임, 의도한 구속이었다.
체인지업이라는 것을 예측했거나 이게 볼이 되리란 걸 확신했거나.
움찔한 것을 보면 후자일 텐데, 코코비치는 그저 감탄밖에 할 수 없었다.
아마 홈 플레이트에서 지즐 볼테어와 홍빈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코코비치? 저 친구한테 비치 발리볼을 추천해 주는 게 어때?”
“그럴게.”
“혹시 저 친구도 욕할 때 개자식(Son of bitch)이라고 하나?”
“아니.”
“하긴. 그럼 좀 웃길 거야. 이름이 코코비치니까. 안 그래?”
“맞아.”
“좋아. 그럼 이제 저 친구한테 중간으로 하나 던져 보라고 해.”
“알겠어.”
코코비치는 포수가 타자랑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했다.
투수는 같은 야구 경기를 하지만 다른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없는 포지션이다.
그러다 보니 조금 부러울 때도 있었다.
물론 타석에 나서서 포수와 마주치기는 하지만.
그리고 코코비치는 지즐 볼테어의 사인대로 공을 던졌다.
“볼!”
타자를 유혹하는 슬라이더. 그리고 여전히 나오지 않는 배트.
파바 코코비치는 55경기 연속 출루에 도전하는 홍빈과의 승부에서 이기려 하기보다는, 필리스의 10연승 도전을 꺾으려는 시도를 택했다.
그리고 포수와 타자의 대화를 여전히 궁금해하고 있었다.
“중간으로 던진다며.”
“제구 실패야.”
“저게?”
“응.”
“빌어먹을 명경지수.”
“뭔지 모르겠지만 좋아.”
“제기랄.”
“OK.”
다음 공도 볼. 그리고 다음 공도 볼.
“베이스 온 볼스!”
홍빈의 55경기 연속 출루는 생각보다 너무 쉽게 이루어졌다.
(<◉>◞౪◟<◉>): 대체 어떻게 그렇게 볼넷을 쉽게 얻는 거지.
(<◉>◞౪◟<◉>): 레드 빈은 스트레이트 볼넷을 저렇게 잘 얻는데 나한테는 꼭 죽도록 물고 늘어지지.
(<◉>◞౪◟<◉>): 빌어먹을. 내가 만만하다 이거지.
‘제기랄. 부탁이니까 에이머가 무슨 생각하는지 말 안 하면 안 되냐? 진짜. 어?’
(<◉>◞౪◟<◉>): 오늘부터 지옥 특훈이다.
2
딱!
내게 연속으로 볼만 네 개를 던진 투수가, 기습적으로 진 테프먼에게 몸 쪽 낮은 코스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진에게 그리 자신 없지 않은 코스다.
하지만 너무 기습적이었던 탓인지, 유격수 정면으로 흘러가는 타구.
“아웃!”
지즐 볼테어의 강한 어깨와 명경지수를 너무 의식한 탓인지, 리드를 길게 잡지 못했다.
“아웃!”
그리고 병살. 망할 이닝 종료.
“퉤.”
진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입속에 있던 해바라기 씨를 한 번에 몽땅 뱉어 냈다.
허를 찔린 거지. 그리고 그게 자존심이 상한 거고.
아쉽지만, 아직 우리에겐 8이닝이 남아 있다.
이제 경기 시작이니 충분히 점수를 내고 경기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 쇼는 최근 등판할 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고, 우리는 지난 메츠 원정에서 엄청난 화력을 선보인 팀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2회 초에도, 3회 초에도.
그리고 쇼가 투런 홈런으로 선취점을 내준 3회 말에도.
그 뒤로도 우리는 경기를 뒤집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에이머가 6회 초에 추격의 솔로 홈런을 때렸을 때는 더 그랬다. 이제 1점 차로 따라붙었으니 역전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잘 던지던 상대방의 선발투수가 6회 초에 부쩍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였을 땐 더 그랬고.
그리고 파드레스의 그 루키 투수는…….
“볼!”
“볼!”
“볼!”
“베이스 온 볼스!”
내게 또 한 번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고 난 후.
“투수 교체!”
마운드를 내려갔다.
뭔가 찝찝한 기분이다. 저럴 거면 고의 사구가 낫지 않나? 이게 무슨 짓이야?
3
[필라델피아 필리스 1 : 2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홍빈, 4볼넷 경기. 55경기 연속 출루에도 불구하고 필리스는 패배. 타격 집중력 하락?] [10연승 실패 필리스. 필리스 감독,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 항상 이길 수는 없다. 내일 승리하려 애쓰면 된다.’] [5경기 3승 1패 파바 코코비치, 파드레스의 새로운 기둥으로 우뚝. 5이닝만 넘어가면 뚝 떨어지는 구위, 체력 보강은 최우선 과제.] [파드레스, 필리스에게 1년 만에 승리를 거두다.] [브렉 테머튼의 선제 투런 홈런과 파바 코코비치의 5.1이닝 1실점 호투. 필리스에게 시즌 22번째 패배를 안겨 주다.] [파바 코코비치, ‘흥분된다. 필리스에게 승리를 거두다니. 꿈만 같다.’] [홍빈의 팬이라는 파바 코코비치, 홍빈에게 볼넷 3개를 허용했지만 승리투수가 되다. 파드레스 감독, ‘야구는 팀플레이다. 투수 대 타자가 아니라 팀 대 팀으로 승부를 가린다는 얘기다. 오늘의 승자는 파드레스다.’] [7이닝 2실점 패전투수가 된 브래들리 쇼 주니어, ‘20패 투수가 되더라도 상관없다.’]4
좀 찝찝하게 진 경기이기는 했지만, 언제든 질 수 있는 게 야구다.
뭐, 에이머는 그 와중에 자기가 홈런 때린 사진에 좋아요 눌렀다가 욕을 좀 먹은 것 같기는 하지만.
홈런 쳤으니까 된 거지.
지금은 개빈과 둘이서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선수들은 아직 식당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개빈이 스크램블드에그를 한 숟갈 입에 던져 넣고는 말했다.
“어제도 출루해서 좋겠군.”
“이겨야 좋죠.”
“져도 55경기 연속 출루라고 아주 영웅 대접을 하던데 왜?”
“연속 출루 같은 게 무슨 상관이에요? 전 이기는 게 더 좋습니다.”
사실 별 상관 없긴 한데 하면 당연히 좋다.
그냥 살짝 삐진 개빈을 달래 주려고 하는 말이다. 은퇴 투어 선물을 받은 날에 졌다고 조금 삐졌다. 아니면, 삐진 척을 하고 있거나.
“그럼 이겼어야지.”
“이기려고 했는데 항상 이길 순 없더라고요.”
“최소한 내가 은퇴 투어 하는 동안은 이겨야지.”
“끝내주겠네요. 후반기 내내 다 이기면 월드시리즈 필요 없이 그냥 필리스 우승이라고 쳐주면 안 되나?”
“이런 빌어먹을. 어쨌든, 오늘은 이겨.”
“예, 물론이죠. 폴체스키를 위하여.”
“그래야지.”
“아리아나 폴체스키를 위해서요. 지면 아리가 슬퍼하거든요.”
“제기랄.”
내가 낄낄대며 웃자, 개빈은 정색을 하면서 베이컨을 입에 쑤셔 넣었다. 아, 맞다. 개빈한테 할 말이 있었지.
“개빈.”
“왜.”
“이번 시즌 끝나면 바로 코치가 되는 거죠?”
“아마도.”
“보직이 뭐예요? 배터리 코치? 타격 코치? 불펜 코치? 벤치 코치?”
“아직 몰라. 이야기 중이긴 한데, 그래도 벤치 코치는 힘들겠지. 감독의 오른팔이니까.”
“제가 말한 건 벤치 클리어링 코치예요.”
그렇게 말하자 개빈이 씩 웃었다.
“그건 정말 내가 세계에서 제일 잘할 수 있는데.”
“맞아요.”
나는 같이 웃은 후, 슬쩍 개빈을 떠봤다.
“그래도 개빈 정도면 직책 이상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거 아닐까요?”
“그런 건 별로 바라지도 않아.”
“그래도 뭐, 좋은 코치가 있다면 추천한다거나.”
“그런 건 지금도 할 수 있지. 왜, 좋은 사람 있나?”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고, 능력이 확실한 코치는 있다.
물론 능력이 확실하다는 것은 나만 알지만.
일단 운을 띄워 보자.
“예, 있어요. 도미니칸 리그에서 투수 코치를 하고 있는 사람인데…….”
“도미니칸 리그? 네가 거기서 뛴 적이 있던가?”
“아뇨. 로즐의 삼촌이에요.”
“로즐의 삼촌?”
개빈이 날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뭐, 부정한 인사 청탁 같은 걸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확실한 실력이죠. 로즐의 투구 폼을 직접 만들어 준 사람이고, 요즘도 전화로 조언을 구하고 있대요.”
“그래?”
“시즌 끝나고 그 사람을 인스트럭터로 고용해서 투수들이랑 함께 훈련하려고요.”
“흠. 그래?”
“감독 하셔야죠.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코치진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큭큭. 꼬마, 난 알아서 할 테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
걱정하지 말라니.
주변에 친구도 별로 없으면서.
⊙︿⊙: …….
왜. 넌 또 뭐가 불만인데.
⊙︿⊙: 자기도 친구 별로 없으면서.
내가 친구가 없긴 왜 없어?
에이머, 짐, 로즐, 케이스, 홀든… 젠장. 고등학교 때로 회귀했으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20년이 넘게 흘렀는데 걔들이랑 다시 친구 먹을 수도 없고. 어차피 만날 일도 없는데.
⊙︿⊙: 미친 친구 많아서 좋겠다.
뭐, 어쨌든.
개빈이 감독하고 로즐의 삼촌이 투수 코치를 하면 꽤 괜찮은 그림일 것 같은데.
물론 지금 감독님도 괜찮긴 하지만…….
어차피 개빈이 감독을 하게 될 테니까.
⊙︿⊙: 반역을 꿈꾸는가.
“뭐, 지금 감독님도 괜찮지만 개빈이 감독하는 팀에서도 뛰고 싶으니까요.”
“내가 필리스 말고 다른 팀에서 감독을 하면?”
음.
생각 안 해 봤는데.
개빈은 어차피 날 놀리려는 거겠지.
“아리가 그때도 필리스 팬이면 필리스에 있고, 개빈 편을 들면 개빈의 팀에서 뛸게요.”
그러자 개빈은 무섭게 웃었다.
젠장. 뭐야. 내가 뭘 실수했나?
“…당연히 아리는 내 편이지. 아마 세상 누구보다도 더. 누굴 두더라도 내 편을 들걸.”
…그 말의 속뜻은, 나보다 아빠의 편일 거라 이 말인 거겠지. 요새 아리랑 부쩍 가까워졌더니, 조금 질투했나 보다.
속을 긁어서 좋아질 게 있나. 나는 그냥 수긍하는 척했다.
“물론 그러겠죠. 좋아요. 다른 팀 감독이 되면 그 팀에 가서 뛸게요.”
“좋아. 계약서 가져와.”
“혼인 서약서요? 아리도 좋아할 거예요.”
“죽여 버리겠어.”
“농담입니다.”
“나도 농담이야.”
“죽여 버린다는 말요?”
개빈은 씩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다른 팀 감독이 될 거라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