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27)
홈플레이트의 빌런-28화(28/363)
# 28
콩보단 팥이지 (2)
1
나는 수비만 잘하는 수비형 포수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홈런도 잘 치고, 안타도 잘 치는 데다 볼넷도 잘 얻는 포수가 수비적으로도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강타자가 되어 보지 못했는데 강타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언제 어느 공을 노리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예측과 상상만으로 하기에 야구는 너무도 어렵고 복잡한 스포츠다.
물론 수비적으로 탄탄해질 수는 있다. 블로킹, 포구, 송구, 프레이밍 등등.
하지만 타격에 소질이 없다면, 결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포수는 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물론 포수라서 타격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점도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이런 느낌이기는 한데, 하여튼 그렇다. 결국 야구는 잘 하는 놈이 잘하는 거다.
어쨌든 겪어 보지도 않은 영역을 논한다는 것은, 내 생각에는 어불성설이다. 상대 타자의 노림수를 정확히 읽어 내고 그걸 이용해서 삼진을 따낸 후의 쾌감은 홈런을 칠 때 만큼이나 짜릿하다.
“스트라이크-아웃!”
이런 식으로.
나는 KBO 팬들에게 양심도 없이 메이저리그에 안 가고 한국에 남아서 대장 놀이 한다는 소리까지 들은 포수였고, 그때의 노하우는 지금도 어느 정도 먹히는 것 같다. 마이너리그에서의 경험도 한몫하는 것도 사실이다. 오래는 안 있었지만.
그리고 같은 맥락으로, 도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때 40도루를 한 적도 있고(76홈런이 더 커서 조금 묻히긴 했지만), 두 자릿수 이상 도루를 10시즌 동안 기록했다. 아니, 했었다. 이제 그때의 기록은 없는 거니까. 어쨌든 내가 좋은 주자이자 도루를 시도하는 선수였기에 도루 저지에도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내가 주자라면 어떨까 하고 접근하니까.
그런데 내 자신감과는 별개로, 도루 저지는 투수에게 많은 것이 달려 있다.
얼마나 주자를 베이스 가까이 묶어 놓느냐. 도루가 가능한 주자가 나갔을 때, 투구 딜리버리에 얼마나 변화를 주면서 위력적인 공을 던질 수 있느냐. 세트 포지션을 얼마나 단축시킬 수 있느냐.
그 뒤가 포수에게 달린 문제지.
하지만 다행히도 이 팀의 투수들은, 팀 내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빈의 입김 때문인지 그런 부분에서 아주 준비가 잘 되어 있다.
포구와 동시에 시선을 2루로 고정하고 허리를 틀면서 오른손을 미트에 집어넣는다. 단 0.1초라도 빠르게 던져야 하기에 올바른 그립을 잡을 시간은 없다. 수없이 많은 연습으로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잡을 수밖에.
그리고 베이스 커버를 들어오는 선수가 바로 태그할 수 있을 위치로 공을 던진다. 내 경우에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어깨를 최대한 든다. 이 자세는 체력이 달리면 불가능하다. 금강불괴가 있어도 레벨이 더 오르기 전까지는 풀 시즌 내내 이렇게 던지기는 힘들다.
“아웃!”
그 후에는, 주자가 아웃되었다는 심판의 콜을 듣고 주먹을 불끈 쥐면 된다. 환호하거나 소리를 지르면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흑역사 사진이 찍힐 수 있으니 표정 관리를 하며 멋있는 척을 해주는 게 좋다.
참 쉽죠?
2
가뜩이나 불펜이 약한 편인 파이레츠를 경기 초반부터 마구 두들겨 놨으니, 중반 이후로는 더 편해지고 있다.
불펜에서도 첫 번째, 두 번째 투수가 아닌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투수가 나오니까.
따악!
파이레츠의 오늘 경기 다섯 번째 투수인 월빌 헤드로시아의 3구째 슬라이더를 간결하게 밀어 때렸다.
내 타구는 외야 우측 파울라인 근처에서 우익수에게 잡혔고, 3루에 있던 코난 마이어가 태그 업해서 희생플라이.
9회 초에 13 대 2면 뭐.
거의 경기가 끝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99.9999% 정도로 이게 내 마지막 타석일 테고, 오늘 내 성적은 4타수 2안타 2볼넷 4타점. 첫 타석 쓰리런은 끝내줬지.
도루도 오늘 경기에서만 세 번을 잡아냈고, 이 정도면 개빈이 돌아와도 어쩌면…….
ㅇㅅㅇ : 설레발은 뭐다?
“레드 빈. 좋은 타격이었어.”
짐과 하이파이브를 한 후, 배트를 케이지에 꽂아 넣었다. 안다, 이놈아. 설레발은 필패인 거.
어쨌거나 상쾌한 하루다. 날씨도, 야구도.
맨날 이렇게만 됐으면.
9회 말은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상대 타자들은 승패가 나뉜 시점에서 큰 거 한 방을 노리기 바빴고, 그런 상대 타자들의 접근 방식은 어제 나와 건배했던 패트릭의 시즌 기록에 3K를 추가시켜 주는 것으로 끝났다.
라커 룸의 분위기는 내가 처음 합류한 그때보다 훨씬 좋다. 같은 팀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리고 폭스 스포츠의 페놀라라는 기자가 내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주머는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메이저리그를 박살 내러 왔다고 해 버려.”
나는 그냥 웃었고, 짧게나마 인터뷰에 응했다.
페놀라는 내게 팀 내 베테랑들과 사이가 좋아 보인다고 말했고, 나는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이번 파이레츠와의 시리즈에서 주머에게 큰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짐에 관한 이야기나 자이언츠의 포수 폴 대븐포트에 대한 이야기, 오늘 경기 도루 저지와 홈런에 대한 이야기와 데뷔전 인사이드 파크 홈런에 대한 이야기 등.
인터뷰가 슬슬 길어지자 주머가 페놀라를 내게서 떨어뜨려 주었고, 오늘도 맥주 한잔하냐는 질문에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안타 두 개를 쳤으니 반 박스를 먹을 자격이 있지.”
그리고 나는 주머의 방에서, 오늘은 오렌지 주스를 얻어먹고 내 방으로 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흠.
페놀라는 꽤 정성 들여서 내 인터뷰를 기사화해 놓았다.
한국 포털 사이트에서도 그 기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어디 한번 볼까.
3
[필리스의 구세주 홍빈. 그가 이야기하는 필리스.]…….
…….
홍빈은 팀 내 베테랑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는데, 특히 최근 경기에서 팀의 베테랑 1루수 주머 데이비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경기가 끝난 후 주머 데이비스가 방으로 초대해 메이저리그에 대해 이것저것 조언해 준 것이,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밝힌 것이다. 경기 도중에도 굉장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근래 메이저리그가 젊은 포수 가뭄에 시달린 것을 생각하면 SF의 폴 대븐포트나 홍빈 같은 선수들의 등장이 매우 반갑다.
특히 데뷔전 인사이드 파크 홈런에 대해서는, 타구도 보지 않고 무작정 뛰었는데 홈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 덕에 평소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며 홈 팬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팀 내에서는 Red bean이라는 별명으로…….
…….
…….
┕KIA!!!!!주모!!!!!!!
┕KIA!!!!!주머!!!!!!!
┕(속보)주머, 사실 이름이 주머가 아니라 주모라고 밝혀…….
┕미친놈들 ㅋㅋㅋ 주모냐, 주머냐 ㅋㅋㅋ
┕김치니 개쩌네. 타격도 타격인데 수비 장난 아니던데? 당장 국대 포수 시켜도 되겠더라.
┕팥이네, 팥이야. 콩인 줄 알았는데 팥이야. 허미…….
┕좀만 더 일찍 콜업됐으면 신인왕 경쟁도 가능했을 텐데. 지금이면 기껏해야 콩등 아님?
┕뭐래. ㄴㄴㄴ 지금부터 해도 충분히 신인왕 가능.
┕개막전부터 뛴 루키들 지금 다 폭망해서 가능할지도 모름.
┕폴 대븐포트랑 에이머 시나있는데 뭔 솔 ㅋㅋㅋ 미친 국뽕 놈들 ㅋㅋㅋㅋ
┕대븐포트가 11경기 5홈런, 시나가 데뷔전 3홈런 치고 3주 내내 3할 5푼 치고 있는데, 뭐 신인왕? 콩 등도 불가능함 ㅋㅋㅋ 개노답들 ㅋㅋㅋㅋ
┕콩 등? 팥 등 할 거니까 신경 꺼라, 국까 놈아 ㅡㅡ 참고로 콩=2 팥=1이다 ㅡㅡ
┕미국 파견 간 주모 열일하네ㅋㅋㅋ우리 팥 파이팅!!!
┕느그 팥 좀 있으면 다시 후보ㅋㅋㅋㅋ 개빈 복귀 며칠 안 남음.
┕응, 아니야. 김치니가 개콩 밀어낼 거거든~~
4
파이레츠에게 최소 위닝 시리즈를 확보한 후, 팀 동료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훈련에 임했다.
근데 내 기분 탓일까.
가만 생각해 보니, 아무리 연패하고 분위기가 안 좋았다 하더라도 홈에서보다 원정에서 선수들이 훨씬 밝아 보인다.
1차전 쇼 등판일에도 그랬던 거 같다.
선발 준비하느라, 특히 쇼가 분석 따윈 내팽개치고 포커를 하러 가서 더 신경 못 썼는데. 생각해 보니까 좀 그런 듯하다.
“주머.”
“응?”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혹시 선수들이… 음. 홈경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나요?”
내가 묻자, 주머는 무슨 소리냐는 듯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잘못 생각한 건가요?”
“뭐, 가끔 그렇긴 한데.”
머리를 긁적인 주머는 씩 웃었다.
“사실 팬들이나 우리나 조울증에 걸린 것 같을 때가 있지. 사실, 홈에서는 대부분 그래.”
“조울증요?”
“그래. 홈에서 연승하면 팬들도 우리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신나 있는데, 연패면… 봤을 거 아냐? 사실 신경 많이 쓰는 다른 친구들 때문에 홈에서 분위기 안 좋으면 나도 얌전히 있을 때가 많아.”
하긴 뭐.
그런 팬들이라면 어쩔 수 없지.
부산에 있을 때도 그랬다. 적응 못 하는 선수들은 영 적응 못 하고, 그냥 될 대로 돼란 식으로 포기하고 사는 선수들이 오히려 더 편하게 야구했다.
나는…….
“왜, 홈 팬들이 무서워?”
주머는 껄껄대며 내 등을 두드렸다.
무섭지는 않다. 사실 아직 덜 겪어 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것들에 겁을 먹는 스타일이 아니다.
ㅇㅅㅇ : 그렇지. 안 무섭겠지.
ㅇㅅㅇ : 욕먹으면 타율 상승, 야유받으면 홈런.
ㅇㅅㅇ : 변태 타자 아니던가. 큭큭.
뭐래, 이 요정 놈이. 가만히 있어 봐.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좀 순진해 보였으려나?
“아뇨. 열정적인 팬들이라 마음에 들어요.”
주머는 내게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웃었다.
아무래도 진정한 필리건의 맛을 못 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그런 팬들 참 잘 다루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고.
5
파이레츠와의 3차전도 우리가 승리함으로써 스윕을 거두었다.
나는 타석에서 볼넷만 두 개를 골라냈고, 타격 보다는 수비에서 강점을 보여 준 경기였다.
어제의 도루 실패를 인정하기 싫다는 듯 파이레츠 주자들은 여전히 도루를 시도했고, 3번 중에서 2번의 도루 시도를 저지해 냈다.
그리고 이 팀의 투수들도 내 블로킹 실력과 포구 실력에 대해 슬슬 신뢰하는 눈치다.
특히, 9회 말 4 대 3 상황.
우리 팀의 마무리 투수인 그레이 밴델튼이 2사 1, 3루 상황에서 던진 스플리터가 홈 플레이트 앞에서 튀었을 때가 최고였다.
파이레츠의 1루 주자는 폭투라고 생각하고 몸 중심을 2루로 옮겼다가 내가 공을 잡아 두는 걸 보고 귀루하려 했지만 중심을 잃었다.
그리고 내 송구로 게임은 끝났다.
끝내기 견제사.
말 그대로 끝내주는 마무리였고, 나는 팀 동료 선수들에게 마구 두들겨 맞았다.
잘했으면 잘했다고 하지. 왜 두들겨 패는 건지. 필리스 팬들은 내게 사랑한다고 SNS로 공개 고백을 하고 있다. 이 미친 팬들과의 관계에서, 정말 좋은 시작이다.
그리고 다음 원정을 위해 시카고로 향할 때, 밴 마틴과 피델 산토스가 트리플A 팀으로 가느라 우리와 동행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뒷모습이 꽤 쓸쓸해 보이더라. 한국에서의 2군과는 의미 자체가 다른 거니까.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
ㅇㅅㅇ : 열심히 하지 않으면, 곧 저렇게 쫓겨날 것이다.
ㅇㅅㅇ : 조금 더 노력해라.
ㅇ□ㅇ : 노오오오오오오력!
열심히 하고 있다, 이놈아.
그리고 시카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
“이봐! 꼬마! 잘 지냈어? 이런, 주머. 배가 더 나왔잖아! 쇼! 끝내주게 던지던데!”
원래 이 팀 포수 자리의 주인인 개빈 폴체스키가 우리를 반겼다.
입은 좀 험악해도 좋은 포수 영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이 영감이랑 주전 경쟁 해야 하는 거네.
“흐흐. 개빈, 잘 지냈어요? 각오해야 할 걸요? 이 꼬마 정말 잘한다고요.”
주머가 넉살 좋게 웃으며 대답하자, 개빈은 내게 다가와 어깨에 팔을 두르며 대답했다.
“큭큭. 괜찮겠지. 꼬마, 열심히 해라. 내 자릴 뺏어야지. 41살 노인네한테 밀리면 안 되잖아, 그치?”
“허리는 괜찮아요?”
내가 그냥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개빈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근데 말에는 뭔가 좀 뼈가 있는 것 같다.
“내 허리가 아무리 안 좋더라도 내 자리를 뺏으려면 더 잘해야 할 거다. 알지?”
쉽게 내주기는 싫다는 거겠지.
뭔가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