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272)
홈플레이트의 빌런-273화(273/363)
# 273
어벤저스 (4)
1
-그는 등 뒤에도 눈이 달린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등 뒤에도 눈이 달려서 포수 사인을 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저런. 그게 바로 공도 잘 치고 사람도 잘 치는 비결인가 보군요.
시답잖은 양키식 개그에 녹음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버지가 미국 방송에서 저렇게 웃음소리 나오면 같이 박수 치고 웃으셨는데.
뭔 놈의 야구 방송이 전 복싱 챔피언을 불러다 놓고 벤치클리어링 때 사람 때린 걸 해설하고 있냐.
-위빙(weaving) 동작이 정말 깔끔했죠.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상체를 흔들었는데, 달려오던 다른 두 선수가 서로 부딪혔습니다. 저건 동물적인 감각이죠.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마 격투기 쪽으로 온다면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야구 방송이면 야구 이야기나 할 것이지. 나는 티비를 꺼 버렸다.
생각난 김에 집에다 전화 한 번 해야겠다.
보자. 지금 시간이…….
흠. 너무 늦었나.
ㅇㅅㅇ: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부모님 깨우는 불효자 vs 시간 늦었다는 핑계로 전화 안 하는 불효자.
…그래. 일단 하고 보자. 안 받으시면 자고 일어나서 하면 되니까.
혹시나 주무실까 했던 아버지는 대략 3초 만에 전화를 받으셨다.
-오! 슈퍼스타 아들내미!
“아버지, 안 주무셨어요?”
-TV 좀 보느라고. 미국 야구 방송은 꼭 이 시간에 하더라고. 이거 보고 자면 딱 맞아.
“미국 야구 방송요? 뭐 보세요?”
-네가 권투에 소질 있다는데? 너 혹시 나 몰래 권투라도 배웠냐? 그나저나 너 없으니 팀이 안 돌아가더구나. 역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아는 법이다.
아하. 저 이상한 방송을 보고 계셨구나.
꽤 오랜만에 통화하는 건데, 자주 전화 좀 드려야겠다.
아버지는 부산 자이언츠는 올해도 답이 없는 것 같다며 욕을 한 바가지 하셨다. 한국 야구 안 보고 메이저리그 볼 거라는 얘기를 몇 번을 듣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 놓고 맨날 보실 거 다 안다.
-뭔 놈의 통화를 그리 오래 해? 전화기 내놔, 이 양반아!
-으억! 왜 이래! 동네 사람들! 이것 좀 보소!
전화를 두고 투덕대는 것만 봐도 두 분은 잘 지내시는 것 같다. 아버지는 날 반가워하시고 어머니는 날 걱정하신다.
-그 무식한 양키 놈들이 너 하나 잡겠다고 몰려드는 걸 보고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ㅇㅅㅇ: …….
왜. 뭐.
ㅇㅅㅇ: 부모님 언급은 아무리 요정님이라 해도 좀…….
그래. 알면 가만히 있자. 그냥 아들내미 걱정하는 엄마 마음이니까. 대충 좀 넘어가자 이번만이라도.
“전 멀쩡해요. 괜찮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래도 그 대머리 아저씨가 제일 빨리 달려오더라. 너랑 친하게 지내던 아저씨 맞지? 생긴 건 흉악한데 안 그래도 정이 많더라.
-개빈 폴체스키한테 대머리 아저씨라니!
-대머리가 대머리지 그럼 뭐야! 아저씨 맞잖아!
-대머리 중에 제일 멋진 사람이라고!
두 분은 또 쓸데없는 걸로 투덕거리신다.
예, 어머니… 대머리긴 하죠… 자기가 매일 면도하는 거긴 하지만… 아저씨기도 하고…….
문득 웃긴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정말 아리랑 결혼하게 되면 어머니가 대머리 아저씨라 부르는 사람이 사돈이 될 텐데.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자주 전화할게요. 언제 한번 놀러 오세요.”
-그래, 아들. 여자 조심하고.
“여자 조심요?”
-잘난 아들 쭉쭉빵빵 백인 언니가 꼬신다고 아무 데나 따라가면 안 된다. 돈 많다고 접근하는 애들 없니? 우리 아들 인물도 훤하니 잘생겼는데 당연히 많겠지. 그치?
ㅇㅅㅇ: …….
…….
그래.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2
홈경기 전 휴식일, 놈들은 여지없이 내 집으로 몰려들었다.
“오늘은 내가 투수할 거야.”
“그럼 난 유격수.”
“난 포수.”
“빈! 넌 뭐 할래?”
그 이름도 거창한 필리스 황금 세대 놈들은 거창한 명칭에 맞지 않게 오늘도 유치하게 놀고 있다. 초딩들 야구 할 때 포지션 정하는 것처럼.
야구밖에 모르는 바보 놈들인가. VR 야구 게임을 하겠다고 야단법석이다. 나까지 끼워서 클랜전을 하겠다나.
난 저거 별론데.
“난 감독.”
“젠장. 빈이 감독하는 팀에선 안 뛸 거야.”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해 줘.”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들아. 너흰 애인도 없냐. 맨날 경기 없으면 여기 몰려와서 다들 뭐 하는 짓이냐고.”
갑자기 분위기가 침울해진다.
ㅡㅅㅡ: 요정님 아니었으면 초소형 포수 놈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
“…….”
에이머 이 미친놈은.
이 여자 저 여자 다 건드리고 다녔을 놈이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나만 나쁜 새끼인 거지?
젠장. 그냥 장단이나 맞춰 주자.
“아 알겠다고. 지명타자 할게.”
“좋아. 진작에 그럴 것이지. 중견수 할 사람!”
“중견수는 나야!”
짐이 포수, 에이머가 투수, 로즐이 유격수, 케이스가 중견수, 폴이 2루수, 홀든이 3루수, 크리스가 1루수, 맷이 우익수, 보리스가 좌익수. 아주 포지션이 엉망이다.
가상현실 야구 게임도 그럭저럭 도움이 되는 면은 있지만, 내 지론은 이거 한 게임 할 시간에 스윙 천 번이 훨씬 낫다는 거다.
어쨌거나 10명이 팀을 짜서 클랜전 한 게임을 했다. 빌어먹을 놈들 때문에 VR 기계만 무지하게 샀다.
Clan Red_House 37 : 0 Clan Evilline
-상대 팀이 게임을 강제 종료 했습니다!
미친놈들. 게임 하고 싶으면 살살 좀 하지. 1회 말에 37점 내니까 상대가 강종하잖아. 심지어 노 아웃이라고. 상대가 좀 약하긴 했지만 너무 심했다.
“한 번 더 해.”
투수를 맡아서 공 몇 개 던지고 게임이 끝나 버린 에이머가 투덜거렸다. 심지어 오른손이 아직 덜 나아서 좌완투수로 나섰다. 아무리 그래도 메이저리건데.
결국, 다들 손을 바꿔서 한 경기 더 하기로 했고, 이번엔 한 이닝에 5점 이상은 내지 않기로 했다가 3회 초에 강제 종료를 당했다.
Clan Red_House 15 : 0 Clan PxP
-상대 팀이 게임을 강제 종료 했습니다!
“젠장. 근성 없는 놈들.”
“게임 한 번 제대로 하기 무지하게 힘드네.”
…현역 메이저리거들로 구성된 팀을 상대로 어떤 바보가 이걸 풀게임으로 하겠냐고. 아무리 손을 바꿔서 한다 해도 말이지.
그나저나 월요일은 이놈들이랑 보내야 하나? 정말로?
뭐, 며칠 동안 자유를 얻어서 아리랑 좋은 시간을 보냈으니 상관은 없지만…….
“피오는 어디 갔어?”
짐이랑 호흡 맞추는 것 때문에 고민을 좀 하고 있었는데.
너무 늦게 알아챈 것 같긴 하지만, 피오가 안 보인다.
“피오? 오늘은 아들을 보러 간다던데.”
“그래?”
아들이라. 흠.
•́ ‸ •̀: 초소형 포수가 파워볼 슬랭에게 파워볼 넘버를 알려 주면 아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을 텐데…….
그래서 뭐.
진짜 가르쳐 줘?
•́ ‸ •̀: 내 알 바 아닌걸.
…인성 보소.
3
이어지는 컵스와의 3연전.
나는 뭔가 길게 느껴졌던 휴식을 마치고 팀으로 복귀했다.
1, 2차전도 징계 때문에 경기에 나설 수는 없겠지만, 팀 훈련은 함께할 수 있으니까.
1차전엔 로즐이 선발이고 2차전엔 쇼가 선발이다.
내 복귀전은 별일이 없는 한 맷과 호흡을 맞추게 될 테고.
컵스는 포스트시즌과 아주 천천히 멀어지고 있는 팀이다.
야심 차게 영입한 다니엘 그린부쉬가 부진과 자잘한 부상에 시달리며 제 몫을 못 하고 있는 게 일단 보기에는 가장 크지만…….
사실, 이번 시즌에 MVP급 포텐을 터뜨리며 팀의 중심으로 활약했어야 할 에이머가 여기 있는 것도 엄청나게 크다.
거칠기로는 컵스 팬들도 만만치 않고, 컵스 단장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전력 보강을 위한 트레이드를 시도하긴 했지만 시원하지는 않았다.
“훈련하는데 컵스 팬들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컵스 선수들한테 야유하고 있더라.”
“옛날 생각나네. 그땐 참…….”
“혹시 작년 초 말하는 거야?”
우리 선수들이야 여유가 넘친다. 낄낄대며 웃고 있지만, 작년 전반기 끝자락에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욕을 오지게 먹고 있긴 했었으니.
“헤이, 피오.”
“빈.”
피오는 조금 힘들어 보인다. 전 부인이 리노에 있다고 했었지.
“좀 어때요?”
“뭐, 괜찮아. 사실 괜찮진 않아. 그래도 괜찮아야지. 어쩌겠어.”
내가 없는 동안 피오는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어차피 뭘 하든 주전 자리를 뺏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만, 그래도 성적이 나쁘면 기분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으니까.
기분도 안 좋고 몸도 피곤하면 될 것도 안 된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수비에만 신경 써요. 그래도 로즐이랑 쇼니까 맞추기 편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힘없이 웃는 게 안쓰럽기까지 할 지경이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부재중일 땐 그가 포수 마스크를 써야 하는데, 팀 에이스인 짐과 호흡이 영 좋지 못하면 백업 자리도 간당간당한 게 사실이긴 하다.
피오는 고액 연봉자도 아니고, 어디엔가 뛸 곳이야 있긴 하겠지만, 최악의 상황에 방출이라도 당한다면 힘들 수밖에 없으니.
어쨌든 뭐.
나는 징계 기간이라 클럽하우스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Boooooooooooooooo!
-개자식들아!
흠. 우리가 선취점을 내주었을 때는 클럽하우스에 있는데도 엄청난 야유와 욕설이 직접 들릴 지경이었다.
4
컵스와의 3연전 중 마지막 경기가 벌어지는 8월 14일 수요일. 캡틴 필리스는 아들의 손을 잡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우리는-티켓을-환불하러-간다네-!”
“지옥으로!”
“너희는-경기 후-여행을-떠나겠지-!”
“지옥으로!”
“내일-아침 식사는-굉장히-멋질 거야-!”
“지옥에서!”
“연봉을-반납해-이기지-못할 거면-!”
“지옥을 보여 줄 테다!”
“개자식들!”
필리스는 홈 시리즈의 첫 이틀을 2연패로 시작했다.
최근 14경기 7승 7패.
물론 최근 14경기 이전의 10경기에서 9승 1패를 거두었으며 92승 28패의 시즌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최근 5경기 1승 4패라는 것은 필리스 팬들에게 용납할 수 없는 결과였다.
“아빠, 작년보다 훨씬 잘하고 있는데 왜 다들 화가 난 거예요?”
아들 토미는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얼굴에 불길이 타오르는 페이스 페인팅을 한 채로.
맥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때의 필리스와 지금의 필리스는 다르기 때문이란다.”
“어떻게 달라요?”
“2년 전 필리스가 어땠지?”
“매일 졌어요. 팀이 15연패를 한 날 아빠는 쓰레기통에 불을 지르고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쉿. 그건 비밀이야. 알지?”
“당연하죠.”
흐뭇하게 웃은 맥스는 토미에게 핫도그를 사 준 후, 경기장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다를 거야.”
“레드 빈이 돌아와서요?”
“물론이지.”
어느새 홍빈은 필리스 팬들에게 큰 의미를 갖는 존재가 되었다.
엄청나게 뛰어난 젊은 선수들이 제 실력을 보여 주는 가운데 독보적인 선수 아니던가.
“Whoooooooo!”
“레드-빈이-너희를-데려갈 거다-!”
“지옥으로!”
“선택의-시간이-왔다-컵스-개자식들아-!”
“지옥이다!”
경기장에 들어서자, 필리스 팬들 특유의 ‘지옥송’의 가사가 바뀌었다.
벅찬 마음으로 전광판을 바라보자 오늘 경기의 라인업이 나와 있었다.
1. 크리스 헬로웨이(RF)
2. 라이언 필로우(3B)
3. 홍빈(C)
4. 주머 데이비스(1B)
5. 홀든 레시글리아스(CF)
6. 케이스 에이블(2B)
7. 폴 데이먼(LF)
8. 코난 마이어(SS)
9. 맷 블러(SP)
켄트 롱이 어제 경기에서 가벼운 타박상으로 빠졌고, 에이머 시나와 진 테프먼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5경기 출장 정지에서 돌아온 홍빈이 3번 타자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것은, 보기만 해도 라인업의 무게감이 확실히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레드 빈이 3번 타자예요!”
토미는 방방 뛰며 기뻐했고, 맥스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선발투수인 맷 블러도 홍빈과 호흡을 맞출 때면 언제나 괜찮은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던가.
경기가 시작되고 필리스 팬들은 맷 블러가 컵스의 1번 타자부터 3번 타자까지 모조리 범타로 처리하는 것을 보며 소리 질렀다.
“불알을-내놓든가-!”
“지옥으로-꺼지든가-!”
“Paaaaaaaaaaaaa!”
원정에서의 연패도 답답하지만, 주로 야구장을 찾는 팬들에게 있어 홈경기에서의 연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일이다.
크리스 헬로웨이가 컵스 선발투수를 상대로 7구 승부 끝에 아쉽게 아웃되고, 라이언 필로우가 볼넷으로 출루했다.
그리고 다음 타자인 홍빈이 5경기 만에 타석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시티즌스 뱅크 파크가 들끓기 시작했다.
“R-E-D-B-I-N-!”
“Whooooooooooo!”
“날려 버려!”
“죽여 버려!”
“여기가 어딘지 똑똑히 보여 주라고!”
“그가 돌아왔다!”
“여긴 네 땅이야! 네 거라고! 레드 빈!”
“Nut and nuts!”
뭐라고 하는지 분간도 안 될 정도의 거대한 함성.
홍빈은 타석에 들어서서 씩 웃었다.
투수는 그 웃음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투수가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고, 자신의 장기인 커브를 초구로 선택했다.
그리고 이곳은.
따아아아악-!
흥선대원군 강림 스킬의 히든 유틸리티인 척화비가 세워져 있는 메이저리그 유일의 구장.
“터져 버린 불알!”
“Nut and nuts!
시티즌스 뱅크 파크였고.
“올해 그가 터뜨린 불알이 몇 갠 줄 아냐!”
“Nut and-fifty nuts!”
홍빈의 올 시즌 50호 홈런이 쏘아진 순간, 리버티 벨이 웅장하게 울렸다.
“레드 빈! 시즌 50호를 축하해!”
“Nut and-iron nuts!”
징계에서 돌아온 영웅의 귀환에, 시티즌스 뱅크 파크는 뒤집힐 듯한 환호와 기쁨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