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287)
홈플레이트의 빌런-288화(288/363)
# 288
승리의 개자식 (2)
1
많은 선수들이 마법에 걸린 것 같은 한 주를 보내곤 한다.
누구나 1년 중 가장 컨디션이 좋은 기간, 커리어 내내 가장 컨디션이 좋은 기간이 오기 마련이다.
시즌 내내 홈런 5개만 때렸던 타자가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3경기 5홈런을 기록할 수도 있다.
미쳐 버린 기간이 1주일일 수도 있고 며칠일 수도 있고 한두 타석일 수도 있지만, 마치 마법에 걸린 것만 같은 그런 시기를 보낸 선수들은 그 마법이 끝나면 힘이 빠지곤 한다.
흔히 말하는 플루크다.
“오늘 경기 2번째 홈런을 때려 낸 레드 빈! 어제 인터뷰에서 내일부터 다시 출루하면 된다고 얘기했었죠! 자신이 했던 말을 지킵니다!”
“레드 빈에게 저런 공은 위험하죠. 확실한 공을 던지지 못했습니다. 그의 스윙 타이밍은 쉬면서 넘어가는 법이 없거든요.”
“전혀 지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대단한 기록이 끊어졌지만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플레이 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정신력입니다. 승리에 대한 열망, 야구에 대한 몰입, 완벽한 프로 의식. 필리스 감독이 새로운 야구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홍빈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집중력을 유지했고, 추가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모두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누구보다, 어쩌면 홍빈 본인보다 더 연속 출루 기록이 이어지기를 바랐던 필리스 팬들은 그런 홍빈의 모습에서 어제의 실망감을 잊었다.
누구보다 태세 전환이 빠른 팬들답게.
└뭐? 연속 경기 출루? 그딴 게 무슨 소용인데?
└Fuck. 맞아. 그딴 것보단 74홈런이 더 대단한 거지.
└뭐? 레드 빈이 홈런 74개를 쳤다고? 어제 59개 아니었어? 한 경기 15홈런? Holy shit! 그는 야구의 신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그러길 바란다고.
└개자식아, 다음부터 인터넷에 글을 쓸 땐, 너 같은 놈을 낳아 준 네 어머니에게 감사 기도하면서 지금 쓰려는 글이 병신 같진 않은지 열세 번 생각하고 써야 할 거다.
└제발 좀 닥쳐. 왕이 한 경기 만에 돌아왔으니까!
└다 필요 없으니 그냥 외쳐! Nut and sixty one nuts!
└불알 수확자는 쉬지 않지!
└LOL. 오랜만에 하늘이 맑아. 저 하늘에 반짝이는 것들이 레드 빈이 날려 보낸 적들의 불알일 거야.
└으. 그놈의 불알.
└네 걸 터뜨려 주지. 불평하지 마.
└놈을 잡아.
└IP 추적이 끝났어. 3초 뒤 누가 문을 두드리면 그게 난 줄 알아라.
2
[2030시즌 8/25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순위.]1위 필라델피아 필리스 102승 28패.
2위 마이애미 말린스 71승 59패.
3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63승 67패.
4위 워싱턴 내셔널스 50승 79패.
5위 뉴욕 메츠 36승 95패.
순위표를 보고 있으니 메츠 팬들의 절규가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 팀에게 남은 일정은 32경기.
말린스와 우리 팀은 31경기 차.
오늘 우리가 이기고 말린스가 지면 우승이 확정되는 날이다.
어차피 필리스의 지구 우승은 99.999% 이상 확정적인 상황이지만, 우승을 9월이 채 되기도 전에 확정 짓게 된다는 건 특별한 일이니까.
“형은 잘 지내고 있대?”
로즐의 ‘형’ 발음이 꽤 능숙해졌다.
“궁금하면 직접 연락해 보지 그래?”
“그럴까 했는데…….”
하긴, 브레이브스는 팀 상황이 안 좋으니까.
말린스는 우리한테 스윕 당하고도 와일드카드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고, 향후 일정이 쉬운 편이라 잘 추스르기만 한다면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다.
와일드카드 순위 1위가 74승의 파이레츠, 2위가 72승의 다저스다.
63승의 브레이브스는 32경기를 남겨 두고 있지만, 시즌 막판의 10경기 차는 절대 쉽지 않다.
말린스가 남은 경기에서 50% 승률을 거둬 16승 16패를 한다는 가정하에 브레이브스는 32경기에서 24승을 거둬야 동률이 된다.
기적이란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만, 절대 쉽게 일어나지 않기에 기적이란 이름이 붙는 거다.
게다가 하필이면 당장 우승을 확정 짓고 싶어 하는 우리와 무려 4연전을 펼칠 예정이니.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한 와중에 경기에서 이기고 싶어 하는 리그 최고 팀과 만난다는 것은 재앙이지만, 내 알 바는 아니다.
(´・艸・`): 불쌍한 송가 놈…….
손 치워 봐.
d(´・▽・`)b: 인생은 역시 약육강식이지.
어휴.
어쨌든, 브레이브스는 지금 영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
특히 어떤 팬들은 송 형에게 왜 필리스의 한국인처럼 하지 못하느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더라.
아니 뭐, 한국인이면 죄다 나처럼 야구 하는 줄 아나?
“뭐, 설마. 경기에서 져 주기라도 하고 싶어?”
로즐은 브레이브스 4연전에 등판 일정이 잡혀 있다.
내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자, 로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건 안 돼.”
“고의로 힘 빼고 던지면 마운드로 달려가서 널 던져 버릴 거야.”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지 마.”
“어차피 내 이미지는 그거야.”
“헹. 그리고 내가 설마 고의로 져 줄까 봐? 온 힘을 다해 상대해 주는 게 형에 대한 예의지.”
“네가 예의를 정말 잘 지켰으면 좋겠어.”
“물론이지.”
길게 상대하면 힘만 빠지는 놈들이 팀에 둘 있는데, 당연히 로즐과 에이머다.
케이스는 자뻑이 좀 심하긴 하지만 그나마 저 둘에 비하면 정상인 카테고리에 넣어도 손색이 없고.
사실, 송 형과는 종종 메시지를 주고받는 편이긴 하다.
내 출루 기록이 깨졌을 때 연락했었는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고 다음 날 홈런 두 개를 때리니 이런 메시지가 왔다.
-식중독 걸렸다고 하고 사나흘만 쉬면 안 되겠냐? <송 형>
-어제 돌도끼로 두드려 맞는 꿈 꿨다. <송 형>
-4만 명한테. <송 형>
-걔들이 ‘두껍아 두껍아, 송윤근 줄게 홍빈 다오.’ 노래 부르더라. <송 형>
-삵ㅕ줘. <송 형>
거참.
웃기는 양반이라니까.
로즐에게 말하면 괜히 신경 쓸까 봐 말은 안 했는데, 이런 엄살이 내게 통할 거라 생각했다면 경기도 오산이다.
(○□○): 그런 말도 안 되는 쓰레기 개그를……!
…쓰레기는 너무하지 않냐.
(○□○): 요정님에겐 쓰레기를 쓰레기라 부를 수 있는 호쓰호쓰의 권리가 있다……!
3
브레이브스는 개빈의 은퇴 투어 기념으로 개빈이 젊을 적에 박살 낸 더그아웃 전화기를 선물해 줬다.
정작 개빈은 그 전화기를 박살 낸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남의 구장 더그아웃의 전화기를 하도 많이 박살 내서 여기 것도 박살 냈는지 기억 못 하고 있는거였다.
맥마나만 감독님은 개빈이 전화기를 부술 것을 대비해 예비 전화기까지 가지고 다녔다고 하니 할 말 다한 거지 뭐.
요즘 뭐 하고 지내시려나. 건강은 괜찮으신가?
딱!
“세이프!”
선두 타자 케이스가 가볍게 안타를 치고 나갔다.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의 브레이브스로서는 올스타 선발투수인 해리 올슨이 매일 경기에 나서길 바라겠지만, 오늘 선발은 콜 무스비다.
“A-mer! Kill him!”
여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시티즌스 뱅크 파크가 아니라 조지아주 컴벌랜드의 선트러스크 파크지만, 우리 팬들의 외침이 우렁차다.
음. 거의 우리 홈처럼 느껴질 정도로.
“A-mer! 넌 강해!”
“A-mer! 넌 끝내줘!”
“A-mer! 넌 최고야!”
어딘가 박력 있는 박자에 저런 유치한 가사를 붙이니 듣기가 참으로 곤란하도다.
콜 무스비 공략법은 간단하다.
변화구를 치지 않고 패스트볼만 노린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주루 실력을 기대할 수 있는 주자가 나가면 도루를 시도한다. 혹은, 도루를 시도하는 척만 해도 된다.
“피처 보크!”
괜찮은 공을 던지는데도 고평가를 못 받는 이유다.
이번 시즌이 끝나고도 저 멍청할 정도의 픽 오프 실력을 어떻게 하지 않는다면 여기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거다.
“베이스 온 볼스!”
흔들린 콜 무스비는 에이머에게 볼넷을 내주었다.
가끔 그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투수의 대부분은 멍청이인지, 아니면 투수가 그만큼 어려운 직업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둘 다일 수도 있다.
“What are you-coward or major leaguer?”
타석에 나가기도 전에 우리 팬들이 콜 무스비를 압박한다.
오늘 저렇게 우리 팬들이 많은 이유는, 여기서 지구 우승을 확정 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들 우승을 기대하고 몰려온 거다.
반대로 브레이브스는 2~3주 전만 해도 상승세를 타며 아주 낮은 가능성이나마 살렸지만, 최근 1주일간 1승 5패를 기록해 팬들이 화가 나서 경기장을 찾지 않은 듯하다.
[콜 무스비] [우투우타, 선발투수] [키워드: 팔색조, 좀비 투수, 그라운드볼러] [상대 투수의 국적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상대 투수와의 연봉 차이가 2.4배로 확인되었습니다!] [상대 투수의 서비스 타임이 4년 차로 확인되었습니다!]뭐, 이건 다 아는 거고.
“식중독 걸렸다며, 멀쩡해 보인다?”
[발설지옥 스킬 Off.]그래도 형 동생 하는 사인데 욕은 좀 그러니까.
“잘못 들으셨나 본데요? 저 되게 멀쩡해요.”
“독한 놈.”
“승부의 세계는 독한 법입니다.”
“나쁜 놈.”
“야구장 밖에선 착한 동생 될게요.”
“그럼 너희 팬들 좀 어떻게 해 봐.”
“죄송한데 거기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절대 아니라서.”
“뭐가 그리 안 되는 게 많아?”
나는 대답 대신 그냥 웃었다.
당연히 안 되지. 저 사람들이 누구 말을 들을 사람들도 아니고.
투수가 1루와 2루를 번갈아 바라본다.
“개자식아! 던지기도 전에 겁먹었냐!”
“볼넷을 줬다간 분노한 진 테프먼을 만나게 될 거다!”
오늘은 진 테프먼의 선발 복귀전이기도 하다.
이틀간 대타로 나왔고, 어제는 경기 중반에 투입되어 안타 하나와 볼넷 하나를 기록하기도 했다.
잠깐 주전으로 나오며 행복했던 폴에겐 안된 일이지만, 진이 돌아와 4번으로 나온다는 사실은 상대 투수들에게 꽤 압박감으로 작용할 거다.
“세이프!”
1루 견제구다.
“거기엔 포수가 없다고! 멍청한 자식아!”
“세이프!”
이번엔 2루.
“C-O-W-A-R-D!”
“세이프!”
“다시 한번 더 견제했다간 개자식이라 부를 거다!”
이미 부르고 있으면서. 개자식이라고 말 않은 척하기는.
“견제 끝날 때까지 잠깐 쉬었다 와도 돼요?”
“그냥 오늘 쉬어.”
“예. 홈런 치고 쉴게요.”
“인정머리 없는 놈.”
“내일 고기 얻어먹으러 가도 될까요?”
“그래. 와라, 와. 와서 다 뜯어 먹고 가라. 상추도 심어 놨다.”
쉬엄쉬엄 대화나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투수는 다시 한번 2루에 견제구를 던졌다.
“세이프!”
“Booooooooooo!”
“난 야구 보러 필라델피아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이 개자식아!”
“나가 죽어!”
“지옥에서도 견제구를 던질 수 있나 보자!”
주자를 잡기 위한 게 아니라 그냥 자기 위안 같은 견제는 아무 쓸모가 없다.
✽-(ˆ▽ˆ)/✽: 빅토리! 빅토리!
✽\(ˆ▽ˆ)-✽: V-I-C-T-O-R-Y!
…넌 또 왜 뜬금없는 응원이냐?
ㅡㅅㅡ: 가만 있기 심심해서…….
하긴 견제가 좀 심하긴 하다.
견제 동작도 엉망인 데다가 저렇게 연속으로 견제하는데 어떤 주자가 걸려 주겠나.
심지어 마지막 견제구는 제구도 제대로 안 되어 공짜로 한 베이스씩 진루할 뻔했다.
저 정도면 그냥 도루 내준다 생각하고 주자한테 신경 끄는 게 낫지.
어쩌면 이런 건 송 형이 투수에게 신뢰를 못 줘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고기나 얻어먹으면서 투수 궁둥이 걷어차는 법이나 가르쳐 줄까.
어쨌든 투수는 포수에게 공을 던져야 한다.
디셉션 같은 건 개나 줘 버린 선수이기에, 패스트볼만 노리면 된다.
아주 단순하게.
따악-!
가벼운 마음으로 밀어 치는 스윙.
큰 거 한 방보다는 확실한 1점을 위해 밀어 친 타구는 두둥실 날았고, 생각보다는 멀리 날아갔지만 아무래도 외야수가 잡아내기 딱 좋은 각도… 였는데.
“Hoooooooooo!”
외야에서 바람이 불었는지, 그리고 밀어 친 코스가 꽤 절묘해서 99m에 불과한 우측 펜스를 스치듯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말았다.
“Nut and-sixty two nuts!”
가끔 넘어갈 것 같지 않은 타구라도 바람을 타거나 해서 얼렁뚱땅 펜스를 슥 하고 넘어가 버리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런 경우다.
✽-(ˆ▽ˆ)/✽: 이건 다 요정님의 응원 덕분이니라.
✽\(ˆ▽ˆ)-✽: 브이-아이-씨-티-오-알-와이!
어깨를 으쓱하고 베이스를 돌았다.
송 형의 똥 씹은 듯한 표정이 보인다.
가볍게 홈 플레이트를 밟는데, 송 형이 뚱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고기는 네가 사 와라.”
“옙. 쌈장도 사 갈까요?”
“…소주도 한 병만 사 와라.”
“Hell yeah!”
헬 예도 예는 예니까.
알겠다고 대답한 걸로 알아들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