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338)
홈플레이트의 빌런-339화(339/363)
< 339화 홍빈(순한 맛) (2) >
1
“레드 빈이 배트를 던졌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요.”
해설자는 나름 긴장감을 가지고 이 한마디를 내뱉었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그게 뭐?
└레드 빈은 포스트시즌이 아니라 연습 배팅 때도 배트 플립을 할 사람인데, 고작 저거 가지고?
└그나마 오늘은 얌전하게 했네.
└맞아.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거나 바닥에 내려찍지도 않았지.
└게다가 포수 뒤 백네트에 배트를 전시하지도 않았잖아.
└그래도 어제 경기가 끝난 후의 인터뷰를 생각해 보면 투수가 화날 법도 한데, 괜찮을까?
└미래가 보이는군. 다음 타석에서 앤디 서킷이 레드 빈의 머리를 맞히고, 레드 빈은 앤디 서킷의 얼굴을 뭉개진 애플파이처럼 만들걸. 그리고 파이레츠 내야수 중 두셋은 팔이나 다리가 부러질 테지.
└빈! 놈을 죽여! 그깟 월드시리즈 못 나오면 뭐 어떻다고 그래? 죽여 버려!
└장담하는데, 위에 놈은 절대 필리스 팬이 아니야.
└맞아. 필리스 놈들이라면 레드 빈에게 징계가 내려져선 안 된다고 말할걸.
└무슨 소리야? 당연히 투수를 패도 징계를 주면 안 되지.
└어째서? 사람을 때리면 경기에 못 나오는 게 당연한 거 아냐?
└꼬우면 자기도 홈런 치고 배트 플립 하라지.
└맞아. 그에게 헤드샷을 날리는 투수는 영구 출전 정지를 줘야 해.
└월드시리즈 흥행을 위해서라면 레드 빈에게 징계를 줘선 안 될걸.
└개자식들. 이미 올라간 것처럼 말하네.
└근데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재미는 있어. 과연 파이레츠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저런 캐릭터가 있는 게 재밌긴 한데, 우리랑 상대할 땐 짜증만 나. 우리 선수들이 저자식이랑 눈만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는 게 자존심 상한다고.
어쨌든, 경기는 속개됐다.
필리스는 더 이상의 추가점을 내지는 못했고, 파이레츠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될 차례.
어떤 선수들은 지나치게 긴 휴식이 주어질 때 실전 감각이 모자라 고생하곤 한다.
“베이스 온 볼스!”
몸이 풀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수만 명의 관중이 들어찬 경기장의 한가운데서 공을 던지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무리 계속해 왔던 일이라 하더라도.
거프 로저스는 최대한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차가워진 손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쌀쌀한 날씨에 익숙지 못해 투구하는 데 조금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홍빈이 2점 홈런을 때리며 힘을 실어 주었다.
팀의 다른 선발투수들이 9이닝 1실점, 9이닝 무실점,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조금 부담감을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두 자릿수 승리를 넘어 무려 14승을 거두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거프지만, 어쩌면 다른 천재적인 선수들 때문에 조금 기가 죽어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거프, 우린 병살을 따낼 준비가 됐어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케이스의 목소리.
저 천재 키스톤콤비의 호수비로 위기를 넘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한테 보내요. 어제 병살을 5개 따내는 꿈을 꿨으니까.”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에이머의 목소리다.
‘저 자신감이 내게도 있었으면… 젠장. 아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그런 건 생기는 법이지.’
씩 웃은 거프는 홍빈의 사인대로 싱커 그립을 쥐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몇 점 정도 내주더라도 타자들이 더 점수를 뽑아 줄 것이다.
싱커볼러의 특성상, 야수들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을 믿고 싱커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조금 뜨끔한 투구였다. 생각보다 가라앉지 않아 존 안으로 들어갔는데, 타자가 배트를 내지 않았다.
그 와중에 홍빈은 자신에게 공을 던져 주며 상대 타자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 듯했다.
‘정말 대단한 녀석.’
거프는 다음 공을 준비했다. 다시 싱커.
딱!
이번에도 좀 덜 가라앉은 공을 타자가 때려 냈다.
3-유 간 깊은 곳으로 향하는 타구.
안타가 될지도 모르는 코스였지만 에이머는 포기하지 않고 몸을 날렸고, 공을 잡아내 2루로 던졌다.
“아웃!”
하지만 워낙에 깊은 타구였던지라, 그리고 기존 1루 주자의 깊은 태클 탓에 1루까지 송구는 이어지지 않았다.
다음 타자는 파이레츠의 핵심인 O.J.레이튼.
그래도 자신감이 조금은 생겼다.
방금도 안타가 될 뻔한 타구를 에이머가 건져서 무사 1, 2루가 될 것을 1사 1루로 바꿔 주지 않았는가.
어차피 상대도 자신이 싱커를 던질 걸 알겠지만.
거프는 이번에도 병살을 따내기 위해 싱커 그립을 쥐었다.
따아아악-!
이번에도 문제는 덜 가라앉은 공이었다.
큰 타구가 외야를 갈랐고, 홀든이 타구를 따라갔지만 역부족.
“Hoooooooooooooo!”
“O-J-! O-J-!”
그리고 거프의 시야에는 홈런을 때린 레이튼이 배트를 등 뒤로 멋들어지게 던진 후, 홈 팬들에게 거수경례를 하면서 베이스를 도는 모습이 보였다.
“O.J.레이튼이 그의 방식으로 필리스에 복수합니다. 그가 배트 플립을 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군요! 아주 멋진 모습입니다! 야구에는 야구로 갚아야죠! 좋습니다! 승부의 균형을 맞추는 파이레츠! 아직 이 경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2
(@;◇;@): 착해 빠진 주스맨…….
세상에 이런 일이.
홈런 치고 배트 플립 하고, 거수경례하면서 베이스 도는 게 착해 빠진 거라고?
(@;◇;@): 이게 다 네 녀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
아니 뭐……,
그렇게 갖다 붙이자면 한도 끝도…….
(@;◇;@): 멍청한 불알형 포수 놈. 요정님의 말을 부정하다니.
젠장. 그래.
알겠다고.
“내게 헤드샷을 날리진 않을 거지? 이걸로 서로 같아진 거야.”
레이튼은 입 모양을 최대한 작게 만들어서 내게 그렇게 말하곤 파이레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파이레츠 더그아웃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춤을 추고 환호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사실 난 저런 걸 봐도 별 감흥이 없긴 하지만, 투수는 좀 다를 수도 있다.
심판에게 양해를 구한 후 마운드로 올라갔고, 내야수들이 마운드 주위로 모여들었다.
“거프.”
그나마 거프의 컨디션이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파악해 둔 것이 다행일지 모른다.
아직 불펜의 움직임이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에겐 몸 푸는 시간이 거의 필요 없는 에드윈이 있다.
에드윈이 한 이닝 정도를 정리할 동안 다음 투수가 나올 시간을 벌 수 있다.
“후.”
살짝 한숨을 토한 거프는 조금 자신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기랄. 싱커가 평소만큼 가라앉지 않아.”
배트 플립과 세리머니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문제가 뭔지 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몇 구 던지다 보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했고, 2번 타자에게 땅볼을 유도해 내는 걸 보고도 싱커를 요구한 것은 내 잘못도 있다.
“맞아요. 방금은 제가 너무 경솔했죠.”
“아니야.”
물론 싱커가 생각만큼 떨어졌더라면 이러지 않았을 테지만.
내 실수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싱커가 살아나야 경기를 풀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레이튼이라도 피해 갔어야 했나.
“일단 이번 이닝은 포심과 슬라이더로 마무리해 보죠. 그 뒤는 다시 생각해 보자고요.”
거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믿고 던져요.”
“다 막아 드릴 테니까.”
멍청이 키스톤콤비가 한마디씩 거들었고.
“괜찮아. 이제 동점이잖아.”
“그래. 고작 2점이잖아. 해보자고.”
코너 내야의 베테랑들도 거프를 격려했다.
거프는 살짝 민망한 듯 웃으며 자신을 격려하는 내야수들에게 감사를 표했고, 우리는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웃!”
“아웃!”
어쨌거나 길고 복잡했던 1회는 끝났다.
거의 싱커만을 머릿속에 넣고 들어온 파이레츠 타자들에게 어떻게 범타를 유도해 냈으니.
하지만 이제부터가 문제다.
원 패턴으로 던지는 투수는 그 패턴이 먹히기에 효과가 있는 것이다.
[거프 로저스] [좌투좌타, 선발투수] [키워드: 팔색조, 싸움닭, 올빼미, 그라운드볼러]그나마 다행인 건 거프가 원래 팔색조 키워드를 달고 있는 투수였다는 점이고, 볼 배합과 구종 조합으로 어느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Move, move!”
“앤디 서킷을 박살 내러 가자고!”
타자들도 팀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공격을 준비했다.
뭐…….
잘돼야 할 텐데.
정 안되면.
ㅍㅅㅍ: 정 안되면?
포수를 괴롭혀서 투수를 두들길 방법을 찾아야지.
ㅍㅅㅍ: 주스 요정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 셈인가…….
3
앤디 서킷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거프도 1회 말에 홈런을 맞은 것을 겨우 잊으려는 듯 2회 말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1사 이후 패턴을 포심-슬라이더로 바꾼 것을 눈치챈 파이레츠 타자 둘이 출루했지만, 다시 싱커-커브로 바꾸며 병살을 따냈다.
싱커를 90% 이상 던지며 승부를 보기엔 조금 힘든 상황이지만, 거프가 가진 여러 구종을 조합하면서 해답을 찾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3회 초, 거프부터 시작된 공격.
거프가 아웃당하고 케이스가 안타를 뽑아내며 출루했지만, 에이머가 인필드 플라이로 아웃당하며 내 타석이 돌아왔다.
“알지? 두 팀 다 홈런 치고 배트 플립 했으니 우려할 만한 사태가 없었으면 좋겠군.”
심판은 미리부터 우리에게 경고하고 시작했다.
어제 개빈이 그랬었다. 난투극이 벌어지면 투수를 때리지 말라곤 안 하겠는데, 웬만하면 피떡으로 만들진 말라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월드시리즈 흥행에 심혈을 기울인다.
너무 심하지만 않으면 내게 큰 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하긴, 내가 없는 메이저리그가 흥행이 되겠냐고.
ㅡㅅㅡ: 궁금하면 지금 달려나가 보시든가…….
그건 좀 그렇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잡으려 했지만.
“자동 고의 사구야. 빈, 1루로 출루해.”
…음.
“진짜요?”
“진짜지.”
“착각한 거 아니에요?”
“아니니까 빨리 나가. 아무 말 하지 말고.”
나는 떠밀리다시피 출루했다.
앤디 서킷이 자동 고의 사구를 받아들일 줄이야.
“Booooooooooo!”
“Booooooooooooooooooooo!”
내가 고의 사구로 출루하게 됐다는 것을 확인한 관중들이 질세라 야유를 쏟아 낸다.
내 얼굴만 보면 야유를 쏟아 내는 파이레츠 팬들 그리고 자동 고의 사구라는 말만 들어도 자동 반사로 야유를 퍼붓는 우리 팬들의 야유가 섞였다.
더블 스틸을 생각해 볼 만한 상황이다.
투수가 강하면 도루의 가치는 올라간다.
물론 실패하면 타격은 더 크겠지만.
“세이프!”
“세이프!”
“세이프!”
앤디 서킷은 연속 견제구 3번으로 나와 케이스의 발을 묶어 놓았지만.
딱!
진 테프먼은 내 고의 사구 이후, 타격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타를 뽑아내 1점 추가. 3 대 2.
후속타는 터지지 않았지만, 이걸로 거프의 어깨를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나 싶다.
음.
그렇게 생각했다.
4
[LIVE) 필라델피아 필리스 3 : 2 피츠버그 파이레츠]-4회 말. 무사 1루.
-파이레츠 좌익수 애덤 그리지 타석.
-초구 볼.
-2구 볼.
└필리스 투수 교체 안 하나?
└투수 많잖아; 왜 안 함?
└로빌이나 맷 올리지. 땅의 요정님 오늘 영 안 좋은데?
-3구 타격.
-좌중간 홈런(비거리 119미터).
-스코어 4 대 3. 파이레츠 역전 홈런.
└터진다!!!
└하. 불안불안하더라니
└돌키 브라운 감독 새끼 뭐 함? 구경만 함?
└선수빨로 감독 하는 새끼 아니냐. 솔직히 지가 하는 게 뭐가 있음?
-파이레츠 유격수 소니 랜볼리 타석.
└뭔데? 아직 교체 안 하고 계속 감?
└ㅂㅅ들아, 무작정 교체한다고 이게 되는 줄 앎?
└불펜에 그래도 몸 푸는 거 보이네. 에드윈 볼테어랑 맷 블러 같은데.
└아직 1점 차고, 한 판만 이기면 월시 가는데 굳이 무리할 필요 있겠냐?
└확실하게 잡고 가야 편하지 않냐? 오늘 경기에 투수 다 때려 붓고 푹 쉰 다음 월시 가는 게 낫지 ㅡㅡ
-소니 랜볼리, 중전 안타.
└이야, 터진다. 겜 터진다. 터져쓰요.
└저 새끼 14승 어케 함?
└쒸바. 메이쟈 수준 알 만하네 ㅋㅋㅋㅋ
-필리스 투수 교체.
-거프 로저스(out), 에드윈 볼테어(in)
5
거프에겐 아쉬운 결과였다. 잘될 수도 있었는데.
거프는 3이닝 4실점을 기록했고, 에드윈이 4회 말을 어떻게 마무리 지었다.
사실 2사 만루까지 몰리긴 했지만… 어쨌든 막아 내긴 했으니까.
1점 차.
하지만 오늘은 3점을 냈다.
앤디 서킷이 1차전 같은 컨디션을 보여 주고 있다면 조금은 힘들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내 홈런 외에도 안타로 1점을 더 뽑아내지 않았는가.
그래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타자들 사이에서 감돌고 있다.
“다음 이닝부턴 맷이 올라갈 거다.”
개빈이 우리에게 귀띔해 주었다.
좌투수가 실패했는데 또 좌투수.
이걸 보면 확실히 감독님은 누군가가 자기를 욕하는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맷이 점수를 몇 점 더 내주게 되면 경기 운영 방식이 글러 먹었다고 욕을 엄청나게 먹을 텐데.
그나마 맷이 그런 부담감을 이겨 낼 수 있을 만큼 능글맞은 놈이라 다행인가.
“잘 봐. 마법을 보여 줄게.”
정말 오랜만의 등판에 맷은 어딘가 들뜬 듯했다.
“마구라도 준비했어?”
내가 묻자 맷은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대답했다.
“로즐의 삼촌이 내게 뭔가를 가르쳐 줬거든.”
기욤 페르난데스가?
“젠장. 파트너 모르게 뭔 짓을 한 거야?”
그러자 맷이 이번엔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별건 아니야. 크게 변한 건 없어. 타자는 놀랄 수도 있겠지만.”